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통 좌담회 ‘결혼’
논의 1. 결혼에 대한 그리스도인 청년들의 환타지 (결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들)
Q. 제대로 집을 지으려면 먼저 좋은 설계도가 있어야 하듯, 바람직한 결혼을 위해서는 결혼에 대한 바람직한 가치관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동안 수없이 주례를 서시고, 결혼문제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상담해 오셨는데요. 그러면서 발견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결혼에 대한 오해나 환상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결혼에 대해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경험이 계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A. 이제 결혼을 하면서 제일 커다란 문제는 자매들이 문제다. 신앙이 깊은 자매들이 그런 문제가 더 많다. 무엇이냐하면 스승같은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한다. 자기 신앙을 이끌어줄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 20년 연상하고 결혼하면 가능하다. 조나단 에드워즈, 존스토트, 로이드존스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이런사람 찾으면 안된다. 그런 사람들도 어렸을 때 철이 없었다. 그래서 누구를 봐도 눈에 안찬다. 어린애 같고. 그래서 시집가서 보모노릇을 해야할거같고. 자신은 스승같으면서도 친구같고 신학적인거 물어보면 대답도 해줄수 있고 삶에 있어서도 모본이 되는 사람을 찾는다. 그러면 위인전기 읽으면서 혼자 살아야 한다. 현실은 그렇치 않다. 그것이 문제다. 형제가 자매에게 이런걸 기대하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비율적으로 볼 때 자매에게 훨씬 더 많다. 사실 결혼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냐면 성경에 보면 ‘여자가 해산을 함으로 구원에 이르느니라’. 시집가서 애를 낳고 죽도록 고생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보는 가운데 성화가 된다. 그래서 성화적 의미에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과정도 그렇다. 결혼자체가 내가 그런 남성을 원하는 것처럼 남성도 그런 여성을 원할 정도로 불완전한 인간이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있어서 비성경적 의존은 좋지 않다. 나는 사랑에 빠진 자매들을 정확하게 찾아낼수 있다. 얼굴이 풀어진다. 무슨 뜻이냐면 긴장이 사라지면서 확 풀어진다. 예뻐보이기 보다는 편안해진다. 편안해지는게 도가 지나칠 정도면 그건 아니다. 린다 레다라는 미국가수가 부른 노래가사 중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쉴곳을 찾았습니다. 그 완벽한 쉴곳은 당신의 품이었습니다. 잠시 쉼을 줄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완전한 쉼을 주지는 못한다. 파도가 칠 때 배를 육지에 묶어야지 자기만한 배에 묶어두면 파도가 치면 묶인배가 오히려 떨어져있으면 안전한데 묶여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 배가 파손되는 것처럼 그래서 아무리 큰 배도 육지에 묶어놓으면 염려없다. 그런 육지와 같은 항구가 될 수 있는 분은 주님밖에 없다. 결혼을 할 때 쿨하게 해라. 너무 기대하지 마라. 아는 사람 중에 둘다 아주 인텔리에요. 중학교 2학년 때문에 연예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두달만에 이혼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왜냐하면 결혼에 있어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현실적이냐 현실적이지 않느냐 하는 얘기는 결혼생활에 돌입해야 봐야 한다. 이런 종류의 허황된 기대를 가지면 안된다. 그래서 아주 실질적이에요. 그런 사람 찾으면 못간다. 스승과 제자간의 결혼이 잘되는 이유가 있다. 예술 계통은 다반사로 이뤄진다. 왜냐하면 가정 모본을 스승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남성들은 열렬하게 사랑을 받는 욕구 말고 존중히 여김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그게 없이 열렬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페퇴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진다. 남성들에게는 자존감이 사랑의 열성못지않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선 제자들은 스승을 흠모하며 기어 오르지 않거든. 그런데서 오는 안정감이 결혼을 하게 한다. 진정한 부부의 결합일수 있을까에 대해선 의문이 많이 들고 결함아 많을 것이다. 남성이 굉장히 외로울 것이다. 대등한 입장에서 가끔 다투기도 하고 의견도 맞서야 소속감이 있지 한없이 자신에게 기대기만 하고 모든 삶과 지식에 있어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기에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부부에게 결핍된 것들을 다른데서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형제들 편에서는,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을 총체적이고 일생에 계속될 삶의 한 과정을 보지 않고 과장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결혼식을 종착역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 생활에 대한 생각은 구체적이지 않고 연애할 때 하던 극한 기쁨들이 방해 없이 계속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할때는 사실 싸울게 많이 없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다. 여성은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밥을 먹어야돼 그런데 남성은 먹고 양치질을 하자 하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연애할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결혼해서는 문제가 된다. 모든 것들이 다툼의 원인이 되고 형제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고 미리 준비하는 형제는 없다. 결혼에 골인하면 너는 우리집 식모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 결혼하면 연애 상태의 극치가 계속 될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하면 매일 아침마다 한정식 먹는줄 알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끼 한정식 먹고 말래? 그랬다. 그렇게 멍하다. 결혼하면 하얀 테이블보에 정갈하게 담긴 각종 반찬이 사기그릇에 뚜껑이 닫힌쟃 있고 아내는 홈드레스를 입고 자신은 츄리닝을 입고 아침햇살을 받으며 밥을 같이 먹는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대해서 희망을 나쁜게 아닌데 사실이 아닌 환상을 자꾸 갖는 것은 결혼 생활의 불행의 원인이 된다. 30년 넘게 살면서 집사람에게 한번도 이야기 한적 안한게 있다. 여보 와이셔츠 왜 안 다려놨어? 양말 어딨어? 반찬이 왜이래? 집사람이 증인이다. 그런 것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적이 되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온전히 봉사해 주길 원한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는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것이고 결혼은 둘이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면서 파도에 휘말리지 않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직시해야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온 삶에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봤잖아. 연애하면서 차여서 가슴앓이도 해보고 차서 후회도 해보고..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하면서 살와왔잖아. 내 인생이 장밋빛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그 인생길이 똑같이 그 본성 가주고 살아가는데 사람 하나 옆에 있다고 장밋빛이 되겠냐.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바꾸고 천국으로 만들고 다 거짓말이다. 부분적으로만 맞는 이야기다. 그래서 항상 결혼의 가치를 달콤함에 두면 금방 실망한다. 쓰라리고 고달프고 괴로운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둘이 가는거다. 여러분들이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추상명사니까 쉽다. 그런데 어떤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류사랑하는 것보다 어렵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결혼 자체를 이제것 사랑온 것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근데 좀 다른방식으로 가는거다 같이. 같이라는 말은 인격적인 연합이 이루어질때는 같이라는게 힘을 준다. 그런데 비용도 많이 지불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먹고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불쌍한 사람을 만나 월급을 다 줄수 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결혼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들이 다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걸어온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그게 인제 어려운 점이 더 많다. 혼자 살았더라면 몰랐을 자신을 아내랑 남편이랑 함께 살며 많이 배우게 된다. 혼자 살 때 건강하게 살았던 사람이 결혼해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산다. 그런데 혼자 살 때 건강하지 않게 살면 결혼해서 굉장히 불행해진다.
