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회심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녹취자: 김은정
제가 요새 참 마음이 기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내아이를 하나 만났습니다. “너 몇 학년이니?” “목사님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너 회심했니?” 그랬더니 이 아이 말이 재미있습니다. “다 못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니?” “저 이번 토요일 날 담임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아멘 얼마나 착합니까? 또 마당에서 여자아이를 만났습니다. “너 몇 학년이니?” “3학년이에요.” 너 회심했니?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니? 저 이번 토요일 날 주님 만날 거에요. 다른 교회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오는데 부모들이 아마 안타까워서 우리는 별로 광고한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서 보고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보내는 모양입니다. 시골에서 어떤 아이가 올라오는데 “야! 나 회심하러 서울가.” 정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 회심하는게 기억에나 남을까? 그리고 아이들이 뭐 생각 없이 회심하는데 그게 믿음성이 있을까? 이렇게 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이구 어떤 집사님 네 아이들도 울고 불고 수련회가서 회개하더니 그다음에 믿는 그녀석이나 회심 못한 우리 아이들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던데..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상태가 가장 좋았을 때의 기록입니다. 이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때 그때에 모세와 마지막 죽음으로 작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베푸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가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좋은 때에 하나님이 매우 아주 우울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 그 땅에 들어가면 아주 번영하게 될 텐데 그때 너희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단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이방의 땅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게 바로 바벨론 포로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너희들이 환란을 당하거든 환란을 당할 때에 너희가 거기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단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다시 사랑해 준단다.” 그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기적을 보고 끝까지 불순종하던 옛 세대는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만 이제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 앞으로 요단강을 건널 때부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는 가나안 전쟁의 승리를 안겨주는 이 기적적인 역사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던 기적과는 비교가 안되는 기적입니다. 이것은 이제 땅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으니까 그런 모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위대한 일을 본 사람들이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 하나님이 번영을 주셨습니다. 얼마 못가서 이들이 신앙을 버리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독특성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방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우상숭배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역사의 비탈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악을 행했던 것은 아니고 여호수아와 같이 청청한 믿음으로 살아있는 유일신 신앙을 가진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너희는 택하라.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그 이방신을 너희가 택하겠느냐?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이렇게 아주 청진한 목소리로 타락한 그 시대를 향해서 외치던 외침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광야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만나고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버림받은 옛 세대와 강을 건너서 그렇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도 그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부패한 길로 가는 그래서 포로로 까지 끌려가는 그 새로 태어난 세대와 차이가 무엇이 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겉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번에 주님을 만나고 깊이 회심하면 그 아이들이 회심한 즉시 시작해서 마지막 여러분이 어른이 될 때까지 점점 더 충만한 신앙으로만 살다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피할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성인이 되고 지각이 멀쩡한데도 작년에 은혜 받았던 사람이 올해 미끌어진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생애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성도들 가운데 생애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도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에 대한 감각도 잃어버리고 그리고 정말로 혼란 속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영적인 침체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심지어는 죄의 타락가운데서 여러분들이 어두움의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는 성도들도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별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으면 왜 안하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은 회심하지도 않았는데 기껏해서 하는 이야기가 어릴 때 그까짓거 회심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100% 회심하지 않는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부모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자녀가 깊이 회심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데 그 아이 불러놓고 “야! 그까짓거 다 소용이 없더라. 