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라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삿2:7)
몇 주 전부터 여기 와서는 이 설교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사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인 도입부입니다. 사사기라고 하는 것은 사사시대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글인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시작해서 사무엘에 의해서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 전까지 그 시대동안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서 나라를 다스리던 종교적인 기능과 정치적인 기능, 재판의 기능까지 함께 겸하던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사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사사들 가운데는 훌륭하게 하나님 앞에 사역을 하던 사람도 있었고 잘못하던 사람도 있었고 또 잘하다가 마지막에 미끄럼을 타고 못하던 사람들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 사사들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회상하기 싫은 역사의 한토막이 되었습니다.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심심치 않은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도 이 사사기올시다. 사사기에 왜 논쟁이 되냐 하면 사사기에 나타나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분명한 신앙이 정립된 것 같지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 사사기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의 정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여호수아와 신명기, 출애굽기로 이어지는 앞에 있는 책들은 모두 꾸며낸 거다. 사사시대 때에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신앙이 정립이 안됐다면 인류역사의 종교의 일반적 경험에 비춰볼 때에 하등한 종교로부터 점점점점, 고등한 종교로 발전하는데 그 고등한 종교의 최상의 형태가 유일신 신앙이란 말이죠. 그러면 사사시대에 아직 유일신 신앙이 정립이 되지 않았다면 그 앞선 세대에 투철한 유일신 신앙이 있는 것처럼 만든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후대에 옛날에는 이런 훌륭한 신앙을 우리 조상들이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가상적인 기대를 투영시킨 작품에 불과하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 그 사람들은 한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이 다신론에서 일신론, 일신론에서 유일신론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보편적 종교의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훌륭한 유일신 신앙을 가진 사람도 신앙이 떨어지고 믿음이 해이해지면 다신교에 빠질 수도 있다 라고 하는 인간 안의 종교적 부패 현상에 대해서 눈뜨지 못한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사사기는 우리에게 주는 그 교훈이 엄청납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보다 훨씬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끌려 가나안을 정복한 그 감동적인 역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요단강의 물을 말리우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면서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요. 그리고 그런 파죽지세로 점령해 나아가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그야말로 최고로 고양되었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후로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순전하게 하나님을 향하고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던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열렬한 신앙으로 가득차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가나안 정복을 끝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조금 느슨해지고 있을 때에 여호수아가 24장에서 말년에 외쳤던 ‘오늘날 너희들은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고 쩌렁쩌렁 외치던 그 유일신 신앙의 장중한 외침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여호와라고 하는 신앙도 잃어버리고 그리고 모두 불순종하고 유일신 신앙 자체를 아에 잃어버리고 방종한 다신교의 빠지게 되었고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으며 결국 사사기는 마지막에 백성들은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더라고 하는 우울한 보도로 사사기를 끝마치게 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수 천 년 전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 되풀이 되고 있고 또 되풀이 될 수 있는 그런 현상이라고 하는 말씀이죠.
(예화) 저는 몇 해 전에 호주를 몇 번 갔다 왔는데 그 어느 한해에 호주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 저를 안내하여 교회 곳곳을 돌아보게 해주었는데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뒤 곁에 커다란 체육관이 있었는데 농구 코트 2개 정도는 들어갈 정도의 큰 체육관이고 스타디움까지 만들어 났습니다. 그런데 텅 비어 있었습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부서진 책상 같은 것들이 잔득 거기 쌓여있었습니다. 이건 뭐냐? 그러니까 체육관이래. 이 할아버지들이 무슨 기력에 여기 와서 농구를 하겠느냐. 그랬더니 할아버지들 용으로 만든 게 아니라 60년대, 70년대에 만들었는데 60년대에는 교회에 청년들이 바글바글 했다 이거에요. 80년대부터 청년들이 떠나기 시작해서 10년, 15년 어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고 교회는 완전히 하얀 할아버지들이 모인 예배당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가슴 아팠던 것은 거기 있는 현지 목사님이 ‘목사님 오늘 저녁 이상한데 가서 한번 식사해보실래요?’ 