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때에 나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8:21-23)
이것은 바벨론으로부터 포로의 상태에서 이제 고국으로 귀환하는 귀환광경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제 바벨론 이후로 메데, 바하사 이렇게 나라가 바뀌면서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종교에 대해서 아주 관대한 정책을 폈습니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독실한 신앙을 염두 해 둔 당국이 이제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원하던 사람들을 고토로 돌아가서 성도 쌓고 성전도 짖고 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계속하도록 이렇게 상징적으로 관용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에스라가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깊이 감동된 백성들을 데리고 그리고 왕의 허락을 받아서 이제 그 이스라엘의 고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법을 모르고 주먹은 가깝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강력하게 발달된 중앙집권적인 통치 발달된 통신수단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조정에서 허락을 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곱게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먼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토로 돌아가서 이미 그 땅을 접령 하고 있었던 다른 나라 족속들과 더불어 많이 갈등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제 이 어린 것들과 그리고 짐승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이제 강가에서 이 지도자 에스라가 깊이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가는 포로 귀환의 이 길을 낙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수많은 다른 민족들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뭐냐 하면 왕이 명령을 내렸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해하면 왕명을 어기는 것이 되니까 즉각적으로 파발을 보내어서 조정에 호소를 하면 왕이 군대도 보내주고 말도 보내주어서 그래서 그 문제를 정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던 족속들을 질타해 줄 텐데,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뭔가 우리들이 일이 안 된다. 라고 생각될 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해도 되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이 세상에서 처리해 감에 있어서도 얼핏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굉장히 넓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선택하면서 행할 수 있는 폭은 너무 좁습니다. 뭐 일이 잘 안된다고 해서 뇌물을 준다던지 불법을 행한다든지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에스라의 경우에는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왕이 명령을 내려서 가게 허락을 했는데 가로 막으면 왕한테 가서 “저들 좀 보십시오.” 라고 이렇게 왕한테 가서 이렇게 이럴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도 보내주고 병사도 보내 줄 텐데.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을 제 껴 놓고 왕에게 호소해서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믿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다.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이 이런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으로 우리의 앞길과 그리고 우리의 행하여야 할 것과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또 우리가 갈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온 믿음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 라고 할 때 언제나 우리 마음에 드신다.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선에 대한 생각과 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 그런 것은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에게 좋은 것이 아니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 중심적입니다. 우리가 좋고 행복하고 편하면 좋은 것이고 아무리 올 바라도 우리에게 불편하고 힘든 것이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많이 비우고 정화 되어서 주님을 닮아 가면 닮아 갈수록 자기의 선과 하나님선 사이의 갈등이 점점점점 해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좋은 것은 언제나 나도 좋고 주님이 싫은 것은 언제나 나도 싫은 것입니다. 또 거꾸로 이야기해서 내가 싫은 것은 주님도 싫어하십니다. 그게 결국은 성화의 정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끔 신앙생활 하다 보면 하나님한테 토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토라진다는 것이. 토라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이렇게 삐지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는 삐지는 것이 귀엽기도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이게 반쯤 되는 반역입니다. 반 정도는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향해서 삐진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굉장히 심각한 악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선이 무엇이고 내 선이 무언지 모르고 그냥 네 선, 내 선 할 것 없이 그냥 자기 좋은 대로 산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 그런 사람들은 내놓고, 그야말로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포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과 나의 선이 일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에 대한 신뢰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신뢰와 직접적으로 통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는 이야기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텐데 그 길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주님이 나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기만 한다면 주님이 어디로 우리를 인도하시든지 그 길이 좋은 길이다. 라고 하는 확신 속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간에 두 가지만을 상기하면 우리가 그 어두움 속에서 벗어 날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뭔가 하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선하시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은 자기의 선하심을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보이신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을 기억하면 어떤 영혼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는 믿음, 지금은 비록 원수들에게 에어 싸이고 그리고 강가에서, 그 강가라고 하는 것이 참 성경에 보면 의미가 깊습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나오는 시편도 있습니다. 수금을 걸어 놓고 거기서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 말이죠. 그리고 또 에스겔서 1장에 보면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는데 강가에서 받는다는 말입니다. 30년 4월 5일에, 이런 강이 이런 이야기인데 굉장히 처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저녁때 물을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연세 많이 드신 분들은 물이 이렇게 쫙 보이는 곳이 정신과 의사들은 안 좋다고 합니다. 물이 그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평정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뭔가 고적한 느낌을 갖게 만들어 주는 그런 것도 준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처량하겠습니까? 갈 길은 뭔데 대적들의 소식은 들려오고 조종의 도움은 멀기만 하고 그리고 어린것들과 함께 달려가니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 때에 뭐 군인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난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동하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이 에스라의 마음이 허전하고 견디기 힘든 이 무기력한 상황이었느냐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은 것이었습니다. 