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험의 때를 알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녹취자: 백지영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제 벌써 가을이 선뜻 문 앞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시험에 관하여 새 공과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시험을 이기는 길이라는 시리즈를 제가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 한번 설교를 했고, 그 다음에 그것보다 좀 더 자세하게 해서 작년에 꽤 길게 설교를 했습니다. 두 번째 설교가 훨씬 더 상세하게 돼 있지만, 첫 번째 설교가 사실은 그동안에 시험을 이기는 길이라는 시리즈 가 필청(必聽), 필수로 들어야 하는 설교목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시리즈를 들으면서 시험을 이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1997년도와 2019년도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1997년도에 했던 설교가 훨씬 간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쉽습니다. 이제 그 후에 나온 설교는 좀 더 상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책은 어떻게 했느냐? 책은 고민을 하다가 97년도 판과 그 다음에 2019년판 사이를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2019년 판으로 나는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책이 너무 어려워질 것 같다고 해서 그 중간을 선택해서 그래서 두 원고를 토대로 해서 다시 쓴 게 ‘시험에 관하여’라는 이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차근차근하게 공부하시면 아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은 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여러분도 은혜도 받아보시고 시험도 겪으셨지만, 시험에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 하면 혼란입니다. 혼란이 찾아오게 되면 소용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일단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나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중요한 해결책은 말씀으로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게 사실은 은혜를 받는 것보다 급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시험이 근본적으로 죄와 관련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일단 죄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거나 생겨나게 되면, 그러면 그 죄는 즉시 제일 먼저 하는 작용이 뭐냐 하면 지성을 흐리게 만들어서 정신과 지성으로 죄라는 자기의 존재를 탐지하지 못하도록 연막을 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이 나면 공군기가 아무리 좋은 비행기라고 하더라도 폭격을 하러갈 때에는 폭격기는 전투기하고 다릅니다. 많은 폭탄을 싣고 가기 때문에 움직임도 둔하고 그리고 기동성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항상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갑니다. 그때 그 엄청난 비행기들이 뜰 때 그냥 띄우는 줄 아십니까? 띄우면 밑에서 대공 포화와 요즘은 대공미사일이나 이런 것들에 의해서 격추당할 위험이 많습니다. 전쟁이 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적국에 안전하게 비행기가 가서 공습할 수 있도록 위험한 시설을 다 미사일로 격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포를 이용해서 공격을 해서 그래서 거기를 무력화시킨 다음에, 그 다음에 충분하다 생각할 때 비행기가 떠서 이젠 진짜 중요한 지점에, 미사일 가지고는 폭탄 량이 안 되니까 진짜 중요한 시설들은 가서 비처럼 폭탄을 쏟아 부으면서 완전히 괴멸을 시키고, 충분하다 생각됐을 때 그 다음에 육군이 밀고 들어가서 전쟁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험을 당해서 죄가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기 시작하면, 들어오거나 아니면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정신을 흐릿하게 만듭니다.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모르겠어’입니다. ‘아, 나는 잘 모르겠어.’ 그렇게 총명하고 똑똑하던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게 되면 아주 형편없는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사람들은 기도하라고 하는데 기도 못합니다. 열렬히 기도할 수 있으면 그것은 시험에 든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은혜 받으라고 하는데, 당장 은혜 받을 수 있으면 시험 든 게 아닙니다.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 얘기 듣기 전에 이미 여러 번 해 보려고 했는데 안됐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갖다 놓고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정신을 집중하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알게 하는 것이지요. 알게 하면, 그 다음에 지성적인 어두움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말씀의 진리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시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 다음에 거기서 찬찬히 어려운 것을 풀어가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도 내가 한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어렸을 때 할머니하고 같이 살 때 제일 싫어하는 게 (실패에 실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실을 사오십니다. 실이 실패에 감겨 있는 것은 비싸니까 타래미로 된 것을 가지고 오셔가지고 실패에다 감는 것입니다. 정말 싫었습니다. 나보고 붙들고 있으라고 하고 당신은 감으면 나는 계속해서 손을 이렇게 돌리면서 실이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유통과정에서 그것을 잘 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싸구려지요. 타래미로, 국수 타래미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나는 끊어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데, 끊으면 바느질 할 때 하다가 끊어진 게 나오게 되니까 할머니는 어쨌든지 안 끊고 실을 감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끊어버리라고 하면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실은 원래 나올 때에 하나로 나왔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서 해 보면 결국은 그 실은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풀리게 됐다(풀리게 되어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서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할머니 음성이 생생하게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 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렇게 목회하면서 혼란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그렇지. - 그러니까 혼란을 느끼지 말아야 됩니다. 아무리 혼란스럽게 보여도 그것을 ‘에이씨’ 이래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은 얼마 있다가 ‘에이씨, 집어치우자. 가서 술이나 먹자.’ 그리고 퍼먹는다고 칩시다. 취하고 잠들면 그날 저녁은 잊어버리겠지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그대로 그 문제가 안 풀린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게 하루 후일 수도 있고 일주일 후일 수도 있고 열흘 후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안 풀린 채로 있는 것입니다.
