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혜를 구하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녹취자:박나리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진짜 가을이 앞으로 훨씬 다가온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에 부는 쌀쌀한 바람이 우리의 기분을 참 좋게 합니다. 이것도 잠깐입니다. 이제 춥고 눈 내리는 겨울이 옵니다. 저는 가을을 제일 좋아합니다. 가을은 영적인 침체에서 회복되기도 너무 좋은 계절입니다. 시험에서 벗어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시험에 관하여' 제3장 '지혜를 구하라'로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험에 들게 됩니다. 여기 이렇게 왼쪽에 사랑이 가득 찬 신자는 은혜의 지배 아래 있던 신자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게 되면서 무장을 해제시킵니다. 무장이라는 것은 지성, 정서, 의지가 각각 자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통제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게 되면 그 죄는 처음에 한 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사랑이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한 죄가 계속해서 잠식해 들어갑니다. 이렇게 되면서 죄가 자기의 영향을 확대시킵니다.
죄가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지성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군은 바보가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방어할 준비와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아무 준비 없이 뜨면 밑에 있는 수많은 미사일, 방공포 등에 의해 격추될 염려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항공기가 뜰 때 공격할 수 있는 자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감시해두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전쟁이 시작되면 그 좌표를 보고 비 오듯이 미사일을 쏟아 붓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곳에는 대포가 사용되겠지만 거리가 먼 곳에는 미사일 폭격이 이루어지면서 포대를 무력화시킵니다. 폭격을 당하는 제일 첫 번째는 레이더 시설입니다. 지금은 그라울러기 같은 전자전기가 나와서 비행기가 떠서 음파 폭탄 같은 것을 떨어뜨리면 모든 전자기기와 안테나가 무력화되는 기계도 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기능을 망가뜨리고 그 다음에 전투기와 폭격기가 들어가면서 장악을 합니다. 그리고 다 정리가 된 다음에 육군이 들어가서 추수를 합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그림을 보시면 제일 먼저 지성의 혼란을 가져오고, 동시에 정서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거룩하고 신령한 정서를 속되고 육적인 정서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의지도 변화 합니다. 의지가 전에는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다가 시험에 들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감정대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다녀오신 분 계십니까? 남산입니다. 원래 있었던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5개로 되어 있는 봉수대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사시는 한양이니까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작업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변방 북쪽부터 남쪽으로 왜구들이 출몰하는 해안가까지 굉장히 많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동해, 서해 다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만 불을 피웁니다. 봉수꾼이라고 하는 봉화대를 관리하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면 이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기가 안 피어오르면 저기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근무태만이거나 누군가의 공격이 있다고 짐작이 가능합니다. 항상 불을 떄워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꽃으로 하나가 보이면 저 멀리서 다시 불을 피워 전달해주고 계속하면 마지막 신호가 동서남북에서 모여서 남산 봉수대로 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불꽃이나 연기를 지핍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평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누가 갑자기 동해안에서 침범한 것 같다고 하고 불을 켭니다. 그러면 불이 전달되어 봉수대에 두 개의 불이 켜집니다. 그러면 낌새가 이상하다고 적이 우리나라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 세 개, 네 개가 켜집니다. 다섯 개는 지금 쳐들어오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험에 들게 되면 제일 먼저 지성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면서 감정도 혼란스러워지고 의지도 혼란스러워지면서 결국 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혜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소피아’라는 단어입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뜻과 그에 합당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뜻과 그에 합당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뜻과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기술까지 모두 포함해서 지혜는 인간의 선한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종류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것의 제일 훌륭한 역할은 지혜의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옆에 사람 보면 너무 기가 막힌 일이 있는 지 머리를 쥐어뜯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받게 되면 생각이 정돈됩니다. 모르니까 머리를 쥐어뜯는 것입니다. 결국은 시험 속에서 다시 일어나서 지혜를 받음으로써 어느 길로 걸어가야 될 지를 예전에는 몰랐는데 명료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면 적용해봅시다. 시험에 들게 되면 우리는 힘들고 괴롭고 왜 나만 이런 시험에 고생을 해야 하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됩니다. 한 가닥씩 잘 풀어보아야 합니다. 먼저 나에게 왜 이런 시험이 왔고, 어떻게 하다가 내가 시험에 들었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다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면 들수록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시험이 든 자에게는 어떤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아는 지혜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를 모르면 분수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시험에 들었을 때 감정에만 의지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내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는가라는 것을 남의 이야기를 통해 듣고 우쭐해지거나 낙심하거나 하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시험에 든 머리에서 더 좋은 생각이 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은혜를 받으면서, 자기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현실에 처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지금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지하실 방에 살면서 하루끼니를 걱정하는데, 텔레비전을 켜놓고 재벌들이 연애하는 것을 보며 빠져서 자기 삶의 현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은 잘못 사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현실이 어떤 현실인가,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는가 정확하게 알고 어떻게 이보다 나은 처지로 이동할 수 있겠는 지를 생각하면서 이성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허영은 우리 안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바깥에 우리들이 보고 느끼는 것에서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 것들을 차단하고 자신의 처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주님 앞에 진지하게 물으며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나를 이런 처지에 두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드러내시고 싶어 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 성품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때에 내가 비참한 처지에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무지하게 행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시고 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전에 살았던 삶보다 더 나은 길로 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시험의 본질을 아는 지혜입니다. 이런저런 사람 때문에 내가 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다입니까. 인생을 보는 눈이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험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을 것이니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는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바꾸시려는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하게 된 부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회심하기 전에는 공부도 잘했고 천재였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니교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무식한 사람들이나 믿는 말도 안 되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고 당시 지성인들이 많이 믿고 있던 마니교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혹 하고 들어갔는데 마니교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많은 철학적 의문들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의 그룹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있었습니다. 이단들이 단계를 나눕니다. 첫 번째 그룹이 청도자 그룹입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할 것이 없고 무조건 가르침만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만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선택자라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마니교에 대해 많이 알고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고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도자 그룹과 대화를 나눠보니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워낙 사람이 천재적이고 똑똑하니까 청도자들뿐만 아니라 선택자 그룹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자신이 대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니교를 믿고 싶어서 물어보는데 사람들은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지도자 포나투스를 만나서 논쟁을 하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답은 그런 것은 우리도 잘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태까지 가면서 결국 마니교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마니교 지도자들과 논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마니교도들을 돌아오게 만듭니다.