상황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없어도 자신 속에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을 이렇게 이전해 가면서 어떻게 이것이 쉽게 되겠습니까? 이 엄청난 역사를 말입니다. 이게 쉽게 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삼천 이백 명씩 들어가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집회하러 많이 다녔어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엄청난 교회를 우리가 짖고 적어도 삼사천 명이 들어가서 생활 할 수 있는 그런 교회당을 준비하는데 이게 어떻게 쉽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건축이나 모든 절차나 이런 것들이 여기 있을 때 하고는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정도로 복잡할 과정 속에서 여러분들은 다 소식을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막하고 캄캄했었습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캄캄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두움 속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눈앞에 어려움이 생기고 그다음에 가능성이 생기고 하면서 요동을 칩니다. 환경이 막 요동을 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속에는 적적하게 지혜롭게 대응은 해야 되겠지요.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시는 일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선하시게 인도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렇게 선하신 분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굳게 믿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선하심을 보이신다고 하셨냐 하면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선하심을 보이신다.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운명에 자기를 맡기고 하나님에 의한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지금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서서 고토로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떠났을 때, 떠나온 길은 너무 멀고 도착할 길도 아직 멀 때에 그 때에 거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았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았겠습니까? 그들은 맥을 놓고 앉아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걸. 하면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그랬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야.”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할 거야.” 그 이야기라고 그랬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하고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을 맡겨 주셨으니까 이것을 짊어지고 우리들이 잘 완수해서 주님께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고 그래서 우리들이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이 교회당을 지어서 아직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우리처럼 인생의 벼랑길에서 두려워 떨던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와서 우리처럼 자유와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수종 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뽑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몇 년 후에만 열린 교회 오셨어도 저로부터 이런 설교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마 없으셨을 것입니다. 또 오랫동안 열린 교회를 다녔어도 한 일 년 전에 열린 교회를 떠나셔야 됐더라면 상황이 발생해서 교회 옮긴다든지 어디를 간다든지 떠나셔야 됐다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을 이유도 없고 또 이런 부담에 동참하실 이유도 없으셨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는 이 시점에 우리들이 열린 교회 한 식구로 남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이 짐들을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에 이 사랑하는 성도들이 정말 헌신해서 그래서 이제 꿈 같이 이 교회당을 만들어 놓고 나니, 200명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니까 그 이후로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천한 삼백명이상 되는 영혼들이 여기 와서 자유와 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끝까지 하나님 앞에 변화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마음이 강퍅해서 또 더 많이는 목회자인 제가 부족해서 교역자인 우리들이 바르게 돌보지 못해서 성도들이 잘 섬겨주기 못해서 눈물을 흘리며 떠난 성도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과는 비교 되지 않는 다수가 이곳에서 정말 편안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누리면서 어떤 외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의 그 노고와 희생 눈물의 기도 그리고 한밤이 다 세도록 흑 백돌을 나르고 쓰레기를 치우고 온 교회당을 치우고 칠을 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날밤을 세우면서 섬겼던 사랑하는 모든 지체들의 수고는 일일이 모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저는 굳게 확신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해 주셔도 오늘날 우리들이 이곳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항상 그 지체들에 대해서 부채의식을 느껴야 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섬겨 주었기 때문에 그 때 그들이 섬길 때에는 우리의 이름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섬겨 주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기쁨으로 주님 만나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셨구나!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들의 선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물질로, 기도로, 우리의 재능으로 아니면 우리의 노력봉사로 이제 하나님의 예배당이 서는 이 일을 위해서 깊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누군지 이름도 알 수 없고 얼굴도 알 수 없습니다. 또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어쨌든 여러분들이 그렇게 지어 놓은 그 예배당은 몇 년 되지 않아서 꽉 찰 것입니다. 그리고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거기에 정말 여러분들처럼 주님을 만난 사람들, 그리고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 많이 망가 졌지만 그러나 이 교회에서 주님 만나고 고쳐지기를 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들의 희생과 그 노고는 또 하나님의 나라에 기록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또 그 때쯤 되면 그렇게 새롭게 주님을 만난 지체들과 함께 또 다른 준비를 하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이런 일 몇 번하다가 주님을 섬기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정말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가 믿어야 되고 또 주님이 당신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셔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중심으로 주님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당은 돈으로만 지여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을 드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에 이제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해 가면서 그런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주님이 해 주실 것이야. 하고 기도하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 고백은 남들이 다 할 걸. 하는 고백과 꼭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나타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주님을 찾는 사람들, 주님을 찾는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주님을 너무나 간절히 찾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마음, 그런 것이 아닐까요?