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시험에 깊이 들었는데 본인은 시험에 안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시험에 들었다고 인정을 하는 사람은 비교적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내가 뭘?" 이러는 것이지요. "내가 뭘? 이 정도면 잘 사는 것이지. 내가 무슨 시험에 들었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험은 죄에 푹 빠진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에 푹 빠진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죄의 목표는, 시험에 들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시험에 든 다음에는 수렁같이 깊숙이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물속에 빠지면 헤엄이라도 쳐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진흙 덩어리 속에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한없이. 여기까지 찹니다. 여기까지.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몸을 확 휘젓지 않습니까? 공간이 생기면서 몸을 움직이면 더 빨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결국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죄의 목표입니다.
그래서(그러니까) 이 공부를 잘 배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데, 잘 배우는 가장 좋은 비결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굉장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해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다는 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잘 깨끗이 정리해서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하고나면 그게 완전하게 내 속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들이 가끔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 내가 더 알아야 될 것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배우셔가지고 - 구역장님들은 구역에서 같이 배우시지 않습니까? 그것만 하지 말고 - 여러분 주위에 시험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람들 보십시오. 이웃집 사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놓고,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라. 내가 가르쳐줄테니까 너는 배워라.” 그러면 자존심 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시험의 본질에 대해서 천천히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예화를 가지고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마음이 열리면, 그 다음에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들으면서 시험에서 헤어 나왔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이 책은 여태까지 썼던 저의 책의 필체와 완전히 다른 필체입니다. 오늘 출판사 만나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쪽에서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아주 스피디하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어려운 단어를 많이 뺏고, 그리고 문장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의 단점과 장점이 같이 있습니다. 장점은 무엇이냐 하면 빨리 읽힌다는 것입니다. ‘염려에 관하여’ 같은 것은 빨리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염려에 관한 책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빠져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한두 장 읽어보고 ‘아, 이거 어려워’ 그리고 팽개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 대신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빨리 읽힌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기가 깊이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확! 한 권을 읽고 나서 뭐가 나왔는지 잘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시라 그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이것에 해당되는 설교 들으시고 이것 공부하고, 공부하고 설교를 듣고 이렇게 하면 가장 좋습니다. 책을 읽고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설교를 듣고 책을 읽기를 저는 권합니다. 12주 동안 공부하면서 열두 개 듣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또 빠르기를 약간 빠르게 해 놓고, 1.25배속 정도 해 놓고 들으시면 시간도 4분의 1 줄어들겠지요. 그렇게 해 가지고 이해를 갖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 책으로 정리를 하면 가장 견고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시험에 관하여’를 공부하는 성도들의 기대감을 한번 같이 영상으로 나누어보시겠습니다.
(김성구 목사) 다시 게으름 마치고 새로운 책 시험에 관하여 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우리 박희준 집사님께서는 이 시험에 관하여 이 책을 받으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박희준 집사) 목사님께서 97년도에 하셨던 시험을 이기는 길 시리즈를 저도 설교 테이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났고요, 또 재작년에 목사님께서 다시 시험을 이기는 길 두 번째 시리즈를 말씀 해주시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이 말씀을 통해서 저나 우리 구역 지체들이 말씀으로 더 성숙하게 되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김성구 목사) 강원진 집사님께서는 이번 공부를 통해 어떤 기대감을 갖고 계신가요?
(강원진 집사) 요즘 상황도 어렵고 비록 오래 산 건 아니지만 50대 중반까지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시험들과 시련이라고 해야 될까? 그런 것들이 발생하면 정말 괴로울 때가 너무 많아요. 결국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선하시게 인도하신다고 믿지만 그런 것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왜 사랑하시면서 이렇게 인도하시는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상당히 아주 이번 책은 특히나 더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김성구 목사) 우리 이계상 집사님께서는 구역원들과 어떻게 공부를 하실 계획이신가요?