나도 처녀 때 해봤는데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녀들이 회심하지 않으니까 그것들을 덮어버리려는 그러한 심리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매우 건강하지 않은 여러분들 자신들의 영적인 특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에게 왜 어려서의 회심이 그렇게 중요한지 어려서부터 회심하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첫째, 회심이라고 하는 것 자체는 2가지로 나뉘는데 좁은 의미에서 회심은 일생에 딱 한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심하면서 중생과 함께 회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어린이 회심집회라고 하는 것도 가장 기본적으로는 좁은 의미로의 회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회심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잃었던 처음 사랑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처음 주님 앞에 회심하는 이 사건을 왜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하나님 앞에 이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되면 그래서 중생하게 되면 이 아이들 속에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영적인 생명의 원리가 심겨지게 되고 회심과 함께 이 아이들은 세 가지 영적 감각을 최초로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 영광에 대한 감각, 용서에 대한 감각입니다. 이번에 주일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그 중에 한 전도사님 간증을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서 펑펑 울고 회개하는데 옆에 있는 아이가 계속 우는 아이에게 툭툭 찌르면서 계속 물어보더랍니다. “너 왜 그렇게 울어? 너 왜 그렇게 우는데” 이 아이는 정신없이 회개하는데 옆에서 옆구리를 찌르면서 물어보는 겁니다. “난 이해를 못하겠다. 너 왜 우니?” 그런데 우는 이 아이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아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 그동안 나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배반하면서 살았어.’ 친구들을 왕따 시킨 것,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한 것, 엄마 모르게 지갑에서 돈 훔친 것 등등 모든 죄를 이 아이는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영광
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각은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자극을 받으면 그 감각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여러분 주위에서 보면은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질 때에 깊이 회개하는 사람은 그게 인생의 최초의 회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매우 드뭅니다. 그것을 우리가 ‘고유한 회심’ 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이 깨뜨려져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영광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비늘이 벗겨지면서 새롭게 이 감각이 살아나는 겁니다. 그런데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살아날 감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살려주시는 중생의 역사가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이미 회심한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감각이 새로워지는 것보다는 훨씬 발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두 번째로 더욱이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될 것은 이렇게 아이들이 회심하는 일은 최초의 회심이든, 넓은 의미의 회심을 통해서 처음 회심이 다시 쇄신되든,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다시 반복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왜 힘들어지는지를 이성적으로 설명을 드릴테니까 이해를 해보십시오 어른들은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회개하고 주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신앙에서 미끌어 지면서 기도도 안하고 말씀도 제대로 안듣고 까불다가 은혜에서 미끌어 집니다. 죄의 지배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별 짓 다합니다. 그냥 교회만 안나오고 예배만 형식적으로 드리고 기도가 잘 안되고 무슨 기쁨이 사라지고 그 정도가 아니라 옛날에 육체에 속했을 때에 하던 그 못된 일들을 거의 반복을 합니다. 이것도 보면 그 사람 본성 안에 있는 자연적인 취향을 따라서 이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열매들이 빨리 나타납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 믿기 전에 돈에 욕심이 많아서 남의 것을 잘 훔치던 사람은 은혜에서 미끌어져서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면 또 거짓말 하든지 사기 칩니다. 도벽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훔칩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에 성적으로 방탕했던 사람은 이 사람들은 은혜 떨어지면 다시 바람을 핍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범죄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명예욕 때문에 힘들게 살았던 사람은 은혜 떨어지면 다시 그게 발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자기가 빠졌던 죄에 까지 근접해 지도록 굉장히 깊이 죄에 빠져들어 갑니다. 죄의 지배 아래 들어가고 나면....
오히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냐면 회귀의 본성, 회귀의 심리라고 해서 아직 본성이 죽지 않았는데 많이 억제되어 있었다면 그것이 풀어지면 그냥 계속 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속도로 악에 빠지고 그쪽으로 회귀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끊었는데 완전히 끊어서 술을 먹고 싶은 본성이 거의 사라지면 회귀가 안되는데 본성은 살아있는데 상황이 억제가 되면 상황이 풀리고 나면 더 빨리 술에 다시 빠져버리는 것이 회귀의 심리입니다. 심리학에서 이야기 하는 그런 회귀의 심리에 의해서 줄였던 죄악을 다시 삼키려는 듯이 죄의 지배에 들어간 신자가 다시 쫙 빠져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물어봅시다. 초등학교 4학년이 3학년 때 회심하고 4학년 때 죄의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바람을 피겠습니까? 사기를 치러 다니겠습니까? 기껏해 봐야 친구 왕따 시키는 것이고 게임에 빠지거나 아니면 공부안하고 부모 속상하게 하거나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십시오. 이 놈이 회심안하고 중학교를 갔습니다. 중학생이 회심 안했다고 치자면 어렸을 때는 이 아이가 마음은 부패했지만 죄의 적응력이 성인만큼 깊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회개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들 회개하는 것을 보면 끔찍하지 않습니까? 