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목회의 꽃(2)
녹취자: 김명진
이런 상황 속에서 신자로 넘어가 봅시다. 교회가 전도에 힘을 쓰는데 진정한 의미의 전도는 목회자가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그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에 선명하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재능도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사람들이 요즘은 매체 같은 것들이 발달을 해서 설교자가 올라가서 주어 동사도 맞지 않고, 버벅거리고, 말도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 사람들이 잠시 집중했다가 마음을 풀어버리고 집중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보다 훨씬 더 설교에 공을 기울여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설교에 시간을 투자해서 완벽한 설교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들이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신자는 그렇다고 하고 교회 안에서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미국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목사님이 새벽 두시 반에 일어나신다고 합니다. 교회에 오셔서 새벽기도를 시작합니다. 매일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두 시간 반 기도하면 교인들이 새벽기도를 하러 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엎드려서 두 시간 정도 기도를 하고 4시간 정도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많은데 놀라운 것은 교회 중직자들과 말을 하는데 “목사님, 우리 교회는 특이합니다. 1년 동안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너무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2년째는 침체에 빠지고, 3년째는 참다 참다 머리를 쥐어뜯고 교회를 떠납니다.”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문제는 교회의 행정, 교회의 사무직원 둘이 있는데 그 교회 장로님 부인들입니다. 뭔가 그림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에 교인이 2천 500명, 3천 명 가까이 모이는데 교회 직원이 4명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입니다. 뭔가 행정적으로 질서가 잡히지 않은 것이고, 두 번째는 설교입니다. 일단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설교가 그 사람들의 성화를 촉진하는 설교여야 합니다. 사실은 전도 설교도 쉽지는 않지만 전도 설교는 부지런히 연습하고 자기를 훈련시킨 다음에 구령의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확장된 지식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그래서 지식과 은혜 안에서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지식의 대상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려운 것은 목사님들이 너무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신학을 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뗀 것이 아니라 신학이 무엇인지를 대충 훑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운전면허를 따는 수준의 지식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70점을 맞았다고 평생 동안 운전을 쌩쌩하고 다닌 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점을 맞았어도 수없이 사고를 냅니다. 흔히 하는 말이 운전은 세 번의 여름과 세 번의 겨울을 겪어야 겨우 운전하는 수준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50만km정도 운전을 했는데 지금도 운전을 하는 것이 싫고, 특히 피곤할 때는 자신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목회 사역이라는 것을 해서 사람들이 그 목사의 설교를 1년, 2년 듣고 떠나가고 새사람이 온다고 하면 좀 낳습니다. 그런데 1년, 2년, 3년, 5년, 7년, 제가 열린 교회에서 20년을 목회했는데 다 헤아려 보니까 5215번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거의 다 들었다고 하면 무슨 새로운 것이 또 나오겠습니까? 한 사람의 머리가 한정이 되어 있는데, 20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무엇을 또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냥 성경을 읽으면서 아멘, 아멘하고 옛날에 은혜 받은 것을 가지고 하려면 안 됩니다. 세상에 그렇게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이 나이에 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올해 수능에 80살쯤 먹은 할머니가 수능 시험을 봤는데 꿈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의상 디자인과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매일매일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다.” 목회자들의 무지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어느 독자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책을 쓰고 났을 때였습니다. 살면서 너무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자꾸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자기는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괴로워서 담임목사님을 찾아가서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상담할 것이 있습니다. 목사님, 성경에 보면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께 순하라고 했는데 제가 살다가 보니까 자꾸 죄를 짓게 되는데 목사님 어떻게 합니까?”했더니 목사님의 대답이 황당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죄를 짓게 되어있으니 그것을 너무 괴로워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비유를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해수욕장에 가면 바다가 있고, 멀리에 풍선을 여러 개 줄로 매달아 놓고 위험하니 여기는 넘어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인생을 사는 것을 해수욕장에 온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을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는 죄다. 그런데 여기 이상 가지 마시오. 그 줄만 넘어가지 않으면 되는 것처럼 너도 살면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다 이해를 하신다. 그 줄만 넘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 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는 않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상담을 하기 전까지는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목사님과 상담을 하고 나서 더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의 죄와 은혜의 지배를 읽고 나서 정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양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진리를 끊임없이 탐구해야지, 탐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무한정 가르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의지들이 너무 박약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고 다음 주에 써먹을 수 있는 남의 설교집을 같은 것을 읽고, 거기에서 뭔가를 찾아서 베끼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얘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올라가서 열심히 원고를 펴고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퇴장을 하는데 원고 중 하나가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책을 찢은 것을, 아무개 목사님 설교집을 찢어서 갖고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든지 그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꼴을 먹이는 선한 목자의 양심입니다. 