어렸을 때에는 창경원에 잘 갔습니다. 창경원에 가면 어린이 대공원 보다도 좁은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뭐 정신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들이 아이를 찾아 나서는데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도시락이고 뭐고 양산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을 찾아다니고 방송실을 찾아다닙니다. 하나님을 찾는 다고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당이 지어지는데 성도들의 물질적인 헌신도 필요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동된 사람들도 필요하고 재능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다 필요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합되면 저절로 지어 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도구일 뿐이고 이제 이것들에 하나님의 은혜의 물을 부어서 비벼서 콘크리트처럼 만들어서 당신의 교회를 지어가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 시옵나이다. 주님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제까지 인도해 오셨으니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더 마음을 놓고 기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더 열렬히 구하고 믿기 때문에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선하심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당을 짓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일을 통해서 교회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이 일을 통해서 새롭게 알고 영적으로 깊이 성숙한 신자들이 될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에스라와 그리고 사랑하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제일 먼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런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의 첫 번째 조치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 금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동정을 받아 내는 것처럼 생각하시기가 쉽습니다. 이거는 성경적인 금식에 대한 견해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금식을 하면 내가 밥을 굶으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 금식기도는 성경적인 금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외식이 흐르기 쉬운 기도입니다. 금식기도의 목적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 대한 집중입니다. 그래서 적적하게 육체의 힘을 줄이고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찾는 일보다 중요치 않는 일체의 세상사로부터 멀어져서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눈을 들어 하나님만을 주목하는 이것이 금식의 진정한 의미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단식투쟁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러한 자세는 지극히 고행적인 접근이지 성경적인 접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들이 금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초점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입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면서 주님이 이일을 해결해 주시리라 주님이 이 일을 이루어주시기를 바란다. 라고 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집중된 마음으로 간절히 금식하는 이 모습이 바로 에스라가 자기의 백성들과 또 자신에게 요구했던 첫 번째 조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정말 마음의 눈을 들어서 간절히 주님을 교회당이 지어지는 이것, 이것을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일들을 통해서 이루실 일들에 대한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고 주님이 이것을 향해서 가지고 계시니 뜻이 우리의 뜻이 되게 해서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분신인 것처럼 그렇게 섬길 수 있어야지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집중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형성적이고 설렁설렁하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모으고 진심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일들을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 주시고 우리 중에 누구도 이 일을 위해서 쓰러지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없고 정말 하나님께서 고통과 그리고 시련 가운데서가 아니라 영광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루실 하나님의 일들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인증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집중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첫 번째 우리가 해야 할 일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제 이들이 행한 또 하나의 일은 무엇이었는고 하니 겸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무슨 뜻입니까?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승들은 이제 왕의 조서도 받았고 그리고 길을 떠날 때에는 틀림없이 좋은 길잡이도 대동했을 것입니다. 가자. 그러고 어느 날 그냥 휩쓸려서 거리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면밀히 계획을 세우고 지파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고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 박사 에스라는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그것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대신 할 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혜를 동원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모든 검토를 거의 끝냈습니다. 지금도 주방서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키즈랜드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서 영상, 음향, 그 다음에 냉난방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을 수 없이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모든 의견을 수렴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고 그 중에서 최선의 방법들을 찾아내고 최소의 경비로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심지어 네 번, 다섯 번, 사람들을 부르고 수없이 실행을 하고 그리고 조사를 하고 그 사람들의 말이 맞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을 하고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꼼꼼하게 준비해서 다른 교회 모든 성공사례들 뿐만 아니라 실패한 교회들까지도 탐구를 해서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완성도가 높은 계획을 가지고 이 일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뢰할 것은 그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도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겸비해져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비해 집니다.
