2013.6.29 구역장수련회
특강 : 주기도문
2013.6.29 구역장수련회
녹취자 : 정은숙B
이 책을 제가 한 달 남짓 썼습니다. 한 한 달 보름 정도 썼습니다. 이것만 쓴 것이 아니고 교회 일 다 하면서 틈틈이 썼고 많이 쓸 때 하루 원고지 300매까지 썼습니다. 단 번에 확 썼습니다. 그 다음에 각주 찾고 만지고 하는데 시간이 좀 갔는데 저는 너무 행복했고 책을 다 쓰고 딱 끝나니까 하늘에 있다가 땅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나에게 이 책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힘을 준 자매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방년 나이 12세입니다. 12세인데 2010년인가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자매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부른 더 로즈 퍼 프레이어 주기도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거의 안 하는데 유투브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음악이 있었습니다. 쳐보다가 그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여태까지 들어본 주기도문의 모든 노래는 이 열두 살짜리 자매의 노래에 비하면 정말 예고편도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제키 에망코 소개합니다. (주기도문 노래 영상)
저것을 옆에 틀어놓고 한 달 내내 들으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들으면서 주기도문을 빨리 쓰라 빨리 쓰라.(웃음) 열두 살 자매인데 크리스천입니다. 정말 탁월한 가창력으로. 아직 변성기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됐는데 탁월한 창법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책을 참 빨리 쓸 수 있었습니다. 계속 들으면서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주기도문을 읽으실 때 저 노래를 틀어놓고 읽으면 빨리 읽어 빨리 읽어. 그러면서 책을 읽어가는 것입니다. 어쨌든 참 행복하게 썼고 한 번을 읽었습니다. 여태까지 나온 저의 많은 책들 중에서 초판 치고는 오자가 적은, 한두 군데 있긴 있지만 가장 오자가 적은 완벽한 책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기도문을 읽으시면서 아주 즐거워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 그러면 이 주기도문에 대해서 강의를 하라고 했는데 이것을 하늘에 계신으로부터 다시 강의한다고 하는 것은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벌써 설교 속에서 많이 이루어졌고 이 책에 이미 상세히 기록이 되어있기 때문에 저 뒤에 넘어가서 일용할 양식 그 쯤 가면 조금 어려워질 것입니다. 헬라어도 많이 나오고 여러 가지 많은 학설들도 나오는데 그것은 그래도 꼼꼼하게 썼기 때문에 잘 모르셔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제가 요번 주일 날 설교를 끝으로 광고가 나가겠지만 제가 한 달 동안 교회를 비웁니다. 교회 개척하고 처음으로 휴식의 시간을 갖는데 혼자 조용히 프랑스 위그노와 영국 청교도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해서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네 번을 주일날 여러분을 못 만나게 되는데 그러나 모릅니다. 갔는데 여러분 너무 보고 싶고 허리도 안 좋고 하면 빨리 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계획으로는 넉 주 여러분과 헤어지는 걸로 되어있습니다. 돌아오면 돌아와서 어려운 부분들은 교구 교역자들에게 잘 가르쳐서 여러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교리반도 이수했고 기독교강요 같은 것도 이미 여러 번 읽었고 교리에 대해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런 주기도문의 깊이 정도는 여러분들이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양이 좀 많아서 부담스럽기는 한데 양이 많다고 하는 것은 내용이 풍부하다고 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셔도 되고 책을 놓고 보면 아시겠지만 각 장마다 두께가 거의 비슷합니다. 지난번에 빛으로 산다는 것은 한 장이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두꺼웠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고 비슷비슷합니다. 일용할 양식 정도만 양이 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한 챕터 한 챕터 읽는데 그렇게 커다란 어려움 없이 연결성 속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5프로 정도 있어야지만 지적인 자극이 되어서 자기를 성장시키지 읽어서 뻔한 것들은 도전이 안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수준에 딱 맞는 책이다 생각이 들고 꼼꼼히 읽으면 가르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을 믿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만 염려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가르칠 때 아무리 내용이 훌륭해도 재미있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대해서 가르치는데 구역원이나 순원들도 한글 다 읽을 줄 아니까 집에서 다 읽어올 것 아닙니까? 여기에 나와 있는 얘기를 반복해서는 순원들에게 흥미를 끌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것을 설명할 때 칼 세이건 이야기도 나오고 우주 이야기도 나오고 그렇지 않습니까? 인터넷 들어가면 다 있습니다. 캡처해서 아이패드 등에 담아 와서 탁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명해주면서 여러분들이 한 번 이 책을 공부하다가 여기에 무엇을 참고했다는 것이 다 나와 있으니까 인터넷이나 책에서 다 찾아보고 칼 세이건의 책도 좀 보고 여러분들이 이것을 하는 가운데 앤서니 플루의 책도 읽고, 무슬라프 볼프의 책도 일고 칼 세이건의 책도 읽고 그 다음에 게스트로놈의 미식학에 대한 책도 읽으면서 원자료들을 찾아가면서 설명을 풍성하게 해 줄 때 구역원들이 얼마나 감동하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한 공과가 끝나고 나면 역시 우리 구역장님, 우리 순장님 참 역시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된다 그렇게 보이게 그럴 정도로 여러분들이 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료까지 찾아서 몇 페이지까지 다 해놨으니까 그대로 찾아보고 지금 인터넷을 많이 쓰니까 핸드폰에 툭툭 치기만하면 좍 자료들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을 꼼꼼하게 읽어서 이 내용을 잘 보충해서 설명해주고 화면 같은 것도 보여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긴 설명은 간단하게 도표로 만들어서 이런 것이다 설명해주고 가장 좋은 것은 여러분들이 설교를 다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이것을 하면서 먼저 듣고 두 번을 주기도문을 설교했는데 나중 것 열네 번 설교한 것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듣고 죽 정리한 다음에 은혜를 받은 다음 책을 읽습니다. 