그리고 데려갔는데 맥주도 함께 파는 그런 그 음식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교회당이에요. 교회당 건물이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시에서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믿어서 헐지는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그거를 어떤 외식업자가 사가지고 십자가를 잘라버리고 그리고 식당으로 만들었어요. 강대상은 1급 좌석이고, 성가대는 2급 좌석, 평신도들은 3급 좌석인데 음식값이 다 틀려요. 그래서 ‘내 나갑시다. 내가 목사라서 뭐 할일이 없어서 강대상에 올라가서 저녁을 먹겠습니까? 갑시다.’ 너무 너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오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잠겼어요. 이게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라 곧 우리에게 닥쳐올 일일지도 모른다 라고 하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30년 전에 주일학교도 기억을 하고 30년 전이 아니라 40년 전의 주일학교를 기억을 하고 20년 전의 주일학교도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20년 전의 주일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장년들이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주일학교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이제는 교회의 중직들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교육제도나 교육여건 같은 것들은 많이 개선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정말 아이들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큰일을 보게 해주는 강력한 회심의 역사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고 소수의 교회들만이 그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타락하자마자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구원 얻을 수 있는 계시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범죄 했지만 그 구원의 계시의 말씀을 붙들고 메시야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아갔습니다. 최초의 가정은 교회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 그리고 후에 태어난 셋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담으로부터 경건한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방법들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못된 불신앙의 자식이 생겨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계시대로 살고 싶지 않고 거기에 순종하기도 싫어하는 막된 자식이 태어났으니 그게 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벨을 때려죽이고 그는 여호와의 낯도 피하고 그리고 부모로부터도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이게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이세상의 역사의 시작이고 세상나라의 백성들의 시작입니다. 아벨은 죽고 그리고 셋이 아담의 계시를 보존하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 이제 하나님의 계시는 1차적으로 가정에 맡겨졌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정은 또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가 흐르면서 점점 더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동시에 세상나라의 백성들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 접촉하고자 했습니다. 세상나라의 백성은 세상나라의 백성대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가오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대로 타락한 본성이 남아서 세상의 백성들과 절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인종적 혼합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것이 싫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속에 유지되어야할 계시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결혼을 해서 사람의 딸들과 경건한 하나님의 딸들이 함께 살고 그렇게 되면 결국 가정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보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해서 모든 인류들을 쓸어버리고 소수의 사람들로 정결하게 남겨서 다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보존하는 교회와 가정이 일치하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계속 흘러갑니다. 그래 세상나라는 다시 또 번성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할지라도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세상은 계속해서 세상나라는 번성하고 이제는 나뉘어 지지도 않게 함께 섞이면서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서 이제 가정에만 맡겨졌던 교육의 기능이 가정과 교육의 일치된 가운데 행해지던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시의 말씀을 교육하고 보존하는 기능이 교회로 점차 많이 옮아오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접어들면서는 결국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극히 개인적인 결단이 되므로 말미암아서 한 가족 안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갈라지게 되었고 나라와 교회가 일치하고 가정과 교회가 일치하던 구약시대의 아름다운 전통들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교육의 중심은 좀더 많이 가정과 함께 교회가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그래 결국 마지막에 다음세대에 되어서 우리들의 교회가 그렇게 텅텅 비고 노인네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난 걱정되는 게 그 노인네들 돌아가시고 나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물려받을 사람들이 없어요. 