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하는 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 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하라 박사들 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 2:1~12)
성탄절이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그림과 함께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동방박사 세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에 관해서는 수많은 전설들이 있고 또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이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다, 혹은 파르티아 혹은 그리스 혹은 애굽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 사람들이 누구냐에 대해서도 천차만별입니다. 이 사람들이 왕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마 귀족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이 세 사람은, 멜키오르 그 다음에 발다사르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카스파르. 이렇게 해서 발다사르 카스파르 멜키오르 이 세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람들이 희랍어 성경에는 마고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박사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마고스는 영어의 매직의 어원입니다. 마술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마술하는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느냐.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마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천체의 현상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생사화복과 길흉을 예측하는 점선가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역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별에 대해서도 설이 구구합니다. 세 사람의 착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또 이것은 하나의 해성과 같은 것이었다고 보는 견해. 없는 것이 나타났다라고 생각하는 견해, 아니면, 천체에서 일어나는 정기적인 현상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느 것을 선택하든 간에 어쨌든 요점은 이 별의 나타남도 이적적인 현상이었다, 라는 이야기죠.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의문에 쌓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그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찾게 되었는지, 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그이가 이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분으로 비춰졌는지, 그래서 그들이 이 먼 길을 걸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그들은 무엇인가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믿음과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실로 먼 길을 여행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오게 만들었다 하는 것입니다.
우선 오늘 성경에 보면, 이 사람들이 별을 보고 출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그 전설에 보면 네 사람이 출발을 합니다. 네 사람이 출발을 하는데 각기 귀한 예물을 가지고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네 번째 사람이 오다가 아주 가난하고 병든 그리고 늙은 사람을 만나요. 그래서 그가 너무나 불쌍해서 그 아기 예수께 바칠 선물로 그를 구제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랬더니 그 구제를 받은 사람이 알고 보니까 예수님이시더라 하는 뭐 이런 전설도 나옵니다. 어쨌든 그래서 세 사람이 출발을 하는데 출발하는 그 자체는 별을 발견하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죠. 천체에 이적적인 일들이 일어나면서 뭔가 중요한 인물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바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이제 별을 따라 오게 됩니다. 별을 따라 오게 되는데 성경의 문맥을 잘 읽어 보면, 그 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별을 따라서 어딘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별을 따라서 가는 여행이었으니까 당연히 이들의 여행은 낮에는 여행할 수 없었을 것이고, 밤에만 여행하는 그러한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와서 그 별이 사라진 것이죠. 만약에 이 때가 낮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낮에는 항상 별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다시 조용히 어두워질 때를 기다리면서 그러면서 그 동네에서 낮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을 해서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뇨?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별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별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이 거하는 이스라엘의 도시라고 하는, 옛날서부터 유대인들의 왕이 거하는 도시였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별이 사라졌어도 이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이 헤롯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유대 땅의 왕인데 또 다른 왕이
났다고 하니까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어디서 나느냐 하고 물었더니, 미가서의 한 예언을 들추면서 거기가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한 20 리 정도 떨어진 아주 시골 동네지요. 구약에 나오는 에브라다 라든지 그런 동네들이 바로 그 지명이에요. 그 사람들이 그것을 다 듣고 그리고 이제 다시 길을 떠나고자 할 때에 별이 다시 비췄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서 거기에서 우리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는 이야기가 오늘 스토리의 전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시는 이셨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이 유대인들에게는 철저히 감추어지고 오히려 이방사람들인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계시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심각한 진리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 하면 비록 이 사람들이 약속을 가진 유대인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세계에서는 그 복음이 이런 혈통과 나라를 뛰어넘어서 그래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 그분이 가르치고 섬기며 사신 곳,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의 구속을 이루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 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철저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예루살렘에 다녀오신 분들이 몇 분이나 될는지 의심스럽습니다만, 저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혈통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들에게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왜 그 분이 우리와 온 인류에게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 되는지에 대한 정답을 혈통을 따라서는 유대인의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그 진리가 이방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보다도 우리에게 물어보면 예수님에 대한 진실을 더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경륜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과 함께 이루어질 복음의 축복이 혈통과 지역에 메이지 아니하고 주님이 택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 기쁘고 놀라운 소식. 