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깨어짐
눅 23:26~27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반갑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이상한 공식이 성립됩니다. 그 공식이라는 것은 가장 많이 가슴아팠을 때 기뻤었고 우리의 눈에 항상 흐를 때 우리의 마음이 행복했다는 그런 공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된 다음부터 이 땅을 이별하는 그 날까지 우리 신자의 삶의 실재는 영적인 전투의 삶입니다. 이 영적인 전투의 삶은 우리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름을 받은 우리 삶의 현장이고 이 영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순종하는 삶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성공하게도 실패하게도 하시는데 우리로 끊임없이 죄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는 비결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회개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때 그 때의 우리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키게 해 주시고 깊은 회개를 통해서 우리들이 이 세상의 있는 정과 욕십니다.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를 향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회십니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회십니다.의 순간을 우리가 한 번 과거에 경험해 보면 우리에게 항상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통회하고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 하는 것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삶에 대해 지적할 때 아팠죠 그래서 뉘우치고 참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큰 위로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십자가의 경험입니다. 신자가 참으로 죄를 이기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현재의 삶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그 경험을 가지고 우리들을 부패한 욕망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은 그래서 말하기를 “성도가 마른 눈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마음, 그 십자가로 구원하신 그 큰 사랑에 감격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이 우리에게 충만할 때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잠시 있는 세상이 아닌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완전한 세상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은 죄인을 죽이는 형 집행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 없으신 분이었지만 십자가를 지고 처형당하기 위해서 죄 지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재판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앞장에 보면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 나옵니다. 거기서 보면 수님의 재판은 불법한 재판이었습니다.
어떠한 면에서 불법한 재판이었느냐 하면
1 재판이라는 것은 죄 없는 사람을 죄수 석에 세우는 것이 아님 예수님은 그 나쁜 사람이 서는 재판정에 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2 혹시 잘못해서 잘 모르고 죄 없는 사람을 재판석에 세웠을 지라도 무죄를 입증하고 방면하는 이 수많은 죄인을 놓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인데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예수님을 죽인 잘못된 재판입니다.
3. 정작 민란을 일으킨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재판이라는 점에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매야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을까요? 무엇 때문인가? 불법한 자들의 무법한 죄를 그대로 지시고 그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일까? 예수님은 불의에 굴복하고 거짓에 승복하기보다 진리를 사랑하고 참된 것을 고수하기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님이 주신 교훈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으니 묵묵히 골고다를 오르셨으니 이것은 바로 무엇 때문에 이 십자가를 지고 죄가 없으십니다.에도 이 불법한 재판에 승복하시는 것처럼 그 재판에 부여된 벌을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 불법한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불법한 재판의 결과에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방법이었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알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형벌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 죄인 아닌 자가 없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주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주셔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교통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리십니다.으로 다시금 생명을 주시는 것 나무 가지가 원 줄기에서 잘려 나갈 때 가지는 잎이 무성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 원가지에서 떨어진 가지가 힘없이 마르는 것처럼 또한 우리 인간도 생명이시 하나님께로 떨어진 순간부터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은 가지에 잎이 마르듯 생명을 잃은 채로 살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진정 행복할 수 없었고 지성은 헛된 것에 현혹되고 정서는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고 의지는 가치있는 것에 굴복되는 것이 아니라고통의 수레를 끌어가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간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33년간 사시면서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영혼을 고치시고 진리의 세계를 보이신 것입니다. 지금은 일생동안 섬기신 당신의 사람들을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 구원의 세계를 여실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통해 열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고 영적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인간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게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시키시는 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힘이 없어서도 지혜가 없어서도 아니고 오히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지혜이신 왜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셨으며 무엇때무에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셔야 했는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음그래서 오늘날 복음이 멸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아들을 보내십니다.으로 당신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미련한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자들에게 믿어지지 않은 그것을 신앙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게 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셨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 가운데 왜 십자가를 지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전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인자의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 대속물로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알고 있으셨습니다. 피하고 싶은 십자가였으니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에 이르기 위한 길이요 썩어져 죽을 밀알로서 이것이 십니다.겨져야 했음을 아셨기에 골고다에 오르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사형당할 죄인을 죽이는 방법이었습니다.이것은 로마인들이 변방의 야만족이던 시절에 만들어낸 사형제도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사형방법가운데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인간 이 목숨이 끄어질 때까지 고통을 맛보게 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는 이 형벌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잠깐 소개하자면 땅위에 길이 구덩이를 파고 나무 하나를 세우고 다른 가로목에 사람을 눕힙니다.그리고 그 손에 못을 박는데 그 못은 오늘날 기차 레일에 박는 못에 박는 손이라면 틀림없습니다. 처음엔 손바닥에 박았는데 시체가 자꾸 떨어지니까 다음에 손목에 십자가 못을 박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다리에는 십자가 못을 박고 공중에 도르레를 이용해서 세로 막대를 가로 막대에 거는 형태이고, 십자가에 걸린 사람들은 손, 다리에 박힌 못을 통해 필연적으로 동맥을 건드리게 되고 십니다.장이 뛸 때마다 용솟음쳐서 피가 흐르게 됩니다. 탈수현상이 발생, 피가 빠져나오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두통과 목마름이 시작됩니다. 어떤 죄수들은 혼절했다가 깨어나는 혼수상태 반복 어떤 사람은 몇 시간만에 죽음, 누구는 삼일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고통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 매달리는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매달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 매는 사람의 두 가지 규례