Q. 결혼하기 전과 후에 사소한 갈등이 벌어지는데 그 원인이 사랑에 대한 결핍인가요? 아니면 인간 본성이 상대방이 나의 관할 안에 있길 원하는건가요?
A. 결혼할 때 피해야 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냐면, 우수한 점은 있지만 상식이 안통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 설복이 되기도 하고, 아님 그걸 판단해서 저 의견보다는 내 의견이 합당하다면 그것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의사소통 능력이다. 그런데 그게 안되는 사람이 있다. 사소한 것으로 싸운다고 하는데, 그 싸움을 위해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거 아니겠어. 그런데 기본적으로 인간성이 잘 형성된 사람들은 수없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떨 때 자기가 져야하는지 어떨때 설득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자기가 양보하면 안되고 그것을 쟁취해야 하는지를 사리의 판단을 정확하게 한다. 그런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은 판단을 잘 못한다. 문제가 된다. 실제 있었던 일인데, 교회커플인데 심각하게 부부싸움을 했다. 이유가 뭐냐 했더니, 변기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보는데 남편은 그게 항상 닫혀 있기를 원하는데 아내는 급할때는 열어놓을수도 있지 않나. 그걸 가지고 싸움의 소재가 된다. 둘다 문제가 있다. 이런것들은 본질적인게 아니라고 하면서 이 여자와 평생살아야 하니까 이런걸 이해를 하던지 아니면 자매가 남편이 이점이 예민하구나 그럼 내가 버릇을 고치려 노력하던지, 아님 내가 평생 그렇게 살아서 잘안되는데 좀만 기다려줘... 하던지 그럼 되는데. 별 웃기지도 않은거 가지고 싸운다. 결혼할 때 만류하고 싶은 사람이 상식적인 대화가 안되는 사람인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지 인격의 심한 파탄이 있던지 치료를 원한다.
Q. 의사소통의 인지구조를 인식하고 갈등해결 방안을 충분히 학습하고 적극적인 협력단계로 갈수 있는건가요?
A. 협력해서 대화가 되면 생각이 아무리 달라도 살 수 있다.
Q.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피해라 하셨는데 연애단계에서 결혼단계에서 사람이 급변하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완벽하게 검증하는 방안이 있을까요
A. 결혼하고 급변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정략결혼 이전에는 불가능하고 충분히 잘 몰랐는데 결혼후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오래전에 자매가 와서 싸우고 갈라설려고 한다고 해서 불렀다. 눈물을 흘리면서 형제가 때려요 그러더라. 폭력에 대해서는 나는 단오하다. 폭력을 행사 당하면 감옥에 가두고 대화해라. 고소해서 감옥에 갔다 놓구 대화해라. 결혼한지 3개월인데 막 팬다는 거야. 당장 남편 오라그래. 너 어디 자매를 팼냐? 교회에서 치리받아 볼래? 했더니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그런데요. 너무 괴롭습니다. 석달동안 한번도 아침을 안해줬습니다. 아침먹자 그러면 피곤해 그리고 잔다는 거야. 연애를 3년이나 했대. 그런거 몰랐냐? 몰랐대. 부모로부터 그런 환경속에서 자란거지. 말이 안통해서 때린거지 그러면서 대들고 가정의평화가 깨진거지. 내가 확신하는데 그 자매는 왜 결혼했는데 내가 아침을 해줘야 하나 생각한다. 물론 헌법에 여자가 결혼하면 아침해줘야 한다 나와있지는 않다. 서약서 쓴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런건 어느날 갑자기 알게된다 .결혼과 함께 나타난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 참고 살아야 한다. 잘 대화하고 타일러서 먹던지, 아님 아침을 금식하라고 해서 저런 아내를 주셨나보다 하던지 아님 먹기싫으면 본인이 차려먹고.. 아니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체질적으로 못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혹은 습관이 안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것까지 이해를 하면서 가야한다. 결혼 할때는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다 감내하겠다 해야한다.
Q.. 결혼 전에 본성을 모두 파악할 수 는 없는거죠?
A. 난 요즘 생각이 좀 변했다. 전에는 연애 기간이 짧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는 6개월이었는데 1년반정도로 바뀌었다. 연애를 오래 한 사람이 안정감이 있다. 고운정만 들었던 사람과 고운정과 미운정 둘다 들은 사람중에 누가 더 오래갈까? 고운정만 들었던 사람ㄷ르은 강한거 같은데 깨지면 남이 된다. 그런데 후자는 싸우면 다신 안본다 하는데 자존심 상하게 보고싶은거야. 그런데 연락이 없는거야. 그래서 둘이 자주갔던 카페에 갔더니 그사람이 쭈구리고 앉아있다. 이렇게 몇 번 하면 못헤어진다. 아까 얘기한대로 사랑이 없으니까 문제가된다. 사랑이 있으면 그런 결점을 발견했을 때 적극적인 관점에서 미운정이 들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운정이란 미운 행동속에서 아름다운 요소를 발견해서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사람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지 보여준다. 자기 자신안에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보면 정동이 일어나고 사랑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고 금방 고갈된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논의 2. 연애와 결혼의 관계
Q. 결혼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연애 이외의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애 기간에 대해서도 짧은 것을 선호하시지요. 이론상으로는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가르침이 청년들로 하여금 연애를 부질없는 것으로 느끼게 하고, 이성에 대해 관심 갖는 것 자체에 대해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더구나 연애와 결혼은 case by case인 문제로도 볼 수 있기에, 이 참에 범위를 조금만 넓혀서(매우 바람직한 연애상이 아니라 이 정도까지는 그래도 건강한 연애로 볼 수 있다 하는 정도의 선에서) 연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A. 사랑은 언제나 한 순간의 시선으로 시작이 된다. 사랑은 화학반응이다. 어느 한 순간의 가능성이 시작이 된다. 확 끌린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누구를 볼 때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데, 저 여자와 결혼을 하면 이러한 점이 좋겠고 이러한 점이 후회안할 선택이 되겠구나 자 됐으니 감정이 일어나거라 이건 아니잖아. 자매는 탁월할게 없는데 의사인 형제가 쫒아다닌다. 그런데 자매는 싫대. 그럼 끝난거야. 싫으면 끝난거지. 좋으면 끝나서는 안된다. 시작할때는 감정이 그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작점은 되지만 감정이 너무 깊이 개입되기 전에 좋은 감정이 있을 때 이성의 도움을 얻으면서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을 포함해서. 너무 착하고 얼굴도 예쁘고 순진한 자매가 있다. 고등학교 때도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 한번 들은적이 없을정도로 그렇게 선하고 모범적이고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들도 잘 못사귀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남자를 만났는데 너무 잘해줘서 폭 빠졌다. 그런데 남자는 고등학교밖에 졸업을 안했는데 결혼하고 싶어하는거야. 부모는 반대하고 딸이 워낙 빠져있어서 봤는데 아닌 게 확실해. 그래서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하지마라. 불행해질까봐 그런다. 신앙도 없고 불신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 인간성도 보이고. 그런데 이미 마음이 완전히 기울었다. 애들 어렸을 때 너무 경건하게 기른다고 세상하고 담쌓던 애들이 어느 날 세상맛을 알면 미친 듯이 빠져든다. 가끔 노래방도 데려가고 이게 별게 아니구나. 깨닫게 해야 한다. 이 세상의 문화에 대해서 담쌓고 살게 하면 안 된다. 남자 따라서 도망갔다. 1년 후에 나타났는데 그 동안 애기를 낳았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려줬다. 진면목이 나오는데.. 이 여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 팬다.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축구공 차듯이 발로 찬다. 단순한 게 아니라 정신 이상자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면 교제를 하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이성의 도움을 받아 판단해라. 계산하라는 것이 아니라, 안될 수도 있지만 감정이 발전해서 맺어질 때 함께 살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부모님, 언니나 오빠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좋다. 우리 아들도 장가를 보내고 싶은데.. 아들에게 고마워하는 건 있다. 가만히 보니까 누구한테도 마음을 쉽게 안준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 기도하면서 면밀히 조사를 한다. 그리고 엄마한테 상담을 한다. 정보를 상세히 제공한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아닌 거 같다 그러면 잘 접는다. 그리고 또 찾는다. 때론 날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데 날 미워하는 사람에게서 진실이 묻어나올 때가 있다. 독한 말이 나오는데 진실이 묻어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는 건 자신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이 결합이 됐으면 좋겠다. 판단을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그것에 휘둘리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감정이 많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 이미 많이 깊어지면 조언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연애기간이 일년 반 정도에서 2년까지가 좋다. 위험도 많이 있다. 괘씸하게 생각하는 형제는 자매하고 4년 정도 사겼어 그래서 결혼적령기의 자매가 됐어요. 근데 결혼에 확신이 안 섰다는거야. 그런데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결혼적령기의 자매를 말뚝 박게 만들어 놓은 게 책임질 일이다. 치리 받아야 할 정도로 나쁜 녀석이다. 아닌 거 같으면 빨리 결정해야지. 싫증이 났던지 좋은 자매가 생겼던지 인생의 벼랑 끝에 있던지야. 자매들도 바보지. 뭐 4년이나 기다려. 29에서 30 딱 넘어가면 6월까지 결정해 아니면 끝이야 이렇게 해야지. 4년 동안 왜 한 남자만 바라보고 있어. 형제들은 자매마음과는 다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길면 안 좋다. 연애가 되면 결혼할 계획을 세우면 안되요? 그럴 수도 있는데 연애할 준비야 감정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결혼은 사회적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루 아침에 결정되는 게 아니다.