그 다음에 맨 뒤에 나와 있는 한 눈에 한 장 보기 죽 보면서 요약한 것을 보면 요약한 것을 가지고 설명을 하면서 가르칠 수 있도록 자료를 찾아가지고 가서 순원들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이 바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앤서니 플루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사상은 이렇고 이 사람이 이런 책들을 썼고 30여권이나 되는 책을 구역장들이 다 읽고 갈 수는 없지만 이런 책을 썼고 이 사람의 사상은 이런데 그래서 이 사람은 신은 존재한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은 1969년생인데 프랑스 철학자이고 문학자이고 수필가이고 한국의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이런 설명까지 해주면 보통 같은 사람은 거의 아이돌 스타입니다. 한국의 여대생들에게. 손수건을 흔들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곁들여주면서 주기도문의 원 갈래를 여러분들이 가르칠 때에 정말 놀라운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 14주 동안에 뭔가 아주 중요한 개인적인 부흥들이 구역과 순과 그리고 교구에 일어나게 되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왜 아멘을 안 하십니까?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는 여러분들에게 이 주기도문이 도대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오늘날 이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지만 이것은 하나의 기도해야할 모든 내용을 가르쳐주셨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여야 할 기도의 패턴 즉 기도의 어떤 틀을 기도의 형태 혹은 틀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 기도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하면 이 기도의 처음 시작이 제일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가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게 제 1부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대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명제입니다.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가슴에 새겨야할 명제라 이 이야기입니다. 자, 우리는 주기도문의 내용이 뭔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이 기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면 거기에서 진정한 기도가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진정으로 알면 거기서 기도가 나오는데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고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지식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차대한 명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주기도문을 배우면서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 하나 하나가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형태를 배우면서 그 기도 형태 하나 하나에 대한 탐구가 그 기도를 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나아가서는 그 기도를 기쁘게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결시키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욕망과 한 사람의 사람됨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겉모습으로 봐서는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인상은 있습니다. 참 까탈스럽게 생겼다 혹은 사람이 널널하게 생겼네 이렇게 인상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일지는 좀 두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거의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별이 말하자면 이율배반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욕망의 방향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기도를 하게 하셨다고 할 때 그것은 그런 기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제일 먼저 1장에 다룬 것이 무엇인가 하면 계신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하늘에 계신 할 때 우리 아버지 할 때 그것은 세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이즈 있다 존재와 그 다음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 하늘에 있다 그 다음에 하늘에 있는 그 분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아버지다 그리고 그러면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있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제 1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그래서 1장 계신 하나님 그런데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문제를 여기에서 다뤘는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다룬 것이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라고 할 때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이지 않습니까? 