자신은 그런 탐구를 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식의 독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눈을 열어주는 신학적인 독서, 경건 서적, 이런 것들을 함양하고, 그것들을 자신 안에서 소화해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진전된 지식을 가지고 그 성경의 진리로 이끌어 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설교가 꼭 스펄젼 설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말까 하니까 그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진실함입니다. 사람의 지적인 능력도 다 다릅니다. 비록 영어를 못하고, 라틴어를 못 하고, 원어를 못해도 힘닿는 한도 안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몰랐던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것을 이해한 다음에 하나씩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부지런히 공부를 해서 ‘어떻게 하면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되는가?’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자신의 힘닿는 대로 하고 힘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고, 필요하면 자신보다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책을 통해서 연구를 하기도 해서 목회를 20년, 30년 하고 나면 연구의 흔적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현저히 적은 것입니다. 제가 20년 전과 다른 시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 시대가 바뀌어서 어떤 시대가 되었는가? 오늘날 현대인들은 무슨 사고를 하고 사는가? 등등의 많은 고민들을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자신이 해야 합니다. 절대 하나님은 우리의 설교를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외부적으로 원고를 주듯이 이런 것을 설교해라 그러면서 우리의 설교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교자 속에 말씀의 씨를 떨어뜨려서 그의 살을 찢으시는 것 같은 고통을 통해 예전에 보지 못했던 진리들을 보게 하시면서 설교의 세계를 확장시키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한편의 설교는 설교자가 토해놓은 한사발의 피 입니다. 그러한 자기의 처절한 구도의 몸부림이 묻어 있을 때 그 설교가 살아있는 것이지 어디에서 말끔하게 정리된 것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낭독한다고 해서 그런 것이 살아있는 설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죄인인 인간이 누구이고, 구원이 무엇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했고,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깊이 공부하면서 성경의 진리를 찾아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하려고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교회에서 10년 쯤 다녀서 권사도 되고 장로도 되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가장 나쁜 사람들입니다. 부흥회를 가면 설교도 안 듣고 딴청을 하는 사람들은 교역자이거나 장로이거나 사모들이거나 셋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교회에 갔더니 하얀 양복을 입은 신사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계속 졸고 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 이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의 세계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는데 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풍선 같은 설교자가 있고, 빙산 같은 설교자가 있습니다. 풍선은 있는 것은 물위로 다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말하는 것이 아는 것의 다입니다. 그것은 깊이가 없습니다. 빙산과 같은 설교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의 십분의 일을 말했을 뿐입니다. 잠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축적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옛날 보다 훨씬 좋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정말 자료가 없었지만 지금은 자료가 정말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내가 설교할 때만 성경을 열고 주석을 열지 말고 내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장씩 성경을 읽고 한 장씩 칼빈의 주석을 읽으리라. 마태복음 1장을 성경을 읽고, 마태복음 1장에 대한 칼빈 주석을 읽었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꾸준히 읽어서 칼빈의 성경 주석 전체를 읽었습니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그까짓 것 무슨 효과가 있겠어? 하고 집어 치웠고, 한 사람은 그렇게 꾸준히 했습니다. 그렇게 3〜4년이 지난 후 한 사람은 칼빈의 주석을 다 읽었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설교 수준 자체가 다릅니다. 전설적인 설교가 조지 윗필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매튜 헨리의 주석이었습니다. 매튜 헨리의 주석이 잘 된 주석입니다. 저도 사랑하는 주석입니다. 이 사람이 부흥사였는데 교육도 철저하게 신학자처럼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반듯했습니다. 순수하게 복음을 전한 소수의 설교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부흥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생동안 매튜 헨리의 주석 전 권을 일곱 번 읽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일곱 번째 읽을 때는 무릎을 꿇고 읽었다고 합니다. 그 양을 보면, 그것을 한 번 읽는 것이 보통 양이 아닙니다. 그렇게 꾸준히 무엇을 하든지 성경과 신학을 가까이 하면서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손에서 책을 놓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꾸준히 책을 사서 계속 읽으면서, 읽어도 성경과 신학에 관한 이야기만 읽지 말고, 오늘날 돌아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이런 것들에 대한 것, 기독교는 대부분 보수 쪽에 속해 있는데 이쪽만 읽지 말고, 저쪽 편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신문과 TV를 통해서만 정보를 접하지 말고, 더 깊이 있는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면서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지식들을 모아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도들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고 설교를 해야 하는데 신자도 똑같습니다. 한 번 회심하고, 넓은 의미의 회심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님을 새롭게 믿는 것인데, 넓은 의미의 회심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삶에 회개가 참되면 그 회개 속에는 우리 주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이 함께 같이 옵니다. 