논의 9. 교회 내 여초현상 및 교회의 역할
Q. 각 교회마다 미혼 자매의 수가 미혼 형제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자매들은 적당히 눈을 낮춰 상대를 선택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강박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목사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또한 소속된 청년들의 결혼에 대해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결혼에 뜻이 있는데도 배우자를 찾지 못해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지체들을 위해 교회적으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세상 끝날 때까지 성업할 사업이 있다. 결혼 중매업이다. 불경기랑 상관없이 계속 될 것이다. 시대가 흘러갈수록 정상적으로 남녀가 만나서 교제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너무 사회생활이 빡빡해서 뒤돌아 볼 여유가 없다. 예전에는 직작생활 하면 여유도 있었다. 지금은 어림없다. 치열하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이번 통계에도 고학력자들의 결혼률이 9만대:6만대로 남자와 여자 숫자여서 절대수가 모자른다. 교회에서는 더 그렇다. 교회에서는 양적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문제다. 신앙적으로도 눈에 안차고 사회적으로도 눈에 안찬다. 그래서 결혼이 늦어진다. 제일 좋은 방법은 좋은 남성을 전도한다. 그래서 결혼할 사람을 골라서 전도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부지런히 전도해서 교회에 데려오면 누군가 데려갈 거다. 그러면 자신의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눈을 낮춰라 그랬는데. 이것도 한 방법이다. 어디에 눈을 낮추라는거냐. 그런데 아무리 눈을 낮춰도 인간성을 보는 눈을 낮추면 안 된다. 인간성에 있어서 아주 높은 덕성을 찾기보다는 결혼생활에 지속하기 어려운 심각한 결함을 가진 인간성을 가진 인간을 찾아내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연령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이점은 너그러운 생각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아내가 2살만 많아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치 않다.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회가 감당하는 역할은 뭐냐고 했는데, 결혼시키는 게 목표면 짝을 지어놓고 결혼안하면 치리라도 하겠다 하면 되는데 성경적이지 않다. 목표는 결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그런데 관심을 많이 갖구요. 큰 교회에서도 집단 미팅을 했는데 문제들도 많다. 거의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와서 직업만 멀쩡하면 어느 교회 다닌다고 신자로 알고 덥석 결혼을 할려고 할거 아니에요. 우리 교회에서도 만남의 장을 했다. 이런 거 이외에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 없다. 좋은 형제가 있으면 자매는 형제를 교회로 전도하세요. 그러나 그 형제가 예수 믿기 전에 결혼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불행해진다. 신자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Q. 연애 기간을 짧게 하라는 목사님의 뜻이 좀 헷갈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범죄할까봐 그렇고 연애감정이 불타올라서 하나님과 멀어질까봐 그러신 거 같은데,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A. 연애 기간이 길면, 첫째로 연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도 4년씩 사귀고 책임질 일 한 거 없다. 이러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연애도 이성적으로 연애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친구처럼 교제하면서 좋은데 사랑의 감정에 확 매몰이 되면 신앙생활에 심각하게 방해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나이에 신앙과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 셋째는 공부하는 학생이라던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에 깊이 몰입되는 것이 자기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이 방해가 되는지 모른다. 또 오래 사귀면 성적 유혹도 만만치 않은 제목으로 떠오른다.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외에 사람이든지 오락이든지 우리가 매몰 될 정도로 마음을 확 뺏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 경제적인 낭비도 많을 것이다.
논의 6. 결혼과 성
Q. 혼전순결, 속도위반이 당연시 되는 현 세태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 청년으로서의 올바른 시각은 어떤 것일까요? 교회가 성을 가르쳐야 할 필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이성교제 시 스킨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혼인 전 스킨십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신다면?
A. 연애기간을 길게 하지 말라는 나의 제안에 중요한 이유가 된다. 스킨십은 발전만하지 후퇴는 하지 않는다. 스킨십도 서로가 충분히 은혜 안에 있고 서로 깊이 신뢰하고 매일 살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과 교제에서 얻으면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음란한 문화나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자신을 격리 시키켜야 한다. 접근이 용이해서 그런 자극들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위험하다. 어느 선까지는 허용해야 되나 그러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 사람이 절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손을 잡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절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전에 성적인 잘못에 많이 노출된 적이 있어서 자기 안에 그런 인자들이 많은 사람들은 아주 가벼운 스킨십이라도 허용하면 미끄러지듯이 깊이 쭉 빨려 들어간다. 다행히 만났는데 자매가 그런 점에 엄격하고 분명하게 도덕의식과 처신을 갖고 있다면 그나마 도움이 되지만 자매가 같은 케이스라면 작은 스킨십도 원칙을 세워놓고 해야 한다. 여성들이나 남성들 입장에서 이 여자하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야 하겠다는 것과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것과 이제는 이 사람과 언제 해야겠다는 것은 각각 다르다. 미확정 상태가 더 불확정성이 더 강할수록 그것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9월 28일 토요일이라고 날짜를 잡았어. 근데 결혼 전까지 손잡지 말자 했다고 하자. 너무 좋아요. 근데 끌리는데 한번 사귀어봐 시작한 사람하고 똑같은 기준으로 놓고 하는 건 다르다. 그 기준이 항상 뭐냐면 기준은 기도할 때 양심이 자심을 꾸짖으면 옳지 않은 일을 한 거다. 후회할 만한 일을 한 거는 자신이 더 잘 안다. 결혼할 날짜를 잡았는데 포옹을 했다면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다. 더 깊은 스킨십은 더 큰 유혹으로 가니 조심해야 한다.