어데이즘 그러니까 하나님은 없다 라고 보는 것이 무신론이라면 유신론은 하나님은 있다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신론 가지고는 만족이 안 됩니다. 계시되 그냥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씩 다루자면 우선 무신론은 사상적인 무신론과 실천적인 무신론으로 나뉘어지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때문이가 하면 이런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있다 라고 하는 계사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있다의 의미는 현저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모두스 에센디 또는 모두스 이그지스텐디라고 합니다. 이그지스텐드는 무엇인가하면 영어로 이그지스턴스 실존입니다. 그래서 실존의 방식이 사물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사물이 예를 들면 이런 시계가 있다 라고 하는 것과 평화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모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 가운데 평화가 있는 방식과 시계가 있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방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실존하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신의 존재 문제를 이야기를 해야지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반적으로 과학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획일화시켜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물의 존재하는 방식의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가 있는데 첫째가 뭐냐 하면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래 서컴스케티브라고 하는데 서컴이라고 하는 것은 둘레라는 뜻입니다. 서컴스턴스는 환경이 됩니다. 스크리티브는 서술하는 것 그리는 것입니다. 이마큼이다 라고 둘레를 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한정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 책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한정적 사물입니다. 요 끝에까지는 책입니다. 이 밖은 책이 아닙니다. 볼 수 있도록 각이 져있고 책인 것과 책이 아닌 것이 뚜렷이 구별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적인 사물들이 이런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철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철학적인 이야기가 1장에서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을 향한 변증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래서 보면 이렇게 서컴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스크립트로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존재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 서컴스크립티블리 하게 존재한다 즉 한정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한정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책은 요만한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깥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물들은 전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있다 라고 하면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하나님이고 이 밖에는 하나님이 아닌 형태로 하나님이 있어야하는데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일 기준을 가지고 모든 사물들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 과학에서도 입증되었던 것입니다.
과학에서 논란이 많았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빛입니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 그래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역사적으로 해석이 엇갈려 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때 배운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를 설명하는 스니치 같은 것이 다 기억 날 것입니다. 만약에 빛이 순수한 파동이라면 빛이 새나오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과학자들이 마지막에 와서 결론을 내린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기하게도 이 빛은 파장의 형태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속도와 전파의 속도가 일치합니다. 초당 30만 킬로미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물들이 파장이면 입자가 아니고 입자이면 파장일 수 없는데 이것은 신기하게 파장이면서도 광자라고 하는 입자들의 덩어리입니다. 여기 이제 뒤에 보면 양자역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면서 아, 짜증나 이것은 또 왜 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여러분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매우 유용한 변증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 양자역학의 해석사 이런 것들에 들어가서 한 번 보십시오. 그러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몇 번을 읽어야하고 강의한 것은 몇 번씩 심지어 내가 다섯 번 여섯 번까지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하는 이야기가 양자역학에 대해서 특정 사실을 설명하면서 요 부분을 이해하는데 우리 학자들도 3-4년을 공부해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30주 안에 가르치겠습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삼사 년을 연구해야하는 것을 30주안에 가르쳐주는데 우리가 무슨 천재라고 다 알아듣겠습니까?