1.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는 자신이 매고 형장까지 가는 것
2. 형장에 가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채찍으로 맞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것도 이 때문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런 가르치십니다.이 바로 십자가 형벌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기 전 브라이도리온 왕궁수비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십니다. 막 15:16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거기서 욕설, 조롱, 침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으로 무수히 맞으십니다. 신약시대의 채찍을 연구한 사람들 당신의 채찍은 평범한 채찍이 아니라 9가닥으로 나눠진 채찍 그 끝에는 뼈(자체)나 뼈 또는 쇠를 깎은 장식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살절음이 떨어지는 잔인한 채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형당할 채찍으로 맞으십니다.. 이런 채찍에 맞으셧을 것임 사람들은 침뱉고 ,십니다.한 모욕, 예수님의 옷을 벗김 왕의 홍포를 입히고 , 홀 대신 갈대를 손에 들려주고 금관대신 가시관을 눌러 쓰이신 예수님의 얼굴에 한 없이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이 코미디 희극배우 같다며 많은 사람들 웃고 조롱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우리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구원방법이었기에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그분은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같이 잠잠히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음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간 수많은 무리들이 골고다 언덕에 올라간 길을 막았으니 이때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었습니다.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던 날을 기념한 유대 최고의 명절
유대 남자들은 얼굴을 묻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어야 했음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은 최고의 관십니다.사가 됩니다. 과연 그가 십자가에 순순히 못박힐 것인가? 아니면 놀라운 기적을 행해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할 것인가 모든 사람의 최고의 관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십니다.사와 달리 조용히 십자가를 지고 털깎는 자의 어린양 같이 골고 언덕을 올라가고 계십니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십니다. 너무도 지치신 예수님 전날도 사역, 저녁엔 사랑하는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 거기서 자기 죽음 예언, 고별 강화의 긴 설교 제자들과 갯세마네에 오르시사 핏방울이 땅에 떨어지기 까지 거기 엎드려서 하나님께 진약을 짜바치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끌려오시고 맞으시고 헤롯에게 끌려가십니다. 거기서도 수많은 구타와 모욕 다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이때가 아침 6,~8시쯤 두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오지만 그 사람들은 백성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그들은 구경하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 35,48절 예수님께서 따라가던 사람들은 구경하던 사람들, 34,37절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도 돌아갔다.. 백성들은 구경하기 위해 십자가의 뒤를 따라가던 사람들 십자가를 구경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골고다를 오르시던 장면 좋으신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기고 채찍 맞으시고 물 한모금 못마신 상황 구경할 것이 무엇이 있었나?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십니다.
이 백성들 중에는 예수님이 뱃세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실 때 그것을 먹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팔복산에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 감동을 받은 사람들, 병자를 고치시던 기적의 현자에 함께 있던 인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그 사람들 중 예수님이 고치셨던 병들은 몸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그 십자가 형벌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어떻게 그것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가?구경하고 따라가던 사람들 그러나 그것은 구경이 안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있지만 진짜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오늘도 고난을 당하시고 도처에서 예수는 이미 부활, 승천 교회는 고난을 당하시고 찢기시는데 교회속에서 발견하고 그것 때문에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어디에 있겠나?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비전을 품고 그런 이들을 위해 봉사했더라도 우리 신앙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사는 것예전의 신앙은 ..예전의 신앙이고 지금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고 게셨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며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회십니다. 없는 신앙생활 눈물 없는 기도생활 주님의 일을 하나 예수 죽으십니다.에 아파하지 않는 냉담한 신앙의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들이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구경하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 끌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구경하며 따라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그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무엇때문에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오셨나? 당신 자신의 여광을 위해서 하늘에 계셔야 했음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왜 이 땅에 내려 오셨나 하나님의 본체이신 인간의 종의 모습을 하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결핍과 고난 소에서 사시다가 오늘 골고다를 오르시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이니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당신자신을 위해 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지 않으시면 아무 희망이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한 몸으로 다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였음 여기에 이 백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날의 불신자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 하나님을 알고 있으나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로자신을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구원의 감격을 잃고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죄에 깊이 빠지게 되면 그는 그의 마음에는 자신이 받은 구원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을 이 세상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그 신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라이이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것 하나님의 큰 사랑..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것이 신자의 마음에 가득할 때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할 때 그 때에 그 신자의 마음속에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찬송가)
