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하여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으니 (마22:37)
녹취자 : 김경애
문제1)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주신 두 가지 기능은 무엇이며 마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매우 어렵고도 아주 재미있는 ‘영혼’이라는 주제가 나옵니다. 아마 영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어렵고 중요한 단어일수록 우리는 별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에 관해서 우리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그 영혼의 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푸는데 필요한 만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혼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는 ‘영혼의 아름다움’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8개인가 9개 정도로 기억하는데 읽으신다면 여러분들이 많은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에 주신 두 가지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영혼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먼저 하나님이 두 가지 요소로 만드십니다. 첫째는 인간의 영혼이고 이 영혼과 함께 육체를 결합시키심으로써 이것이 인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육체의 많은 기능들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이 영혼은 육체를 움직이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영혼에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은 영혼이고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공식이 나옵니다. 바로 이 영혼의 기능이 인간에게 의식될 수 있도록 영혼의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은 크게 두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이해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보고 깨닫고, 아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인간의 마음은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좋아하고 혹은 좋아하지 않는 호, 불호의 감정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것이 마음의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잠언 4장 23절에도 강조되어 있고 이 마음의 주체성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이 마음이 악한 쪽으로 흐를 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선한 쪽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본성은 악합니다. 그래서 본성대로 살아가는 데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그러나 그 본성을 거슬러서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특별은혜이든지 일반은혜이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이 두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잘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희망에 있어서도 이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시면 두 가지 선물을 드리겠는데 하나는 육적인 선물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육적인 선물은 성경공부가 끝나자마자 드리고 영적인 선물은 오늘 여러분들이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아서 다음 주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선물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벌써 말하면 재미없습니다. 구역공부를 끝까지 듣다가 저의 답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우리가 본문으로 돌아오면 인간의 마음에는 이해의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의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를 보고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본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고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이미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가지고 서로 연관시킴으로써 그 사물의 정체에 대해서 혹은 그 사물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을 우리들이 이해라고 부릅니다. 마음에는 이런 이해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의 목표는 바로 이런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서 그것이 계속 계발될 수 있는데 사실 우리의 근원적인 행복과 관련되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써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 우리의 행복에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최근에 중국에서 7조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정부에 압수당했습니다. 7조 원이라면 어마어마한 재벌인데 왜 그랬습니까? 경찰의 수사 결과 드러난 이 사람의 모습은 이중적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열심히 돕고 심지어 공안 우리로 말하자면 경찰 같은 곳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한 마디로 그 지역을 넘어서서 그 성의 유지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니까 이 사람은 사업을 하는 도중에 끊임없는 악을 저질렀고 심지어 자기의 사업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5명 내지 6명을 사람을 시켜서 청부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하게 시골에서 자라서 배운 것 없이 막노동을 하다가 어떻게 사업에 성공해서 그 야망을 끊임없이 키워온 것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 사형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너무 후회합니다. 그리고 내가 행한 그 끔찍한 일들을 제가 왜 저질렀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다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죽고 사라지는 것을 제가 왜 그렇게 애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게 다시 한번 인생이 주어진다면 그냥 작은 구멍가게 하나 차려서 밥을 먹고살고 가족들을 돌보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큰 행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후회의 말을 남긴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은 끊임없이 사업과 돈에 눈이 멀어서 방해되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범죄자가 되고 결국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것은 단순히 이해가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뭔가 모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서 참으로 행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보게 만드는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이해의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은 2 라는 것을 산술적으로 아는 것만이 이해가 아니라 이해를 더 크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내가 여기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까지가 이해의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능이 있기 때문에 믿음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향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가 만날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호, 불호의 감정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물건을 대할 때 ‘이것이 좋다. 나쁘다. 혹은 마음에 끌린다. 심지어는 마음이 배척한다.’ 라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인간은 어떤 사물에 대해서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그러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마무리로 설명드리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의 기능, 성향의 기능이 아주 올바른 상태에 있고 지금도 그렇게 행사된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런 이해의 기능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항상 오류에 빠지는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성향으로 기울어지는데 좋아하지 말아야할 것을 좋아하기도 참으로 좋아해야할 것 대신에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아도 될 것을 더 많이 좋아하는 이런 성향의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 이 모든 이해의 기능과 성향의 기능이 올바르게 잡힐 때 그때 인간의 마음은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게끔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의 기능이 정화될 때 거기서 지혜가 나오고, 성향의 기능이 정화될 때 거기서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지식과 사랑이 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제가 어떻게 인간의 지식이 사랑과 나뉠 수 없이 하나가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아주 이해하기 쉽게 특별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2번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많이 올라온 사연을 보겠습니다. 굉장히 많이 올라왔습니다. ‘설레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두근두근.’ 계속 설레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재택에서 출근으로, 아들은 독서실, 집은 폭탄 그러나 혼자만의 은혜의 시간.’ 반전입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끝났으면 좋겠지요? ‘아이들 온라인 수업 컴퓨터 켜주고, 과제 도와주고, 밥 차려주고,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없거나 아이가 없으면 그렇게 힘들 일도 없겠지만 또 혼자 있는 그것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닦아드린 마리아처럼 오늘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구역공부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주 잘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김현진님께 ‘인간과 잘사는 것’ 한 권 보내드리겠습니다. yullin.org에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김세원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라라라님) ‘사람이 영과 육 혹은 영과 육, 혼으로 3가지로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것이 맞는 것입니까?’