(이계상 집사) 시험에 관하여 책을 받고서 서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천국에 온 모든 백성들의 무릎과 종아리에는 상처가 가득합니다. 꽃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을 헤치고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 공과를 통해서 시험이 무엇인지, 신자가 왜 시험을 받아야 되는지, 그리고 시험을 받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구역원들과 함께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성구 목사) 김대영 장로님께서 이 공부를 시작하는 우리 구역원들, 또 열린교회 성도님들께 한번 권면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대영 장로)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변화된 환경으로 인한 도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영적인 침체와 시험에 빠지기 쉬운 우리의 연약함들이 더 쉽게 드러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공과에 대한 기대를 더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잘 공부하고 배워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말씀의 빛 아래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런 바람을 가져 봅니다.
이제 상품까지 걸었더니 엄청나게 댓글들이 들어오셨는데, “염려와 게으름이 그랬듯이 시험이라는 녀석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민낯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낯만 확인하면 안 되고 이겨야 되지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 “메타 인지적으로 시험에 드는 포인트를 알고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또, “이 공과를 통해 순원들과 함께 시험을 이기고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등등 많이 나왔습니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험지를 받고 두려워하는 나에게 '시험에 관하여' 책은 답안지와 같다.” 네. 어쨌든 많이 들어 왔습니다. 지금 다 읽어드릴 수는 없고, 이제 이 정도로 하고 본래 내용으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서지요. 야고보서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썼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수신자는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주제는 말씀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이고,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은 당시에 있었던 오해입니다. 이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다보니까 삶이 엉망이 된 것입니다. 이 책을 마르틴 루터 같은 사람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성경에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왜냐하면 루터의 눈에 보니까 여기는 행위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해이고, 믿음과 행위가 어떻게 뿌리와 열매처럼 결코 나눠질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야고보서 1장의 본문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게 되는데 오늘 1장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야고보서1장 2절에서3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 책에 보면 ‘시험에 관하여’라고 하나로 되어 있는데, 밑에 보면 temtpatione et probatione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라틴어에서는 템프타치오네는 유혹을 의미하는 것이고 프로바치오네는 시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다 하나로 다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통틀어서 시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어로 페이라스모스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시도, 증명, 실험, 유혹, 훈련,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설명을 드렸습니다. 어떤 책꽂이가 있는데 저게 진짜 나무인지 아니면 랩핑을 한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요즘은 정교하게 만듭니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가서 칼이나 이런 것으로 긁어볼 때에 비로소, 껍질이 벗겨지면 그것은 랩핑(wrapping)이고 속에도 똑같은 나무가 나오면 그것은 진짜 통나무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페이라스모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의미 깊지요.
인생이라는 바다에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때 시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많은 시험을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어쨌든지 간에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유혹도 시험이고 시련도 시험입니다. 그런 유혹과 시련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유혹과 시련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칼처럼 나뉘지 않을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은 이것을 시험이 처음서부터 사람을 죄에 빠뜨리기 위한 시험이냐 혹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하기 위한 시험이냐 이런 것들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에게 신앙에 위협을 가지고 오는 요소들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서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기도 하고 믿음을 상실하게도 된다 이렇게 해석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들이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시련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업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내 마음이 전혀 그것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현실은 힘들지만, 더 열렬히 기도하고 있고 열렬히 믿음으로 이 현실을 헤쳐 나가려고 하고 추호도 신앙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유혹에 빠지거나 죄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시험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 빠졌다고 할 때는 어쨌든지 간에 그것이 시련이든지 유혹이든지 간에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신앙의 스텝이 꼬이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 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덜컥 타락하고 죄를 짓지는 않더라도 따박따박 걸어가던 신앙의 스텝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유혹으로 다가온 것인가 아니면 애매히 당하는 고난인가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에서 지금 무엇인가 신앙의 스텝이 꼬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에 오게 됐다면 그것은 시험이다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던 데가 옛날의 순복음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보느냐 하면 시험을 둘로 딱 나누어서 창조적인 시험과 파괴적인 시험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시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했던 시험이고, 파괴적인 시험은 처음서부터 우리를 파멸시키게끔 다가오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창조적 시험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파괴적 시험의 근원은 사탄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식을 우리들이 정확하게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 때문에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자기가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요셉처럼 뿌리쳤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내 안에서 살아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애매히 고난을 당합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내가 박해를 받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합니다. 그럴 때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다음에 그 시험에 대해서 올바로 대처를 못하게 되면 내 신앙이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창조적 시험, 파괴적 시험이라고 이런 식으로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답안지를 본 다음에 그 다음에 얘기하는 것이지요. 결과론적으로.