논의 4. 결혼과 자녀 출산
Q. 결혼을 하면 당연히 자녀를 낳는다고 생각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출산을 선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례 시 목사님께서는 아이를 셋은 낳으라고 하시는데, 뒷바라지해 줄 능력도 없이 생기는 대로 무작정 낳는 것도 아이에게 미안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과, 더불어 피임과 딩크족(맞벌이로 살며 아이는 낳지 않는 부부)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A.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좋다. 나도 지금 힘들어도 더 많이 낳을 걸 하고 후회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을 낳았는데 안 낳는 이유가 뭘까? 미래의 교육과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도 있겠지만, 당장 고생스럽기 때문인 거 같다. 예전에는 여성으로 태어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자체를 여성으로서 보람을 찾았다. 교회 자매들 가운데 넷을 낳는데 또 낳고 싶어 한다. 다시 태어나면 그 아이는 지금 아이들과 다를 거 아니에요. 다른 게 또 태어난 게 얼마나 재미있냐 라는 거다. 아이 하나 낳으면 정신을 못 차힌다. 철이 든다. 부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소명이다. 아이들을 낳으면 미래에 경제적으로 어려울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가야죠. 미국에서 조엘 비키 목사님이 자매 친척을 얘기하는데 그 집은 얼마나 할아버지 한 분이 자손들을 많이 낳는지 11명의 아이들이 모두 시집 장가가서 애들을 낳았는데, 너무 많아서 1년에 두 번씩 체육관에서 모이면 70명 정도가 모인다. 그때서야 얼굴을 쭉 본다. 전제는 신앙으로 잘 기르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있으면 자매들이 믿음의 아이들만 몇 명 잘 길러놓고 죽어도 자신의 임무를 하는 거다. 우리 자매 중에 교육 철저히 시키는 자매들이 있는데 정말 복된 애들이다. 좋은 엄마아빠 만났기 때문에. 자매들이 직업 활동 하는 것을 나무랄 필요가 없고 나름대로 달란트라가 있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는데 이바지 하면서 사는 것은 신학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가족을 주신 목적이 경건한 자손을 기르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중심축이 되어서 그걸 파괴하면서까지 활동하면 안 된다. 그걸 보면 집에서 전업주부로 하면서도 그걸 못하는 사람이 있고 지금활동을 하면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도 엄마에게 상처받은 게 있다면 엄마가 직장 다녀서가 아니라 다른 관계적인 것들 때문에 그렇다. 물로 전업주부로 종사한다면 좋겠죠. 그러나 둘 다 잘 하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만 하는데 절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또 사회에서 많은 교육을 받고 잘 훈련된 사람들이 가정에서 무조건 사장되는 것만도 아니기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중심축이 가정이여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피임에 대해서는 피임자체를 죄악시 하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주장하는 게 배란의 주기를 피해가면서 부부관계를 가지라고 하는데 그것도 하지 말아야지 그것도 피임이다. 그런 것들은 적합하지 않다. 대신에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경우는 결혼생활에서의 성생활은 세 가지 목적으로 사용이 된다. 첫째는 자녀를 생산하려는 목적이며 둘째는 정욕을 피하기 위해서 셋째는 부부의 정신적인 연대를 위해서. 그래서 형제들의 경우에 결혼하기 전에 성에 대해서 결혼한 후에 커다란 기대를 갖는 것은 좋지 않다. 자매들도 가끔 그렇다. 심리적인 문제로 성적인 기대가 굉장히 큰 경우가 있다. 결혼생활에 대입할 때 성 자체를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법적으로 허용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라는 관점에서 결혼이후에 성을 생각하면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온다. 허용된 결혼생활이던지 아니던지 그런 성에 대한 욕구가 과도가 증진되어서 그것에 탐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결혼생활 속에서도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은혜 안에 있고 정신과 사고가 올바르면 그런 즐거움을 아내 안에서만 남편 안에서만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들이 균형이 깨져서 채워지지 않을 때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런 과도한 욕망을 갖고 있는 자체가 자신의 영혼에는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별도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논의 7. 결혼과 남녀의 역할
Q. 결혼생활 중 남녀의 차이를 제대로 몰라서 생기는 오해와 갈등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미혼남녀들에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들입니까? 또한 그러한 다름의 바탕위에서 가정 안에서 남녀가 각각 맡아야 할 고유한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A.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결혼 초에는 집사람이 요리를 잘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 가르쳐 주었다. 저희 할머니는 남자가 부엌에 가는 걸 싫어했다. 성경적 견해는 아니다. 통계를 보면, 여성이 약간 남성성의 기질을 갖고 있기 보다는 남성이 약간 여성성의 기질을 갖고 있는 집안이 더 행복하게 잘산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섬세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잘 맞춰주지 못하면 가정의 불화가 된다. 우리에게는 각자 사람의 머릿속에는 결혼했으니까 남편의 연약한 점을 참아야 함을 안다. 그런데 내게 그런 충분한 사랑이 있으면 다 참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하는 탱크가 부부간의 사랑으로 꽉차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주지만, 남편과 아내가 항상 영혼으로만 보이면 그건 전도대상자지 부부가 아니다. 부부는 그 이상이다. 결국은 기본적으론 하나님의 은혜 그것과 함께 부부로서의 사랑의 탱크가 가득 찰 때 참고 견디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서로 탱크들이 관계 속에서 채워줄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적당한 때에 선물을 사준다던지, 가사의 일을 거들어줄 때 자매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표시로 느낀다. 자매들은 대화하는 것 좋아한다. 기술도 좀 배울 필요가 있다. 영화배우 가운데 김미숙이라는 배우가 마흔이 넘어서 네다섯 어린 사람과 결혼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언제 얘기했다. 서점에 시디를 준비해놓고 햇살이 환하게 비칠 때 듣는 것, 비가 올 때 듣는 것, 산길을 돌 때 듣는 것을 정렬을 해놓고 아내의 기분을 맞춰준다. 섬세함, 배려가 필요하다. 형제들이 처음부터 안 되는 형제들이 있다. 그런 형제들을 과외라도 해야 한다. 요즘도 황혼이혼문제가 많다. 남자는 이 할머니가 자기를 버릴 줄 상상도 못한 거야.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어 바람을 폈냐 돈을 안 벌어줬냐 불치의 병에 걸렸나. 그런 배려 없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 한 순간에 인간과의 관계를 포기하게 만든다. 사랑의 탱크가 텅 빈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린다. 나 아는 사람이 재산도 많은데 얼마나 구두쇠인지 재산이 얼마 있는지 아내한테도 말을 안 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쓰러진 거야. 근데 정상적으론 울고 그럴 텐데 아주 쿨 해. 3일에 한 번씩 가서 그 사람 누워있으면 허리에 손을 넣어 보는 거야. 야 아직 죽을려면 멀었다. 죽을 때가 되면 힘이 빠지면서 허리가 침대 아래로 축 쳐진다. 기력이 남으면 뼈가 똑바르면서 손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자식들이 어머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건 자연스런 표현이다. 이미 미워하는 것도 사랑에 대한 기대가 남았을 때 미워하는 거다. 사랑의 종말은 미워하는 게 아니라 관심 없음이다. 그래서 사랑의 탱크를 계속 채워넣어라. 남성들은 좀 여성화 되라. 그래서 남성성이 강한 자일수록 좋지 않다. 여자를 잘 모셔야 한다. 가정일 도와주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교회에 있을 때도 여자들을 섬겨야 한다. 남자들은 아무데나 앉아도 여자는 방석 깔고 앉게 해주고. 항상 그렇게 하면서 몸에 익게 해라. 결혼초기에는 여자가 외출했을 때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고 아침에 말려서 개켜서 서랍에 넣지 말고 공로가 없어지니까. 거실에 똑바로 쌓아놓는 거야. 그럼 아내가 정말 좋아한다.
논의 5. 결혼과 사랑
Q. 사랑에 대해서는, 에로스에서부터 까리따스까지 철학적 고찰로나 사유와 묵상에 있어서나 목사님을 따를 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통해 완성시켜가야 할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서 그리스도인이 결혼생활을 통해 추구해야할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요?