하나씩, 하나씩 숫자가 줄어가는 거예요. 매년. 그럼 어떻게 될 것이냐? 심지어는 교인들 마지막에 다 나가 7, 8명 남아서 그들이 내는 헌금만을 가지고는 교회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합의해서 결정해서 교회를 팔고 그리고 구호단체 같은 데 기부해버리고 각자 흩어져서 다른 교회로 가버리고, 그러니까 한참 다니면 그 교회도 똑같이 합의해서 팔고 없어져버리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교육을 시켜야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이건 기본이에요. 부모가 참으로 사람답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그 자식들이 제대로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감자밭에 콩 심고 팥 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는 기적입니다. 우리 부모가 경건했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여덟 중 여기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부모는 불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직까지도 그러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모의 신앙을 따라서 우리를 판단하셨더라면 아마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았을 짐승 같은 이방 백성들이 되었을 텐데 우리가 너무 불쌍해서 우리 부모는 경건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부모가 못 만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새사람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것 같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원한다면 한번 아멘 해보십시오. 그 아멘하면 안되는 대목이에요. 이게.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나님 만났습니까? 어느 순간에 하나님 만나고 변화 받았지만 변화 받은 그 기간보다도 더 긴 세월을 암흑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소 갈데 말 갈데 가면서 살다가 기적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그렇게 많은 인생을 허비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싶습니까? 아까는 아멘이라고 그러더니 지금은 또 노멘이래. 그렇게 만나는 것은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드라마틱한 간증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그리고 허비한 시간이 얼마나 아깝습니까? 저는 이 나이에 들어서 이제는 앞을 내다보기 보다는 회고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지금도 여러분 우리 젊은 형제, 자매들 만나면 뼈아프게 후회되는 게 예수 믿고 나서는 예수 믿고 나서 변화 받고 나서는 그래도 그냥 사느라고 몸부림치며 살았지만 후회되는 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뭐냐면 예수님 믿고 나서 그 어두움 속에 갇혀서 제 좋은 대로 살고 복음도 모르고 허공을 치는 것처럼 살았던 죄의 지배아래 있었던 그 수많은 날들이 뼈저리게 후회스럽고, 또 후회스러운건 뭐냐 하면은 예수 안 믿기 예수 안 믿었을 때도 젊은 시절들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특별히 악하고 야비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무엇에든지 종노릇할 각오는 되어있는데 주인을 만날 수 없었어요. 여러분 자녀들도 그런 인생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까?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부모가 됐으면 이제 자식들에게 참으로 가장 자식들에게 해줄 중요한 의무가 무엇인줄 아세요? 참으로 사람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유산을 하나도 안 물려주어도 괜찮아요. 저도 하나도 안 물려받았고 잘 살아요. 안 물려줘도 괜찮아요. 그냥 교육만 시켜놓으면 지가 알아서 다 밥 벌어먹고 살아요. 중요한건 뭐냐 하면 참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참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생각하면서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부모를 통해서 볼 수 없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근데 이 죄로 가득 차고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 어떻게 그 자식들에게 참으로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보여줄 수가 있겠느냐 이거에요. 굉장히 어려운 얘기죠. 그래서 오늘도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가는 것이죠. 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개개인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면 한 생명이 죽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 생명이 다 딸렸어요. 그렇게 무서운 거라 이거죠. 그러니까 소명 없이는 애도 낳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부모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애를 낳고 기왕에 낳으면 할 수없지만 그다음에는 생각을 해야 되요. 이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 그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되요. 그거 하나만 잘해도 천국에서 상급이 클 거예요. 자기 자녀만을 잘 가르쳐서, 그런 사람들은 자녀를 많이 낳아야 되요. 왜? 그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상이 바로 그거에요. 왜냐하면 불신앙의 사람들이 자손을 낳는 것보다 우리가 경건한 자녀들을 더 많이 낳아서 수적으로 이기자. 아 명백한 논리냐 이거에요. 그래서 마구 낳아서 덮어버리자. 전 세계를. 근데 짐승 같은 사람들이면 덮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왜? 사람의 딸들하고 다 결혼하고 신앙을 버릴 테니까. 신앙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똘똘 뭉쳐진 예수만 분명히 사랑하고 섬기는 진실한 자녀들로 기를 수만 있다면 수없이 낳아서 말이지 그렇게 해서 그 자녀들을 길러서 이 세상을 뒤덮게 하는 거예요. 그게 청교도들의 이상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보통 아이들을 낳으면 최소가 7, 많으면 10, 8, 19 이렇게 낳는 거예요. 