회개만 하면 믿음이 같이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매일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떤 신자도 거룩한 성도로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오래 교회에 다닌 사람들에게 설교시간마다 매일 새로운 진리를 보여주어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회개하고 결단하는 일이 있기 위해서는 보통 노력으로 되겠습니까? 학문을 부지런히 탐구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 동안 살 때 그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설교가 되는 것이지 자기는 살지도 않고 어느 날 와서 설교를 할 때, 사람들이 영적인 피조물인데 그것이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의 삶이 진리에 묶여서, 그 진리에 붙들려서 진리를 전할뿐만 아니라 진리대로 살 때 그 외침이 진정한 외침이 됩니다. 터툴리안 같은 사람들이 평생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회개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으니까 사랑이 없습니다. 회개가 있어야 사랑이 다시 샘솟는 것입니다. 오래 예수를 믿은 사람들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를 더해서 그들로 하여금 진실하게 회개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과, 영혼에 대한 열정과, 자기 자신의 순종하는 삶과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 생활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결과물로 설교 속에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성도들의 기도의 후원과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우러져서 나오는 것입니다. 앵무새처럼 글줄을 몇 개 더 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절실하게 문제를 보아야 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즐거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나이가 되어서 목회를 하는데도 새로 발견한 하나님의 진리,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마음의 문을 열러주셔서 보게 하시는 진리의 세계, 감격, 그런 것들이 목회자의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목회자는 그런 일을 위해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는 대화가 교회 땅 산 이야기, 말을 듣지 않는 장로를 혼내준 이야기, 성지순례 가고 여행 갔다 온 이야기, 그런 것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이외에 딴 곳에서 것에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 망가진 것입니다. 그의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 진리 안에서 기쁨을 얻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담대히 하고 설교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회개에 대한 설교와 성도들을 감싸고 어루만지는 위로의 설교들이 하나의 설교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요리사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원하는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입니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교인들의 신앙과 영혼의 상태를 진단하고, 거기에 합당한 처방을 성경 속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독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격적인 사랑을 가지고, 그것을 알아듣기 쉽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와 닿는 언어로서, 그래서 설교를 들으면서 그들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고, 진리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고, 그렇게 설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어떤 성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자꾸 묻는데 이것은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무입니다. 설령 설교 준비를 하지 않고도 올라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객소리를 떠들었는데 성도들이 아무도 졸지 않고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피땀을 흘려 기도해서 준비하고 올라갔는데 한 두 명만 듣고 나머지는 모두 잡니다. 그래도 우리는 전자처럼 하지 말고 후자처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목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설교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 시골에서 150명 정도의 목회자가 모였습니다. 제가 설교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을 우리에게 내 놓으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내 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는 것을 왜 땅에 묻어 두었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지식이 ‘1’밖에 되지 않는다면 ‘1’을 온전히 다 쓰라.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주석도 보고, 공부도 하면서 성경을 읽고, 그것을 잘 설교로 쓰고, 수정도 하고, 고치고 해서 깊이 자기가 은혜를 받고 외우고, 그러고 올라가서는 잘 준비된 가운데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사람들에게 마지막 설교하고 죽는 유언처럼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큰 성과가 나고 나지 않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다니엘서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의무이니까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제가 잘 하는 강의가 하나 있는데 “평생 설교준비 하지 않는 법”입니다. 다음에 원하시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다면 제가 할 말이 없지만, 그러나 21년 동안 교회를 개척해서 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다음 주일에 무슨 설교를 해야 하나’ 그렇게 고민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설교할 것이 설교할 기회보다 많았습니다. 5215번의 설교를 했는데 만약 7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게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설교할 재료가 부족해서 쩔쩔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오늘과 관련 시켜서 그 중에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오늘 읽는 책이, 오늘 하는 성경 공부가 이번 주 설교에 도움을 줄 지 안 줄지를 묻지 말고, 큰 저수지에 계속 물을 저장하는 것처럼 하루도 쉬지 말고 계속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묵직한 신학 책을 놓고 공부하는 것도 좋고, “목사님, 제 나이에 그것은 분량이 아닙니다.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매튜 헨리나 캘빈 주석이라도 부지런히 한 번 말고 두 번, 세 번 계속 읽기 바랍니다. 저는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책을 2003년에 썼습니다. 제가 저자이니까 거의 제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28번 읽었습니다.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 한 번 머릿속에 지나치게 하지 말고 그것을 기억 속에 잡아 두기 위해서 좋은 책들을 반복해서 독서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매튜 헨리나 칼빈의 주석을 펼쳐 놓고,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내가 세상이 반쪽이 나더라도 매일 한 장씩 읽어 내리라.” 