A. 사실 요새는 까리따스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결국은 보면 확실한 것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인간은 누구도 어떤 인간에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냐면 여러분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만족을 준 적이 없습니다. 한번 ‘이 모습 이대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충분히 행복해합니다’ 한 사람도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내가 먼저 만족이 안 되는데 만족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충분하지 않은 겁니다. 그런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겁니다. 잠시는 가능합니다. 잠시 자기 어떤 육욕의 사랑이 가득할 때 그 때에 사람들을 용납하고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순간입니다. 잠깐 그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냐면 하나님의 사랑의 토대위에 사랑을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그런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자. 그러면 우리가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니‘ 왜 안 잃어버릴까요? 사랑할 때는 사랑하니까 좋지 않습니까? 연애할 때 애인이 사랑의 더 좋습니까? 하나님 사랑이 더 좋습니까? (침묵) 이렇게 대답을 안 하니까 걱정이 됩니다. (한 형제: 인정하기 싫지만 애인의 사랑이 더 좋습니다) 그게 정직한 대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영적이고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옛날에 김병순(?) 목사가 있었습니다. 교역자 한 사람이 연애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대화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뭘 그렇게 통화를 정겹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매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만져주셨다고 너무 좋아한다고 하니까 김병순 목사가 어디를 만져 주셨대?‘
하나님은 그렇게 사물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영적인 감각이 깨어있고 지성이 깨어있을 때에는 그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한하고 큰 것이지만 감각에 치우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만져주셨다는데 어디를 만져주셨겠습니까? 사람의 사랑은 구체적이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훨씬 감각적으로 들어오니까 강하게 호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랑은 완전하지 않고 잃어버립니다. 결혼생활들을 이렇게 보면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남편과 아내에게 실망하는 과정은 꼭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이 그래서 남편과 아내에게 실망을 하면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대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은혜가 남아있을 때에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실망을 하면 그 실망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지만 그 실망을 감당하지 못해서 하나님도 버리게 됩니다. 원망하면서 하나님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까리따스의 사랑,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을 영혼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두 사랑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사랑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남편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남편에게 모두 요구했는데 채워지지 않으면 파경을 맞는 것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을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면서 그가 나에게 다시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 내게 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내게 주시는 것이라고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께 위로를 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사람을 단절 시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교통시킵니다. 둘이서 사귀었는데 헤어지고 새로운 애인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애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이 옛날 애인 만나는 것을 제일죽기 보다 싫어 할 것 아닙니까? 근데 하나님은 안 그러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도 나처럼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적인 사랑은 단절하는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교통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으면 오지랖이 넓어집니다. 은혜받기 전에는 나하고 아무 상관없었는데 은혜를 받으면 ‘저 형제가 잘 지내나? 저 자매가 아프다는데 집안에 환난이 있다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이 교통적인 성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탄탄한 신앙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이 기초가 될 때 설령 부부간에 에로스의 사랑이 다 채워지지 않아도 하나님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지난주에도 내가 설교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자매가 새벽기도마다 이혼하게 해달라고 나보고 기도해달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Q. 결혼 생활을 통해 추구해야 할 것은?
A.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결혼생활을 할 때에 목표 자체를 자기 행복에다가 두면 그게 정말 세속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신 목적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이 사랑하시므로 당신의 사랑을 피조 세계 속에 펼치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이 피조 세계 속에 확산되어가는 그 확산의 프로세스 속에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은 가정 속에서의 사랑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가정을 갖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확산되는 이 까리따스의 사랑의 확산에 이바지 하는 사랑이 될 때 그 사랑이 항구적인 사랑이 되는 것이지 그것을 방해하는 사랑이 될 때는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늘 이야기 하지만 쿨하게 시집가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너무 큰 망상 같은 기대를 갖지 말고 결혼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고 예전에 나를 불행하고 아프게 했던 것들은 하나도 못 쫓아오고 커다란 수렁이, 구렁이 생겨서 그래서 완전히 별천지 같은 세상이 전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쿨하게 여러분들이 대학 들어갈 때 물론 설렙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와 완전히 다른 행복으로만 뒤 엉킨 세상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 안 합니다. 한 학기만 다녀도 그런 생각 안합니다. 거기도 시련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 딸이 학교를 세 개를 합격을 했는데 서울 여대를 가겠다고 해서 서울 여대는 여기서 무지 하게 멉니다 끝에서 끝입니다. 그래서 “너 거기 무지하게 멀어 너 거기 어떻게 다니려고 그러냐? 가까운데 가지 그랬냐?” 그랬더니 “아빠 나는 여태까지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차를 못타봤어. 그래서 나는 차타고 다니는게 너무 좋아.” 그러더니 진짜 좋아합니다. 웬걸 6개월 다니고 났더니 “아빠 힘들어” 그런게 인생입니다.
결혼을 쿨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야 정말 감사하다 같이 살아서 참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구나. 기대 이상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저 인간하고 가는 길은 십자가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쓸만한대? 감사하네. 충분히 감사해’ 허황된 기대를 많이 가진 사람은 다 실망하는 것입니다. 신랑하고 둘이만 살면 그래도 좀 났습니다. 그 인간만 잘 다루면 되지 않습니까? 근데 이건 뭐 사돈의 팔촌까지 다 연결됩니다. 시어머니가 말 한마디가 ‘야 너 시집오기 전에 국 끓이는 것도 안 배워가지고 왔니?’ 그러면 그게 어디로 돌아가냐면 시어머니한테 ‘그래 못 배웠어요’ 이럴 순 없으니까 거기서 꾹 참고 와서 누구한테 쏟아 붓습니까? 남편한테 그러니까 남편은 영문 모르고 당하는 것입니다. 그때도 이제 인격이 좋고 너그러워가지고 ‘새집에 와서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이러고 너그럽게 품으면 괜찮은데 ‘이게 무슨 순장까지 하고 이 모양이야? 부모 공경하라는 시리즈를 다시 들어야 되겠네’ 이렇게 개념 없게 행동하면 근데 그것 뿐 입니까? 싸가지 없는 시누이, 눈치 없는 시동생, 경우 없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게 얼마나 많은 끄나풀이 생기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시어머니, 시아버지 기본적으로 사은품으로 따라옵니다. 거기에다 시누이, 시동생 따라옵니다. 그것도 눈치도 없어가지고 와가지고 돈이나 자꾸 달라고 하고 그래보십시오. 거기에다 삼촌 등등등등 얽혀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랑이 없으면 안됩니다.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있으면 부부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갈등이 없겠습니까? 갈등이 있어도 은혜가 있으면 아내한테 섭섭한 날은 은혜 받는 날입니다. 교회 가서 기도합니다.
(찬양?) 이세상의 아내들 나를 버려도 눈물 흘리면서 날 사랑하는 이는 예수 뿐일세
근데 까리따스의 사랑이 없으면 교회로 안갑니다. 술집으로 가던지 시댁으로 가서 버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좋은 형제, 자매를 만나야 됩니다.
Q. 고부갈등 뿐 아니라 요즘은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도 많다고 합니다. 자식을 독립시키기 힘들어 하는 부모들과 마마족(마마보이, 마마걸) 전성시대가 된 현 세태 속에서, 결혼을 준비하거나 또는 갓 결혼한 사람들에게 배우자 가족과 현명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A. 장모와 사위사이에 갈등이 왜 있는지 난 아직까지 애들을 시집, 장가 안 보내 봐서 잘 모르겠는데 가끔 보면 개념이 없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참아야합니다. 부모를 고치려고 하면 이제 많은 불화가 생겨납니다. 부모를 고치는 것은 자식의 사명이 아닙니다.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은 사명인데 인간 개조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 아닙니다. 놔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이제 실질적인 문제를 자꾸 일으킬 때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커다란 문제일 것입니다. 그다음에 드물긴 하지만 장가를 보냈는데도 자기 품에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면서 내가 항상 이야기 하는 말이 결혼할 뜻이 세워졌으면 결혼한 다음에는 이해관계가 얽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이 안 섭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설교테이프나 책을 읽으면서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상황에 발생하기 전에 명쾌하게 정리를 먼저 해 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모가 아들을 장가를 보내고도 며느리에 대해서 계속 시샘을 할 때 남편이 어떤 그런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 속에 잠재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지만 명쾌하게 성경적으로 정리되는 것이냐 이런 것들을 이해관계가 아직 안 생겼을 때 교제할 때 충분히 정리를 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든 여자든 확신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반대도 있지 않습니까? 여자가 워낙 마마걸이어서 뭐만 생기면 엄마 품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엄마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엄마 나 어떻게’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미리 서로 대화를 하고 설교나 책을 통해서 잘 정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기준이 생기기 때문에 자기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것과 아예 모르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알면서 하는 것은 항상 자기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돌이킬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이제 어떻게 하느냐면 결혼하고 한 6개월 정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한 3개월 정도가 중요합니다. 요즘은 옛날하고 다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방가보면 시어머니가 ‘어머니’ 이렇게 부르는 것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깨 있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며느리가 ‘엄마’ 라고 부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며늘아기야’ 이렇게 안 부르고 이름을 부릅니다. 근데 난 그게 참 좋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상당히 깨인 집인데 ‘왜 그러세요?’ 물으니까 친정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며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라고 부르는데 시어머니는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시어머니가 높임말이지만 그 생각 속에는 당신은 우리 친정어머니와는 다른 어머니입니다 라는 암시가 계속 그 속에 꽂혀 온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면서 서로의 시댁식구와 친정 식구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업상 만나거나 교제상 만났을 경우에는 ‘너 짤렸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 이제 너하고 끊을꺼야’ 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은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우리 가족 그만하자’ 이렇게 말 못하지 않습니까? ‘너 짤렸어’ 이렇게 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자식이 아무리 속 썩여도 아버지가 그 말은 못하는 것입니다. ‘야 너 들어오지마. 너 어저께 짤렸어’ 그 대신 회사에서는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너 짤렸어’ 그러면 우리는 시집을 왔는데 시어머니나 시아버지한테 계속 불평을 늘어놓고 그것 때문에 남편을 괴롭히고 가정에 분쟁이 생기게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소한 것 때문에 중요한 것을 망치는 것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가족으로 이미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건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가 범죄 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왜 우리 아빠 아들로 태어났을까’ 이러는 동안에는 자기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그건 이미 정해진 것인데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자르겠습니까? 또 자른들 어디 아버지가 새로 생기겠습니까? 그건 나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감수를 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감수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 가족을 왜 만났을까? 사은품처럼 왜 따라왔을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 자꾸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친근하게 친밀하게 마음을 열고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이면서 친근하게 살아가는 비결들을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며느리들이 사랑을 받고 그런 사위들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가족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 사람들하고 평생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함께 만나지 않으면 자기를 낳아 준 부모라도 낯 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결혼한 사람들 보면 처갓집 가는 것 형제들이 별로 안 좋아하고 시댁에 자꾸 얽히는 것을 자매들이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점점 거리감이 더 멀어지게 되고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공동체적인 삶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게 진짜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면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삶 자체를 나름대로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이라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롱런하는 비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Q. 아까 에로스와 까리따스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금보다 더 신앙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저의 많은 고민 가운데 한 가지는 (?)교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시기에 좋아하는 자매를 볼 때 내 안에 있는 이성적인 열정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보다 작다고 내가 스스로 느껴졌을 때 그것이 마음속에 참 죄스러웠습니다. 교회 속에서 활동 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 보다는 그 지체에게 내 안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의 동기들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이 많이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 때문에 이성으로 다가간다는 자체가 많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Q.목사님: 하나님보다 자매를 더 사랑할까봐? 그런 두려움?)
