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히 지키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5)
녹취자 : 김미현
이 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해서 도망하면서 지은 탄원 시입니다. 여기에서는 이제 뜻하지 않게 겪게 된 끔찍한 반역의 사건, 그리고 자식과 사랑하는 동료로부터 받은 배신감, 이런 모든 것들이 원한으로 응어리져서 토출되는 대신에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성찰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이 자기를 도우셔서 그 모든 시련에서 이길 것이라고 하는 승리에 대한 확신도 함께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균형을 갖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도 잘못되면 쉽게 좌절하는 약한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던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존감은 높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인생에서 오는 위기나 좌절들, 이런 사태들을 극복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면과 이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똑같이 균형 있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좌절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한 성숙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좌절하는데 그 좌절한 상태에서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그 무엇인가 삶을 위한 에너지들이 남아있어야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균형을 잃고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 내 힘으로 안 되던 것을 예수님 힘입어서 성취하면서 사는 그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 안 되던 일, 예수 믿어도 안 되는 것 많습니다. 은혜 못 받았을 때 못하던 일, 은혜 받아도 못하는 일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대신 다른 것이 있습니다. 안 될 때 삶의 사태들이 또 다른 시련으로 이어질 때, 예전에는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 주일에 설교한 것처럼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이 자기의 삶의 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이루시지 우리 없이 그리고 우리를 거슬러서 이루어 가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예수가 주인 된 삶을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한 주체성만이 진정한 주체성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따라서 방종하게 산다고 합시다. 그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 것일까요? 자기가 누구입니까? 이미 벌써 그렇게 사는 동안 자신은 이미 벌써 분열이 일어나서 찢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자기 주체적인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현대 철학에서는 이미 주체는 사라졌다고 회의를 품지만 우리는 주체를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이 주체가 말하자면 진정한 자신의 주체는 자기가 죽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사실 때 진정한 자기의 주체성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가 못 박힌 그곳에서 옛 자아의 주체는 죽고 새로운 자아의 주체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어린 형제자매들도 있지만 여태까지 사는 것이 정말 힘들었지요? 그리고 정말 여러분 뜻대로 안되셨지요? 그렇지요? 이것은 전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겨우 시작, 반주의 시작입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삶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러분 목회를 했다고 칩시다.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렇지요? 마음대로 됩니까? 그러면 담임 목사 한번 해보십시오. 안됩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원래 그런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예화) 아주 오래전에 감동적으로 본 영화가 ‘퍼펙트스톰’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이름이 누구입니까? 조지클루니였습니다. 조지클루니가 인상 깊은 장면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파도가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배가 파도를 타고 올라가는 광경입니다.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파도에 결국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유능한 선장은 파도를 타고 배를 몹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언제나 삶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 것인가?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 드렸습니다. 서커스 하는 단원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잘 줄을 타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떨어지는 것부터 배웁니다. 떨어져도 밑에 그물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떨어져봐야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슈퍼하이다이빙이라는 종목이 있습니다. 70m절벽에서 수영복을 입고 다이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 숙달되지 않은 사람들은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 70m에서 뛰어내리면 충분히 죽습니다. 물이 닿는 순간 배가 터지던지 목이 부러지던지 잘못 뛰어내려서 각도를 잘못 재어서 바위에 찧던지 합니다. 물론 할 때 튀어나온 곳에서 합니다. 천연바다에서 뛰어내립니다. 그 사람들 보면 딱 뛰어서 그 다음에 역학적으로 도는 구도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들어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입수입니다. 70m에서 뛰어내릴 때에 그 가속도가 9.8㎨으로 가속도가 붙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압력이겠습니까? 고개를 이렇게하고 탄다면 닭목처럼 부러지는 것입니다. 무수하게 연습을 하는데 처음부터 70m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2, 3m 높이에서 하면서 슈퍼하이다이빙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오늘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초막, 장막 하는 이것은 모두 이 당시까지 성전이 안 지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성막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막 속에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거무튀튀한 물돼지 가죽으로 되어 있는 그저 초라한 천막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속이 얼마나 화려한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초막이고 장막입니다.