그런 일이 모두 있고 마지막에 회심했을 때 정리된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병들어 있었고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으리만치 자신을 책망하며 괴로워하였다. 사슬을 완전히 끊고 자유롭게 되고자 애쓰면서도 사슬에 묶인 채 뒹굴고 비틀었다. 나는 조금 묶여있었다. 묶여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사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 행하자. 이제 행하자’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이를 하면서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고무줄놀이를 하든지 아니면 공기놀이를 하든지 뜀뛰기 놀이를 하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라고 소리가 들렸을 때 어거스틴은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황급히 거처로 가서 아무데나 펼쳤는데 로마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서의 구절을 읽으면서 드디어 회심을 하게 됩니다. 강물같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친구 알리피오스를 떠나서 홀로 있는 곳으로 가서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과 이렇게 돌아오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셨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옵니다. 한 번 돌아온 뒤에는 다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로 접어들게 됩니다.
화면을 보시면 이렇게 시험은 결국 우리의 사랑을 다 갉아먹고 마지막에 죄로 가득하게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죄와 시험이 가지고 있는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험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았던 위대한 성도들은 없습니다. 그 시험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가지런하게 해야 할 것은 넘어진 순서입니다, 지성부터 먼저 가지런하게 해야 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 9장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가끔 질문을 합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면 말씀을 들어도 계속 욕망이 살아있고 나쁜 짓도 하고 노름의 습관을 끊지 못하고 음주도 끊지 못하는데, 그래도 교회에 나와야 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나의 의지도 매우 굽어서 목사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랄만한 죄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에 나오면 왜 그런지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이 내 마음 깊이 내려가진 않지만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끄러운 상태에서 교회를 나오는 것이 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당신이 그 말씀이라도 안 듣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제 노름 끊고 술 끊고 그 다음에 양심에 괴로워하는 고질적인 나쁜 짓도 끊고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거기에 빠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불문하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 말씀이 들릴 때 당신이 그 중에서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진리가 나오면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를 고쳐달라고 기도하면 당신이 망가진 시간보다 빠른 시간 안에 하나님은 당신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시험에 든 사람이 일단 말씀 앞에 서야겠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 시험은 끝을 보기 시작한 거고 이 자세로 돌아오지 않으면 시험은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갈 길이 멉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십시오. 시험에 들었을 때에는 다시 지혜를 되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본문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동기가 욕심, 정욕이었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일도 필요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저기 영혼으로부터 시작해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 그 질서가 그대로 잘 되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육신적인 것을 구해도 그것은 욕심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가슴에 새겨야 할 삶의 이치 중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주변에 보면 폐를 끼치는 것을 아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신은 누가 와서 자신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삶 자체가 자연스럽게 남에게 폐를 끼칩니다. 그것은 절대로 본받을 만한 삶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많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 출발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없게 해주시고 나 때문에 손해를 보게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기도 제목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첫 걸음입니다.
다시 돌아와 보면 그렇게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가며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육신에 있어서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기도하셨듯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이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그 위에 헛된 것들을 구하니까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에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러한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안 되어 불만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이런 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 내가 시험에 들려고 하오니 나를 지켜주셔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이 어딘지를 보게 해 주시고 내가 가려고 하는 그릇된 길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지만 지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신자를 영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려는 죄의 전략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이것이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제일 먼저 우리가 그림에서 배웠습니다. 지성의 혼란, 정서의 변화, 의지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지혜는 시험의 때에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나의 처지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시험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시험에 들었을 때,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2번, 지혜란 무엇이며 지혜가 주는 효과 두 가지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하나님의 뜻과 그에 합당한 지식, 혹은 그에 어울리는 삶의 기술을 모두 포함합니다.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은 생각의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지혜 자체가 진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뭐든 생각의 질서를 잡아줍니다. 그리고 시험 속에서 행할 바를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길로 출발할 수 있는 채비를 차릴 수 있습니다.
시험의 때에 실제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아까 배웠습니다. 자신을 아는 지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혜, 시험의 본질을 아는 지혜입니다.
4번, 지혜는 무엇을 통해 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간절히 구하라 그것 이상의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오늘 3과를 공부하셨습니다. 어땠습니까. 우리 구역장 여러분과 구역원 모든 분들이 짧은 시간 책을 읽으시고 공과를 잘 들으신 후에 풍성한 나눔을 가지시면서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특히 구역장님들, 어떠십니까. 날씨가 너무 아름답고 평일의 서울대공원은 어디를 가든지 그림 같습니다. 한 번 방역수칙 지키면서 김밥이라도 싸서 대공원에 가셔서 오래간만에 만나시고 구역 나눔도 하고 교제를 나눠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고 많이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