옆에 사람이 안들어서 그렇지 들으면 끔찍하지 않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어마 어마 한 것들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하지 마십시오 옆에 사람이 다 들으니까 .. 엄청난 것을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회개하는 것을 들어보면 비밀이 별로 없습니다. 뭐 내 친구 왕따 시킨 것 용서해 주십시오.. 내 동생 우리 엄마 없을 때 한 대씩 주어 박은 것 용서해 주세요.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쓰레기통에 버린 것 용서해주세요 이런 것입니다. 이게 죄의 지배에 들어가도 어린아이들은 이런 것들 밖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틀려집니다. 도색잡지 들고 다니고, 몰래 화장실 가서 담배피고, 친구들하고 모여서 술 마시고 이런다는 것입니다. 이게 고등학교 들어가면 더 진보합니다. 대학교 들어가면 더 진보하는 것입니다. 더 진보한다는 것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 회심한 아이들은 죄의 지배에 이렇게 미끌어져도 정말로 그야말로 예배 한번 잘 드리고 나면 거기서 팔딱 하고 다시 일어납니다. 펑펑 울고.. 그리고 회개하고 새 길을 또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심이 없는 아이들은 그게 잘 안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순발력이 잘 발동을 안합니다. 그러면서 회심 안한 채 학년이 계속 올라갑니다. 그런데다가 요즘 학교 교육이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은 없다고 그래라”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어렸을 때 무릎 팎에 놓고 “하나님 누가 지으셨지?” “하나님이 창조하셨어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과자 하나 주면서도 “이거 누가 주셨지?” “하나님이 주셨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이 아이가 중학교쯤 되면 “너 누가 만들었지?” 그러면 “원숭이요.” 이렇게 대답을 합입니다. “이 과자 어디서 났지?” “수입쌀로 만들었지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개념들이 계속 들어가면서 이성이 점점 굴복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심이 되겠습니까?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회심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서 나이가 점점 들수록 최초의 회심이라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한번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하면 펑펑 울고 회개하는 일들일 잘 일어납니다. 중학교에서도 잘 일어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일어납니다. 대학교에서도 괜찮게 일어납니다. 어른이 되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머리가 허예지면 그때 회심하는 것은 거의 기적입니다. 최초로 회심하는 것은 거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 특별히 머리가 하얀 상태에서 예수님이 믿어져서 펑펑 울고 주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여러분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잘 안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어렸을 때에 깊이 회심하게 되면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회심하고 난 다음에 그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부주의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은 후에 6개월 가더라 사경회 약발은 3개월이요 주일날 은혜 받은 것은 1개월이더라“ 그러지만 다 쓸데없는 이야기고 자기가 부주의하고 잘못해서 그럽니다.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잘 간직하고 복음의 원리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지금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중에도 5년, 6년씩 은혜의 부흥을 누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미끌어지지 않고.. 그게 무슨 숙명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 말씀의 은혜를 못받고 여러 가지 이유로 뒤엉켜서 마음이 비뚤어지고 다양한 것들 때문에 여러분들이 현혹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세상을 사랑하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여러분들이 조금 실수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깊이 돌이키고 뉘우치고 하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잠깐 범죄 한다고 할지라도 바로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에 무슨 문제가 있냐면 회심을 했는데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회심을 해서 이제 막 기도가 되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도를 하고 기도하면 어떤 방해가 있고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는 길이 무엇이고 그 다음에 죄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야 되고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 맞게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계속 빛이 들어오면서 성인하고 똑같이 성화의 길로 들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가리킵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그런 종류의 깊은 욕구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너 인제 은혜 받았으니까 착한 사람되어야 돼, 엄마 심부름 잘하고 설거지도 도와 드리고 마당도 쓸고 교회도 일찍오고 동생하고 싸우면 안돼 이런 식으로 적용을 해버립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부모의 무지가 아이들을 금방 은혜의 지배 아래 있던 아이들을 다시 신앙의 생기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회심하기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욕구가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해서 관찰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말씀에 대한 욕구가 있는가? 가정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것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기뻐하고 또 마음에 찔림을 받고 하는 변화가 있는지 말씀에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회심하지 않는 여러분들의 자녀의 가슴은 콩크리트 같습니다. 공을 던지면 그냥 튑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회심한 자녀의 마음은 부드러운 진흙과 같습니다. 공을 던지면 그 자리에 맞은 자국에 자국이 새겨집니다. 