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강 하나님 우리 아버지 2
녹취자: 박지성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다음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이것이 영혼입니다-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람의 창조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두 번째 사람 여자는 이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이것이 여자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오직 한 사람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는 이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서 자손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간이 1천억 명쯤 된다고 합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약 64억 정도 의 인구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계속 생산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에 의도하셨던 것은 모든 창조된 인류가 하나의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하였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을 때 창세기 2장에서 첫 번째 결혼식이 이루어집니다. 그때 이 남자인 아담이 하와를 보고 뭐라고 말합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최고의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나누어지지 않도록 하나가 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럼 이제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고백이라 하면 흔히 우리는 에로스적 사랑의 고백으로 이해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자고로 이렇게 사랑해야한다. 그리고 부부는 이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고 이후에 가인과 아벨과 셋이 태어났다면, 그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에도 아담과 하와는 똑같이 이 자식에 대해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생인 아벨이 태어납니다. 그랬다면 가인도 엄마, 아빠와 똑같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나니까 두 사람 사이도 파경에 이르게 되었고, 그의 자식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그러면서 이 가족관계가 모두 깨진 것입니다. 이 깨어진 관계를 복원시키시는 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혼신의 힘으로 우리를 사랑하며 살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장렬하게 죽으시는데 그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피어린 사랑을 인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이야기는 이 커다란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의 모든 죄로 말미암는 갈등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 인간은 서로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요? 그때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다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 이 올 때까지 주님이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로 하여금 이 고백을 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받으면 그것이 잘 되고, 은혜를 못 받으면 잘 안 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각도에서 주기도문의 말머리에서 가르치신 “아버지”라는 이 말은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는 아버지에 대한 관념들은 대부분 오염되었습니다. 왜입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아버지는 성경이 그려내는 그 아버지가 아닙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과 폭압을 일삼으며, 가정을 깨뜨리며 이혼을 하는 아버지도 너무나 많고, 아버지라면 지긋지긋한 생각이 먼저 들면서 그 아버지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깨진 관계 속에서의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우리들이 경험한 아버지를 그리면 안 됩니다. 성경이 그려내고 있는 아버지는 엄마 같은 아버지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성경의 탕자의 비유를 보면 자식이 먼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소식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동구 밖에 나와서 눈이 짓무르도록 자식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접에서 보면 아버지의 할 일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엄마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마음속에서 잘못 새겨진 아버지의 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속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주 잘 보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마지막에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의 자식들인 이 인류를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이 모든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아버지는 당신 곁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소외되고 불행하고 비참해진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우리들이 겪는 모든 수고와 아픔을 함께 느끼시면서 자기 자신이 고통 받는 것처럼 생각하시며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를 다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을 우리를 위해서 대속 제물로 받으셨던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들을 하나님은 한 가족으로 부르셔서 서로를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처럼 여기며 함께 사랑하며 살게 하셨는데,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이 세상도 그런 사랑의 사회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영적인 핏줄로 연결되었습니다. 육신으로 태어날 때에는 각기 다른 부모의 자식들로 태어났지만 영적으로는 한 부모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용납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공동체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와 같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그 하나님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알게 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한 가족을 이루면서 영적인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드리는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관한 마지막 과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위한 간구의 제목과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의 제목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에 앞서서 이런 기도를 올릴 때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지만 이런 기도를 진심으로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즐거워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즐거운 특권이 되도록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위한 기도 중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간구의 첫 번째 제목을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