근데 그 양자역학 속에 내려가 보면 더 신기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것입니다. 속도를 계산하려고 하면 위치가 안 보이고 위치를 계산하려고 하면 속도가 안 나타나고 우리들이 존재하는 서컴시크리티블리 하게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에 익숙해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세계 속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저 초거시 세계 속을 들어가거나 아니면 원자 이하의 세계로 내려가게 되면 여기와는 전혀 다른 물리적 법칙들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상대주의를 불러 오게 된 20세기 사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몇 번 강의하면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이야기하고 다 맛 닿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들어가서 한 번 공부를 해보면 할 일이 많겠지요. 물론 많은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여러분들은 성경 지식과 이런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들어가면 찾아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훈련이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최고입니다. 내가 만난 최고의 구역장들입니다. 정말입니다. 다른 교회 가서도 교역자들을 자랑할 때는 많지 않아도 구역장 자랑할 때는 많습니다. 우리 구역장 최고다, 정말 최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최고답게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다음에 것이 뭐냐 하면 두 번째로 존재하는 방식이 뭐냐 하면 데피니티블리 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적 사물입니다. 추상명사 말고 영적사물. 예를 들자면 천사 귀신 마귀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에도 설명했지만 내 영혼이 내 안에 있지 저 사람 속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 영혼이 내 몸 어디에 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내 몸 어디에도 내 영혼 없는 곳이 없고 그리고 오늘 많이 먹어서 배 나오고 키가 컸다 하더라도 커진 부분이 영혼이 없이 비어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처럼 이렇게 서컴시크립티블리 하게 그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내 영혼이 있긴 있는데 내 안에 있고 다른데 출장 가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있는데 이것이 세계 전체에 퍼져 있는 게 아니라 제한적으로 어떤 공간 안에 있을 뿐이다 이게 바로 영적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 이때 존재하는 것이 두 가지 정도 밖에 없고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두 번째라고 보면 중대한 오류가 생겨나게 됩니다. 어떻게 오류가 생겨나냐 하면 그러면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어야 하니까 내 영혼은 요렇게 되어있지만 하나님의 영은 내 영혼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모두 포괄하여 포함하여 더 넓게 무한대로 장소적으로 존재하는 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혹은 마귀 영적인 사물들은 어떤 관계가 되는가 할 때에 많은 학자들이 거기에서 어떤 유혹을 받냐 하면 둘 다 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나다 라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공부해보지는 못했어도 과정철학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입니다. 무슨 과정인가 그럴 텐데 과정철학이 과정신학을 낳았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알프레드 화이트 헤드 같은 사람들입니다. 현대는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하지손이나 이런 사람들이 과정 신학을 이어가고 있는데 인터넷 들어가서 과정철학 과정신학 쳐보십시오. 그 자체가 뭐냐 하면 스피노자의 철학을 이어받아서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영으로 되어있다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영의 다른 변신입니다. 그러니까 영이 하나의 영 전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세계관하고 아주 유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도 존재하는 것이 잠시 있는 것이고 이것들이 모두 소멸하면 얼음이 녹고 물이 흘러서 바다에서 만나는 것처럼 하나의 하나님의 영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종교 다원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로 발전하기에 아주 좋은 철학적인 토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이 존재한다고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냐하면 하나님은 이 두 방식 즉 한정적인 방식으로 혹은 제한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사물이 아니신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사물이시다 또 다른 방식이 뭐냐 하면 리플렉티블리 충만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것 가운데는 인간의 영혼 그 다음에 마귀 많이 있지만 이런 충만적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잘 들어보십시오. 모든 만물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이렇게 말하면 오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냐 하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 있다 그것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물이 아니시기 때문에 한정이 있는 사물들 찾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아서는 하나님이 발견될 수 없다 또 이런 한정적 사고는 아니지만 제한적인 공간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찾아질 수 없다 그래서 충만적으로 존재하신다고 할 때 이것은 단지 장소만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인간의 영혼이 인간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봐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리플렉티블리 하게 충만적으로 존재하시는 양식이 구체적으로 뭐냐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끔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만약에 한정적인 방식의 사물을 찾는 방식이 유일한 기준이라고 보고 찾아보면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도 없는 것입니다. 