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처럼 인도하신 하나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시78:52)
오늘 기록된 시편 78편은 전체가 한가지 사건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건져내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돌보셨는지를 은혜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노역의 계속이었고 그들을 노예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는 어떤 희망이나 새로운 기대 같은 것을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을 받고 그리고 소처럼 일하면서 그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큰 능력으로 이끌어내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그 일을 하셨고 그래서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특별한 표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그때에 경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민족의 해방을 눈물로 기도했는지는 의문이 됩니다.
애굽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그 비참한 생활, 그 날을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이 애굽 땅에 들어 온지 4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430년이라고 하는 그 긴 세월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아오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해방을 기대했다기보다는 노역에 시달리면서 하나님 앞에 신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때로 하나님은 적극적인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백성들의 신음하는 고통소리조차도 당신 자신의 자비로운 성품을 자극하게 허락하셔서 그들을 돌아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오셔서 그 민족의 해방이라는 놀라운 일을 주님이 친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거기에 남아 있던 애굽 백성들을 다루시는 것과는 달리 특이한 방법으로 자기의 백성들을 다루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이 시인은 하나님이 마지막 재앙인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치시는 그런 재앙을 경험하도록 징벌하시면서 하나님이 그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양의 피로 구속해내신 그 사건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52절에서 시인이 이야기하는 자기의 백성들을 인도하여내시고 자기의 백성들을 마치 양떼처럼 지도하셨다는 이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입니다. 첫째는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시고는 앞에 나와 있는 기록으로 볼 때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징벌하시던 그 날밤 애굽의 처음 난 것이라고는 짐승의 초태생으로부터 시작해서 바로의 장자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던 바로 그때에 일어난 일,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여기에서 진술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은 죽음의 사자가 징벌하여 그들을 모두 죽음으로 데리고 갔지만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 집안은 그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갔고 그래서 그것을 유월절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과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는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게 죽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신 그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광야 생활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그들을 거기에서 건지신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특별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애굽에는 심판의 죽음이 일순간에 엄습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죽음이 이미 예고되었고 그리고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까지도 하나님이 충분히 알려주셨으니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그리고 그 고기를 먹고 쓴 나물을 먹으면서 주님이 해방시켜주실 때를 기다리도록 지시 받았고 주님의 명령대로 행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그 보편적인 죽음의 징벌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그 죽음의 형벌에서 주님이 우리에게는 특별히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고 어린양의 피를 대신 바름으로 우리를 그 죽음의 형벌에서 구해주셨다 라고 하는 그 특별한 은혜를 받은 기억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처럼 이 시인의 가슴속에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메아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한가지 사건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한가지 사건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은 이 세상에서 이미 영적으로는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고 육체적으로는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영원히 심판하셔서 죽임을 당하게 하시고 그 영혼은 영원한 형벌에 자기가 던져 넣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자기와 같이 더러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구해내심으로서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이 한가지 구원의 사건을 가슴에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온 몸에 원기를 제공해주고 그 사건에 대한 감격은 발전소와 같아서 온 도시에 두루 가로등이 켜 있다고 할지라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지 않으면 암흑을 면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죄인을 위해서 어린양의 피를 흘리시며 대신 죽으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를 그 죄악의 형벌에서 구원해내셨다 라고 하는 한 사건에 대한 감격이 없으면 그의 삶은 결코 거룩하게 빛날 수 없습니다. 그는 결코 주님을 위해서 살수 없고 그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할 수 없고 그는 결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성화의 삶을 위해서 분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 사건이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 사건이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늘 반복되어서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쓸모 없는 죄인이었으며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외아들을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 당하게 하셨는지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예수를 죽인 것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풍성히 나타내기까지 우리에게 그 구원의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열린 교회에 오기 전에 이미 이런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분도 계실 것이고 생전 처음 교회라고 이 교회를 찾아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 만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 구원의 복음의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서 새사람이 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래서 우리는 그 한가지 사건 때문에 새사람이 되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선택된 백성들임을 알게되었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서도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을 그 애굽의 재앙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없이 찬송하며 감격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거기서 발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해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되는 그런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그 십자가의 피로 구원해내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생동안을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만을 찬송하며 살기에 충분하고 그 십자가의 은혜와 그 피로 우리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정말 감사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격하면서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할까요? 교회는 단순히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혁의 도구가 아닙니다. 단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좀더 행복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도주의적인 목적을 가진 그런 사람이 세운 단체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미담을 만들어내는 그런 삶이 교회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주님을 모르고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주님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져있는 불쌍한 인간들을 구원해서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것,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람을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지으실 때에 그 사람에게 기대하셨던 인생에 목적을 따라서 살게 하시는 것이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입니다.