칼빈 주석으로 마태복음 1장하면 적은 분량이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분량입니다. 책마다 각각 다르겠지만 최소한 10페이지에서 100페이지까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매일 읽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두 번, 세 번 읽었다고 하면 설교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읽고 주일 날 써먹을 수 있는 것을 자꾸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가 있는 설교집은 팔리지 않습니다. 예화로 가득 차있는 아주 가벼운 책들이 팔립니다. 이 책을 읽고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으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뭔가 찢어서 써먹고 싶은 것을 찾는 것입니다. 목회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애들에게 밥해주기 싫어서 매일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골병듭니다. 아무리 못 해도 엄마의 양심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시금치를 다듬고 콩나물을 다듬어서 국을 끓여서 먹여야지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예화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용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내용이 없는데 예화하고 나니까 교인들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예화 들으면서 웃은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기독교 강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칼빈신학교 대학원에 갔는데 기독교 강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두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오늘 하루 한 것 가지고는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3년 정도 하고 나면 그것을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지식의 격차 때문에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신학교 선생이라고 하면 신학교 선생이 늘 하는 이야기가 공부하라고 하는 이야기이니까 저는 지금도 신학교 선생으로 있지만 그것이 본업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 하고 그것도 지금은 쉬고 있지만, 저는 서울도 아니고 변두리에 있는 교회의 목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목회 사역을 풍요롭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후배들에게 본받을 것이 있게 영향을 끼칠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부지런한 공부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마치고 교수 생활을 8년 정도 했는데 그때는 가르치느라고 정신이 없고,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다 정리하고 학교에 사표를 내고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는 제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공부하기 어려웠던 짧은 기간들을 제외하고는 온 마음을 다해 공부하느라고 애썼습니다. 그것이 저의 목회 사역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된 것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가슴 아픈 일을 만나고 시련을 당해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오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너무 몸이 아파서 설교를 8시에 하고 났는데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견딜 수가 없어서 영상으로 틀어라 하고 집에 가서 정신없이 앓았습니다. 의사가 와서 링거를 놔 주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7시가 되었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책가방을 들고 나갔습니다. 집사람이 새벽기도에 갔다가 들어와서 나를 붙들고 미쳤냐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 어제 설교를 못 했는데 쉬어야지 어디를 가냐고 했습니다. “여보, 월요일은 공부하는 날이니 공부해야한다.”, “여보, 평생 공부했잖아.” 집사람이 공부하라는 애들은 하지 않고 아빠만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여보, 지금까지 배웠던 것으로 죽을 때까지 해도 어디에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니까 그냥 살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보,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그 진리의 말씀의 커다란 산에 비하면 나는 정말 부스러기를 깔짝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탄광을 캐는 광부에 불과하다. 매일 들통을 지고 저 1km 아래 탄광 속에 들어가서 그 석탄을 메고 나와야지만 주일날 겨우 불을 붙여서 성도들이 그 불을 쬐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도록 만들어 줄 수밖에 없는 매일 매일 석탄을 캐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내가 겸손이나 혹은 나 자신을 낮추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런 느낌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사역 앞에서 나는 매일 매일 그것을 발견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학교 다닐 때는 시간이 많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책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씩 점심을 굶어서 책 한권을 사서 오면 아껴서 읽다시피 하고, 그것을 읽고 나면 또 책 살 돈이 없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살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서가에 들어가서, 제 서재에 책이 5만권이 있습니다. 도서관 보다 크고 그것도 아주 고급 책입니다. 신학교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는데 지금은 책이 있는데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래도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데 얼마나 하는 일이 많겠습니까? 어떤 때는 서가에서 눈물이 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러다가 끝나는구나.’ 시간이 있고 열의가 있을 때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고, 책이 있는데 시간이 없고, 은퇴하고 나면 시간은 있는데 읽어봐야 쓸 데가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그것을 풀어 놓을 것입니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이제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눈이 좋지 않아서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러면서 안타깝게 우리의 인생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까르페디엠, 오늘을 붙들어라. 오늘이 우리의 날이지 어제도 우리의 날이 아니고 내일도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도 너무 후회가 되는 것은, 저는 신학대학원 다닐 때부터 시작해서 놀았던 적은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나는 신학대학원 3학년을 다시 돌려도 그 이상으로 살 수는 없다.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는데 열심히 했고, 또 열심히 해야 했는데 그것은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오늘 매 순간 까르페디엠, 오늘을 붙들어라. 