Was blind but now I see.. ”
구원의 감격
무엇때문에 하나님이신 그분이 쓰레기 같은 나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까..생각하면서 펑펑 우면서 구원의 감격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하게 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주님은 나의 모두라고 생각하고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길과 가치를 따라 살게 이런 믿음이 사도 바울안에 있을 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갈 2:20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생애적으로 만났어도 한 때 주님을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할지라도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바친 과거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내가 얼마나 죄인이며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셨는지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죄인이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죄인이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백성과 같은 교회 안에 너무 많다 누군가 이 냉담한 교회에 불을 지키고 ...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백성들 말고 또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2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인의 무리들이었습니다. 멀리 갈릴리에서 온 여인도 있었습니다. 백성들에 비해 소수였으나 열십니다.히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브라이도리온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벗으신 몸으로 가시관, 길거리에 내팽겨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성경에 보면 흐느껴 우는 것이 아니라 펑펑 소리내어 우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ai~ ejkovptonto kai; ejqrhvnoun (눅 23:27)
그렇게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백성들은 구경을 위해 달려갔으나 이 여자들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따라가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울었을까요왜 어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구경하며 골고다를 올랐지만이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지 않고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까이 여인들의 마음에는 백성들의 마음에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시킨 것 일곱 귀신이 들려 희망 없던 나를 살려주신 가족들에게 병든 나도 버림받은 어둠속에 살던 나에게 진리의 빛을 비춰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예수님이전엔 세상을 사랑했지만 ..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음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음 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했음 자신의 물질과 모든 것을 바쳐서 예수님을 따랐음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는 것입니다.
가장 흉악한 인간보다 더 고통스런 모습 형벌 받으신 어린양의 모습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언덕에 오르시며 부활의 여광 얻으실 것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향한 사랑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바로 이것이 축복받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고난, 모욕받으실 때 그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나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이 세상에 남겨두십니다. 양떼는 당신의 몸. 많은 인간의 고난속에서 예수의 고난을 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다면 사랑하셨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부인의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모를 때 내가 생각, 갖고 싶은 거 내가 살고 싶은 것이 최고의 가치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누구의 죄값인가? 어린양 보혈의 피..어찌해 흘렸는가 채찍에 피흘리십니다.은 누구의 죄값인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나쁜일을 하셨는가 영광과 찬송이 있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죄와 슬피 우는 많은 더러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왕가에도 아니고 귀족의 집안도 아닌 가난한 목수의 한 아들로 태어나 금보좌위가 아니라 말구유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일생동안 그분의 친구는 병자, 죄인, 더러운 자, 무지한자, 세상의 약한 창녀와 세리들.... 하나님이신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함께 하신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인데 친히 무릎을 꿇어 그들의 발을 씻기시며 일생을 종처럼 노예처럼 사셨습니다.
주린 자를 먹이시고 무지한 자를 깨우셨습니다.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기에 여인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음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뒤따라갔음 피눈물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갔음 예수님을 진십니다.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이 십자가의 정신이 있을 대 자기를 끊임없이 부인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나를 높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은혜가 필요하지만자기의 욕망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 없다 그때 깊이 하나님앞에 깨드려지는 것 욕망없이 살고자 할 때 자신이 제법 쓸모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 자기가 하나님 섬기고 있을 때 정말 괜찮은 것 같아도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제법 된 사람같지만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죄가 아니면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십자가 앞에서 죄에 대한 사랑, 자기 자랑을 못 박고 자기를 ... 나를 사용하신다고 할지라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인 것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주님을 보면서 이렇게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 원래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은 용서받을 수 없는 더러운 죄인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 이 찬송가 작사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또 장차 나를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는 용서와 그 용서하십니다.의 사랑앞에서 자기 깨드려짐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자신은 십자가에 a못박고 좋아하는 자신을 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자 형장이 보였습니다. 이 여인들이 흐느껴 울던 소리를 피흘린 통곡으로 변하였음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고 .. 나무에 못박는 소리가 들립니다.
“망치 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깊이 들려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이 세상을 부인하고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뒤를 보이는 것처럼 따라가는 것 그래서 잠시 머물 잇 세상대신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6시간만에 운명하셨습니다. 구경하던 구경꾼도 돌아가고 통곡하던 여인들도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의 이 교회 안에는 그 십자각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웃고 떠들고 가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그 길을 .. 진십니다.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길을 따라갑니다. 구경하는 사람들. 사랑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는 사람들.. 여러분은 두 종류의 사람 중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뒤를 사랑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따라오는 사람들을 차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마음으로 이 세상을 고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따라가시길 진십니다.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