엄청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런 일이었어요. 그 집에서 잘 교육을 해야 되요. 훌륭하게. 그것과 함께 아까 말씀드린 전술한 이유로 인해서 이시대가 흘러갈수록 교회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교회에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자신들의 책임을 반분해야 되요. 그래서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그 아이에게 경건의 모범을 보이면서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줘야 되요. 그래서 어머니의 무릎이야말로 최고의 교리학교에요. 그 무릎에 앉혀놓고 하나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거예요. 이걸 안하는 사람들은 깊이 회개하고 지금부터 가르쳐요. 그래서 교회에서 하고 싶은 해야 할일들이 너무 너무 많아요. 그래 그거를 교리문답집을 만들어서 부모들을 먼저 교육하고 그리고 그거를 자녀들에게 가르치도록 만들어야 되요. 그래서 교육적으로 해야 할일이 교회 안에 너무 너무 많아요. 저는 지금부터 7, 8년 전에 말이죠, 리처드 벡스터 라고 하는 청교도가 목회한 그 기록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거기에 보니까 Mother's catechism 이라고 하는 어머니의 교리문답이라고 하는 그 부분이 나오는데 너무 놀랬어요. 이렇게 두꺼워요. 근데 그게 뭐냐 하면 무릎에 놓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쫙 문답식으로 나오는 그거를 엄마가 외우고 아이에게 답을 외우게 가르치는 주는 거예요. 처음에 이렇게 시작해요. ‘애야 catechism 교리문답 배우자.’ 그럼 아이가 대답을 하는 거예요. ‘엄마 그게 뭐예요?’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란다.’ ‘그거 왜 배워야 되는데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람답게 살기위해서 이걸 배워야 된다.’ 아이가 묻는 거예요. ‘근데 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거 안하는데 왜 우리만 해야 되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애야,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사람들은 다 짐승이다.’ 그리고 자기 아이는 무릎에 놓고 어렸을 때부터 하나 하나 가르치는 거예요. 그때에 어린아이들은 말이죠, 선명하게 가슴에 심겨지는 거예요. 여러분 장년 전도가 얼마나 힘든 줄 알죠? 그렇죠? 제가요 신학교 가기 전에 주일 학교 때에 이 그 교회학교 책임자였거든요, 전도사도 없으니까 총각 집사인 저를 데리고 설교도 하고 전도사 역할을 하게 했어요. 집사데. 그런데 나는 이래요. 요즘 교회가 그때에 내가 주일학교 할 때 만큼 그렇게 회심을 하면 난 목회가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때는 여름 성경학교 같은데 아니 우리 집사람이 증인이에요. 여름 성경학교 같은데 이 기도실에 모아놓고 그리고 그때 우리 신학교도 안간 집사가 뭘 알겠어요. 그럼 펴놓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는데 우리 죄 위해서 죽으셨다. 그럼 아이들이 막 울음바다가 돼.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자기가 죄인인 것과 예수님 못 박아 죽인 것을 회개해요. 그렇게 아이들이 강력하게 회개하고 나면 눈빛이 달라져요. 그리고 그 초등학교 1, 2학년밖에 안된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거룩하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돼요. 성결히 살아가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그들이 그 인간이 행해야 될 바가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지게 되요. 근데 이것들을 내버려둬. 집에서도 내버려두고 아고 철들면 신앙생활 하겠지.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철들면 더 안해. 여러분이 증인이잖아요. 여러분이 증인이잖아요. 얼마나 완악하게 주의 복음을 거절하고 거스렸어요. 근데 아이가 자라면 철이 들면 신앙이 더 좋아져요, 거짓말이에요. 신앙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더 완고하게 반항할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 멋대로 살아요. 그리고 하나님 거스려요. 그리고 막 나가는 거예요. 그러던 자식들이 그런 걸 내버려둬요. 그래도 그렇게 데려다놓고 무릎에 앉혀놓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림 몇 장 보여주고 성경을 이해하게 만들어주면 회심할 수 있는 아이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면 ‘엄마 그런 거야? 예수님이 정말 우리를 위해 죽으신 거야? 우린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 거야? 이렇게 행하면 예수님이 싫어하시지?’ 이렇게 순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을 완악하고 강팍해지도록 내버려뒀다가 막대한 선교비를 들여서 그래서 전도하는 거예요. 강팍해질대로 강팍해지고 세상의 잡동사니들이 다 들어온 쓰레기처럼 굳어져 버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되겠느냐. 그러니까 안돼는 것이다 이거에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들의 진정한 회심을 위해서 가정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교회에서도 그것을 열심히 수고해서 그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회심하고 변화되고 그리고 참다운 성도로써 성화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철저히 가르쳐야 됩니다. 가르친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리는 없죠. 더군다나 집에서 올바르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러면 더더욱 더 아이들은 괴리감을 느끼면서 신앙이 하찮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아이들도 부패합니다. 교회에서 신앙을 잘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면 그렇게 사는 것은 그 어린아이도 은혜 안에 있지 않을 때에 힘들어. 근데 그 부모가 그렇게 안살아. 그러면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를까요? 매일 보는 엄마, 아빠의 본보기를 따를까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거죠. 