(오은혜씨) ‘저도 같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이미 벌써 구역공부 시간과 설교 속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 몇 가지 구성요소로 되어 있는지 알려면 공장에 가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처음 하나님이 만드셨을 때 무엇과 무엇으로 만드셨는가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티끌로 빚으셔서 육체를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는 동작으로 영혼을 창조하심으로써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또 성경에 보면 혼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혼은 ‘영과 혼 그리고 영혼’ 이 세 가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교차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인간을 세 등분 하는 것은 그리스철학에 영향을 받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세 가지로 설명하는 것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 모두를 가지고 있고 혼은 감각과 관련이 되고 그래서 동물들도 혼을 가지고 있고 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은 성경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여러분들이 영혼에 관하여 설명을 들어보시고 인간의 ‘행복을 찾는 그대에게’ 에서 첫 시간과 두 번째 시간에 걸쳐서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설명하는 설교를 재차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질문해 주신 분께 ‘성화와 기도’ 한 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요셉) ‘영혼과 마음의 관계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음은 영혼의 일부입니까? 아니면 영혼의 기능, 이해나 성향의 기능입니까?’
이것도 ‘마음지킴’이라는 시리즈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되었고 또 ‘행복을 찾는 그대에게’ 에서도 설명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모두 실체인데 마음은 Function입니다. 기능입니다. 영혼의 기능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땅으로,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되어 있는데 실체만이 갈 곳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기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 기능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혼의 기능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을 때 갖는 인간의 마음, 육체가 없을 때 인간의 영혼이 갖는 마음과의 관계의 기능, 이런 것들은 복잡한 철학적인 논변들을 불러옵니다.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인간의 마음은 이 땅에서 인간의 육체의 감각, 그리고 인간의 영혼의 기능 이 두 가지와 연결되어있는 인간의 정신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죄에 빠지고, 불신하는 모든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기능들이 그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2)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요구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보겠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이 나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나옵니다. 여기서 인간의 마음이 굉장히 중요한 화두로 등장합니다. 마음은 heart입니다. 그래서 종종 이것을 mind라는 말로 나오는데 어렵습니다. mind라는 영어 단어가 매우 어려운 단어입니다. 이것은 ‘정신’이라고도 번역되고 혹은 ‘생각’이라고도 번역되고 혹은 이것이 ‘마음’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진짜 고유한 뜻은 무엇이냐 하면 이 mind는 인간의 마음의 기능 중 생각과 관련된 기능입니다. 지적인 기능입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크게 지적인 기능과 애적인 기능, 그 다음에 의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지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지식, 혹은 지성입니다. 그 다음에 애정, 사랑 그 다음에 이것은 의지를 가리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지식과 관계된 생각을 mind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것을 ‘정신’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정신은 sprit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정신의 일반을 통칭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영어에서 mind가 나오면 mind stress가 있습니다. 무엇으로 번역할까 그 책이 철학책이냐? 신학책이냐? 과학책이냐에 따라서 또 저자에 따라서 아주 각각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서 살펴보아야하는 단어입니다.