그래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이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 사단에게로부터 왔는가,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왜? 그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백번 양보해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이 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붙들면 그것 때문에 내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고, 설령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고 할지라도 내가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그러면 결국은 나의 영혼은 미끄러지고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지금 내가 시험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불평불만하게 하는 요인이 현실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런 집안에 태어나서 부모 사랑도 못 받고 왜 이렇게 살았느냐?” 요즘 오영은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 있습니다. 그게 2,30대에게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나 그러고 자세히 신문기사를 읽어보니까 자기는 한 번도 자라면서 엄마가 자기를 그런 식으로 다루어져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아이가 아무리 망가진 행동을 하고 심지어 집어던지고 엄마를 할퀴고 때리고 폭력을 하고 그래도, 막 집어던지고 이렇게 폭력을 행사해도, 일단 그 프로그램에서는 그 새끼를 금쪽같은 새끼라고 보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코. 그리고 결국은 그 아이의 그 모습이 영원히 계속될 본래 모습이 아니라 변화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하고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전제 자체를 우리가 백퍼센트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러나 하여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아주 소중하게 보고 결국은 하나님이 만져주시면 그 아이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쪽으로 우리는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고칠 수 없는 것은 그것은 빨리 접어야 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고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인생이 계속 망가지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런 집안에 태어났을까?” 그것은 어떻게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내가 지금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내 부모를 바꿀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그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됩니다. “남편이 사업을 해서 다 털어먹고 우리가 어마어마한 저택에서 살았는데 이제 쪽방으로 쫓겨나게 됐다.” 그것을 지금 후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지 않습니까?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서 거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예화에도 나왔는데, 정서에 장애를 가진 부모가 열린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제일 먼저 깨달은 게 뭐냐 하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그것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을 계속 “왜 이랬을까?” “나는 왜 이랬을까?”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성격이 좀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반성하는 것과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아사밤’에서도 제가 얘기했지만 어차피 나를 내가 버릴 수는 없습니다. 데리고 살아야 될 나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밖에 안 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억셉트(accept)해야 됩니다.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밖에 안 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거기를 발판으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이후의 모든 가르침은 그 사람에게 아무 쓸데없습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그 현실을 밟고 딛고 일어서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원망하지 마십시오.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나는 왜 이런 존재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성격이 이럴까?”, “나는 왜 외모가 이럴까?”, “나는 왜 교육도 잘 못 받았을까?”, “나는 왜 이런 집에 시집을 왔을까?”, “내가 왜 저런 여자를 선택했을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더니 내가 그렇게 됐구나.”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을 계속 되 짚어봐야 마지막에 결국은 버려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감사함으로까지는 못하더라도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첫 계단을 덜컹 하고 밟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암벽등반 있지 않습니까? 자연 암벽등반 말고 이렇게 뭐 하나 잡고 가는 것, 그게 원리가 다리하고 뻗는 손하고 다음 잡는 것하고 딱 삼각형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러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손 잡아당기고 발로는 밀고 하면서 그 다음 잡을 곳을 찾고, 그 다음은 삼각형을 만들고, 이렇게 하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왜 저기 못 올라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씩 하나씩 밟고 가야지 마지막 거기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 옛날 타령만 하면서 피폐한 인간으로 버려질 것이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선택해야 된다 이것입니다.