후자를 따르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부모들이 깊이 각성하고 아이들을 목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아이들을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해요. 여러분 가정의 여러분들 자녀들이 올바르지 않게 걱정스럽게 자라는 부분들이 있죠? 피눈물을 흘려야 돼요. 피눈물을. 자신의 영혼인 것처럼 그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피가 되도록 땀이 되도록 그렇게 짜내면서 하나님 앞에 그 아이가 스스로 회심할 수 없고 그 아이가 스스로 자기의 죄로 인해 아파할 수 없으니까 여러분이 대신 회개하고 울 수 없는 그 아이들이 위해서 여러분이 대신 피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울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동안에 올바르게 보이지 못한 모본을 통하여 아이들이 굽어진 것을 회개하고 그리고 그 아이들의 영혼은 불쌍하지 않지만 이렇게 비통하게 매달리는 이 애비의 어미의 이 비통함을 기억하셔서 우리 자손들을 회심시키고 경건한 자녀들로 만들어 달라고 참회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되요. 내버려두면 안돼요. 처절하도록 눈물로 매달려 그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해요. 그러나 그 가정이 그렇게 한꺼번에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죠. 은혜 안에 부모가 있을 때에는 이런 설교를 들을 때 강력하게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무릎을 꿇고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정말 이 방탕하고 이 고집스러운 이 자식을 위해서 내가 생명 다하기까지 저가 스스로 회개할 수 없는 죄에 대해서 내가 대신 회개하고 그래서 이 아이에게 성령으로 말미암는 감화가 있게 하자 그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는 부모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죄에 지배 아래 있거나 본인의 은혜 생활 하나 해나가는 것도 허덕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런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적용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목사님, 자식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라구요? 아니 나를 위해 땀도 안나오는데 자식을 위해서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나는 나 하나 간수하기도 죽을 지경입니다.‘ 그것 봐요. 그래서 결국은 가정만 가지고 안되고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젊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교회를 하면서부터 이제 것까지 내 마음 속에는 이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목회했느냐는 여러분들이 증인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다음 세대에요. 이건 보세요.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날 동안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을 본 그 사람들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그 자손들이 어떻겠어요?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어요.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죽은 후에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무정부 상태와 방불한 사사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 결국은 어떻게 된 거죠?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고 큰일을 본 것은 그들의 대에 그쳤습니다. 자식들은 그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식의 그 자식 대에는 모든 신앙이 그치고 경건한 선조들의 영향력이 사라져버리게 되자 그들은 본색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방탕한 무정부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 결국은 교회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래 우리들이 과감하게 이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 가운데 30년이 지나고 나면 실제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하고 40년이 지나면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결국은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를 가정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교육했는가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죠. 자라나는 세대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우리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세대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들이 만난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를 그들의 세대에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들이 부흥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고 놀라우신 분인가 하는 것을 크고 놀라운 일들을 경험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요단강물이 마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 큰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거보다 더 큰일은 그들의 영혼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입니다. 분명하게 회심을 경험하고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죄와 강팍함을 위해서 그분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는 그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 그 강력한 부흥의 역사,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우리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처럼 회심의 은혜를 경험하고 우리처럼 견고하게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처럼 온전해지기를 갈망하며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처럼 내 일생의 소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머니, 제 소원은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내려다보실 때에 나를 창조하셨을 때에 두고 싶으셨던 그 자리에 내가 있어서 내가 땅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께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고 성화의 삶을 살고 힘껏 주님을 섬기는 진실한 백성들이 되는 것을 우리 두 눈으로 보고 눈을 감아야합니다. 