아무튼 사도가 로마서에서 교리적인 긴 설명을 끝내고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처음 시작하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라고 되어있습니다. 본받는다는 말이 그리스어로 ‘수스케마티조’ 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틀입니다. 어떤 틀에 찍혀 생산되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붕어빵이 있으면 붕어틀이 있습니다. 이 안에 붕어로 된 틀이 있습니다. 여기에 밀가루 물을 붓고 가운데에 팥을 넣고 누르면 구워져서 나오는데 하루 종일 생산해도 똑같은 모양의 빵이 나옵니다. 이것이 ‘수스케마티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세대는 무슨 뜻입니까? 세대는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이 세대는 Generation인데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는 세상의 정신에 물들어서 그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이 세계의 정신입니다. 그 세계의 정신은 그냥 세상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그 세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그렇게 끊임없이 찍어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모두 그 시대의 정신이라는 풀빵 기계 속에서 거의 똑같이 찍혀져 나오는 그런 상품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보면 결국은 그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인간을 빚어내는 두 틀이 있는데 세상이라는 틀과 그리스도라는 틀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라는 틀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엇인지도 보여주셨지만 인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본성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다시 찍혀지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이 빚은 사람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세대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자기도 알게 모르게 그 세대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것만큼 세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지 않는 것만큼 세상의 형상으로 빚어지니 결국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성화의 정도에 따라서 세상을 많이 닮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많이 닮기도 하고 또 세상을 거의 닮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주 많이 닮기도 하고 반대로 그리스도와 거의 상관없이 세상을 닮는 사람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이 세대가 끊임없이 우리를 일정한 사람으로 찍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찍어내려고 하는 것에 저항하는 시작이 마음의 변화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옛날 드라마나 옛날 영화를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왜 그런지 모르게 촌스럽습니다. 예를 들자면 김두한이 등장하는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언제적 드라마인데 아직까지 방송해주는 방송국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서 보면 어떻게 저렇게 양복을 엄청나게 넓은 칼라에다가 바지는 몸에 붙지도 않고 자루처럼 헐렁하게 입고 넥타이는 왜 그렇게 주먹이 매달린 것처럼 커다랗게 매고 어쨌든 촌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촌스러운 것이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세련되었다고 하는 이 차림도 30년 후에 보면 아주 촌스럽고 어색한 차림이 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좋아하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입니까? 맨 처음에 누군가가 만든 사람이 있는데 결국은 그것들이 전파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게 되면서 유행이라는 것이 나오게 되고 왠지 그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소외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유행의 힘입니다. 그런 것들이 패션이나 혹은 먹을거리나 책과 같은 것뿐만 아니라 디자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관련되어서도 이런 풍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풍조입니다. 그런 세상의 풍조를 모두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의 풍조를 정확히 비판하면서 도덕과 상관이 없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따라 따르거나 따르지 않기도 하지만 그러나 도덕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세상의 정신을 엄밀하게 판단해서 그것들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독자적인 판단을 가지고 세상의 끊임없는 우리를 찍어내려는 것에 대해 항거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무조건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나은 선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여겨집니다. 비판적인 항거,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신실한 순종 이런 것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됩니까? 가장 갑갑한 질문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을 알겠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거기에서 신앙의 유무가 판별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자신의 마음이 작용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욕구할 때 하나님이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나는 어차피 타락한 인간이고 힘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을 욕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러면 그가 선택한 것은 그것을 안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혹은 다른 것을 하도록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한 결과에 따라서 인간은 응당한 대가를 치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나쁜 것을 선택한 그것이 잘못이었구나!’ 하는 것을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명제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 3번에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에 들어온 사연을 보면 ‘어제 오늘 영어단어 mind, heart, soul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서 묵상 중이었는데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적절할까요? mind 라고 하면 대게 ’생각‘이라고 번역하면 많은 경우에 맞아 떨어집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지성‘이라고 번역할 경우도 있습니다. Heart는 마음으로 번역하면 가장 올바른 것이고 soul은 그냥 영혼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맞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생각, 마음, 영혼 이렇게 기억하시면 됩니다.
(이한나) ‘신자가 죄에 빠지게 될 때는 이해와 성향 중 무엇이 먼저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드리자면 이 두 개가 사실은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맞물리며 작용합니다. 그래서 논리적인 순서로는 이해가 먼저인데 이해가 정동을 가져오고 정동이 반복되면서 성향이 생겨나는데 그런데 놀랍게 성향이 이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는 성향이 이해 때문에 생겨나는데 그런데 놀랍게 일단 성향이 생겨나게 되면 놀라운 방식으로 이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림으로 설명하면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무엇인가를 어떤 사물이나 혹은 사실에 대해서 이해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해되었는데도 아무런 정동이 안 일어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해가 정동을 불러옵니다. 예를 들면 제가 한번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지금은 좀 덜한데 예전에 고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육식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안 먹는 고기가 민물고기입니다. 왜 그런지 저와 친하지 않습니다. 특히 민물고기에서 나는 흙냄새 그 냄새가 저는 싫습니다. 그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엄청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하루는 차를 타고 가는데 혼자 운전하고 가는데 라디오를 틀었는데 라디오에서 전국의 맛집을 소개시키는 가운데 붕어찜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 요리전문가라기 보다는 맛기행 전문가였는데 자기가 경험한 붕어찜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는데 그 설명을 쭉 듣고 나니까 한번 먹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적절한 기회가 닿으면 갈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지도를 가지고 직접 찾아갈 정도의 욕구는 안 생겼지만 ‘저렇게 맛있구나! 