그 다음에, 왜 세상에는 시험이 있을까? 그러니까 이제 일반적인 이유를 보면 결국은 세상이 죄 때문에 불완전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죄가 없을 때조차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와가 유혹을 받았을 때 아직 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까? 결국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교리학교 시간에 가르쳐드렸지만 인간이 완전하게 창조되었지만 안전하게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완전하지만 그러나 안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그 완전한 상태가 뒤집힐 수 있는 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정확하게 말하면 죄가 없는 아담과 하와의 시절에도 결국 유혹을 받을 수 있고 시험에 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러면 이미 죄가 들어와 버린 이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험에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시험이 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시험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 인간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설악산에 소나무가 부러졌기 때문에 시험에 든 적 있습니까?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꽃밭이 없어졌다고 해서 시험에 든 적 있습니까? 대개 대부분 보면 시험에 들었을 경우에 결국은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이 그 시험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사단이 근본적으로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이 세상이라고 할 때, 결국은 죄와 사탄의 세력이, 궁극적으로 그 배후에 사탄의 세력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역사할 때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들렸다 그러지 않습니까? 똑바른 정신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단은 결국은 자기가 이 안에서 의지적으로 죄의 작용에 순응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사단의 도구가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신자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보면 빨간 부분과 검은 부분이 겹쳐 있습니다. 빨간 부분은 하나님 사랑하는 부분이고, 결국은 이것은 죄입니다. Sin. 그러니까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하게 살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면서 말씀에 의해서 붙들림 받고 은혜에 의해서 계속해서 사랑의 불길이 유지되어야지만 부족하나마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데 성화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누구든지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게 되고.
자, 야고보서 1장 2절 3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 보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게 그리스어 성경에 보면 "그것을 모든 기쁨으로 여기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리고 "인내를 만들어낸다"라고 하는 것은, 없는 데서 생겨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점점 커지게 한다, 혹은 인내가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킹 제임스 버전은 디벨로프스(develops)라고 번역했습니다. "발전한다, 있는 것이 더 커지고 성장하고 더 발전하게 된다." 이런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에서 잘 눈여겨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들이 눈여겨 볼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형제들"아라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에게도 시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 이게 가정법이기는 하지만 이게 실현 불가능한 아주 희귀한 가정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된다 이런 뜻입니다. 의미상으로.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도”, 이게 1번입니다. “많은 시험을 당하게 된다”, (이게 2번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시험을 당하는데 믿음으로 그 시련을 이길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게 뭐냐 하면 인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게 무엇이냐 하면, 시험, 그 다음에 믿음, 그 다음에 인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무슨 뜻이냐 하면, 시험이 오면 믿음으로 이겨야 되는데 믿음으로 감당하면 그것이 시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인내라는 열매가 맺혀져서 여기에 시작할 때보다 여기에 훨씬 더 많은 인내를 가진 사람이 된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의 시련도 많이 이겨낼 수 있겠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너희가 앎이라”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너희에게는 그런 시험을 당한 기억도 있고, 그 다음에 믿음으로 이겼더니 너희가 인내라고 하는 덕이 더 너희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너희가 이미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련의 구도를 모두 보고나면, 시험이 나 괴롭히기 위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뭔가 하나님이 의도가 있기 때문에 시험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러면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여기서 온전히 기뻐한다는 것은 그냥 기쁨만 가득 찬다 그게 아니라, 모든 것, 시험을 당했을 때에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을 기쁨으로 여겨라, 그게 마지막에 시험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가 그것을 잘 감당해 나가면 시험을 당하지 않고는 결코 나에게 생겨날 수 없는 인내라고 하는 아주 높은 그리스도인의 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러니까 시험을 당하거나 유혹을 당하거나 할 때 어떤 어려운 한 순간의 토막만을 놓고 생각하면 안 되고,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려고 하는 계획 전체를 보면서 그것들을 지성적으로 정리가 된 가운데 그리고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그것을 이겨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열렬히 기도할 수 있으면 시험에 든 게 아닙니다. 그리고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시험에 든 게 아닙니다. 그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서 다른 사람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그 사람은 시험에 든 게 아닙니다. 시련을 지금 극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시험에 들게 되면 그게 잘 안됩니다. 왜냐하면 유혹이 딱 다가올 때 자기 마음속에 와 닿기도 전에 그것을 간파해내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고도의 영적인 상태에 도달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주 희귀합니다.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일단은 시험에 들어서 죄가 자기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 다음에서야 ‘아, 이게 혼란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오게 되면 당장 우리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던 것을 불을 끕니다. 해야 될 일은 반대로 두 가지입니다. 정신을 다시 맑게 하고, 가슴에 다시 사랑의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한꺼번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불길은 일으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나뭇가지를 갖다놓고 말씀의 불을 붙이고 후후 불면서 조금씩 조금씩 불길을 일으키면서" 이 불가지고 어떻게 다 타오르게 하나?" 모든 타오르는 어마어마한 산불이 다 작은 불씨로 시작했지 처음부터 하늘로부터 불이 내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시작을 하면서, 시험에 들 때에 흐려졌던 지성은 다시 말씀으로 맑게 하고 꺼졌던 사랑의 불은 다시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받음으로서 이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요지입니다.