예루살렘이 먼저 듣고 온 유다 백성들이 먼저 즐거워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방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셔서 온 인류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우리에게 오셨도다. 가슴 벅찬 함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방인 세 사람에 의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느뇨. 우리가 그 분이 태어나신 것을 알리는 별빛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노라, 라고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예보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복음은 결코 가문대대로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자손들의 마음속에 환히 비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환경이나 기독교적인 분위기속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복음의 빛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조상 대대로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고 복음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찬란한 빛은 비추어서 믿음의 한 세대를 시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있지만, 복음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방문을 받으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느뇨, 질문을 받았던 그 유대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 만큼이나,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권하는 것은 교회에 나오고 주님의 약속의 백성이 된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복음의 빛이 여러분의 마음과 온 삶에 찬란하게 비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복음의 찬란한 빛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비춰서 그래서 그 복음의 빛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이 사람들이 우리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여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별빛이 사라지는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해 전에 이 본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들은 준비해 온 예물로 미루어 볼 때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늘 취미삼아서 별을 관측하던 남편이 황급히 뛰어내려 오면서 가까이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너도 별을 봤지? 봤지. 그거 이상한 거 안보이디? 그러게 말이야. 뭔가 이것은 아주 인류역사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한 인물이 탄생할 것을 우리에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 분을 경배하러 가야 되겠다. 그리고 뛰어 나와서 행장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집안에 깊이 간직해 두었던 가보와 같은 금과 유황과 몰약 그것을 준비해 와서 그것을 가지고 행장을 꾸리고 떠나는 것이죠. 부인이 황급히 좇아오며 묻습니다. 여보, 어딜 그렇게 황급히 가오? 이건 상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 우리 역사에 중대한 의미를 가진 한 분,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그이가 태어나실 것이 예고되었는데 우리는 그 분을 경배하러 가오. 그 분이 어디에서 태어나시는데요? 유대인의 왕이니까 유대 땅이겠지. 여보, 유대 땅이 얼마나 넓은데, 그 유대 땅 어디에 태어난다는 거예요? 난 몰라요. 그럼 어느 길로 출발할 거예요? 몰라요. 언제쯤이면 거기에 도착해요? 그것도 알 수가 없소. 언제쯤 돌아올 수 있어요? 가는 길을 알 수 없으니, 오는 길도 알 수가 없고 도착할 날짜도 예측할 수 없지. 그런 길을 떠나는 거예요. 오직 뭐 하나만 보고? 오직 별 하나만 보고. 가는 거예요. 밤이면 그 별빛을 따라서 여행하고 새벽이면 그 별빛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아마 노숙을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이 여행길이 계속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하여튼 여러 날 동안 이런 식의 여행을 하며 온 것이죠. 그들은 가이드도 없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그들을 안내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대 땅에서 물어보니까 그들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그 별빛 하나만을 믿고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 별빛이 사라진 것이죠. 이들에게 무슨 잘못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비뚤어진 탐심이 있었습니까? 아니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기 예수에게 무엇을 얻어가고 싶었을까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요즘 말하는 것처럼 예수를 만나고 무슨 복 받기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소원은 단지 인류역사를 위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유대인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껏 경배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별빛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별빛이 사라지는 적이 있습니다. 이제껏까지 믿고 따라오던 삶의 목표가 사라지는 것 같고 목표는 남아있어도 뭔가 의지하며 붙들고 살아가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우리 자신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지요. 탐욕에 가득 찬 우리의 눈과 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범죄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명한 인도하심을 잃어버리게 만들지요. 우리의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하나님의 모습. 우리의 영혼의 귀로 늘 청취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는 영혼의 캄캄한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우리의 삶에도 어두움이 드리웁니다. 그래서 가야할 곳이 분명하고 목표가 분명하던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신앙적인 확신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회의와 불안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삶의 목표가 예전에는 분명했으나 이제는 희미해져 버립니다. 늘 나와 함께 하시는 것 같았던 하나님의 인도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매일 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혼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늘 유지하면서 사는 일은 짐승처럼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맛볼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행복이 무엇일까요? 오늘 아침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 모습 내 눈에 안 보이고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그래요.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육신의 귀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혼으로는 보는 것보다 더 확실히 인식할 수 있고 그리고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최고의 행복은 바로 이것이에요. 언제든지 위기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시련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고, 고난 속에서 나를 위로하고 붙드시는 주님을 뵈올 수 있는 이 축복. 이것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 중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악한 번뇌들이 이러한 영혼의 감각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만들어요.