그걸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우리 자식들 안에서 우리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가정은 철저하게 헌신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 자손들 가운데서도 이 회심하는 은혜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게 해야 되요. 저는 솔직히 일년에 두 번씩 교역자 수련회가서 그 어린아이들이 회심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저 영아부로부터 시작해서 유아부와 유치부, 그리고 이 유․초등부와 소년부, 중고등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그 어린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되어서 예수를 갈망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가슴 뿌듯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이 아니죠. 그들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 돼야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하여야 할 일은 기도하는 거예요. 정말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교인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목사보다 더 나쁜 것이에요. 삯꾼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삯꾼 부모도 있어요. 밥만 먹일 뿐, 학비만 대줄 뿐, 영혼을 위해서는 조금도 희생을 한 적이 없는 부모가 삯꾼 부모에요. 삯꾼이에요. 삯꾼. 그게 어떻게 사람을 기르는 거예요. 우리에 가두고 짐승을 사육하는 거죠. 조용히 귀를 기울여서 아이들의 영혼이 소리치는 소리를 들어봐요. ’엄마,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편안하게 학교 다니게 해주지만 내 영혼은 배고파요. 엄마, 아빠 참사람이 사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세요.‘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삯꾼 부모에요. 여러분들은 만약에 목사인 내가 기도안하고 목회하면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와서 대문 앞에서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악수나 하고 여러분들 몰고 다니면서 밥이나 먹는다면 여러분들이 나를 영적 지도자로 봐줄 수 있겠냐는 거죠. 마찬가지로 부모도 참된 부모가 있고 삯꾼 부모가 있어요. 삯꾼이 되면 안돼요. 자녀를 위해서 눈물 흘린 적도 없으면서 자녀들을 십자가처럼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이에요. 울어 봐요.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면서 눈물로 따라오는 여인들에게 예수님도 눈물로 당부하신 말씀이었어요. 자녀를 위해서 깊이 울고 그리고 삯꾼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해요. 매일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와 함께 기도하고. 나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이렇게 교회학교 말이죠,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교회서 투자도 많이 하지만 정말 사랑합니다. 아이들에게 ’야! 너 가서 엄마한테 기도해달라고 해라. 이게 매일 숙제다.‘ 가가지고 엄마보고 ’엄마 나 기도해줘.‘ 엄마가 기도하는 사람인가 안하는 사람인가 ’아, 야! 그거 뭐 귀찮은 걸 해달라고 그러냐?‘ 매일 애가 와서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기도해. 그러다 엄마가 회개하게 돼.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어디서는 아빠한테 기도해달라고 그래. ’아빠, 밤에 아빠 나 축복해주세요.‘ 애를 위해서 한번이나 기도해 봤나. 그랬더니 몇 번은 피했어요. 그런데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빠, 왜 나 위해서 기도 안 해줘요.‘ 요만한 유치부 애들이 그래요. 그래 할 수 없이 기도를 해요. 그러고 보니까 일평생 한번도 기도 해 준적이 없어요. 그 아빠가 변화됐잖아요. 아이가 아빠를 변화시켜 버렸어요. 삯꾼 부모 되시면 안돼요.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한 거예요. 그렇게 되서는 안돼요.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수많은 그럴듯한 말보다도 믿음으로 산 어머니의 그 짤막한 인상이 그 아이의 영혼 속에 깊이 사로잡힌 거예요. 그리고 평생 하나님 경외하며 살게 하는 거죠. 그 아이가 내가 만난 그 하나님을 그 아이도 만나도록 그런 개인적인 부흥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홍해 갈라지는 거 우리는 뭐 봤어요? 요단강물 마르는 것 봤느냐고요? 여리고성 무너지는 소리 못 들었어도 상관없잖아요. 왜? 그것보다도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봤어요. 왜? 십자가에서 날 위해 못 박혀 죽으신 그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가 신자가 되었잖아요. 우리 자녀들도 그런 회심의 은혜를 경험해야 되요. 그런 부흥을 경험해야 되요. 그걸 위해서 교회도 기도하고 그리고 부모들도 간절히 기도해야 되요. 그래서 교육시설을 이렇게 돌아보면서 나는 날마다 죄짓는 마음이었어요. 어른들은 솔직히 얼마나 편해요. 뭐 큰방을 쓰는 이유가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지만 불편한 것 없이 예배드리잖아요. 자녀들은, 한반이 들어가서 공부하면 복도에 서서 포로들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그러다 한반 나오면 우르르 들어가고 세상에서도 2부제 수업 끝낸 지가 옛날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부흥과 함께 그들을 잘 교육해야 되요. 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유명한 교수였던 그레암 메이첸 박사가 그 시대의 많은 부모들을 보면서 통탄했어요. 왜냐하면 맨 날 부흥만 기다리고 자녀를 도대체 성경을 가르치지 않아요. 