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강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하여 2
녹취자 : 장미연
우리들이 생각해 볼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먼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밖에서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도 억압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행할 수 없도록 속박하는 힘입니다. 여기에서 해방시켜 끌어내 주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해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대속의 죽음”, “대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첫째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림설명) 이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여기 빛나는 태양이 있습니다. 또 여기에 인간이 있습니다. 태양을 바라보지만 그 색깔이나 모양은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 눈부셔서 인간이 똑바로 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햇빛이 어떤 작용을 합니다. 식물들이 이 햇빛을 받으면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자랍니다. 그런가하면 이 태양은 젖은 빨래를 말립니다. 또 이 찬란한 태양으로 인해 과일들이 무르익습니다. 태양으로 인해 많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보면서 태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태양이 있다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이 찬란한 태양과 같아서 인간들이 감히 하나님을 직접 볼 수도 없거니와 보아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데,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겠지요? 예수님이 비참한 사람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실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저 비참한 사람을 저렇게 불쌍히 여기시는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죄인들을 만날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심으로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을 만나 책망하실 때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몸소 배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신인 동시에 참 사람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참 하나님 되심을 참 사람되심 아래 감추셨습니다. 신으로서는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없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완전해도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모르는 것이 있는 인간이 되셨고 신성을 그 아래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죽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죽으셔야지 되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셔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육체를 가지신 분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 목적대로 살 수 없게 된 인간을 다시 살 수 있도록 돌이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원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보면 엄청난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미를 제대로 알고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도대체 이 세계가 무엇이고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아주 원대한 의미를 우리들이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렇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십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의 죄는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습니다. 큰 죄는 큰 벌을 받고 작은 죄는 작은 벌를 받는 것이 법의 형편의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건널목으로 안 건너고 무단 횡단을 한 번 했다고 해서 사형에 처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것은 작은 죄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벌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죄를 짓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이런 개념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대상이 워낙 높은 지위를 갖게 되면 작은 죄도 무한한 크기를 갖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그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 죄의 크기는 무한히 크고 하나님의 공의는 그 죄의 크기대로 벌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모욕했지만 그 대가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못됩니다. 사고는 쳤는데 배상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대신 심판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죄인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논합니다. 흔히 우리들은 그 행복이 물질의 많음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지 베일런트(George E. Vaillant)라고 하는 대학 교수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많은 사람들을 수십 년 동안 추적해서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다음 결론을 내립니다. 하버드 출신 중에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어떤 뛰어남이나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관계, 곧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두 가지로 수렴됩니다. 하나는 여기 한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행복이 좌우됩니다. 여기다 굳이 하나를 더 추가 하자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중요하겠지요. 왜냐하면 인간이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지금 우리는 재앙적인 결과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결국은 인간의 행복은 행복 하나만 동떨어져서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셨는지, 이 세계를 왜 있게 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분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때 그때야 비로소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신자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표가 무엇이여야 합니까? 전쟁을 이야기 할 때 전쟁의 승리를 위한 대 목표, 중 목표, 소 목표가 있습니다. 작은 목표들은 그 보다 큰 목표에 이바지해야 하고 그 목표들은 보다 더 큰 목적에 이바지 할 때 진정한 목표 설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투와 전쟁을 구분합니다. 그렇지요? 전쟁은 나라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투는 실제적으로 총을 쏘고 대포를 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투를 해서 이겨야지만 적국의 힘을 떨어뜨릴 수 있고 그렇게 해야지만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그 뜻을 성취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주기도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갈망하면서 사는 사람인데 우리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이바지하면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위, 돈, 재능, 건강, 나의 행복한 삶, 이 모든 것들은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어떤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이 주신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거기에는 반드시 신자의 헌신이 동반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뜻에 복종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전도하며, 그렇게 전도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더 밝은 진리의 빛 아래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다음시간부터는 이제까지 우리가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우리 자신을 위한 네 가지 기도 제목’에 대해서 공부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 여러분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