말씀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끝까지 자녀를 다룰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을 하지만 자녀들이 특히 청소년 이상 되고 나면 여러분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세계는 노출된 세계에 3배도 넘습니다. 대부분 다 엄마, 아빠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실제로 중학교나 고등학교 가서 아이들이 막 회심하지 않는 증거를 들어내기 시작합니다. 부모에 대해서 그렇게 순종적인 아이들이 막 거세게 반항합니다. 어렸을 때는 교회 가야지 하고 한마디 하면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고등학교쯤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보십시오. 우리 엄마 치매 걸렸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침 삼켜 봐라 내가 가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골적이 됩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무슨 생각하냐면 ’이 아이가 초등학교 때 회심을 했더라면 지금 다루어 질텐데..’ 맞습니다. 지금 다루어집니다. 회심을 안하니까 안다루어 지는 겁니다. “너 주님이 그렇게 하면 얼마나 슬퍼하시니?” 주님이 있다고 생각을 안하는 아이가 그게 왜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주님이 있다고 마음 속에서 생각을 안하는데.. 그게 어떻게 다루어 지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 비록 은혜에서 미끌어 졌어도 주님이 살아계심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과 옛날에 용서해 주시는 것과 하나님이 너무나 영광스러운 분이시라는 인식이 회심은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자극을 안 받을 때는 모르는데 자극을 받으면 이것이 욱신욱신 하면서 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겁니다. 아 맞아 선생님이 십자가에 그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면 회심한 아이들은 지금 비록 미끌어져서 죄의 지배아래 있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것들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회심하는 겁니다. 이치가 그러는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는 자녀들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정도 되면 폭력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치사하게 용돈가지고 협박해가지고 속으로 ‘아이고 드러워 드럽다.’ 속으로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 치사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느 한 아이가 부보가 아이를 그런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어느날 용돈을 주는데 “아빠 나 용돈 안받거든요.” “그럼 너 어떻게 학교 다닐래?” “걱정마세요” 하고 아이가 아르바이트 하는 겁니다. 치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룰 수 있는 길이 없게 됩니다. 아무것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에 혹은 그 이전에 회심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인제 보십시오. 이번에도 인제 회심 집회하면 아이들이 회개를 하겠지요 회개하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이미 회심한 아이들입니다. 최초의 회심이 아닙니다. 비유를 따져보십시오. 그러면서 시간이 점점 흐르는데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마음과 고등학교 3학년 아이의 마음이 훨 다릅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그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틀립니다. 더군다나 그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말쯤 사춘기에 들어갔다고 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세월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 있는지 여러분들이 물어보십시오. 그것 안됩니다. 교회에 고분고분 따라 나오는 것만해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빨리 회심하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정말 그렇게 해야합니다. 어느 한순간에 신앙없음을 여러분들 앞에 선언하게 됩니다. 그때 그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그러니까 어린 아이일 적에 회심을 하면 그것은 잘 가리키고 지도하면 은혜 가운데 충분히 그 아이가살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이 혹시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 회심은 회심의 반복을 부르는 기초가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 아이들이 다루어 지는 것입니다. 제가 외국을 자주 가지 않습니까? 호주나 미국을 가면은 거기에 있는 모든 목회자들과 부모들이 절대 아이들만 유학보내지 말라고 통 사정을 합니다. 그 아이들이 무너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조국에서 부모가 보면 졸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에 노출되어 있고 그렇게 쉽게 타락하는지 모릅니다. 호주나 특히 미국같은 나라가 우리와 차이가 무엇이냐면 우리는 분별없는 개방풍조에 이렇게 넓게 노출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안그런척 하지만 살짝만 벗기고 들어가면 타락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것은 많이 차단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지를 가지고 그쪽으로 가려는 사람에게 훨씬더 좋은 조건입니다. 빨리 타락할 수 있습니다. 깊이..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거기서 마약하고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보같은 부모들이 아이들만 달랑 유학을 보냅니다. 그리고 불쌍하니까 보상심리에 돈만 많이 보내주는 것입니다. 진짜 타는 불길에 기름을 끼얻는 것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도 달랑 유학보내는 사람들 80%이상 다 실패합니다. 그들의 타락상을 들으면 깜짝 놀랩니다. 예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아이들, 이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루십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잘 지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들이 무슨 딴 생각을 하다가도 주일날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회개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사랑하면 폭 빠집니다. 사람을 사랑해도 그 나이에는 폭 빠지고 주님을 사랑해도 폭 빠집니다. 그러니까 의외로 아이들이 성인보다 훨씬 결단을 잘 내립니다. 그리고 마음도 잘 지킵니다. 아이들이 놀랍습니다. 회심한 아이들이 일기쓴 것을 보면 옛날에 저는 꼭 쓰게 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이런 이런 일을 했거든요. 이제는 다시 안할 것을 약속해요. 예수님 저하고 새끼 손가락 걸어요. 도장도 찍었죠?” 이 아이들이 거기서 결단을 합니다. 그게 성인들은 계산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단순합니다. 