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굴려 버리신 하나님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수5:9)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가 항상 원하는 것만 따라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정말 같이 있기 싫은 것들이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마치 바지 뒤에 붙은 껌처럼 떼어내고 싶고 그리고 그것과 결별하고 싶어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르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들에게 짓눌려 있다가보면 그렇게 짓눌려 사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그런 삶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을 정복하기 직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다음에 첫 번째 공격한 성이 여리고성이었는데 그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요단강을 건너 후에 교두보로서 자리를 차지한 그 첫 번 집결지가 바로 길갈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행하는데 그것은 바로 할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할례를 받고 애굽을 떠난 사람이었지만 그 후에 태어난 자녀들을 할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그렇게 되어서 그래서 여기에서 할례를 시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할례를 받고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을 위한 채비를 차리게 된 곳이 바로 이 길갈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이름을 길갈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은 “똥이 굴러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낄은 똥을 의미하고 깔은 갈랄에서 온 것인데 “굴러갔다” 그런 뜻입니다. 똥이 굴러갔다. 그러니까 여기서 수치가 굴러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 똥처럼 따라 붙어 다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히브리민족으로 불렸는데 원래 이 히브리라고 하는 이 말은 강을 건너온 민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에서 ‘합비루’ 하면 이것은 이주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집시라고 불러도 좋은 그런 명칭이었습니다. 무슨 신성하고 거룩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이름도 붙일 수 없었고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히브리민족이라고 말할 때 430년이나 되는 그 긴 세기동안 애굽에서 산 이주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말이 이주민이지 사실은 애굽에서 그들의 정체는 비참한 노예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노예생활을 하면서 430년을 지내왔으니 그들의 본성 속에서는 노예의 본성이 배었고 몰골도 노예와 같았을 것이고 그리고 43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했으니 중근동 지방의 모든 나라에 노예족속이라고 소문이 난 그런 백성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갈이 길갈로 들어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그 일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장소를 길갈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요단강을 말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강을 건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민족임을 수많은 사람들이 확인하게 되자 모든 족속들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마음이 물같이 녹아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물같이 녹아내리는 이 엄청난 두려움과 떨림을 경험하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 들어와 진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에는 히브리민족, 아! 그 애굽의 노예들, 아! 애굽에서 흙벽돌이나 찍고 그렇게 비참하게 노예로 사는 족속들, 그것이 히브리민족에 대한 사람들의 표현이었고 히브리민족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보다도 훨씬 강대국인 가나안에 있는 수많은 족속들이 마음은 물같이 녹아내리며 덜덜 떨 정도로 그렇게 강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2003년도에 숙명적으로 따라다녔던 수치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선한 일을 결심하고 이행하지 못한 나약함, 그리고 가끔 자극은 받지만 일년 내내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 없었던 우리의 게으른 삶, 그리고 우리를 계속 따라다녔던 저 사람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기도 안 하는 교인, 이렇게 따라다니던 우리의 잘못된 삶을 나타내보여주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무거운 똥 덩어리와 같이 우리의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그 수치들 때문에 우리들도 수치스런 사람들이 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똥처럼 따라다니던 수치스러운 것을 여기에서 모두 굴려버리게 되고 그 땅 이름을 길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민족이었고 이제 그들은 전에는 약했으나 지금은 강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으나 이제 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기라성 같은 수많은 족속들의 마음을 물같이 녹이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그리고 경외심을 가져다주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런 변화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마귀가 우습게 여기던 연약한 그리스도인, 세상 속에 나아가면 늘 시험에 들고 범죄하고 패배해서 주일날 올 때마다 처참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까? 예배 시간에도 대표기도를 할 때- 물론 우리는 예배 시간에 한없이 겸비해져야 합니다. 정말 낮아져서 우리 공로는 아무 것도 없고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고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정말 하찮은 죄인들일 뿐이라고 하는 자기 정체를 고백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리고 그것 없이는 그가 예배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지만 -하나님, 지난 일주일동안도 우리는 늘 죄에 졌습니다. 그리고 다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범죄 하였고 마귀의 밥이었습니다. 이렇게 해보려고 해도 안 되었고 저렇게 해보려고 해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죄악이 가득하고 그리고 우리 앞은 캄캄합니다.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어쩌다 한번이면 그래도 회개와 감동을 주겠지만 매주 그게 뭔 재미가 있습니까.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가끔 말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 같은 더러운 죄인, 쓰레기같이 아무 쓸모없는 인생을 주님이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죄가 많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 지난주에 많은 은혜를 예배 시간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연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고 그리고 고통 받는 자를 위로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저희들에게 주셨고 그리고 믿지 않은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는 힘이 없지만 놀라운 능력을 주셔서 내게 복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하나님, 저 앞에 보십시오. 저 굴비처럼 쭉 엮어서 10명쯤 나왔는데 제가 전도해온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굴비전도라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우리가 나온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을 얻으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열고 우리에게 강력한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를 하늘양식으로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의 몸에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깃들게 하시고 우리의 손에 성령의 무기들을 들려주십시오. 우리가 일주일동안 또 승리하며 살고 오겠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만나서 서로서로 성도들이 손을 잡고 지난 한주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안겨주신 승리의 경험들을 나누면서 아! 하나님께 서로 영광을 돌리는 그 기쁜 주일이 그래도 자주 와야지 됩니다.