어렸을 때 짓궂은 장난들을 참 많이 했어요. 잠자리 잡아다가 꽁지 자르고 뒤에다 풀 꽂아가지고, 잠자리보고 날아보라고.. 막.. 누구 것이 멀리 날아가나.. 또 하나 이제 애들이 장난치던 것 가운데 하나가 ,귀뚜라미. 가을에 귀뚜라미 잡아가지고, 더듬이를 뚝 잘라버려요. 그러면, 이제 이 귀뚜리미가 헷갈리기 시작하지요. 더듬이를 가지고 움직이면서 방향을 잡는데, 이걸 잘라버렸어요. 귀뚜라미가 이걸 잘라버리고 나면, 어디로 뛰어야 할지를 몰라요. 더듬이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죠.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많은 죄, 우리의 영혼의 무감각이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요. 그래서 아침마다 새롭게. 이 신앙의 생활 자체는 말이죠. 정말 교만해질 수가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오늘 하루를 살아야지만, 살았구나. 성령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 자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아침마다 새롭고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그 자비를 힘입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일 매일 자신의 영혼의 때를 벗겨내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거울 앞에 진솔하게 비추어보아서 진실하게 반응하는 아주 정직한 신앙의 노력이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거죠. 거짓과 위선, 허위, 그릇된 안전감. 이런 나태에 빠져서 살아가면, 우리들이 이렇게 별빛을 잃어버리고 갈 길을 물어야하는 그런 신세가 된다 이거죠.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별빛을 잃어버리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은 반드시 태만하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에요. 오늘 이 동방의 박사들처럼 오직 순수한 마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전심으로 경배하고 그 분을 높이기 위해서 이 먼 길을 걸어왔던 이 사람들도 별빛을 잃어버리고 갈 길을 물어야 할 때가 있었던 것처럼 주님만 섬기고 따라가며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도 때로는 이렇게 철저한 어두움 속에 팽개쳐지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며 살기로 결심하고 이제는 주님이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정말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그런 결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늘 하나님의 인도와 기쁨과 사랑과 은혜만 충만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보적이고 교과서적인 이야기에요. 사도바울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이후로 사명 하나를 따라 살기로 작정했지만, 그는 수없는 영혼의 어두운 밤들을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남만 섬기고 주님만 위해서 살려고 해도 때로는 이처럼 별빛조차 사라진 어두운 밤하늘아래서 갈 길을 물어야하는 처지에 놓일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진심으로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때로는 이러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종종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시는 거예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주를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는 무엇 인가 하면, 주님을 열렬하고 충성되게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기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 쉬운 거예요. 자신의 삶에 대한 강력한 자부심 이런 것들이 있다 이거죠. 저는 참 많이 만났어요. 또 저 자신도 다른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춰질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린 그래선 안돼요.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가 그 기관차처럼 씩씩하게 주님 한 분만을 위해서 막 달려가다가 어느 한 시점에서 갈 길을 모르고 별을 잃은 밤하늘 아래서 이제 잠시 불안의 날들을 보내게 하셔요. 그걸 통해서 우리가 뭘 깊이 깨닫느냐 하면, 이제껏 주님을 위해서 아주 씩씩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그 모든 날들이 사실은 내 자신의 힘과 능력에 달렸던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나를 인도해주시고, 내 갈 길을 지시해 주시던 그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따라 온 길이구나 하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생각나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감사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돼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해요. 그래서 한 사람의 영적인 깊이는 또한 얼마나 자기 자신이 비참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가에 의해서 가늠되는 것이죠.