매 순간순간 살아있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배우고, 익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젊은 목회자들 계시지 않습니까? 50도 되지 않는 분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세 시간을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밥도 먹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심방하고, 목회 사역에 있어서 아주 본질적인 일에 집중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5년 정도만 살고 나면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과 앉았을 때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지금 영어를 읽지 못해도 얼마나 많은 번역된 좋은 책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꾸준히 읽어가면서 자신의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역량을 길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50이 넘어서 독학으로 라틴어를 공부했는데 여러분은 왜 하지 못하겠습니까? 희랍어, 히브리어도 공부하고, 최소한 줄줄이 읽지는 못해도 우리말 성경이 무엇이 틀렸는지는 찾아낼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문제는, 제가 설교를 할 때마다 “오늘 본문은”이라고 하는데 어느 교인이 이 말을 얼마 만에 들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설교를 하고 나면 성경이 해석되었다는 인상을 받아야 하는데 많은 분량을 읽고, 이미 성경을 보기 전부터 설교자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실망하지 말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설교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비슷한 것을 찾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은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오늘은 이 본문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었는데 다음은 본문은 바뀌었는데 이야기는 비슷한 것입니다. 5년, 10년을 한 교회에서 설교를 들었는데도 성경은 계속 낯선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 된 삶을 살면서, 목사이기 전에 신자이어야 합니다. 대개 평신도 중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교사 시키면 잘합니다. 교사 잘하던 사람을 신학교에 보내면 잘 합니다. 그 사람을 교육 전도사로 시키면 아주 잘 합니다. 교육전도사 시절에 눈물로 심방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부목사로 쓰면 틀림없고, 그런 부목사 시절에 열심히 충성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던 사람이 담임목사가 되어도 잘 합니다. 제가 신뢰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된 예배자였던 적이 없는 설교자, 열렬한 기도자였던 적이 없는 기도회 인도자, 당회의 치리에 복종해 본 적이 없는 당회자, 이런 것은 자기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일입니다.
모든 설교의 아름다운 것과 목회의 아름다운 것은 여기에서 주워 다가 여기로 전달해주는 우편배달부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진리가 자기에게 들어가서 자기를 녹이고 변화시켜서 새로운 말씀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진정한 생명,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설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할 때 설교를 위해서 성경을 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성경을 펴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서 회개하고, 믿고, 은혜를 받고, 자기가 깨뜨려 지는 이 모든 일을 경험하고 나서 그 경험한 은혜를 가지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성경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이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사람의 말로 설교하지만 그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쏟아내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살아있는 말씀 사역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영혼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 애쓰는 것, 그것이 일평생 목회자가 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살아간다고 할 때 그 살아간 인생의 발자취는 그 사람의 인간성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목회는 이 사람이 인간성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의해서 변화되어서, 변화되지 않았더라면 잘 못 살았을 사람을 변화된 인간성 때문에 올바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목회 사역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목회를 해 봐서 알지만, 한때 은혜를 받고 교회에서 순종을 잘 하고, 진실하게 열심히 살던 사람이 변심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마음을 간직하는 사람이 소수라고 말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만 회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도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말씀으로 돌아오고, 십자가로 돌아와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죄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죄와 불순종은 아주 교활합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래 된 신자들의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그 죄는 예배도 견뎠고, 말씀선포도 견뎠고, 기도회도 견뎠고, 그 많은 것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교묘하겠는지 한 번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어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사람보다는 설교자가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으로 인간성을 보여주고, 회개하게 해야 하고, 참다운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하고, 이런 사역이 반복되면서 오래 믿은 성도들도 끊임없이 회개하고 변화 되면서 새롭게 확장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매주일 일 수는 없지만 2년이고 3년이고 한번 씩 자기가 절대 볼 수 없었던 영안을 열어줄 수 있는 일이 일어 날 때, 그때에 새로운 진리를 그들에게 말할 수 있고, 그것에 도전이 되어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처음 온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 하기로 결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설교를 오래 들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은 방대한 학문의 축적, 영혼에 대한 뜨거운 헌신, 간절한 기도,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 이런 것들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서 어떤 결과로 그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정직합니다. 절대로 심지 않는 것에서 뿌리지 않는 것에서 열매를 얻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키우려고 교인의 수에 대한 욕심을 갖지 말고, 진실하게 성도들의 심령에 와 닿는 말씀사역, 목회 사역을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시키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