온 땅과 하늘 위에 홀로 계셔서 혼자 영광을 받으실 그분을 찬송하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거민들의 삶과 고백과 노래를 통해서 주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그들에게 예수님을 영접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는 예수를 믿는 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고 그가 얼마나 주안에서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여러분들이 증인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 모든 일, 성화와 거룩을 위한 분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과 주님을 위한 아름다운 봉사와 무릎을 꿇고 지체들의 발을 씻기는 겸손한 희생,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은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전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만났던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들도 만나게 해줌으로 죄에 대해서 회개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음을 갖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구원을 이루시고 구원받은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존재하는 날 동안에 교회가 마지막까지 힘써야 할 일은 바로 우리처럼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방황하던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그 일이 교회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고 숨질 때까지 성도는 이 일을 위해서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기관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텅 빈 교회당 건물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싶으신 것은 이 건물이 아니라 이 건물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고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십자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맛본 주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그 일을 통해서 흑암의 권세 아래 죄의 노예가 되어서 일평생 아무 소망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오늘도 건져내고 싶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8년 전에 교회를 세우시고 8년 동안 하나님이 매순간마다 가슴 시린 감동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이렇게 길러오셨습니다. 교회를 맨 처음 세울 때 7-8명의 사람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이처럼 많은 영혼들인 여러분들을 보내주셔서 이제 이 교회의 그늘 아래 깃든 참새들처럼 목자의 품을 파고든 어린양 떼들처럼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과연 이만한 교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이 헌신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한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고 정말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우리들이 8년을 살아왔습니까? 부끄럽지만 저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이 깨어서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그리고 주님 앞에 나 자신을 다 드리지도 못했고 섬겼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썩은 열매와 같은 섬김이었을 적이 너무나 많은데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시고 이렇게 편안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그 은혜에 대해서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영혼들이 모였고 어쩌면 우리는 오늘날에는 다른 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례가 없는 열매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이 세상에는 주님을 모를 때 우리들이 비참했던 것처럼 무지와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고통 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그들을 생각하면 우리들이 이룬 이 성장을 성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 중에는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의 참 사랑을 전해주는 이가 없어서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증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버려진 존재처럼 광야의 늑대처럼 살아가는 그런 비참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눈을 들어 하늘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너무나 어두운 그런 캄캄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해도 결국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다 쏟고 마치 예수 사랑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그 순간부터 모두 덤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주님과 함께 낙원으로 올라가는 그 강도가 얼마나 감사의 마음에 넘쳤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순간에 그 강도처럼 그냥 데리고 가시는 대신에 또 다른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주님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이 세상에 주님을 먼저 만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더 살게끔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8년 동안 베푸신 은혜는 우리들이 정말 하늘을 두루 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서 쓴다고 해도 우리들이 어떻게 기록할 수 있겠으며 우리의 심장을 짜내어 그 피를 잉크 삼아서 우리의 손가락으로 쓴들 어떻게 우리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은혜와 교회의 베푸신 탁월한 은총을 다 적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으며 우리들이 주님을 만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지체들이 있고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 모두는 분량은 다르지만 각기 맡겨진 처소에서 여러분들의 헌신을 하나님 앞에 드렸고 그것들을 사용하셔서 지금 하나님이 영혼들을 구원해오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8주년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밖에 섬기지 않은 데도 주님이 이렇게 많은 열매를 주셨다면 만약에 우리들이 8년 동안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다 주셨던 것처럼 더 순수하게 그리고 일체 욕심 없이 그리고 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유익을 버리고 영혼을 사랑하셨던 주님의 심정으로 이 죄악 된 세상과 이웃의 동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더 많이 우리 자신을 드렸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크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을까요? 생각합니다.
