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혹과 죄의 계획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녹취자:이 솔
김남준 목사님과 함께하는 시험에 관하여 구역 공부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이제 가을이 정말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따뜻해서 겨울이 왔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행히 바람도 많이 안 불어서 대공원에 가보면 아직까지도 단풍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시험에 관하여 책이 이렇게 예쁘게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실린 사진들은 전부 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실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책을 우리 내일부터 교회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 내용을 약간씩은 보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나왔으니까 여러분 선물도 하시고 또 여러분 소장도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벌써 우리가 1장부터 시작해서 이제 10장까지 달려왔습니다. 참 빨리 왔죠. 그렇죠? 그래서 오늘은 1장 15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지난 시간에 미혹에 관해서 공부를 했는데 이번에는 이제 죄가 생산되는 것 그리고 그 결과인 사망에 대해서 이제 나옵니다.
우리가 이제 그 우리가 정신을 집중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또 우리가 가난한 마음이 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이렇게 말할 순 없잖아요. 이제 그것이 대가가 아니라 진짜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주권적으로 직접적으로 받는 것인데 근데 은혜를 받을 때에는 은혜를 받을 만한 조짐이 우리의 마음 안에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은혜를 받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그래서 그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은혜를 받는 우리 사이에 정서와 의지가 일치하게끔 하나님이 그렇게 작용을 하시는 것입니다.
왼쪽에 사람을 보면 지금 뭐 머리를 싸매고 있죠. 그렇죠. 굉장히 곤고해 보입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이제 괴로워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될 때 이제 이렇게 너무 괴로우니까 현실을 도피하고 싶겠죠. 그렇죠. 그 현실을 도피하게 되면 그다음에 이렇게 다른 곳으로 빠지게 되겠죠. 그렇죠. 이렇게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빠진다 그래봐야 어디로 가겠어요. 그저 쾌락에 빠져서 잠시 현실을 잊어보거나 혹은 오락이나 이런 것에 빠져서 현실을 잠시 회피해보겠죠. 그렇죠. 근데 그건 인생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이 아니잖아요. 오늘 해결 안 된 현실을
어떻게 내일 또 그냥 시간만 흘러간다고 해서 다른 현실이 도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결국은 이제 그런 곤고할 때에 자신의 곤고함을 깊이 생각하면서 이제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면 이제 은혜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는 거죠. 이때에 이제 정신에 아주 놀라운 집중이 이루어지게 돼요. 그래서 이제 이런 상태에서 이제 그 많이 이렇게 정신이 분산돼 있습니다. 느끼는 것들도 많고 생각하게 하는 것들도 많은데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머지 것들이 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도대체 여기서 헤어날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은혜와 죄의 유사성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요 은혜를 받을 때 그리고 죄를 지을 때 그때가 되면 은혜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아주 고도의 집중이 일어나게 돼요. 그래서 죄를 지을 때도 보면 그 죄를 안 지으면 나머지는 다 의미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온통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죄를 짓게 되듯이 은혜를 받을 때에도 아주 놀라운 정신에 집중이 일어나고 그리고 마음이 가난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마음은 이제 하나님 이외에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그런 그야말로 빈 마음이에요. 빈 마음. 그래서 결국은 아무리 그 쾌락이나 혹은 기분 전환이나 이런 것들로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가려보려고 해도 그게 안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쏠리지를 않아요. 그리고 오직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 라는 마음이 드는 거죠. 이게 이제 은혜 받을 때에 은혜 받으려고 할 때에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하나의 조짐이에요. 조짐.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보면 이제 제일 먼저 머리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죄에 대해서 이게 뭔가를 맨 처음에 뭔가를 생각하겠죠. 그렇죠. 생각을 하는 거는 어떻게 될까요? 직접 어떤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 직접 접하든지 아니면 이제 상상을 통하든지 둘 중에 하나겠죠. 그렇죠. 이게 이거는 뭐예요? 감각 이건 상상이에요. 신기한 게 상상을 하면 이게 아주 놀랍게 이게 그 감각으로 내려와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 아주 생생하게 자기가 그 재미있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슬펐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기가 그 슬픔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죠. 그렇죠.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것들 이제 어쨌든 생각이라는 작용이 일어나는데 이것들이 이제 욕망이 개입될 때 욕망이 그것을 붙들 때 근데 그것이 이 생각이 악한 생각이에요. 악한 생각. 이거를 욕망이 붙들 때 이게 만나면서 결국은 죄가 잉태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잉태 한즉 이라는 말이 쉴라 부사라는 단어인데 이게 결국은 뭐냐 하면 끌어안는 거예요. 의지로서 죄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품에 안고 사랑하는 거예요. 그걸 여기서 잉태하다 라고 이렇게 그 표현을 한 거죠. 그러니까 뭘 알 수 있냐 하면 여기에서 그 인간의 의지가 개입돼 있다는 건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생각한 것이 그래서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욕심이 욕망을 가지면 이게 죄를 품게 되는데 여기에도 이렇게 영향을 줘요. 그래서 욕망을 갖게 되면 생각이 그쪽으로 잡아 당겨지는 거죠. 끌려지는 거예요. 엑셀코어 라는 단어인데 델레아조도 마찬가지로 다 미혹 되는 거죠. 그래서 낚시꾼들이 미끼 같은 거 사냥꾼들이 혹시 덫을 놓고 미끼 같은 걸로 유인하고 동물들을 이렇게 그쪽으로 잡아 끄는 그런 동작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일 먼저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이건 이거는 이제 지성의 문제잖아요. 생각. 생각이 이제 욕심에 끌려서 이게 정상적으로 욕심에 끌리지 않았더라면 갔을 정상적인 길이 이렇게 있잖아요.