두려움도 있고 실제적으로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될 때 많이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조금 알겠는데 목사님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커져있던 경험이 있으셨는지?
A. 그런 것도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부부도 함께 살아보면 꼭 부부가 서로 갈등하고 미워서가 아니라 사실 ‘참 하나님 사랑처럼 온전하고 지속적인 사랑이 없구나 그렇게 좋다고 행복해하다가도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저렇게 토라지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토라져도 자존감도 없으신지 거기 언제나 기다리고 계셔서 돌아가기만 가면 그렇게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구나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순간은 남편과 아내를 서로 인간적으로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때가 있다 할지라도 곧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에게서 맛보는 행복이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곤곤한 영혼에 완벽한 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갑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경계를 늘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 때문에 과도한 염려를 가지고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자체가 두렵다고 하는 것들은 성령의 주시는 생각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배워나가는 것이 인격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제가 5년 전에 신앙적 지식이 별로 없을 때 잠언서 31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면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 나오는데 목사님이 지금까지 설명하신 것 ‘쿨하게 결혼을 해라’는 이것과는 좀 반대가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서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 하는 그런 현숙한 여인이라는 말씀이 계속 뇌리 속에 박혀서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A. 얼마나 현숙한 여인을 만나고 싶은가? 신사임당?
Q. 방향성만이라도 알려주십시오.
A. 당연히 현숙한 여자을 찾아야 합니다. 방종하고 개념 없는 여자를 찾으면 안됩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하면 육욕에 이끌려서 그런 공정한 판단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너무 현숙한 여자가 있다고 칩시다. 더할 나위 없이 현숙한 여인이라고 칩시다. 왜 형제한테 시집을 오겠습니까? 더 좋은 남자한테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살면서 아내가 좀 마음에 안찰 때 ‘저런 결점까지 없었다면 내 차지가 안됐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현숙한 여인을 찾는데 정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신사임당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그러면 한참 기다려야 될 것입니다. 몇 백년에 한명씩 나오는데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제 그것도 하나의 방향성은 되지만 정도의 면에 있어서 더 완벽한 여자 더 완벽한 여자.. 그게 완벽한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사람은 괜히 완벽한 게 아닙니다. 완벽한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볼 때에는 그 사람하고 살면 덕을 보겠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같은 사람하고 살아주는 게 한없는 부담입니다. 그러면 완벽한 사람은 많이 갈굽니다.
내가 개념 없음에도 썼는데 내가 우리직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하면 ’마음은 둥글고 일은 네모지게’ 근데 불가능합니다. 마음이 둥근 형제자매들은 일도 둥급니다. 그래서 한 것도 없고 안 한 것도 없고 근데 인간성은 좋은데 일이 각이 없습니다. 근데 일을 각지게 해주는 형제자매들은 기가 막힙니다. 맡기면 책임감이 강해서 입술을 깨물고 밤을 새서라고 딱 부러지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 대신 사람들하고 많이 부딪칩니다. 둥근 사람하고 같이 일 시켜보면 둥근 사람이 맨날 얻어 맞습니다. 그래서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고 상처 받았다고 합니다. 둥근 사람은 누굴 좋아하냐하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사람하고 섞어 놓으면 정말 좋아합니다. 자기네 끼리 천국입니다. 난 지옥입니다.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일 덕스러운 것은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우면 참 좋지 않습니까? 자기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우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 없습니다. 자기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남에게도 너그럽지 물론 정 반대로 반대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시간관념이 나는 투철한대도 20-30분 정도 늦어도 너그러운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투철하면 저 인간들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안 지키면 대판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 완벽한 사람들은 항상 그 반대쪽에 결함이 있습니다.
Q. 은혜 안에서 같이 만나서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그리고 나서 결혼에 이른다고 했을 때 항상 하나님께서 형제를 머리로 다루시는 게 연애에서부터 느껴지고 결혼에서도 그게 쭉 이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평등한 관계이고 사람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형제라도 신앙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은 맞지만 침체에 빠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자매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그 구도는 정해져 있지만 거기서 또 평등한 관계로서 조언을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도와 줘야 되지만 그 역할이 ‘너 지금 왜 이렇게 침체에 빠졌냐? 경건생활이 이 모양이냐?’이렇게 할 순 없고 그 안에서 여자가 남자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게 지혜롭게 할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자의 입장이 아니라 남자인 목사님 입장에서 어떻게 할 때가 제일 좋을까? 가장 부드러운가요?
A. 그런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 방법도 있습니다. 오정모 여사처럼 주기철 목사님한테 ‘목사님 거기서 죽으십시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한 순간에 들이 닥쳐서 ’그렇게 경건 생활도 안하고 니가 그러고도 열린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있냐? 너 같은 인간하고 같이 살면서 가정을 꾸려 갈 생각을 하니까 암담하다’ 그게 막 영적인 큰 충격이 돼서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하고 각성이 일어날 수 도 있겠지만 확률이 적습니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침체에 빠지고 뒤로 물러가 있을 때에는 마음이 강퍅해 집니다. 그러니까 우선 기도를 많이 해줘야 되겠지만 사랑 한다는 게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은혜를 받고도 저거 밖에 못 사나’ 그렇게 얘길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바로 이런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저 사람에게 짝지어 주셨구나’ 생각하고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 방황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참고 믿어주고 인내하고 더 가슴아파하고 편지하고 대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제 실망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사랑한다면 정말 믿음이 좋은 것과 약한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불쌍히 여기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보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보면 아주 작은 것들이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 힘을 얻게 해주고
우리 교회 자매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사를 갔는지 안 나오는데 하여튼 가정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남편이 성격이 이상했습니다. 나는 이혼을 못하게 하니까 이 친구가 교회를 한 1년 떠나있는 동안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창피하고 나한테 혼날 것 생각하니까 여기는 감히 못 오는 겁니다. 은혜 받은 자매였습니다. 그래도 너무 갈급하니까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감히 이제 나한테 와서 ‘목사님 저 왔습니다’ 라고 말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고는 들었습니다. 열린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얼굴이 벌써 굳어지는 겁니다. 그거 야단치면 어떻하겠습니까?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래서 내가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귀에다 대고 ‘많이 힘들지? 기도해’ 그리고 나서 한 없이 울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람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저 인간 끝났다 생각해도 사랑이 남아 있는 사람은 기대를 겁니다. 사랑은 희망입니다. 그런 희망의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인내하고 기다리고 지혜도 필요하고 그러면 반드시 다시 일어섭니다.