‘비밀히 지키시고 은밀한 곳에 숨기시며’라고 했습니다. ‘숨기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싸갈’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수동태 분사가 되어서 ‘리스갈로트’ 하면 ‘보배’가 됩니다. 당연합니다. 굉장히 비싼 것이면 항상 애지중지해서 핸드폰도 처음 사서 80만원주고 사서 닦고 그럽니다. 아무데나 떨어져도 떨어졌나보다 하고 발로 한번 차고 부담이 없습니다. 가지고는 있지만 별로 사랑하지는 않으니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아무에게나 안보여주고 감추어 둡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의 자녀들을 환란과 시련,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시고 감싸셔서 그곳에서 자기의 마음대로 무엇이 되지 않는 의미를 터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그런 시련이 아니었더라면 깨달을 수 없는 바를 깨달아 성숙하게 되고 또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 할 안 이루어져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꼭 이루어져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나의 힘으로 정말 안 되는구나.’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심령이 가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의지할 분이 없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밀한 은혜의 비밀들을 하나님이 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바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말로 ‘쭈르’라고 하는 단어인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반석이 터지면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시라.’는 찬송이 시편에 무수히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학자들은 이제 바위를 거의 모든 구약학자들이 구약성경에서 ‘바위’가 ‘구원을 의미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거의 모두 합의를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나오면 ‘바위’라고 나오면 그것은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뉴욕에 가보면 뉴욕이 굉장히 넓습니다. 12구인가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 산다고 해서 모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옆에서 산다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저 변두리에는 평촌 변두리보다 더 험상궂은 곳도 있습니다. 너무 넓습니다. 그런데 100층 이상의 높은 빌딩은 전부 맨하탄에 모여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맨하탄 이외에는 그런 빌딩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롯데빌딩 지어서 벌써 문제가 생겼습니다. 불안합니다. 석촌 호수 물이 마르고 땅이 꺼지기 시작합니다. 늘 얘기하지만 자연은 안건드릴수록 잘하는 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물이 넘치면 피해가고 모기가 많으면 모기장치고 살고 그렇게 살아야지 물이 흘러가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백 몇 층을 세우겠다고 땅을 파서 물길이 다 차단이 되고 지면이 꺼지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끝까지 파일을 박았는데 바위하고 안 만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겠지만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왜 맨하탄에만 모여 있느냐하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뉴욕사진을 보십시오. 한쪽에만 모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맨하탄 전체가 바위입니다. 거기 이외에는 그런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지으면 주저앉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반석’이라고 이야기할 때 ‘거기에 기초해서 우리의 삶을 구축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십니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또 때로는 ‘바위’라고 하는 그 말이 피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시내산이나 이런 곳은 전부다 바위입니다. 움푹 파인 곳이 많습니다. 아무리 화살을 쏘고 창을 던져도 절대로 죽일 수 없는 그런 은신처를 바위가 제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시냐 하면 우리를 가난하게 안하시는 대신에 기쁨으로 가난을 극복하며 살 수 있게 해주시고 그럴 때가 부자 만들어 주실 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가 어려운 일을 안당하게 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려운 일을 피해갈 길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그 어려움과 맞닥드릴 때에 은혜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주실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하나님이 단칼에 제거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실 때도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연단되고 정결해지는 비결들을 터득하면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어디에 달린 것이냐 하면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시련이 왔는데 믿음이 없으면 그냥 고생하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련이 왔는데 믿음으로 살면 그것이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높은 품질의 삶을 살고 싶어 하면 결국은 연단된 꿋꿋함과 성숙한 경건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경건인데 성숙한 경건, 숙성된 경건, 그리고 꿋꿋함인데 연단된 꿋꿋함입니다. 연단되지 않은 꿋꿋함은 성질머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에 확 ‘뭐야.’ 하고 꺾어지고 마는 그런 것들은 하나의 정의를 가장한 자기 성질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연단되어야 합니다. 꿋꿋하게 연단된 좀처럼 꺾이지 않는 때로는 휘청거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모두 극복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삶의 사태를 만나든지 이 말씀을 꼭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말합니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을 당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가 믿음생활 해나가고 하나님 섬기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안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우리에게 준 의미가 무엇인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신앙으로 살게 하시는구나.’ 그것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