부흥은 성경을 가르친다고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 안 가르친다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그들이 회심하고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서 하시니까 언제든지 그 영혼들이 변화되고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고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고 한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키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그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는 것이 그게 부모와 교회가 하여야 할 일이에요. 정말이에요. 그 하여야 할 일이에요. 선교사 몇 명 보내고 가난한 동네 몇 동네 구제한 것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을 정말 주님의 사람으로 길러야 해요. 그러기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희생을 하여야 하는 것이에요. 그까짓 것 90억 주고 사려고 하는 그 빌딩 사는데 돈 좀 더 내라고 여러분들 앞에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그거 우리 주세요. 나는 지금 정신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예요. 메이플라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그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넌 사람들이 그 황무지와 같은 신대륙에 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예배하고 자기 집 짓기 전에 제일 먼저 지은 것이 학교였습니다. 그때 학교는 그야말로 교회와 하나 된 학교였습니다. 경건한 부모와 경건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를 지었으니 사실은 기독교 교육을 위한 교육 시설을 지은 것이죠. 그러고 나서 비로소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걸 짓고 나서 그다음에 자기들이 살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에 우리나라가 더 많이 잘 살게 된 것은 산업 역군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일 것이죠. 신앙의 정신이 없고 나라 부강해지면 아침에 설교한 바와 같이 세속주의로 흘러갈 겁니다. 그때에 수많은 우리의 자손들이 교회보다 세상이 좋아서 주님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해서 신앙을 버리고 불신앙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때에 우리는 그 세대에 무어라고 말 할 수 있겠어요? 정말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무도 알지 못하던 때에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난 부모들로써 그 아이의 영혼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가정과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미래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덜 먹고 입을 것을 덜 입고 굶주리면서까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희생을 했노라고 하는 그 기억들을 자손들에게 생각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희생이 우리들에게 있었느냐 라고 하는 것이죠. 이거는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입니다.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하는 자기의 교인들에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갔을 때에 내가 유명한 사도였던 것도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친 것도 내 면류관이 아니라 내 면류관은 내가 살아서 열심히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너희들을 참 신자가 되도록 가르쳐서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 훌륭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진실한 신자로 창조의 목적을 부합하도록 살아가는 그것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나의 면류관이다.” 말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60년대에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를 어떻게 교육을 시키셨는지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나에게 100원 한 장 물려주신 적이 없지만 항상 고마운 마음을 제 마음 속에 철들고 나서는 잊지를 않습니다. 최근에 책을 쓰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생활이 어렵다고 나를 까막눈으로 남겨두었다면 내가 어찌 목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남부럽지 않게 유학을 하고 일류 학교를 나오진 못했지만 이만큼이나 지성을 가지고 기독교의 진리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지덕지한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때 우리들의 부모들이 치루었던 그 엄청난 희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자녀들이 정말 이 범람하는 세상의 물결 속에서 경건한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희생이 필요하겠습니까? 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려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이 자식들의 신앙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벌벌 떠는 세대들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우리의 자녀들이 또 우리의 자손들 다 주를 기리고 저 성전 돌같이 보아스와 야긴과 같이 그렇게 긴하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라고 하는 벌벌 떠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는 너무 슬픈 것이 그것이에요. 