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으로 의롭게 하신 그리스도
“그가 그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사 53:11)
녹취자: 허혜숙
1. 이사야 53장 11절 상반절은 대속을 완성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가 느끼실 만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만족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는 무엇입니까? (213-214)
첫째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에 대한 만족.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시고 누구든지 당신을 믿는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죄 사함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당신이 열어놓으신 구속의 길은 영생을 갖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고 살아갈 것에 대해서 주님이 느끼시는 만족입니다. 그림으로 보겠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놓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족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그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서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것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만족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안타까워하신다. 무엇 때문일까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직까지도 걱정하신다, 마음에 안타까워하신다, 무엇 때문일까요? 당신이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까지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더 많이 전도하고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면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족시켜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동안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216-219)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자기를 모두 버리신 생애였습니다. 자 그림을 잘 보십시오. 이렇게 큰 원을 그렸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사역의 핵심에 있는 것은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기록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모두 하나의 초점을 향합니다. 그 하나의 초점으로 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렇게 볼록렌즈가 있다고 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빛이 들어옵니다. 이렇게 들어온 빛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집니다. 이렇게 하나로 모아지는 것처럼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하나님의 행동과 말씀에 대한 기록들은 이렇게 렌즈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 경륜에서 모아져서 마지막 한 점으로 집약이 되는데 이것이 ‘인간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 분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들을 다시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셔서 인간에게 그 풍성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주시려고 하는 계획으로 집약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꾸로 봅시다. 거꾸로 빛이 될 수는 없지만 역으로 추적을 해보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이런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거꾸로 추적해가면 다양한 사건들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결국은 하나의 의도에서 출발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교회를 만드시고 세상을 경륜하시고 마지막 심판할 때가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놓고 본다면 확실한 사실 하나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결국은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던 많은 가르침을 생각해 봅시다. 다시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이루셨을 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신 마지막 핵심은 결국 이것도 역시 구원으로 집약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핵심은 인간에게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로 돌아와서 살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핵심인 것입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한 인간이 타락한 즉시 이런 구원의 지식들이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지식들이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자꾸 오염이 됩니다. 마귀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명하게 진리를 알고 그렇게 해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고 하는 이런 것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그것들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와 인간을 향해 가지고 있는 계획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속에서 오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거대한 체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종교이고 이방의 철학입니다. 그런 속에서 이렇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진리로서 이 지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니라’고 한 그것이 그런 의미에서 이 지식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핵심적인 그 무엇,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을 지식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이것이 복음으로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되는 구원의 반응입니다.
3. 예수님이 이 세상에 끼친 위대한 영향력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향력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합니까? (220-22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받은 대로 살게 하는 힘입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어서 우리를 움직이는 힘으로서의 지식입니다.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데서 나오는 지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이런 하나님의 지식을 전달하는 중보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환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데 이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적용하심으로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 안에서 실제적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나텔로라고 하는 피렌체의 유명한 조각가가 조각한 매우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이 사람이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건축가이고 조각가였습니다. 하박국의 모습을 이렇게 고뇌에 찬 표정을 그려낸 것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라’ 이러한 세상을 하박국 선지자가 꿈을 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것,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해서 누구든지 그 하나님을 알기를 아주 뛰어나게 아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지식과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 지식과 사랑이 결국 이 땅에 있어서 신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길이고 불신자들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믿음을 통해서 이것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완성되는 나라는 지식과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인간이 타락했을 때 결국은 하나님이 원래 주신 지식과 참된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서 이것을 복구합니다. 성화를 통해서 이것을 유지합니다. 결국 구원, 성화, 타락, 그 다음에 창조, 창조 시에는 이 지식과 사랑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타락과 함께 이것을 잃어버립니다. 구원과 함께 이것을 복구합니다. 성화 속에서 이것을 유지합니다. 마지막에 영화 시에 이 모든 지식들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보는 지식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그 때는 완전하고 지금 이 사랑은 끊임없이 세상의 것과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에 의해서 간섭받는 사랑이지만 여기에서 완전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서 세계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지식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복구하고 유지하고 완성하고 이것이 세계 역사가 전개되는 큰 뜻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지식을 자꾸 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지식을 얻으려고 안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애초에 사랑이 없었고 있었는데 자꾸 그것을 잃어버리고 또 다른 사랑으로 바뀌려고 하고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큰 틀 속에서 우리들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구약 중간 사를 보면 이것이 결국 제사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남의 나라 땅에서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허락 할 리가 없었고 허락한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이 나라와 백성은 흩어져있어도 오직 제사는 예루살렘에만 드리는 중앙 성소의 전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금지가 됩니다. 