영혼을 누가 보았느냐? 보이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니까 그럼 영혼을 한 번 꺼내봐라 색깔이 뭐냐 몇 그람이냐 크기가 몇 제곱센티미터냐 보여다오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영혼도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더더욱 모든 것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신다, 그게 사실은 1과에서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내용입니다. 그 문제를 여러분들이 아주 명백히 하기를 바라고 설교를 들으면 설명이 더 상세하고 이해가 쉽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여러분이 가르치기 전에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 기도를 많이 하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음으로서 내용을 정리하십시오. 그래서 은혜는 은혜로 뜨거워지는 것은 설교를 통해서 그리고 머리가 냉철해지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에 가르칠 때는 두 개를 융합해서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주 훌륭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늘에 라고 되어있는 이 부분입니다. 희랍어 성경에 대부분의 책들에서 거의 지적이 안 되고 있는 내용인데 여기 여러분 책의 첫 장을 펴보십시오. 겉장을 펴보면 오른 쪽에는 한글로 되어있고 왼쪽에는 희랍어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희랍어를 잘 모르지만 둘째 줄 한 번 보겠습니다. 파테르헤몬 호엔토이스오라노이스 라고 나옵니다. 파테르라는 단어는 아빠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아빠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 말의 아빠와 아버지의 중간 정도의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빠라고 하는 단어인데 헤몬 이것은 우리의 아버지 소유격입니다. 그런데 호 이것은 말하자면 관계대명사처럼 앞에 있는 파테르를 수식해주는 것입니다. 호는 인입니다. 희랍어에는 비동사가 생략되기 때문에 비동사가 없습니다.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엔 토이즈는 복수 정관사입니다. 오라노이즈 오라노스라고 하는 하늘의 삼격인데 이것이 놀랍게도 복수입니다. 제가 뭐라고 번역했느냐하면 그 하늘들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뭐냐면 그 밑으로 다섯 째줄 내려가 보면 당신의 그 뜻이 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희랍어 성경 보면 여섯 째 줄에 보면 호스 앤 오라노 카이에티게스라고 나옵니다. 뭐냐면 호스는 가치고요 엔 오라노가 단수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번역했느냐 하면 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설명을 여러분들에게 아마 거의 한 번도 못 들어보신 설명이기 때문에 이 설명을 꼭 해드려야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만난 모든 주석과 모든 주기도문 해설서에서 한 번도 다루어지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왜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묘사한 것은 좋은데 하늘들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복수를 썼을까? 유대인들의 기록을 보면 하늘을 하나의 하늘이라고 보질 않고 다층적인 하늘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늘이 거의 12층으로 되어있다고 보는 자료들도 있고 칠층 육층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삼층천에 대한 이야기를 사도 바울이 합니다. 그 삼층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사고인가 하면 첫째 하늘이 유대인들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과학적인 우주관을 아직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면 첫 번째 하늘이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입니다. 파란 하늘. 그리고 그 너머에는 어두운 하늘이 있어서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지배하는 하늘.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위로 올라가면 모든 인간과 마귀의 악한 것이 범접하지 못하는 신비스럽고 신령한 거룩한 하늘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거기 계시다는 것이고 바울이 삼층천을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 두 하늘을 넘어서 세 번째 하는 곧 천국에 갔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석가들을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제가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교부들은 기도에 관해서 말할 때 그 기도를 화살에 비유하면서 기도가 간절하고 힘이 없으면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까지 올라가다가 마귀들의 하늘을 못 뚫고 툭 치면 화살이 꺾여서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살을 워낙 힘차게 쏘면 두 번째 하늘을 관통해서 세 번째 하늘까지 올라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보좌에 다다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쏘자 쏘자 오늘도 기도의 화살을 쏘자 새들이 있는 첫 번째 하늘을 지나 마귀들이 있는 두 번째 하늘을 뚫고 신령한 하나님의 하늘에 이르도록. 