그렇죠. 근데 욕심에 이끌리면서 길이 이렇게 방향을 바꾸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생각이 미혹되고 그 다음에 정서가 이제 죄에 대한 사랑을 품으면서 그러면서 의지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이제 죄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 결국 아까까지 나온 이 모든 설명은 마지막에 목표가 죄를 출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생각 속에 머물고 마음 안에만 머무는데 이게 실행에 옮겨지면서 결국은 실행 실행에 오면서 죄는 출산되는 거죠. 아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있다가 9달 15개월쯤 되면 그럼 뭐 바깥에서 나오라고 막 이렇게 유혹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달이 차고 아이가 커지면 그 다음에 때가 딱 되면 아이를 잉태하게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착상된 수정난은 아기로 자라고 다 자란 아기는 몸 밖으로 태어나게 돼 있는 거죠. 출산하게 돼 있는 거죠. 그래서 죄가 이렇게 죄를 출산하게 되어. 결국 실행하게 되는 거죠. 그렇죠. 행동으로 옮기는 거죠.
그러면 그다음에는 출산된 죄는 거기서 멈추질 않아요. 그래서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자꾸 새끼를 쳐서 그래서 결국은 죄가 지배하는 그 삶의 질서로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가 죄 나름대로의 삶의 질서로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 죄가 지배하는 질서 아래로 우리를 데려가는 거죠.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윗이 있었죠. 그렇죠. 우리아와 밧세바는 부부였어요. 근데 간음을 통해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의 밧세바를 빼앗죠. 그래서 그런데 아이를 가졌어요. 그래서 우리아를 전쟁에서 빼옵니다. 그리고 둘이 동침을 하면 그럼 범죄가 덮일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아가 너무 충성스러워서 자기 동료들과 부하들은 전쟁터에서 힘들게 싸우는데 자기는 분에 넘치게 휴가를 왔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자겠느냐 그리고 이 사람은 그 부부가 동침을 하지 않는 거예요. 다윗은 우리아를 죽일 동기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아가 다윗을 해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죽여요. 뭐 때문일까요?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는 죽여야 했어요. 결국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지 않았다면 이 범죄는 절대 안 일어나잖아요. 근데 이 범죄가 일어나니까 이 범죄가 일어나니까 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이런 죄를 짓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는 간음으로 그쳤는데 여기에서는 살인죄가 추가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죠. 그렇죠.
그래서 결국은 이 죄가 이 죄를 낳은 거예요. 그럼 이 죄는 가만히 있겠어요. 또 다른 죄를 낳겠죠. 만약에 적절하게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이 죄를 막지 않으시면 그럼 다윗은 여러 가지 동기에서 죄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결국은 자신이 마음 속에서 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해도 이 지은 죄들이 태어난 죄들이 자기들끼리 함께 역사하면서 뭉치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게끔 만드는 거죠.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이건 하나의 아주 그 단순한 예에 불과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래서 결국은 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번 마음에 잉태되었을 때에는 출산되는 게 목표였는데 출산되고 나면 그다음에 완전히 질서를 바꿔버리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역하며 살도록 그렇게 죄가 역사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의 죄라도 소홀하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야고보서 1장 15절에 그 죄의 결국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죠. 그래서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이제 이런 식으로 그 죄 가운데 계속해서 살아서 결국 마지막에 세상 끝 날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거죠. 그러면 믿는 자에게 어떻게 그런 형벌이 있을 수 있냐 그러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결국은 마지막 날 심판을 받아봐야 될 것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자신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라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삶의 열매가 끊임없이 죄로 나타난다면 그러면 마지막에 자기 자신이 불신자로 판명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조노인 목사님이 항상 강조한 게 그거예요. 신자들에게는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라는 확신을 갖는 것과 함께 내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마지막까지 이 신앙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 라는 그런 아주 분명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삶으로서.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노력함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결국은 마지막 세상 끝 날에 죄인으로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죄가 또 죄를 낳고 그 죄가 죄를 낳는 것에 것이 그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아 이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렇게 살 수는 없구나 라는 각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그건 너무 당연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세상 끝 날에 받을 영원한 형벌 그래서 불신자들은 끊임없이 죄를 잉태하고 죄를 출산하고 그 죄가 장성하고 장성한 죄들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고요.