보십시오. 이 세 사람이 무슨 잘못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오직 아기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께 진심으로 경배하고자 하는 소원 말고는 다른 잘못된 바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보상을 바랬던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대가를 요구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간절한 소원은 인류 역사에 이처럼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오신 메시야이신 그분을 향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배를 자신들이 드리고 싶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별빛조차 사라진 밤하늘 아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갈 길을 물어야하는 천리에 놓일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만나고 그리고 주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고 우리 같은 죄인들을 향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다음에 정도의 차이는 있고 우리가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느냐 못 사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입은 그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 주님을 섬기고 경배하며 사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다, 라고 하는 사실에 우리 모두 동의하는 것이죠. 나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압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착한 마음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 주님 없이 살 수없다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심정 속에 있는 공통적인 소원은, 포기할 수 없는 소원은, 그러므로 내가 사는 날 동안 내가 비록 남처럼 뛰어난 지식이 없고 많은 물질과 그리고 남을 능가하는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 힘을 다해서 어떻게든지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따라서 몸부림치다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거품을 물고 죽는 그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일생 매 순간마다 자기를 죽이고 주님이 자신 안에 사시는 그런 진실한 섬김의 삶을 계속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윽한 열망가운데서 주님의 품에서 인생을 마치고 싶은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공통된 소원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이렇게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영혼의 진실한 변화를 경험했을 때 녹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가졌던 우리의 진실한 소원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을 모르고 살았던 우리의 지난날들이 후회스럽게 느껴질 때에 주님의 그 큰 사랑 알고 나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강력한 소원은 오직 한 가지 아니었어요?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위해 살리라.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그런 소원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높이며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 날에 우리의 인생의 모든 갈등과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모든 고통과 어두움들이 종식되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오늘이라도 좋으신 주님을 위해서만 살고 싶다고 결심을 해 봐요. 악한 영들의 강한 도전을 느낄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속에 있는 또 다른 악한 자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삶을 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들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정말 이 싸움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요. 마음으로 진심으로 주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어두운 단절과 그리고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어두운 단절이 늘 있어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정말 하루라도 주님의 인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건이 하나 여기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이제 어디로 가야 될 지 잃어 버렸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니까 베들레헴으로 가라는 거죠. 사실 베들레헴이 아무리 작은 동네라고 말하지만, 그 때는 특별히 무슨 때였죠? 가이사의 명에 의해서 인구 조사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이동을 하던 때에요.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오죽 많이 모였으면 베들레헴에도 여관에 방이 없어서 마굿간이라도 빌려서 쓸 정도의 그런 상황이 된 것 아니에요. 어디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어떻게 찾느냐 이거에요. 늘 살던 동네도 아니고 말이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을 맡기고 일단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기를 따라 걸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사라졌던 별이 다시 나타난 거예요. 그리고 찬란한 빛을 발하며 그들의 앞에서 인도하는 거예요. 이거 보세요. 주님을 진심으로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잠시 별빛 사라진 어두운 밤하늘 아래 두시는 적은 있지만 영원히 어두움아래 두시는 적은 없어요. 정말이에요.