노래를 하면서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인가 하면 그 세 하늘 어디에도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다 비록 하나님의 커다란 뜻 가운데 허용이 되어서 두 번째 하늘을 마귀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다 그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된 것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은 결코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그 하늘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사용한 것입니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에 비해서 본문을 보십시오. 당신의 그 뜻이 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하늘이 아니라 한 하늘입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그 아래에 있는 땅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있는 두 번째 마귀의 하늘도 아니고 세 번째 그 고요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주는 거의 방해물이 없는 상태이지 않습니까? 여기는 공기가 있으니까 무엇을 던져도 공기 저항을 받습니다. 그리고 힘 자체가 중력에 의해서 소진이 되기 때문에 무엇을 던지면 가다가 속도가 있어도 공기의 저항을 받아서 속도가 줄어들고 마찰이 생기고 중력에 의해서 잡아당기기 때문에 무엇을 던지면 조금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집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한 번 우주 공간으로 쏘면 그 속도 그대로 날아갑니다. 무한히 날아갑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세 번째 하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뜻이 어디서든지 이루어지지만 그 이루어지는 방식이 세 번째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그것처럼 똑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하늘이라는 것을 복수로 사용 안하고 단수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지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하늘들에 계시다는 이야기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해계시는 탁월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것 그 아버지는 바로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런 아버지가 아니라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독특한 아버지의 개념 특히 아빠의 개념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뭐라고 쓸 말이 없어서 그냥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빠 보다는 아버지라고, 그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라고 하는 것 그래서 이 기도 자체가 개인에게 주신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에게 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기도를 주실 때 모든 기독교인 공동체가 바로 이 기도 제목을 꽉 붙들고 이 기도 제목의 열정 속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면서 이 기도 제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 공동체의 목표 그들의 삶의 지향성 이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신학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핵심 가치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어떤 깊은 주기도문에 관한 신학적인 지식이 없었을 때에도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하고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이 주기도문의 내용들이 가장 절실한 제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을 보고 싶고 그리고 내가 비록 돈이 있고 재산이 있어도 매일 매일 하나님 주시는 것으로 내가 살아갈 뿐이지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의존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용서 받아서 사랑으로 교통하고 싶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은혜가 훼손되지 않도록 나의 영혼을 보전하고 지키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과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는 불신앙과 말하자면 반역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관계없는 악한 사람들의 삼자적인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고 바로 그 일에 내가 연루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느껴지면서 반역은 저들이 했는데 회개는 내가 하게 되는 그러면서 공동체의 일체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신비한 체엄을 했다라고 할 때 그 체험이 정말 복음적인 스피리츄어리티인지 확인하려면 그렇게 부흥을 경험하고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의 관심사가 주기도문을 따르고 있는가를 확인하면 그것이 참된 부흥인가 아닌가를 판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금석이 됩니다. 가장 확실합니다. 1995년도에 제가 토론토에 부흥이 일어났는데 그때 내가 부흥을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책도 많이 쓰고. 토론토에서 부흥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우리나라에서 제3의 물결 같은 유의 앨빈 토플러 말고 영적인 물결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부흥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흥이 진짜 부흥인가 너무 궁금해서 그거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토론토까지 날아갔습니다. 토론토에 별로 아는 사람도 없는데 후배목사 한 분이 나왔습니다. 나를 맞이해줘서 신세를 지긴 했습니다만 갈 때까지는 아무 여관에서나 묵으면서 그 광경을 보리라 하고 간 것입니다.
