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30-)
녹취자 김지혜
오늘 성경에는 양을 치는 목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백 마리의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루 종일 양떼를 데리고 풀을 먹이다가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세어보니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는 우리에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온 것입니다. 아마 때는 저녁때가 되었을 것이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가는 것은 목자에게도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혹시 양을 찾으러 나갔다가 강도를 만난다든지 어두운 길에서 넘어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한 마리 값보다 더 큰 희생이 뒤따를지도 모를 일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이 목자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가 어디선가 지금 자기를 찾고 있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방황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목자는 집에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들고 막대기를 들고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드디어 한 마리의 양을 찾았습니다. 어디선가 홀로 뒤떨어져 슬피 울고 있고 자기의 힘으로 잃어버린 동료들을 찾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처지에 있는 양이 멀리서 다가오는 목자의 음성을 들었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 양 한 마리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목자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동네사람들에게 자기가 양을 찾은 기쁨을 이야기하며 잔치를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 까짓것 양 한 마리에 얼마나 하는데 온 동네사람들과 잔치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했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양 한 마리를 찾아서 그 값어치와는 상관이 없이 양을 찾은 기쁨 때문에 소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는 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상하게 우리 인간들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양에 비유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했던 인간들 더 멀리는 모든 인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양 혹은 양떼로 묘사하십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크든지 작든지 각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발이 빠르든지, 기린처럼 목이 길어서 멀리서 오는 적들을 미리 볼 수 있든지, 혹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상대방을 물어뜯든지,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든지 등등 모든 짐승들은 각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그저 염소만한 작은 짐승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가 그만 사자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는 가까이까지 포복을 해가서 그 가엾은 어린 짐승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짐승은 사자가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온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사자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사자보다 더 빨리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어린 짐승은 고개를 확 돌리며 사자에게 대들었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약 60cm정도의 뿔이 두 개 나있었는데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사자는 그 뿔에 옆구리를 찔려서 그 뿔이 등 뒤로 튀어나오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두 짐승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지면을 뒹굴었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이 어린 짐승은 도망을 갔고 사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촬영을 하던 기자들이 치료를 해주고 거기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했는데 결국 그 사자는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동물에게도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은 있는데 양은 그런 기능이 없습니다. 양은 지독한 근시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길 잃어버린 양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나와도 돌아온 양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만큼 양은 약점이 많은 동물이고 또 전혀 헤엄을 못 치기 때문에 물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흐르는 물은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이렇게 양으로 비유하신 것은 인간이 모든 짐승보다 뛰어난 만물의 영장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돌봄과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양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서 창조되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가야할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운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어 그들을 찾으신 사랑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집에서 기르는 양만 있습니까? 산에도 야생하는 양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산양은 거의 멸종위기의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처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 믿고 물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할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처음부터 당신과 관계를 맺고 당신의 사랑을 받고 당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르쳐주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이 세상이 창조된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깨달으며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명과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2000년 전에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땅에 내려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는 없는 하늘의 자원으로 그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주시고 역경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주님의 능력과 생명과 사랑으로 살게끔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길 잃어버린 양처럼 사는 여러분들 안계십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고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를 맞아서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모든 일이 소원 성취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의 가정에 화목과 사랑이 항상 깃드는 복된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