그게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아이들의 회심을 평가절하하고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회심하지 않았으면 깊이 회개하고 어떻게 하든지 이 아이가 고등학생이면 대학생 되기전에 중학생이면 고등학생되기전에 초등학생이면 중학생되기전에 그렇게 빨리 회심해야 된다고 다급한 마음을 가져야지 ‘어린아이때 하는 것을 믿을 수가 있어?’ 이런 생각들을 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서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될 가능성은 0%입니다. 주셔도 되고 안주셔도 되는 것인데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에서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기도에 가장 열렬해 지는 비결은 열망하는 것입니다. 내게는 없는 그것을 꼭 갖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간절한 기도가 되는 비결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데 누가 거기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대학생쯤 돼서 여러분의 자녀가 아직 회심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여러분 초등학생을 두었을 때 기도하는 것 하고는 틀립니다. 틀려야 합니다. 거의 부모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죽어라고 회심안합니다. 가끔 그렇게 살다가 주위에 전도를 받아서 다 남의 일이지 우리 집안의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회심한 것은 널리 알려지지만 거절한 것은 소문이 안납니다. 수백명이 거절하면 그 중에 한 두명이 회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다 커서 불신자 자매 데리고 와서 “엄마 나 이 자매랑 결혼할거거든 엄마, 아빠 이해하세요 기독교식으로 못해요 얘네 집안이 불교집안이거든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기독교 교육을 받겠는가? 어림없습니다.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의 일대인 사람입니다. 집안에서 처음 믿은 사람, 은혜를 받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예수믿게 된 것은 거의 기적이 아닙니까? 모든 사람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이 여러분 한분으로 족하지 왜 여러분 자녀들도 그런 기적을 경험하게끔 하십니까?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유아세례 받은 것은 소용없습니다. 유아세례를 받는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말 다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서 회심하지 못한 자녀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회심하지 못한 그 아이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서 울지못하는 엄마, 아빠인 여러분들이 불쌍한 것입니다. 정말 그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분들이 유산을 안물려주어도 자랍니다. 어려우면 그 풍랑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풍족하면 그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회심안하고 신앙이 없다면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안물려주면 여러분들에게 상처받습니다. 가난하니까 범죄하게 됩니다. 벌어 먹고 사니까 예수 믿을 시간이 없습니다. 부요하면 세상 즐거움 맛보느라고 신앙을 가지려고 안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나도 자식을 믿는 부모지만 항상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에 내 힘으로 이 아이들을 다룰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안합니다.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십시오. 나의 힘으로는 이 아이들을 옳게 다룰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붙들어 주시는 것은 주님의 은혜의 손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손이 내 아이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주님의 은혜의 손이 내 딸의 거친마음을 어루만지시옵소서. 주님이 저의 마음을 녹이실 때에 저들은 주님의 계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계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애굽으로 끌려갔던 이 젊은이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젊은 나이에 열혈 청춘이지 않습니까? 귀부인 마나님이 이 방에서 나와 함께 동침하자고 유혹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말리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부모님도 멀리 떨어져서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누구도 거기서 신앙을 도와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내가 여호와 앞에서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득죄하리요? 우리 둘밖에 없다고 할 때 요셉은 아니야 한 분 더계시거든 하나님이 이 방에 계시쟎아?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얻겠느냐? 그리고 뿌리치고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여러분이 끝까지 감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론이 무엇이냐면 그럼으로 이 회심은 미룰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주 분명한 다짐을 갖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주 깊이 각성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전자계산기를 옆에 놓고 계산을 하니까 20-30년 후에 열린교회가 300백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회심의 비율을 곱하기 곱하기 했을 때 제가 목회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계속 장년부에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말씀에 은혜를 받고 회심하고 또 다른데로 가고 사명주셔서 가는 사람이 있고 미끌어져서 가는 사람이 있겠지요 뭐 우리 개척하고나서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어도 오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일곱명이 시작했는데 이만큼 모이는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하나님이 거두시지 않는다면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도 언젠가는 사역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장년부에 더 이상 회심의 역사가 없다고 할 때 바랄 것들은 밑의 아이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인데 이 친구들이 회심하지 않은 친구들인데 다행히도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전도를 받아서 다른 교회를 나가면 다행인데 불행히도 교회에 계속 회심안한채로 붙어있다고 하면 그러면 나중에 무슨 교회가 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은 장년부에서도 떠날 것입니다. 