전 이번에 교회를 옮기는 일들을 추진하면서도 그걸 참 절실하게 느꼈어요. 여기서는 나가라고 그러지, 갈 데는 없지, 그래서 제가 설교 시간에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그 찬송을 불렀더니, 은혜를 받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불안해하는 거야. “목사님도 모르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지. 아니 수군수군 하는 거야. “목사님도 갈 길을 모른대. 불안해서 못 살겠어” 그만큼 하나님 의지하자는 이야기지. 무슨 말을 못하겠어. 말씀 듣고 은혜 받았으면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순종도 안하려면 개척교회 가 가지고 밥이나 하라고 했더니, 진짜 개척교회 가서 밥해야 되겠다고 보따리 싸는 사람도 있다니, 참 답답한 일이에요. 말귀를 못 알아들어. 무엇인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면, 뭐라도 섬기면서 살으라는 이야기지.그런데 하여튼 그랬어요. 뭐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들 다녔지요.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다녔는데 참 신기해. 돈도 없지만, 돈만 있으면 땅은 널브러져 있는 줄 알았어요. 없어요. 통장에 돈이 몰라 한 천억쯤 가지고 있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통장에 돈이 몇 십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팔려는 땅은 많이 있는데 우리가 정말 필요한 땅을 없더라고. 그러면서 여기서 하나 진리를 배운 게 뭐냐 하면, 우리는 참 하나님을 어떡하든지 하나님을 덜 믿으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돈이 있으면 돈이 해결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돈 가지고도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이 많이 보여주셨어요. 물론 돈도 얼마 없었지만은. 그러니까 캄캄하지요. 그냥 막 하루에 두 번씩 전화가 와 가지고 비워달라고 그러지. 난리에요. 그런데 간절히 기도하는데 사실 하나님 앞에 투정처럼 기도한 게 그거죠. 내가 언제 큰 교회 달라고 그런 적 없거든요. 난 초막이나 궁궐이나, 난 큰 교회는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티끌만한 욕망도 없어요. 다만 모이는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 대책은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시라도 아마 대책은 세우셨을 겁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생각 밖으로 기가 막히게 길을 여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거예요. 보세요. 정말 마음속에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고 싶어 하는 정직한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때때로 하나님께서 별빛의 인도가 끊어진 것 같은 어둠 속에 두실 적은 있어요. 그러나 영원히 그렇게 두시는 법은 없다 이거죠. 문득 별이 탁 나타나는 거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갈 데가 없겠냐고, 큰 소리들을 쳤는데 한 한 달 다녀보고 나더니 모두 코가 빠져서. 야, 이게 보통문제가 아니구나. 그런데 마음이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져서 이제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문득 별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보여줘. 그 별이 인덕원으로 빛을 발하면서 쫙 공장위에 오자 멎었어. 신비주의자 하나 나왔다고 그러겠네. 말하자면 그랬다 이거죠. 참 놀라워요. 그런 것이 결국은 여기서도 나타나. 가슴을 졸이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 좋은신 메시야에게 경배해야 하는데. 마음을 가지고 갈 때, 그 때에 찬란한 별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해.