두 번을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유명한 에어포트 토론토의 어마어마하게 큰 전시관을 빌려서 하는데 영국에서 오신 분 그 다음에 미국에서 오신 분 스물여섯나라에서 왔다고 각각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회하는 광경을 다 지켜봤습니다. 문제가 뭐냐 하면 주기도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거기서 소리를 지르고 웃다가 졸도하고 쓰러지고 그럽니다. 그런데 진지한 죄에 대한 회개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신비에 대한 추구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정말 아닙니다. 그래서 두 번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올 때는 굉장히 실망하고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기어 다니면서 짐승의 소리를 내고 성령의 역사가 아닌게 아니라 마귀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영적 부흥의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초월적이신 하나님에 대한 관심 이 땅에 있는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그분께 연결되어서 그 분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이 참된 영적인 부흥의 표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추천사를 쓴 박형용 총장님은 우리가 죽여 버린 주기도문이라고 했는데 사실 오늘날 이 주기도문이 과연 어떤 성도의 마음속에서 가슴을 녹이는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굉장히 궁금해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는 성장하고 많은 어떤 성취와 업적들을 이루고 있어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부터 교회가 멀어졌다라고 하는 사실을 이 기도가 주님이 가르쳐주신 이 기도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통해서 입증이 됩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들이 복음에 의해 깊이 깨트려지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 줄 알고 자기가 티끌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았을 때 이 주기도문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리바이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나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을까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기도문은 주기도문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눈물과 함께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지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지간에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영적으로 최고의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깊이 회심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한 번쯤은 이 주기도문이 아주 친숙해지고 정말 이렇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는 간절한 일치된 마음을 가져본 경험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칼 세이건의 천문학 자료를 뒤지고 앤서니 플루의 책을 찾고 보통의 책을 읽으면서 추정적 유신론 같은 것을 아무리 정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이 주기도문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인지 나의 기도인지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나의 마음속에 이 주기도문이 일치를 이루는가 이것은 진정한 영적인 변화의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 있는 괴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무엇이 예수님이 그토록 우리에게 꼭 하거라 우리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탁을 안 들어드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분인데. 그래서 우리도 그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은데 왜 그런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우리의 마음속에 뜨겁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을 집요하게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찾았던 어떤 다른 교회 성도의 간증입니다. 주일날 와서 은혜를 많이 받은 것입니다. 설교에서 은혜를 받은 게 아니라 젊은 여성도 한 사람이 대표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처럼 많이 모이는 대 예배에서 30대 여성들이 기도하는 교회가 흔치 않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면서 굉장히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의 내용이 마음에 착 달라붙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끔 진실하게 울먹이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의 내용 중 대부분은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기도의 내용의 대부분의 자기의 평소의 관심사가 아닌데 저 자매는 울먹이면서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지 기도의 차이입니까? 삶의 버전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삶의 판이 기도의 버전을 결정합니다. 기도의 버전이 진실하면 삶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내가 그렇게는 살지 못해도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마음을 쏟으며 기도할 수 있으면 여태까지는 그렇게 못살았어도 앞으로는 그렇게 살게 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삶 자체는 사는 것만큼만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는 만큼만 살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조국교회는 20년 전에 비해서 현저하게 기도를 안 하는 교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3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서 1970년대 후반 80년대 초만 해도 금요일 날 이런 기도원에는 좀 세속적인 이야기지만 어느 교회에서 기도원을 차렸는데 기도원에서 들어오는 헌금이 교회당에서 들어오는 헌금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기도원은 차려 놓으면 금요일이면 사람들이 새카맣게 몰려와서 산골짜기 골짜기마다 가득 메우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밤새도록. 그런데 그 30년 동안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가하면 단순히 교회가 은혜가 식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변화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영을 서서히 고갈시켜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에 교회의 모습이야 이제 어느 곳에서도 쥐어짜듯이 마음을 비틀면서 피를 쏟아내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그 이름 그 뜻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고 가르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피 흘리고 분투하고 희생하고 눈물을 쏟으며 믿는 그런 신앙은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유 있고 정신적인 위로를 주고 그러면서 평화를 주는 하나의 자기실현의 수단으로서의 기독교가 환영을 받는 시대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복음이 양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은 피를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잠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그렇게 피 흘려 분투하며 사시는 분으로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보십시오. 어떤 공동체가 모였을 때 바로 이러한 기도를 여러분 개인적으로 이 기도를 하지요. 기도가 진지하게 여러분의 마음에 부딪치면서 다가오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여러분들이 간절히 드리는 부흥을 누릴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서 마음이 녹듯이 주기도문의 내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데 온전히 헌신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기도 제목을 기도의 형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을 때 이 땅에 있는 모든 오고 오는 세대의 교회들이 당신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이 기도의 내용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것 같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들이 당신이 기도를 올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기도를 영원히 올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준으로서 제시하신 것입니다. 표준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얼마나 나쁜 것입니까? 표준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표준을 목표로 해서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쓸 때에 그 때에 거기에 도달할 수 있고 못 도달할 수 있지만 그 표준에 의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도달했고 어디에서 우리들이 빗나갔는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 교회가 얼마나 거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인가라고 하는 것은 이 주기도문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공감하고 마음 깊은 중심에서 이 기도를 예수님이 가르쳐주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기화 된 기도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느냐 그것이 결정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책을 가지고 공부할 때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설교 테이프 듣고 은혜를 많이 받고 이 책을 꼼꼼히 줄치면서 읽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면 구역 예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가르치고 남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학식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충분히 가르치고 남습니다. 그리고 여력이 있으신 분들은 아까 얘기한대로 그런 주변적인 것들도 공부해서 가르치고 가방 끈 더 긴 사람 있으면 그 사람보고 해가지고 발표도 하라 그러고 재미있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렇게 거룩하신 분이었구나.
