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주시는 하나님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 (시 60:4)
녹취자 : 장주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과 전쟁을 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후에 다시 전세가 역전되어서 에돔을 치고 승리한 이야기들을 서사시처럼 풀어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잠시 고난이 있었고 패배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것을 시인이 경험하면서 그 기쁨을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해서 달게 하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최소한 세 가지의 아주 중요한 교훈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제일 먼저 깃발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깃발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 땅을 정복하고 승리한 다음에 고대로부터 거기에 깃발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곳이 자기네 나라의 땅이 되었다는 것, 혹은 그 땅을 자신들이 점령해서 자신의 왕국의 통치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에서 군인들에게 사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너무 감동 깊게 본 영화중에 하나가 ‘패트리어트’라는 영화였습니다. 멜 깁슨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거기서도 결국 영국군에 의해서 패퇴해서 물러가서 독립군이 와해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인공 멜 깁슨이 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큰 깃발을 흔들면서 전쟁을 독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도망가던 병사들이 그 깃발을 보면서 솟구치는 애국심을 느끼며 다시 전세를 역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아직까지 파죽지세로 점령하지는 못하고 적군과 아군이 치열하게 다툴 때 어느 건물이나 고지에 높이 올라서 나부끼는 자신의 나라 혹은 자신의 군대의 깃발을 보면 군인들에게 엄청난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것을 아주 회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패배해 보기도 하고 수많은 난관을 겪었습니다. 결국은 마지막에 깨달은 사실 하나는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어디든지. 그렇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 까지 이 세상에서 전투적인 교회의 일원으로 겪어야 할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정말 힘이 없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면 우리는 승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승리가 무엇을 위한 승리냐 하는 것이 위에 나오는데, 진리를 위해서 그 깃발을 달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와 세상 나라의 차이입니다.
어제 제가 검사들이 모인 곳에 가서 45분 정도 설교를 했는데 다들 왔습니다. 법무부장관 지내던 김승주 씨를 비롯해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때 설교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진리를 부인하는 시대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진리를 부인하면 무엇을 믿는가. 진리 말고 무엇을 특별히 믿는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마치 선은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라는 목표가 있지만 악은 무슨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진리를 찾는 사람은 목표가 있지만 진리를 떠난 사람은 진리 말고 뭔가 다른 것을 찾아서 그 진리 대신 또 다른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은혜를 떠난 사람들은 목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미끄러진 다음에 어디로 가고 싶은가. 마음과 뜻을 다해서 가고 싶은 목표가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뭐든지 괜찮습니다. 그것이 죄인의 심정입니다. 이 세상사람 누군들 승리하기를 원하지, 승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승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승리하며 살아온 전적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 다음날 아침 심천에 가서 누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데리고 나왔습니다. 심천에서 몇 번째 안에 들어가는 부자랍니다. 재밌는 것은 그 부인이 내 책의 독자였습니다. 사인을 해달라 그래서 내가 친절하게 싸인 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평생 홍콩에서 금융투자 전문가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인데 이야기를 그쪽으로 해야 말문이 트이지 않겠습니까. 난 하나도 모르는데 투자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막 열심히 이야기를 해줍니다. 한 20분 30분 이야기 했나, 우리가 듣기엔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습니다. 최근에도 사람이 투자금을 모아서 어느 공장에 투자를 했는데 4조 7천억을 투자했답니다. 그 사람을 이렇게 보니까 인생의 모든 영화를 다 누리고 살아온 사람,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만 따르고 싶은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맘만 먹으면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겠네요. 그랬더니 그럼요 목사님. 제가 원하는 사람 누구든지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죠. 돈이 있어야지 부탁을 하지. 50억씩 100억씩 200억씩 싸들고 온답니다. 일체 만나주지 않는답니다. 저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돈을 불려주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낀답니다. 그 양반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참 우리는 거지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구나. 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이 뭔지에 대해서 아무도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내동댕이쳐지니까 항상 루저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성경과 부자, 그리고 성경에서 주식이나 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를 물어봐서 내가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그 양반이 이야기합니다. 자기는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지금 이 나이 되도록, 내 나이 정도 됐습니다. 한 번도 투자를 해서 잃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시장 전체가 자기에게 보이기 때문에 절대로 잃어본 적이 없는데 가끔은 잃는 적이 있는데 투자한 사람이 자기 말을 안 들었을 때. 여기서 파십시오, 했는데 안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밑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것,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게 어느 정도입니까? 모든 죄는 탐욕에서 시작이 됩니다.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부자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욕심과 탐욕의 경계는 뭡니까? 물어봤더니 천만 원을 투자하고 1억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들어줄 수 있답니다. 그런데 10억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탐욕이라는 것입니다.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승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야기 하는 진정한 승리는 무엇입니까. 땅을 차지하고 노비를 얻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뺏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영광과 기쁨은 이 세상 사람들이 취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승리가 곧 주님의 영광을 위한 진리의 승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를 통해서 진리가 드넓게 드러나고 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그런 승리를 주시는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그런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항상 승리하진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면서 고난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해도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형통할 때가 있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깃발을 주셔서 진리를 위해서 달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이런 승리를 주시냐하면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싸울 때에 그 싸움 자체가 자기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싸움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논어』에서 군자가 군자부쟁(君子不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군자는 일평생 무골호인처럼 그렇게 뼈다귀 없는 연체동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패하는 것 같아도 성공을 주시고 패배하는 것 같아도 승리를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갈 때 고단하게 전쟁만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만 누리게 하시는 기쁨과 은혜를 체험하며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이번에 심천에 가서 단 이틀 있다가 왔습니다. 바쁘니까. 그런데도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도 몇 사람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종교성에서 기본적으로 기독교 책을 출판을 못하게 하는 것이 정책이랍니다. 그래서 그 책 두 권이 ISBN을 받고 출간된 것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기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은 그 책이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중국 사람의 정서를 다 모르니까 모르겠는데 그 중에 어느 독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은 중국 목회자들이나 중국에 있는 사람들의 기독교나 기독교가 아닌 것을 막론하고 어떤 작가도 우리에게 주지 못했던 아주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에게 도전을 준다고 합니다. 어제 밤에도 도대체 내가 썼지만 그게 도대체 뭘까 생각했더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서 속에는 이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만나면 살든지 죽든지 이 생명 다 바쳐서 정말 윤동주 시인처럼 십자가 아래서 내 목을 드리우며 아니면 나의 혈관에 피가 멎는 그날까지, 이런 정서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관념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뼈저리게 가슴 속으로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보기에는 문화도 있고 사상도 있고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그 개념을 들어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체험이 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독특한 방식의 도전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추측입니다. 그러면서 한 이틀 집회를 주기도문을 가지고 했는데 한 천 명씩 모였습니다. 첫날은 천 명이 넘으려나. 그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하교회에서만 했기 때문에. 여기는 삼자교회인데 오천 명 모이는 교회입니다. 거기서 세 교회의 구역장들이 천 명 정도 모였습니다.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들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깜짝 놀란 게 꼭 한국의 지방에 집회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한 30명 50명 되는 사람들이 에워싸면서 인사를 하면서 어떤 사람은 육포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환영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물이 글썽글썽 하면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해서 마음껏 찍어주었습니다. 여태까지 23년을 열린교회 목회 해오면서 보지 못했던 어떤 중국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제가 보면서 아 정말 한국에서 복닥거리지 말고 이런데 와서 이렇게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하면 얼마나 큰 영광을 받으실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선교의 그림을 한번 마음속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려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꿈을 꾸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승리의 목적이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영광이 되도록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깃발을 주셔서 그 깃발을 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