그리고 약탈되고 점령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유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회당입니다. 그래서 회당 중심으로 종교의 문화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의 종교에서 포로기를 통해서 책의 종교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이해시키고 그대로 살게 하고 교육하고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강조점이 제사가 이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개신교의 탄생에는 매우 유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서 제사를 지내던 것들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성경의 의미를 묻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탐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좋은 토대가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귀담아 듣기 시작했던 것은 책의 종교의 전통이 중간 사(구약과 신약사이 400년을 의미함) 시대에 생겼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아는 바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수받고 아는 바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아는 바대로 살아감으로써 여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믿음의 삶입니다. 제시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14장 26절 함께 읽습니다. ‘보헤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를 기억을 자극해서 생각나게 하셔서 그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이 성령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한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고 볼 때에 그것이 진실한 역사인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표징이 있는데 하나는 그가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성경의 올바른 진리를 올바르게 알게 되었는가? 두 번째는 그가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 이 두 가지가 참된 성령의 체험인가 아닌가에 대한 중요한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4. 구원의 모든 역사가 지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거짓된 유대교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떻게 달랐습니까?(222-223)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구원에 멀어지게 만들었으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드러냄으로서 구원받게 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적인 유전들로 많이 가르쳐서 구약의 전통신학을 유대교주의가 왜곡했고 그래서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종교적인 봉사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수많은 의문점을 불러일으키고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에 물들어있었던 왜곡된 것들을 다 벗겨내시고 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참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서 구원의 성취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구약 성경을 펼쳤을 때 하나님의 관심사와 일치하지를 않습니다. 자신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그것을 왜곡해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에 있는 관심사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그대로 구현하심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쉬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5. 경험과 지식 사이의 관계는 무엇입니까?(223-224)
경험적으로는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현재적인 은혜의 경험과 참된 지식 이것을 통해서 신자는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적인 은혜의 경험, 참된 지식 이 두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참된 은혜는 사랑입니다. 참된 지식은 지식입니다. 지식과 사랑 이것이 온전해 지는 것 이것이 결국은 성화의 삶입니다. 자, 경험으로 완성되지 않는 참된 지식,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한 번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지식이 그 사람 속에 계속 살아있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적인 은혜의 경험이 계속 되어야 하고, 옛날에만 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은혜를 받아야하고 성경과 설교 이런 것들로 잘 정리된 지식들이 이 사람 마음 안에서 체계화 되고 체계화 된 지식이 불이 붙을 때에 여기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랑이고 성령이고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결국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의 가르치시는 사역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계승되어야 합니까?(224-225)
기도와 진리를 탐구함으로 이 참된 지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잘 된 것은 보존하고 잘 못 된 것은 교정하고 그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여기는 발전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G1 G2라면 1세대에 받았던 것보다는 2세대에 있는 것들이 1을 통해서 2에 들어옴으로 보다 완전한 형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후손들은 이러한 작업들을 더 잘 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 결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갈수록 증폭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각 세대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유구한 전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올바르게 전달되어진 것들을 우리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도 공부하고 교회의 역사도 공부하고 신학도 공부해야 됩니다. 그들 속에 잘못 된 것들이 있는데 잘못 된 것들은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올바르지 않는 것들이 후손들에게 학습되고 그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교정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 진리의 탐구를 통해서 성경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고 심화해서 더 좋은 지식을 그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면 다음 세대들이 더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더 잘 길러내면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많이 있지만 진짜 어린 나이에 회심하고 예수 사랑하고 주님을 아는 지식을 기뻐하면서 살아가면 여러분들은 자녀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도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이 겪었던 희로애락을 다 겪습니다. 그러나 주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결국 그 신앙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교회가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자녀들도 교육하지 않고 기도해서 뭔가 세상을 혁명처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기울어졌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나쁜 이야기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불평이나 이런 것들로 이것을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들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서 주님의 부흥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고 계승하고 참된 진리를 가르쳐서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올바른 신앙의 길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7. “나의 의로운 종이…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226-227)
십자가에 비춰지는 것은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 이런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모른 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 사이에서 이들을 하나님을 아는 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빛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있는 대로 힘을 다해서 이런 삶을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