(찬양)
온 땅과 하늘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그러면서 지체들이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었구나 날마다 기도하면서도 나는 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뒷집 아저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높고 위대하신 분인 줄을 몰랐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하나님이 이 주기도문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아가는 비루한 삶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는 구역의 분위기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누구를 사용하시든지 그 말씀의 정확한 내용이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그 때 그들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부흥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것을 가르칠 때에 간절히 기도하시고 그래서 이 주기도문의 삶을 묵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새 여러분들이 이 책을 매일 한 챕터씩 읽으시는 겁니다. 제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만은 빛으로 산다는 것은 여덟 번 읽었고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은 28번 읽었습니다. 이것은 몇 번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한 챕터만 내용을 알고 가르치는 것과 전체를 알고 한 챕터를 가르치는 것은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탁드리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요번 주에 1과니까 1과 해야지 그러지 말고 그냥 1과부터 테이프 하나 듣고 한 챕터 읽고 그 다음에 테잎 하나 듣고 두 번째 챕터 읽고 계속 나가십시오. 그러다가 가르칠 때에 첫 번째 챕터를 다시 한 번 펼치면서 은혜 받은 것을 보고 정리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역장이 가르치러 나갈 때에는 이 책 사이사이에 내용들이 깨알 같이 죽 써있어야 합니다. 주일날 나오면 교재를 사시면 교재 가장자리에 복사 한 것 끼워가지고 그래서 충분히 자기화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강의해서 쏟아놓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물어보고 그 다음에 물리학과 나왔으니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A4용지 하나로 정리해서 우리에게 설명을 해라 이런 식으로 각각 과업을 부여해서 그렇게 하고 모여서 지혜롭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자극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나빠졌는데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테이프를 듣고 오고 공과 교재를 요즘 보니까 순서대로 자기 할 것만 풀어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되겠습니까? 순서를 막 바꿔버리십시오. 그래서 다 풀고 다음에 테이프 하나 듣고 읽고 와서 나눌 때에는 문제를 중심으로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풍부하게 나눌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시간에 마치고 계속 반복해서 읽어서 이 주기도문 끝날 때까지 다섯 번 정도 읽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테이프는 한 번 내지 두 번 듣고 책은 다섯 번 정도 읽어서 목차만 가지고도 주기도문을 30시간 정도 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익혀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다음 공부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주 동안 어쩌면 중간에 있는 두꺼운 것들은 2주정도 해야 될지 모르니까 15주나 16주까지 계속될 공과 공부에 정말 우리 구역이 놀랍게 변했다는 우리 순에서 회심자가 많이 생겼다는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보면서 좀 얇게 쓰지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쓰냐고 하는데 종교 개혁시대에 이것을 1년을 가르쳤습니다. 회심자 반에서 1년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의 배 정도였으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을 텐데 절제를 해서 이만한 두께가 되었으니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