우리가 우리의 자식들을 좋은 학교 보내고 그리고 좋은 교육을 사회 교육을 받기 위해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희생하는 거에 십분의 일만 그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 희생한다면 벌써 조국 교회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들의 그런 정신으로 우리들을 신앙 교육 했더라면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막대한 선교비를 쓰면서도 실망스러운 것이 마치 초라한 선교의 결과에 직면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이런 상황은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의 그런 누를, 우를 다시 범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드리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교회에 드나들면서도 그 아이들을 깊이 사랑해요.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이 귀찮게 느껴지면 그거 죄짓는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같은 어른들만 다 있고 헌금안내는 아이들은 교회에 하나도 없다고 칩시다. 지금이야 기분이 좋겠지만 30년 후에 어떻게 될까요? 계속 장례식 났다는 이야기만 주보에 계속 날 겁니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에 다른 건 못해도 내 가정에서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온 힘을 다해서 양육하고 그리고 나 하나만 생각하면 막 살고 싶지만 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두운 이 죄악세상에서 경건한 성도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랑하는 아들아 이 아빠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랑하는 딸아 이 엄마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큰 유산, 많은 재산은 너에게 못 남겨 주어도 이 세상에서 유혹받을 때에 고난과 시련이 겹칠 때에 아빠의 믿음을 생각하고 엄마의 신앙의 정절을 생각하면서 십자가 붙드는 자녀 되게 해줄게. 그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앙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교회를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저는 주위에 본인은 정말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방종한 삶을 자녀들이 살기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아마 그들이 정말 주님을 믿는 단정한 신앙인이 된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에게 이 신앙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어느 날 시간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힘쓰고 얼마나 그들을 위해서 힘에 진하리만치 투자하고 있는 지 여러분들이 만약 보게 된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의 목표는 가정에서 온전히 신앙 교육시키고 그것이 또 모자라는 아이들을 교회에서 탁월하게 가르치고 최고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교회가 우리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은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 라고 핑계하는 사람이 너희들에게는 한 사람도 없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을 안아주며 너희들은 복된 애들이다. 너희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하나님의 계시고 너희들을 뭐든지 다 희생하려고 하는 너희 부모가 있고 그리고 목사님이 있으니까 말이지 얼마나 좋냐?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 지난 6월 달에 자폐증 걸린 아이들 너무 불쌍하잖아요. 온전히 함께 어울려서 교회생활 할 수 없어요. 소문도 안내고 조그맣게 토요교실을 열었어요. 한명, 두명 왔어요. 지금 어떻게 되었냐면 30명 가까이 모여요. 거기가 어른들까지 들어가니까 선생님까지 들어가니까 좁아서 터질 지경이에요. 왜? 투자하고 자격을 갖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는 그 아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사랑으로 잘 가르치려고 애쓰니까 그렇게 영혼들이 모이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내려오면서 아이들이 확 내려올 거예요. 한번 그 아이들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자녀들이에요. 그 아이들을 끌어안고 한번 기도해보세요. 이 아이들이 정말 주님의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만난 예수님 이들도 만나고 우리처럼 신실한 신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이곳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분투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가 눈 감을 때 못 이룬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이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거예요. 우리가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난 여러분도 사랑스럽지만 그 아이들 너무 너무 사랑해요. 그거 정말이야. 매 주일 그 아이들 하나씩 안고 그래 너희들은 목사님이 딴 건 몰라도 너희들에게 만큼은 최상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다. 참된 신자만 되어라. 그래서 우리는 죽고 사라지고 커다란 예배당 덩그러니 남겨주고 죽으면 이 화란이나 독일 같은데 호주 같은데 가보면 다 헐려서 슈퍼마켓으로 심지어 술집으로 변해요. 근데 사람을 세워놓으면 돈 모자라면 그들이 헌금해서 교회당 새로 세우면 돼요. 그리고 우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용감하게 이 어두운 세상과 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녀를 끌어안고 저처럼 기도해주세요. ‘얘야, 너 정말 큰 복이구나.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리고 너희를 정말 올바른 신앙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사님과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과 그리고 너의 부모 된 나를 만났으니 이제 너희들은 정말 복된 아이들이구나.’ 한번 기도해보세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려서 좋은 신앙을 가지고 이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그러한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