나는 이 정도의 구원받은 영혼들로서는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고통 하는 수많은 이 도시의 영혼들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면 주님의 심판의 진노를 면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부족한 것이 없이 마치 목마른 사람이 설탕물을 찾고 더 목마름으로 인해 고통 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대책이 없는 이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도 그들의 고통의 문제는 해결해줄 수 없고 고통 하는 그 수많은 영혼들의 고통의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할지라도 고통 하는 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기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로 감사하는 눈물의 고백과, 그리고 자기가 이미 받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채 아직까지도 주님을 거스르며 옛날에 우리처럼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안타까움입니다.
저는 꿈꿉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 큰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가 이렇게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부족하게 살았던 것을 깊이 회개하는 교회로 꿈꿉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깊은 감화와 그 은혜를 가슴깊이 기억하면서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정도로는 우리들이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기뻐하며 새 생명을 누린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 뒤편에서 들려오는 더 많은 영혼들의 울부짖는 함성, 전해주는 이가 없어서 예수를 알지 못하는 그 수많은 영혼들의 울부짖음과 그리고 주님이 아니면, 그 구원의 은혜가 아니면 어떤 삶에 희망도 없는 비참한 영혼들의 그 고통 하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온 땅에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그 죄인들을 강물처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위대한 부흥을 우리들이 꿈꾸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은혜와 긍휼을 주님이 한없이 여러분들에게 부어주셔서 도무지 여러분들이 그 예수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들이 되고 젊은이들이 그 영혼들을 구원하는 그 일에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꿈으로 생각하며 이 땅에 수많은 동리에 들어가서 우물을 파고 거기에서 복음의 샘을 길어 수많은 영혼들이 그 샘에서 물을 먹고 우리처럼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꿈같은 날들이 교회를 통해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반드시 이 일을 열린 교회 혼자 이 일을 하게 되기를 저는 꿈꾸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주님을 만난 사랑하는 당신의 종들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목숨을 건 깊은 소명을 경험하고 그리고 잠시 있다 사라질 이 세상에서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 영혼들 하나 하나를 찾아가서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그들에게 전해주는 그래서 비교될 수 없는 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그런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많이 세워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섬길 일꾼들만 있으면 우리는 일년에 하나, 아니 한 달에 하나라도 세워서 그들의 마음에 주님이 흩어져 유리 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어느 동리에 가서든지 울게 하시고 손톱에 피가 나도록 땅을 파듯이 자기를 죽이며 생수의 우물을 주님 앞에 구하고 거기에서 우리들은 직접 갈 수 없는 수많은 영혼들이 그 샘에서 물을 마시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위해서 우리는 숨질 때까지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는 이전에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죽어야 할 형벌 받을 인간이었던 것과 예수님이 사랑으로 자기를 구원해주신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아로새기면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음 전도에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해서라도, 하다가하다가 할게 없으면 전도지 만드는 헌금을 해서라도 복음전도에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들 때문에 복음 전하는 그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과 그리고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허비해서 그 영혼들을 사고 그 영혼들을 구원해내는 도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헌신하고 자기를 많이 드리면서 살아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부터는 우리의 인생이 덤으로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도 우리의 소망도 우리의 건강도 심지어는 우리의 가진 소유도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진 재산과 그리고 우리의 목숨까지도 이미 이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아는 사람들은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18주년 될 때에는 어떤 교회가 되어 있을까요?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하나님 앞에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18주년이 되었을 때에 교회가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대한 뼈저린 사랑을 잃어버리고 교회 안에는 형식적인 신자들로 가득 차서 수 천명의 교회가 된다면 제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그 때까지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흘릴 눈물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렇게 구원받은 성도들은 착한 마음이 되어서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들, 잠자고 죽은 영혼들을 향해서 예수의 사랑을 먼저 안 사람들로서 무한한 부채의식을 느끼면서 자기를 바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교회를 하나 개척하면서 내심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좋아한다면 일년에 한 두 개씩 세우자고 그래도 아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하는 것 좀 보십시오. 아멘! 문제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어디론가 떠나서, 함께 좀 따라가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자신들에게 대해주셨던 것처럼 똑같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그것 말고 하나님이 무슨 목적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 놓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8주년을 맞으면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우리들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 그것은 바로 교회를 처음 세우셨을 때 그 마음을 우리가 주님 앞에 물려받는 것입니다.