그런데 그 동방박사와 대조되는 한 인간이 나와. 그게 헤롯이에요. 헤롯이 뭐라고 그랬어요. 가서 그 사람 찾으면 나도 경배하고 싶으니까 연락 좀 해라. 이게 뭐예요? 거짓말이죠. 거짓말. 만나면 죽여 버리려고 한 거죠. 그에게는 경배할 기회가 허락이 됐어요, 안 됐어요? 영원히 예수님을 경배할 기회가 허락이 안 됐어요. 거짓이었기 때문에. 진실한 이 사람은 다시 찬란한 별빛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기뻐한 거예요. 왜 그렇게 기뻐한 걸까요? 아, 이제 주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 기뻐한 거예요. 사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해요. 금년 한 해 동안에 가장 감사의 제목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 우리의 가슴을 찌르면서 다가오는 하나 감사 제목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을 사용하셔서 주님이 섬김을 받으셨다는 것. 우리같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더러운 인간들을 통해서 주님이 섬김을 받으시고, 우리 같은 사람. 이렇게 더럽고 때 묻은 손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일을 위해 봉사할 때 그것을 만약에 주님이 그런 더러운 마음과 때 묻은 손으로 불결하다, 가증하다, 라고 내팽겨 치셨어도 우린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같이 더럽고 부족한 사람들의 섬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그리고 다른 영혼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하시고 미력이나마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퉁이를 거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은혜에요.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들이 예수님의 그 보혈의 피로 용서받은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 위에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셔서 어느 한 곳에서든지 하나님 섬기며 살도록 만들어 주신 거예요. 그 큰 은혜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건데 몰약과 유향이 도대체 뭔지를 몰랐어요. 뭐 그 백과사전 찾아봐야 설명 나오는데 뭐 유향이니까 우유 빛 나는 그런 향기로운 뭘까, 몰약은 물약하고 발음이 비슷하니까 액체로 된 무슨 통에 들어 있는 건가, 그런데 참 뜻밖에 저기 사우디아라비아인가 어딘가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편지가 왔는데 책을 읽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독자의 편지가 왔는데 뭐를 휴지에 싸서 보냈어요. 열어보니까 목사님 이게 유향이고 이게 몰약입니다. 그렇게 싸서 보냈어요. 그런데 보니까 광석 같은 거예요. 성분은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 무슨 꿀 같은 것을 굳힌 것 같기도 하고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 같은 것이 굳은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하여튼 딱딱해요. 돌맹이같이 이렇게 긁으면 긁혀지는 그런 것이더라고요. 하여튼 그런 거예요. 그 때 또 몰약은 뭔지 잘 몰랐지만, 몰약하고 물약은 다르구나, 라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게 말하자면 그 시대의 귀한 상품이었어요. 특별히 그 당시 몰약 같은 것들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그런 향 재료들로 쓰였어요. 아주 귀한 것이에요. 그것을 예수님께 바쳤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섬기고 경배하고자 하는 아기예수께 경배하고자 하는 진실한 소원이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일생동안 그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일생을 무엇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에요. 그렇죠? 사랑은 말로 그렇게 말해야 하는 사랑의 우선순위와 자기가 진짜 사랑하는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우선순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가증한 삶이에요. 말의 고백으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작용에 있어서도 그것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것이 꼭 필요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야 돼요? 당연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여야 할 당연한 고백인 것과 동시에 또 실제로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느끼며 살아야 한다 이거죠. 그래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 분을 경배하면서 살아갈 때에 결국은 그분을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치고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면서 그렇게 헌신하면서 사는 그것을 통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랑을 입증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충성된 삶이요. 그것이 주님을 위해서 자신을 다 드리는 삶이라 이거죠. 일생을 살아도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다 죽은 사람의 죽음은 너무 쓸쓸해요. 여러분 일생동안을 방종하게 살다가 마지막에 객사하는 사람들, 살아서의 날들은 화려할지 모르지만, 죽음의 순간은 너무 비참해요.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깊이 사랑하고 주님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받은 한 목표를 사랑해서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에 기여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정말 보람된 것이에요.
여러분, 보십시오. 그렇게 기뻐하고 기뻐하던 사람들에게 결국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허락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놀랍습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철저히 가려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위대한 비밀과 처음 면담의 그 위대한 축복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앞에 드렸어요. 여러분, 성탄절이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게 하셔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열렬하게 증언하다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곧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아끼시는 것이 있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될 때 그 때 너희들은 예수님을 생각해 보아라. 당신의 가장 소중한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데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하나님께 아까운 것이 있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내리신 가장 최고의 선물이에요. 주님에게도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내민 구원의 손을 붙들고 그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우리들의 마땅한 반응은 주님이 자기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신 것처럼 그 아들을 통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가장 진실한 반응이에요. 그것이 주님을 진심으로 경배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신앙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절에 이 성탄이 우리의 인생에 한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큰 사랑을 알고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그런 성도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