그 비율을 가지고 곱하기 곱하기 해보니까 20년이나 30년후에 300명밖에 안나온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마지막 결론이 장년부에 회심한 성도의 비율보다 자라나는 세대의 회심하는 비율이 더 높아야 합니다. 몇사람 말씀의 은혜받은 분들에게 열린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중에 회심하지 않은 교인이 몇 %쯤 될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많이 보는 사람은 20% 적게보는 사람은 10%로 보더라는 겁니다. 10%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면 미래의 교회가 자연적으로 라도 교회가 더 많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모이기 위해서는 거듭난 사람들이 많아야 되는데 그러면 중고등부는 92-93%는 되어야 하고 주일학교는 95-96%는 되어야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더 많은 회심한 사람들의 비유로 교회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장년들이 회심을 안한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계산상으로도.. 그래서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은 그런 긴장을 느꼈습니다. 여태까지는 다분히 교회학교 교역자들에게 맡겼으니까 그들이 소관이지 라는 생각이 다는 아닙니다. 한 30%이상 제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내가 계속 간섭하고 훈수두면 저 사람들도 싫어할 거야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목까지 왔습니다. 모든 교역자들의 공통점이 회심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 한사람이 짊어져야 할 일이 아니요 우리 교회 모든 사람들의 일이다. 이게 바로 교회의 공동체 성이고 지체성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회심못하면 다음에 또 합니다.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언제까지 하냐면 열린교회 교회학교에서는 회심하지 못한 아이들을 초등학교에서 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느껴질 때까지 계속 합니다. 이번에 이거 끝나고 이 여세를 몰라서 지금 초등학생을 자녀를 둔 부모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이 회심이 얼마나 심각한가 지금 제가 김목사가 설교하는 것아 가슴에 와서 깊이 꽂이는 사람들이 초등학교 1, 2학년 부모가 아닙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부모들입니다. 무엇이 꽂혔는지 그렇게 착실하던 아이가 이젠 공부를 안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 단순히 놀기를 좋아한다는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신앙안에서 발견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방황을 합니다. 가방 가끔 뒤져보면 담배도 나오고 술도 나옵니다. 도색잡지도 나오고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는가 했더니 들여다 보니까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인제 통제가 안됩니다. 거의 도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청소년부 지도자들과 상의를 해서 “우리는 이정도가 아니다. 회심하지 못한 청소년들로 옮아가야 합니다. 끝내자 마자 다시 한달 후에 청소년들 회심을 위해 합니다. 이것도 이번에 못하면 겨울에, 겨울에 못하면 또 봄에, 봄에 못하면 또 여름에, 여름에 못하면 가을에, 가을에 못하면 또 겨울에 될 때 까지 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또 우리가 마음을 쏟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서 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가정과 나가서는 우리 교회의 생존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수없이 아우리치 사역에 나가 비젼을 펼쳤어도 계승할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계승할 자손이 있어야지 그 꿈을 펼칩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이런 식이 되면 10년 후에 교육관이 필요가 없어지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텅 비어서 창고로 쓰거나 아니면 비싼 값에 팔아서 선교사업에 쓰거나 그런 식으로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서 목회자인 저도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인 교역자들도 선생님도 물론 기도해야 되지만은 더 많이 기도해야 될 사람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부모들 자신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기도하게 해야합니다. 한걸음더 나아가서 이 아이들이 회심하지 못한 자기들의 친구들을 보며 아파하며 기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매달리면서 정말 여러분들이 자녀를 한 영혼으로 사랑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선한 부모였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지나가는 행사나 남들이 다 하니까 그냥 꾸역 꾸역 따라나와서 동참해야지 하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다 달아보시면서 자녀들에게 회심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은혜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아이가 설령 회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절대 아이에게 실망한 빛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정말 아이 앞에서 끌어앉고 네가 회심하지 못하는 것은 네가 강팍해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널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면 설교에 은혜 못받은 아이가 그렇게 회심할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그러더랍니다. “‘엄마가 매일 기도하는데 우리 아이가 정말 진실로 예수 믿고 변화되도록 도와달라고 하니까 어느날 초등학교 2-3학년 밖에 안된 아이가 그러더랍니다. 엄마 내가 변화되는 게 그렇게 소원이야? 그래 소원이다 하니까 그래 그럼 나도 한번 기도해 볼게” 그러다가 이 아이가 여름캠프에 가서 변화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그 때 이 아이들이 자기의 영혼을 인해서 근심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을 보여주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치고 그리고 “이번에 우리 아이들이 회심하게 역사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다음기회를 기대하고 또 다음기회를 기대하고 이미 회심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만하면 안됩니다. 자기의 아이가 은혜안에 있는지를 한번에 진지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아래 살도록 그것도 거듭났으니 생명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떡을 먹지않고 기도의 호흡없이 은혜의 생수 없이 어떻게 그 갈한 영혼을 부여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