12월 12일날 교회가 섰는데 구체적으로 교회를 세우도록 응답을 받은 것은 11월 15일쯤 되었습니다. 한달 만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뭐 저는 생각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냥 교수하다가 죽을 생각을 했는데 하고 보니까 교수하는 것 보다 좀더 보람있는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보람있는 일이지만 좀더 보람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목회를 하기로 뜻을 굳게 세웠는데 개척은 사실 엄두내기 힘들었고 큰 교회도 말고 작은 교회도 말고 백 명이나 이 백 명 이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오라고 그러면 가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느 변두리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을 안 재우시면서 삼일동안을 꼬박, 그 중에 한날은 밤새도록 침대 옆에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제게 밀려왔던 그림이 무엇인가 하면 마태복음 9장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쭉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많이 울었습니다. 마른 막대기 같지만, 잘할 자신도 없지만, 승리할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도 없지만 그저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제가 쓰시려는 주님께 나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어떤 순간에도 교회를 세우게 하셨던 그 부르심을 잊지 않는 교회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고 그리고 그렇게 그런 부르심은 저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저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실 교회인 여러분들 모두에게 공유하도록 주신 그런 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주님 앞에 사는 일생동안에 여러분들은 꼭 전도자로 일생을 살아야 하고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있는 것이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지 기여하는 삶이 되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여러분들을 그 흑암 가운데서 건져내신 주님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광야에서 저희를 지도하셨도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광야의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신 하나님의 일하신 것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78편에도 이미 기록이 되어 있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불순종과 원망으로 대변될 수 있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은 넘친 곳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주님의 사랑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과 불신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관성 있는 은총은 그들의 불순종과 비교할 때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들어선 이후 그들은 모두 하나님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은 잠깐이었고 원망과 불순종은 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광야 생활의 전체의 삶을 신약에서는 불순종과 불 신앙의 기간들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들에게 당신의 살아 계신 기적을 보여주셨고 그 기적 속에서 그들은 잠시 마음이 흔들리고 하나님께 향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영구한 순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을 때만 그들을 보호하고 은혜 베푸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 못살고 주님을 거스를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당신의 언약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하고 난 잠든 그 이튿날 새벽에만 만나가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우상을 섬기고 술에 취해 잠든 이튿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셨고 그들은 그 만나로 떡 해먹고 힘을 얻은 후 범죄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 이튿날 다시 만나를 내리셨고 불평하며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목마를 때에는 하나님이 반석을 쳐서 샘을 내셨고 주님을 불순종하며 광야의 길을 행하는 그들이 더위에 지칠까봐 구름으로 기둥을 만들어 그늘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독한 원망과 배교의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짐을 우려하셔서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진을 두루 비추셨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이 사이에 새 고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주님을 원망하고 범죄한 자들에게도 그들을 먹이시기 위해 메추라기를 보내셨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은혜들을 그들에게 베푸셨습니다. 40년이 지나도록 그들의 의복은 낡지 아니하고 신발도 헤어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공급해주셨습니다.
지난 우리의 8년이 그러했습니다. 많이 충성하던 때도 있었고 그리고 저부터도 마음이 냉담해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도 하나님이 우리를 불신실하게 대하신 적이 없고 죄를 지었을 때는 사죄의 은혜를, 자신이 잘못해서 고통받을 때에는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공급이 끊어져서 고통을 받을 때에는 다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두루 보이시면서 광야와 같은 8년의 길을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광야의 8년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여러분들을 이끌고 광야의 길을 걸어갔던 그 지도자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된 그런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있어도 홀로 광야에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도 있었고 또 많은 지체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을 인해서 위로를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때이든지 간에 어째든 광야와 같은 때를 8년 동안 지냈고 그 속에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곤고한 자들에게는 생각하지도 않던 때에 사죄의 은총을 주시고 우상을 섬기듯이 음란하게 이 세상을 섬기며 주님을 버렸던 사람들조차도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회개한 후에는 하나님이 그를 거룩한 성도로 발라주셔서 주님을 교회를 위해 아주 요긴한 일군이 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는 저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경험한 것이고 여러분들이 많이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인도를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 하나님이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에서, 신앙의 길에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는 전혀 그런 것들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일체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보여주셔서 거스르고 불순종하는 우리들을 광야에서 멸망시키는 대신에 오늘도 살아서 주님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게끔 만들어주셨을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결국은 여러분들이 이런 광야에서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렇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예전에 여러분들처럼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그네로서 그 나그네를 돕게 하려고 주님이 이런 긍휼과 사랑을 먼저 입게 하신 것입니다.