두 번째는 뭐냐하면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영혼의 죽음이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신자에게도 가능하잖아요 신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그런데 상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거의 없어요. 있긴 있는데 없을 순 없죠. 그렇죠. 있는데 아주 조금이에요. 그러면 이 사람의 마음의 상태는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죄에 친한 거죠. 그러면 신분과 상태 사이에 괴리가 일어나겠죠. 여기서 고뇌가 그치질 않는 거예요. 여기에서.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결국은 예수를 믿어도 인생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안 믿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예수를 믿지만 잘 믿지 않으면 예수 안 믿으면서 사는 것만큼 힘든 것이 이런 신앙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명목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실상이에요.
그러면 결국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아 결국 우리는 세상 끝 날에 영원히 형벌을 받을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게 끊임없이 이 욕심에 미혹되고 죄를 출산하고 출산된 죄가 또 나를 계속 지배하고 하는 이런 구조가 되면 결국은 나의 영혼은 죽은 상태처럼 되는구나.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정말 사는 것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수 믿으려면 잘 믿어야 된다 이런 얘기예요. 결론적으로는. 오늘 공과는 너무 간단했죠. 그렇죠. 그러나 매우 중요한 거예요.
죄와 은혜와 죄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습니까? 준비된 마음에 찾아온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 때 받기 전에는 은혜를 받을 조짐이 보이고 죄를 지을 때는 죄를 지을 조짐이 보인다.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이미 그것을 증거해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이제 사람이 정말 무서운 게 면역력인 거 아시죠. 그렇죠. 면역력을 항상 유지하도록 매우 특별히 신경을 써야 돼요. 특히 그 나이가 들수록 아니 나이가 안 들어도 그래요. 그래서 이제 면역력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징후의 대표적인 게 대상포진이에요. 온몸의 면역력이 거의 제로가 됐을 때 이제 대상포진이 나오는 거거든요. 근데 그래서 그것은 그 피부과를 가는데 피부과를 가면 안 되고 신경외과를 가야 돼요. 신경외과와 관련된 거예요. 이게 이제 굉장히 위험한 조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하면 면역 관리를 잘 해야 돼요. 그래서 이렇게 밤 열한시에서 한 시 그 사이에 우리의 그 면역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성분들이 우리의 몸에서 이렇게 분출된다고 그래요. 그 시간에는 잠을 자고 있어야 되는 거죠. 그리고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 그러니까 정크푸드나 패스트푸드 같은 것 피하고 면역력을 높여줄 수 있는 음식들을 섭취하고 절제에 있는 삶을 살면서 휴식을 취하고 이렇게 해야 돼요. 이게 면역력을 저장을 해놓고 있어야 되는 거죠. 면역력이 없으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뭐 그 바닷가에 나가서 그냥 조개 같은 거 밟고 그냥 다녔는데 그게 패혈증으로 번지는 거죠. 그 조개에서 그 균 같은 것들이 감염이 돼가지고 그 피 자체가 확 염증이 생기는 거예요. 피 자체가 곱는 거예요. 48시간 안에 죽어요. 조치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바이러스들이 들어와가지고요 눈동자, 관절 이렇게 부드럽고 먹기 좋은 것부터 달라 들어서 파괴해 버려요. 그래서 혹시 거기서 회복이 되어도 이렇게 몸에 이상이 오는 거지요. 불구가 되는 거예요. 굉장히 위험해요.
그래서 이제 죄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그때에 이제 아주 작은 죄에도 넘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은혜도 준비된 마음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죠. 그래서 열렬히 사모해야 되요. 은혜 받기를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지성이 설득되고 생각이 설득되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거죠.
잉태하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잉태하다를 묻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잉태하다는 무슨 뜻으로 썼느냐 이 뜻이에요. 그것은 그냥 그냥 머릿속을 오고 가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의지를 가지고 죄스러운 생각을 꽉 붙드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품에 앉는 거죠. 그렇게 될 때에 결국은 이 속에서 그 우리의 죄라고 하는 그 성향이 계속 강화되는 거예요. 악한 성향이 강화되는 거죠.
시험 속에서 출산된 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까 얘기했죠. 미혹되는 것은 잉태를 위함이고 잉태된 것은 출산을 위함이고 출산된 것은 그 다음에 지배를 위함이다. 이렇게 노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반역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세상 끝 날에 받을 영원한 형벌. 신자가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영혼의 죽음. 그렇죠. 우리는 신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현재적으로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에서 살게 되니까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거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를 믿는 것도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거예요. 불행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그런데 결국은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결국 예배의 감격도 없어요. 기도의 기쁨도 없고 말씀이 주는 그 즐거움도 없어요. 그렇게 될 때 결국 예수 믿는 것은 껍질이 되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현재적으로 이 우리의 영혼이 충만한 예수의 생명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 미혹되고 또 죄가 잉태하고 잉태된 죄가 출산되고 출산된 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공과 어떠셨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짧지만 아주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죄는 처음 발견했을 그때가 버리기에 가장 쉬운 때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버리기가 힘든 것이 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