근데 자기들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 통해서 서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비로소 이 사람이 평생을 나와 함께 할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재게 되는 것입니다.
Q. 제가 중등부 교사라서 그런지 저한테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야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한데 아이들이 만약에 연애 감정이 생기고 이렇게 해야 될 때 아이들한테 결혼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무리이지 않은가 싶은데 아이들한테 연애를 못하게 할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질문 드립니다.
A. 연애는 하면 안 됩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연애를 해도 좋다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대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교제를 친구처럼 사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지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너만 이런 말만 안 쓰면 됩니다. ‘너만 좋아해’ 그 다음에 그러니까 그런 거 하는 거 안 좋지만 그래도 애들은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도 주고 화이트 데이 때 사탕도 주고 그러지 않습니까? 한 사람한테 주지 말고 여러 사람에게 주게 합니다.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이제 남학생이 어느 여학생을 좋아했습니다. 여학생도 아주 좋아합니다. 똑똑하고.. 그런데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사가지고 온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초콜릿을 사가지고 와서 줬습니다. 이 형제 가방에 초콜릿이 이만큼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석에서 울고불고 그런 아이들은 사귀면 안 됩니다. 깊이 사귀면 무슨 배경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런 아이들 속에는 벌써 어린 나이인데도 형제를 독점하려는 욕구 같은 것들이 있는 겁니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인간에게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노골화 되는 것을 교회에서 인정해주고 하게 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청소년들이 누구 누구와 사귄다 그래도 그것을 아주 주시하고 문제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생각을 하고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루어 줘야지만 그게 별게 아닌 게 되지 별거 인 것처럼 계속 다루면 진짜 별 사건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래서 연애라고 하면 안 되고 그런 단어도 쓰면 안 되고 이성교젠데 화이트 데이 때 얘도 하나 주고 얘도 하나 주고 얘도 하나 주고 괜찮습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해서 복수의 칼을 갈 자매들은 형제들이 사귀면 안 됩니다. 그게 중고등부 시절이어야 됩니다. 대학도 결혼할 계획이 생기기 전까지는 뭐 맘에 맞으니까 가끔 자주 만나서 차도 마시고 신앙의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깊이 대화도 나누는데 ‘어느 형제가 그래도 상담하기 제일 좋다’ 그럴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감정적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생각을 다시 해야 되는 겁니다. 연애라는 말 쓰면 안 됩니다. 그 아이들한테 ‘너네 연애해. 연애 하지마’ 그러면 안 됩니다.
Q. 예전에 열린 교회 오기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사도 바울이 결혼 하는 것도 좋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을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 끼리 모여서 기도할 때 결혼을 안 하는 것이 굉장히 신앙이 좋은 것처럼 그렇게 되어서 결단하고 그런 것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독신은 은사입니다.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는 것인데 이제 만약에 나에게 독신의 은사가 있고 충분히 하나님을 위해 섬길 분명한 부르심이 있고 그리고 내가 독신으로 살면서도 박탈감을 안 느끼고 늘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 하면 우리 집사람은 제일 싫어합니다. 자기는 가 놓고 남들 보고 은근히 안 가도 된다고 얘기 한다고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결혼하면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마치 중요한 인간의 행복을 박탈당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혼은 기쁨도 있지만 남 모르는 쓰디쓴 눈물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경제 논리에 의해서 판단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 그게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해도 소명이 필요하고 독신에도 소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독신도 여러 종류이지 않습니까? 자의에 의한 독신, 타의에 의한 독신, 소명에 의한 독신. 자의에 의한 독신은 그냥 누구하고 살 맞대고 사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자매들 중에서 자유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은 자의에 의한 독신입니다. 주님이 ‘너는 혼자 살아라’ 소명에 의한 독신입니다. 근데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계속 혼자로 있는 건 타의에 의한 독신입니다. 타의에 의한 독신도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용모에 의한 독신, 용모가 별로 받쳐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쳐다도 안 보는 겁니다. 어디가도 그래서 독신으로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성격에 의한 독신이 있습니다. 한번만 사귀면 사람들이 두 달을 안 사귀어 주는 겁니다. 너무 까칠해가지고 가시가 많아가지고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 겁니다. 정체를 알고 나서는 성격에 의해서. 요즘 인물이 좀 없고 그래도 요즘들은 형제들이 또 이익에 밝으니까 돈 이라도 잘 벌면 데려가지 않습니까? 직업에 의한 독신입니다. 직업이 없고 특별히 수입이 없으니까 더 쳐지는 겁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생각할 때에 결혼할 이유가 분명한 것처럼 독신으로 살아야 될 이유가 분명해 지는 것은 신앙 안에서 그게 분명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인의 연애, 독신, 결혼이라는 세미나가 있는데 옛날 지하실 교회에서도 하고 여기 와서도 한번 했는데 거기 보면 소명 없이 결혼 하는 거는 가장 세속적인 시집, 장가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독신으로 사냐 결혼하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한 독신이고 무엇을 위한 결혼이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시집, 장가 안 가고 그냥 독신으로 계속 산다고 하나님이 칭찬 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화상이라고 그러십니다. 근데 무엇인가 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개신교에서도 보면 이렇게 정말 주님을 사랑해서 독신을 서원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일 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아픔이 있고 그렇지만 또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독신으로 살아도 예쁘고 결혼을 해도 예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결혼을 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뵈기 싫어지고 독신으로 살면 또 혼자라서 추해지고 그래서 모든 아름다움과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게 되는 겁니다. 결혼을 하려면 열렬히 기도를 하십시오.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세 가지를 하라고 내가 제시를 합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열렬히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보내주세요’ 그러지 말고 열렬히, 열렬히 안 되면 금식기도라도 해보십시오. 열렬히 금식기도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해합니다. 자존심 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열렬히 기도하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그래도 사람들에게 붙임성이 있어야 됩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용모도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공부도 할 만큼 했습니다. 개념도 있습니다. 사람 정말 괜찮습니다. 근데 뭐냐면 사람이 좀 가까이 다가오면 기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현숙한 겁니다. 현숙한 사람은 그대가 가까이 다가올 기회도 안 줍니다. 그래서 결국은 독신이 되는 겁니다. 근데 그럼 독신으로 살고 싶은 의도가 있느냐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몇 명 있습니다. 너무 예쁩니다. ‘저 사람은 왜 못 갔을까? 40이 되도록 50이 되도록 왜 못 갔을까?’ 이해가 안갑니다. 너무 예쁘고 공부도 많이 했고 교양 있고 근데 까칠합니다. 까칠하다고 해서 막 갈구고 이러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틈을 안주는 겁니다. 