주님이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실 때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재는 매일 울고 매일 없다고 그러고, 매일 능력이 없다고 그러는데 가끔은 주님, 기뻐해주십시오. 제가 드디어 이겼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모든 수치를 굴려버리고 그곳을 길갈이라고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2004년을 건너자마자 정말 2003년까지 숙명적으로 따라다녔던 모든 수치스러운 이름들을 좀 굴려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주일도 제대로 못 지키는 신자, 좀 굴려버립시다. 전도도 안 하고 집만 사러 다니는 집사, 그것도 굴려버립시다. 섬기지는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권사, 그것도 좀 굴려버립시다. 몸 바쳐서 교회를 섬기고 희생하는 대신 장시간 침체에 빠지기만 하는 장로, 그것도 굴려버립시다. 영혼들을 돌볼 큰 사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염려와 근심에 목 매이는 그런 신앙의 수치스러운 삶을 모두 굴려버리고 그리고 이제 2004년도에는 정말 사람들이 우리를 괄목 상대할만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괄’이라는 말은 눈을 비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이렇게 쳐다보니까 지난번에 그 사람이 맞는데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눈을 비비고 저 인간이 그 인간인가. 이렇게 비벼보고 봐야 알 정도로까지 변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 평생에 한해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금년에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2004년의 강을 방금 건넜습니다.2003년과 4년 사이에 강을 방금 건넜습니다. 2003년이 광야였다면 2004년은 가나안 땅입니다. 여기서 모든 수치를 굴려버리고 주님 앞에 자랑스러운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빚에 허덕이면서 채무자로 낙인찍혔던 사람들이 그 빚을 모두 갚고 경제적으로도 복 받은 사람이라고 괄목상대할 만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 때문에 늘 괴로워하고 근심했던 사람들은 이 2003년과 4년 사이에 있는 강을 건너면서 문제아의 부모라고 하는 수치스러운 이름을 모두 굴려버리고 자녀들이 회심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모든 부모들이 여러분들을 부러워하는 그런 부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맡겨주면 영혼들을 털어먹는다고 소문이 났던 구역장, 수치스러운 이름도 한번 굴려버립시다. 그리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구역장, 영혼이 가기만 하면 변화되고 없는 영혼은 가서 전도해오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구역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그 수치를 굴려버릴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수치를 굴려버리고 무시 받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수많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마음이 물같이 녹아내리는 민족들이 될 수 있었을까? 무엇 때문일까? 그 대답은 오직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광야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먹여주셨다고 하지만 그러나 40년을 모래바람이 이는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애굽을 떠날 때는 그래도 보따리라도 싸고 애굽 사람이 입던 옷이라도 얻어 입고 말쑥한 모습으로 나왔겠지만 40년 동안 면도를 했겠습니까, 목욕을 했겠습니까? 40년의 긴 세월동안 그들은 전쟁과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넜을 때 그야말로 작년에 왔던 각설이 같은 꼴이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병거가 그들에게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철로 만든 훌륭한 무기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가나안 원주민들이 마음이 녹아내릴 정도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뭘 보고 그랬습니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직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한분 때문에 그분이 계셨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민족이 그 가나안 원주민들의 마음을 물같이 녹아내렸고 그리고 그 모든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만 수치를 굴려버리고 2004년을 승리하며 살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살자. 옛날 선지자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시련과 환난이 올 때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혹과 핍박이 오고 박해가 밀려올 때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연약해도 그리고 부족해도 가진 것이 없고 그리고 배운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온갖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지난 한 해 동안 실패해봤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살아갔더니 승리가 왔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고 신앙을 잠시 양보하고 그 길로 달려갔더니 거기에 승리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모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확신을 놓아버리자 우리의 삶은 부끄러운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2004년에는 그런 수치가 요단강을 건너 금년에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마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그렇구나.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해보려고 하고 신앙을 양보하고 타협해보려고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해결해보려 노력하고 여러모로 애써봤지만 결국은 굴려버릴 수 없었던 그 수치, 결국은 하나님이 굴려버리게 만드시는구나. 그래서 금년에는 내가 믿음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금년에는 모든 과거의 수치스러운 일이 이 성스러운 2004년에 가나안땅과 같은 신간들을 짓밟지 못하도록 금년 한 해 동안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주님이 동행해주시는 길이라면 내가 무엇이든지 걸어갈 것이고 주님이 동행해주실 수 없는 길이라면 어떤 성공이 보장되어도 내가 그 길을 걷지 아니하리라 그 믿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걸어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3년 지내며 잘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훌륭하게 섬긴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스러웠던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것도 잊어버립시다. 너무 오래 생각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가슴 아프고 그리고 실패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잊어버립시다. 너무 오래 기억하면 미래도 좌절시키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두 달력과 함께 찢어버리고 새롭게 펼쳐진 방금 강을 건너서 맞이한 2004년에 이 광대한 벌판 앞에 서서 제일먼저 우리 모든 수치를 굴려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래서 2004년을 마음껏 정복해서 달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깃발을 꽂고 주마다 승리의 노래를 불러서 우리 생애의 최고의 생애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앞에서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