눈을 들어서 한번 흩어진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하는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신자라고 스스로 내세우는 심지어는 교회 안에 있는 연약한 지체들을 한번 보십시오. 복음에 대한 그 엄청난 무지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꽉 막힌 이해와 그리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가 가득 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는 어두움이 가득하고 지식적으로는 무지가 충만해서 편견과 그리고 자기 스스로 사슬에 빠진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해져버린 신자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구원받고 받지 않은 것은 주님의 나라에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이 땅에서 자기들이 믿는 예수 때문에 행복하지 않고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 때문에 주님을 더 가까이 할 수 없는 얽매인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되 우리 홀로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 십자가의 피로 구원해내신 후에 어머니와 같은 교회에 우리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그 자식을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그 자식을 잘 기르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듯이 그렇게 돌보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다 지쳐서 교회 품으로 들어와서 쓰러지면 안아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교회, 돌봐주는 섬기는 일군들이 있고 그리고 이곳에 와서 마음을 붙이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믿으며 살 마음이 생겨나는 그래서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 아버지, 나아가서는 하나님 어머니의 그 따뜻한 성품을 죄인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그래서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일군들이 훌륭한 일군들이 교회에 세워져야 하고 일군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 많은 성도들이 협력하고 헌신하고 영혼을 섬기는 그 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몸과 마음과 물질을 드려서 섬기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아이를 기른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에 동리에 가보면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지 애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여자 애들이 나와서 고무줄도 하고 공기도 하고 노는데 애가 애를 업고 나옵니다. 엄마 아빠는 다 품팔러 갔으니까 애를 7-8명을 낳아놓으면 큰애가 작은 애 업고 둘째 애가 막내 애를 업고 그리고 하는데 애를 업었다기보다는 그냥 애가 낡은 기저귀 끈 하나에 매달려 있습니다. 애가 편하건 말건 떨어져서 머리만 안 터지면 그놈을 달고 공기를 한다. 고무줄을 한다, 딱지치기를 한다 그리고 합니다, 그것도 애들을 기르는 것은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그렇게 안 기릅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끔 텔레비전도 볼 시간이 없지만 -그렇게 잘 나오는 게 무엇인가 하면 우유 선전이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분유,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분유가 그렇게 복잡한지, 소젖 말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생각해서 비교해보라고 하고 박사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 분유 안 먹이면 무슨 큰일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다가하다가 골라서 쥐새끼들에게 먹이고 그리고 뭐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습니다. 요즘에 왜만큼 사는 집 아이들이 자라나는 양육의 과정을 이렇게 보면 우리는 정말 오늘날 이렇게 짐승처럼 살아가는 게 당연합니다. 어렸을 때 짐승처럼 길렀습니다. 정말 그렇게 삽니다. 무슨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뭐 그렇게 참 정말 대단합니다. 한번 차면 없어질 그 기저귀도 얼마나 좋은지 세계 최고의 기저귀를 우리 나라에서 만든다고 합니다. 똥 한번 싸는 데 4-500원씩 들어가도 신경도 안 씁니다. 그렇게 기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어떻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직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돌봐주지도 못하는 설 수 없는 신자들을 떼로 모아놓고 한번 수없이 7-800명씩 모아놓고 이름도 다 못 외우는 교역자 한사람이 사람이나 죽으면 가서 장례나 치러주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그 죄인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아마 아픈 자를 하나 하나 찾아가시고 이마에 손을 만지시고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시고 그리고 그들이 범죄 하면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주시고 무지한 자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펴놓고 밤새도록 가르치실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이 그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는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 두셨고 교회는 바로 그런 어머니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깊이 주님의 그 사랑을 아는 지식에서 모든 성도들이 자랄 수 있도록 그렇게 섬기고 돌봄을 받는 그런 영혼들이 많아지도록 주님이 그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헌신하고 많이 섬기고 많이 기도하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자기 자신을 허비하게끔 내어준다고 고백했는데 사도 바울이 어디서 그런 사랑을 배웠을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허비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주님이 자기를 위해 허비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랑을 깊이 깨달아 알아서 넘치도록 주님을 위해 허비하며 그렇게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