직장에서도 보면 가끔 약간 좀 덜덜한 자매들이 오히려 빈틈없는 자매들보다 빨리 잘 팔려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옷을 예쁘게 입고 다녀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안 팔리던 과일도 팔려고 마음먹으면 그것을 비닐을 씌우고 색종이를 씌워 가지고 올려놓는데 맨날 태권도복 같은 옷이나 입고 다니고 도 닦는 사람처럼 건빵바지에다 운동화난 꺾어 신고 다니는데 미모도 그렇게 출중하지 않으면서 화장도 안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20살 되면서부터 화장 할 필요는 없지만 23살부터 해서는 갱년기가 시작됩니다. 23살 정점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렇게 봐서 생 얼굴로 봐서 아닌 거 같은면 그 때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게 겸손한 겁니다. (헬라어)코스모스의 뜻이 질서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cosmetic이라고 하는 화장품이 거기서 온 겁니다. 질서 없는 얼굴에 질서 있는 것처럼 잡아 주는 겁니다. ‘무질서가 어때서’ 그러고 아애 지우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그 자매는 한 번도 자매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털도 좀 뽑고 이렇게 바르고 머리도 가서 딴 데 좀 아껴 쓰고 머리 할 때는 야매 미장원가지 말고 돈 좀 줘서 하고 염색약도 좀 예쁜 것 쓰고 딴 데는 좀 아껴 쓰고 먹지 말고 먹어야 다 살 찌니까 먹는 데 쓰지 말고 돈 조금이라도 아껴서 화장품도 조금 나은 것 사서 바르고 옷도 세 벌 입을 것 사실 옷 그렇게 많이 입지 않는데 이거 한 만원주고 샀는데 몇 년을 입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것만 입으면 편합니다. 날이 좀 더운 날은 안 입습니다. 선선한 날에는 이거 입습니다. 만 원도 안 줬을 겁니다. 입는 건 많이 입습니다. 그러니까 만원 주고 옷 샀다고 아주 좋아해도 일 년에 한 번 밖에 안 입고 십 년 만에 버리면 한 번 입는데 천원입니다. 10만원주고 사도 일 년에 한 백일 입으면 그리고 한 삼 년 입고 버린다고 그러면 삼백일이니까 한 번 입는데 삼백원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세 벌 살 것 모아서 한 벌만 사고 한 번 살 때는 똘똘한 것 동대문을 가더라도 동대문에도 A,B,C 있지 않습니까? C에 가지 말고 A에 가서 좀 제대로 된 것 사고 악세서리나 뭐 하나 들어도 그냥 개수만 많이 애들 장난감처럼 가지고 다니지 말고 한 대 여섯 개 살 거 쭉 모았다가 하나만 딱 사서 애지중지 아끼면서 5년, 10년 들고 다니는 게 그게 품위 있는 겁니다. 근데 자매들이 그걸 못합니다. 특히 세 번째를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아니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도 모든 사람이 눈이 부셨으면 좋겠지 근데 아니니까 그러면 변장이라도 해야 합니다. 나와서 ‘참 곱구나! 참 발랄하구나!’ 그래야지 ‘고시공부하나? 맨날 건빵바지에다 도인처럼 저렇게 하고 뿔테 안경 쓰고 골난 것처럼 늘 저러고 다니나’ 무슨 심오하게 신앙이 깊으냐면 그것도 아니고 무슨 매력이 느껴지겠습니까? 외모야 어쩔 수 없지만 예쁘게 그리고 외모 지상주의는 아니지만 너무 지나치게 살이 쪄서 사람들이 자꾸 살쪘다고 그런다 그러면 빼야 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다른 인간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시집을 갈려고 하면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물건 팔 때도 팔 물건은 앞에다 털어가지고 내 놓고 사과 같은 건 막 왁스 발라서 광내고 하고 갖다 놓는데 원판도 탁월하지 않으면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화려하고 그러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잠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없는 걸 꾸미라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우리가 이 얼굴에다 여자 배우 가면을 쓰고 다니겠습니까? 안되지 않습니까? 어떤 자매들 이렇게 보면 결혼한 자매들 세상에 갑자기 팍 늙어 보이는 겁니다. 머리가 뽀글뽀글한 머리 이상한 머리를 어디 가서 미장원에서 하고 세상에 저렇게 생각이 없습니다. 머리 (?)해도 한 다섯 살 정도는 저 위로 보입니다. 옷도 딱 입으면 똑같은 옷인데도 날씬하게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고 얼굴이 넓적해도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사람 가리는 게 있지 않습니까? 키가 작고 이런 사람들은 선 볼 때도 밝은 커피숍이 아니라 레스토랑 같은데서 만나는 겁니다. 그럼 잘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가꿔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하나 살 때도 좀 생각을 많이 해서 미적인 것을 고려해서 아무거나 주어서 쓰듯이 안경 쓰지 말고 ‘이 안경이 예쁠까? 이 안경이 예쁠까?’ 좀 물어도 보고 그래서 날카로와 보이지도 않고 푼수 없어 보이지도 않고 머리 색깔은 약간 염색을 하는 게 좋을까? 브릿지를 넣은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까맣게 하는 게 좋을까? 사람들에게 좀 물어보고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지 않습니까? 근데 그걸 안하는 겁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계속 자기는 결혼도 빨리 안 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자기 할 것은 해야 되지 않습니까? 마음의 아름다움은 더 중요한 겁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히 하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친절하게 모든 사람에게 그러면은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게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느니라’ 근데 미래의 신랑, 신부감들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그래서 외모도 취합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예쁘게 ‘시간이 걸리는데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연히 잠 좀 덜자고 해야 합니다. 화장도 하고
여러해 전인데 간사들이 수련회를 갔습니다. 새벽예배를 수련회 가서 했습니다. 화장을 다 지우고 잤지 않습니까? 아침에 채플이었으면 다 다시 원상태를 하고 왔을텐데 그냥 나왔단 말입니다. 쭉 앉았는데 옆에 있는 형제가 예배가 시작되려고 그러는데 ‘목사님~’ ‘왜?’ ‘저 아줌마들 누구에요?’ 근데 제가 진짜 보니까 나도 못 알아보겠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은 나도 잘 못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서 무슨말이냐 하면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잘 가꿔야 합니다. 항상 이렇게 자기 관리가 잘 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내가 너무 부담을 줬습니까? 부담 아닌데
서창완(?) 목사님 교회에 갔습니다. 딸이 30인데 아직 시집을 못 갔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해서 우리도 참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라고 그러면서 세 가지만 잘하면 시집 갈 수 있다니까 뭐냐고 해서 ‘첫째 기도 많이 할 것, 친절하게 할 것, 옷을 예쁘게 입을 것’ 이틀 있다가 목사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김 목사님~” “아니 왠일이에요?” “ 그 때 세 가지 중에 두 번째가 뭐죠?” ‘아 역시 급했구나’ 그래서 아버지들한테도 책임이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있는 딸한테는 먹을 것을 좀 덜 먹더라도 옷을 예쁜 걸 사줘야 합니다. 옛날에 박형용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지금 성경신학대학원 총장님으로 계시는. 근데 나한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딸이 지금 성균관 대학교 교수가 됐나 그랬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유학하고 왔는데 혼처를 못 찾아서 못가니까 늘 걱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장로님을 만났답니다. 장로님이 자기를 막 혼내더랍니다. “도대체 목사님은 아니 나이가 차서 딸 시집 못 간다고 맨날 끌탕만 하는데 그게 뭡니까? ”“왜요?” 그러니까 이 딸이 교회에서 무슨 순서를 맡아가지고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세상에 시집을 가야 될 딸이 옷이 그게 뭐냐고 누가 그 자매를 곱게 생각하고 호감을 갖겠냐고 그래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고 저녁 때 들어왔는데 보니까 자기가 진짜 아니었던 겁니다. 풍덩하고 털털한 티셔츠에다가 널널한 바지에다가 그 자리에서 백만원을 꺼내서 줬답니다. 옷 사입으라고. 아직도 결혼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슬이도 정말 제가 옷 잘 고릅니다. 옷을 사주고 싶은데 얘는 죽어도 옷 사주는 걸 싫어합니다. 영 특이합니다. 별종입니다. 별종이 아니라 좀 날씬해지면 달라지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결혼할 때 자기 관리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은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 결혼해도 계속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화장을 하는 게 미덕이 아니라 화장을 하는 것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도 못 만드는 그런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삶, 그런 것은 안 됩니다. 여성으로서 매력이 없는 겁니다. 남성으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하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한테 예쁘게 보이면 하나님이 시집 보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