요즈음은 이제 교회를 지을 건축사, 누구한테 이 일을 맡길 것인가? 이 일을 생각하면 겸비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 많습니까? 건축하는 사람들. 업자를 잘못 만나서 교회를 짓다가 멈춘 교회당도 많이 봤고, 심지어는 목사님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교회들까지도 저는 봤습니다. 목사님은 청렴했는데 사업자를 잘 못 만나서 휘말려서 그래서 말하자면 교회 돈을 횡령한 것처럼 만들어 바뀌어 가지고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는 목사님도 봤고, 뭐 수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남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고 우리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결국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게 됩니까? 가지고 있는 돈도 많이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지혜롭게 준비하면서도 우리는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땅 주인을 만나서 많은 은혜를 우리가 입어서 오늘날 우리가 그 대지를 구입하게 된 것처럼 또한 좋은 설계사를 만나서 우리가 지혜롭게 성전을 설계하게 된 것처럼 또 좋은 시공사를 만나서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하는 일들에 방향이 되도록 우리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도 건축사가 와서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목사님! 어쨌든 설계는 다 되어 가는데 정말 좋은 건축사를 만나야 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 그래서 합리적으로 교회 편에 서서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이분은 결국 이런 생각을 하면 그 우리가 찾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붙여 주셔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하나님 앞에 겸비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준비도 우리가 잘 안 됐지만 모든 준비와 대책을 우리들이 세운다고 할지라도 역시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깊이 겸비해져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서 이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 여러분들에게 시시가각으로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 겸비한 마음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쓸모 없다. 돈을 가지고 재정에 어려움이 없이 전문가들이 그룹을 지어서 교회를 몇 번씩 건축해 본 교회도 교회를 짓다가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하는데 우리는 처음입니다. 재정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뭐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당하고 있습니다. 겸비해져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정적인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겸비해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냥 매달려서 진짜 주님이 불쌍히 여기심을 힘입는 것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겸비하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는 뭐냐 하면 이 자녀들과 그리고 짐승들을 지켜 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간구 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이건 이제 첫 번째가 금식 이제 하나님을 향한 집중이었다면 두 번째는 겸비함이었다면 세 번째는 실제적인 기도였습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사랑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남의 나라 땅 한 복판 아하와 강가에서 때가 어스름할 때에 두고 온 고향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가야할 길을 생각하며 포로 생활 70년의 서러움을 달래며 고향에 가고 싶은데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흐느끼는 그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주님이 없으면 우리와 우리어린 것들 갈 길이 없습니다. 떠나온 곳은 다시 돌아갈 수가 없고, 가야할 길은 너무나 멉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나이 든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까지 흐느끼면서 울기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하와 강가에 저녁노을이 지고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 소수의 무리들이 그 강가에 주저앉아서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우리들을 인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그곳으로 올라가서 정말 주의 집을 짖게 해달라고 그렇게 흐느끼면서 어린아이로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부짖는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들을 외면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 두실수가 있겠으며, 힘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거기에 내버려 두실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속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겸비하게 어린아이들과 함께 흐느끼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아하와 강변의 기도,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셨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길을 여셨습니다. 왕이 보낸 조정에서 보낸 군사와 경찰이 아니라도 하나님이 이웃들의 마음을 놀랍게 녹여서 그들을 통행하게 하셨고, 그래서 결국은 초라하나마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의 두 번째 성전을 다시 짖게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입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든지 자기에게 도움을 구하며 그 은혜를 호소하며 간구하고 주님의 그 은혜의 도움을 볼 때까지 주님을 향해 부르짖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간구에 귀를 막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당신의 선하심을 보이시고 자기를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엄위를 보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열린 교회 태어 난지 7년 동안 이런 길을 걸어 왔습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붙들어 주셔서 넘기 어려운 산을 넘고 건너기 어려운 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만큼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들과 자기의 자녀들의 인도해 주기를 간절히 구하며 자신들의 성전을 하나님의 성전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세우겠다는 일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도움을 구하며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이스라엘백성들의 아하와 강변의 기도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합니다. 혼자 있을 때이든지, 두 세 사람이 모였을 때에든지, 아니면 이삼십 명이 모였을 때라든지 누군가는 제안해야 합니다. 우리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아하와 강변에 있는 것과 같은 우리를 그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 마음을 낮추고 겸비해져서 우리의 부르짖는 간구를 들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그 분 앞에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요. 우리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주님의 도움과 그 은혜를 구합시다. 우리 모든 이런 마음이 됩시다. 이런 사모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내셔서 조정에서 보낸 군대와 경찰 없이도 이들을 안전하게 약속의 땅까지 이르게 하셨던 것처럼 또한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후일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르짖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남겨두신 신앙의 아름다운 본보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우리의 영혼의 시선을 주님의 은혜의 보좌에 고정 시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일들을 허락해 주시도록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벽돌 쌓아서 짖는 중이오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기에 가득 찰 영혼들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될 인생을 살아서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될 그 많은 사람들의 다시 태어남을 위해서 우리들이 섬기고 봉사하는 중입니다. 라는 고백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간구해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시는데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도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당이 지어졌을 때 마당을 거닐면서 누가 지었는지 잘 지었네. 애들 써 구만. 그러고 지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세워주신 그 예배당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주님께서 이 미천한 인생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봅니다. 이렇게 감격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실한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