자,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에 ‘시련’이라고 했는데 아까 페이라스모스하고 비슷한 단어인데 약간 다릅니다. 그래서 이것을 라틴어로 프로바치오네, 탈격인데 프로바치오네라고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어떤 물질의 힘이나 열을 가해서 그 정체를 발견해 내는 수단, 과정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아까 나온 페이라스모스하고 비슷합니다. 그런 실험의 결과로서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진짜 임을 나타내는 말 이것입니다. 시금석이라고, 숫돌 생각하시면 됩니다. 굵은 숫돌. 숫돌도 처음에 가는 숫돌이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을 더 아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 가는 고운 숫돌이 있습니다. 거친 숫돌에서 확확 긁어서 일단 날을 좀 세우고, 그 다음에 고운 숫돌에다가 갈아서 아주 말하자면 칼을 예리하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금석에다가 확 하고 광석 같은 것을 그어보면 그러면 덩어리로 볼 때에는 검은색이었는데 갈아보면 노란색이 될 수도 있고 녹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가루상태와 고체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원래 성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판단하게 되는 것인데, 바로 이 시련이 시금석 역할을 해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갈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섭리 속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신의 믿음이 어떠한 상태인가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끔 기회가 있을 때 갈아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믿음이 이 정도다."라고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시험을 이기려면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결국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결국은 하나님을 의존하며 사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떠남으로서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다시 복기를 하는 것입니다. 바둑에서 다 두고 그 다음에 한 오단 육단정도, 오단 육단까지도 안가고 삼사 단만 돼도 그것을 열두 줄 열두 줄 가득 놓고 다 집수까지 셌는데 복기하라고 하면 처음에 둔 돌부터 다 복기를 합니다. 놀라운 기억력이지요. 그런데 그 기억력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 놓으면 결국은 이렇게 놓을 것이라는 수를 알기 때문에 거의 다 완벽하게 복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에 들었을 때와 시험에서 이길 때, 결국 반대의 복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었을 때 결국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을 떠났지요? 온전한 신뢰를 저버렸지요? 그래서 결국은 믿음으로 살지 않았지요? 그것을 다시 복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믿음이라는 것의 정체가 뭐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 온전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시편 65편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다른 곳에서 올 모든 소망을 끊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문제1번, 시험으로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시도, 증명, 실험, 유혹, 훈련 등등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유혹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문제2번, 시험이 보편적인 이유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사단의 세력 때문이다. 신자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문제3번, 시험을 만날 때 기뻐하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험을 이기고 나면 얻게 될 인내라는 덕이 금보다 훨씬 더 귀하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문제4번,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진짜 시련입니다. 아까 그쪽은 유혹에 가까운 단어이고, 이것은 시련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통해 자신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는 말은 시련을 당하는데 그것을 믿음으로 감당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혹도 믿음으로 감당해 나가고 극복해 나가면 그게 결국 믿음의 시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가 서로 말하자면 유사한 뜻이 있으면서 하나는 시험의 유혹받는 측면을 말한다면, 또 하나는 시험의 또 다른 측면인 견디고 이기어내는 측면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믿음이 동반되어야지만 이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5번, 시험의 때에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다시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바래야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시험이 들 때 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의 마음을 다시 회복할 때 우리의 믿음은 부쩍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계속 시험을 치르면서 자기 실력이 이 정도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시 또 시험치고, 이러면서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 오늘 조금 첫 시간이라 약간 길었습니다. 공부 어떠셨습니까? 여기에 댓글들이 죽 들어왔는데 한두 개만 좀 보겠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습니다. 역시 이 상품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시험에 들면 혼란이 온다고 하셨는데 은혜가 먼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그 다음에, 죽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기원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네, 진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결국은 첫 번째 시험을 이기는 디딤돌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책을 공부하는 것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기 바랍니다. 제가 이 책을 13교를 보았고 요즘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로 제 혼을 갈아 넣었습니다. 진짜 힘들여서 쓴 책이니까 여러분들 마음을 집중해서 꼭 읽고 영혼에 큰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