하고 저렇게 위생적으로 조리되는구나! 여태까지 붕어찜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던 것은 아마 제대로 만든 집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마음까지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이해를 가져오고 이해가 우리에게 좋아함의 정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되고 이해가 혐오함에 정동을 불러일으키면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것이 흡연입니다. 흡연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이 담배를 피우면 우리 몸에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주 잔인한 형태로 보여줍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이 어느 재벌이 죽은 다음에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폐를 보여주는데 폐를 자장에 범벅한 상태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때 제가 흡연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것을 보면서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동이 반복되면 여기에 성향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그럴 확률이 적지만 어쨌든 붕어찜을 한번 갔는데 기가 막힌 집에 갔다. 너무 맛있게 되었다. 그러면 두 번, 세 번, 네 번 그 다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안 가면 안 되게 되었다면 여기서 이렇게 생각에 영향을 미쳐서 붕어를 보면 살아있는 아름다운 물고기가 아니라 찜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먼저인데 그런데 성향이 이해를 지배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경험하고, 참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경험하면서 그렇게 해서 좋은 성향을 계속 쌓고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될 때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이분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yullin.org에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질문이 들어왔지만 3번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문제3) 우리의 마음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에 관한 중요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인데 그 영광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하는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요체가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는 이것이 성화의 요체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은혜와 은혜로 연결되고, 진리와 지식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은혜라는 것은 마음의 성향을 거룩하신 주님께 기울이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성경이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은혜라는 말이 나오면 이 셋 중에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하면서 적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 자체를 은혜라고 부릅니다. 구원과 관련된 것입니다. 두 번째 은혜는 객관적인 호의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대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너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고 할 때는 두 번째의 용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많이 쓰이는 용례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감화입니다. 은혜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자라가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받는 사랑의 감화가 점점 더 커져가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감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명하자면 마음이 중립적입니다. 중립적이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되자 ‘이것 정말 좋은 것이구나!’ 라는 마음이 생겨나면서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은 항상 지식과 감동을 동반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실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좋다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는 마음의 반응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발견하는 데에 사랑의 감동이 있고 그 사랑의 감동은 더욱 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더 잘 발견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싫어하면 그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고단하고, 사람이 좋아하면 그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하고 힘들면 힘들수록 알고 싶은 욕망이 촉진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신나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려움이 힘든 원인이 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아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자신의 삼위일체에서 이런 그림을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이렇게 마차가 있습니다. 말이 마차를 끄는데 여기에 바퀴가 달리고 당연히 뒤편에도 바퀴 두 개가 달렸습니다. 당연히 여기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이것을 끌고 다닙니다. 이것을 앞으로 가게끔 만듭니다. 어거스틴이 두 가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나의 말이고 이것은 나의 문장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말과 문장이라는 바퀴가 있는데 이것이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힘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이 사랑을 가져다주는데 그 사랑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경험이 결국은 하나님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달려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데 제가 작가로서 말씀드리자면 아이들에게 잘 쓰게 하려고 먼저 가르치지 마시고 남들이 못 느끼는 정도로 느끼는 훈련을 먼저 시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풍부한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거기에 문법과 논리학과 수사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삼학이라고 불렸는데 문법, 논리학, 수사학 이 세 가지입니다. 문법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언어의 규칙이고 논리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설득하기 위함이고 수사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느끼게 하기 위한 웅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천히 배우면 됩니다. 많이 느끼는데서 글쓰기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좋은 훈련 중의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하늘의 구름을 보여주면서 ‘구름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계속 쓰게 하는 것입니다. 구름 하고 작대기 긋고 솜사탕, 솜사탕 하고 작대기 긋고 솜이불, 솜이불 하고 작대기 긋고 추위, 추위하고 작대기 긋고 이불 차내고 자던 자기의 이불을 덮어주던 엄마,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상관 없는 단어들이 수십 개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얘는 이것을 연상 속에서 뭐든 연관을 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계속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때에 거기서 아주 창의적인 문장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업비밀이라 이렇게 쉽게 가르쳐주면 안 되는데……. 영업비밀 하나를 누설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결국은 넓게 보면 하나님 자신이시고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 지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날아가는 새 한 마리라도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라도 아니 심지어는 애들이 만들어 놓은 똥 한 덩어리에도 분명히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 한 마리를 보시면서 무엇을 아셨습니까? ‘하나님이 저렇게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으로 서른두 마리나 살 수 있는 저 새 한 마리도 저렇게 돌보시는데 하물며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진리를 하늘에 나는 새를 보시면서 터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들에 핀 백합, 심지어 아무 값어치가 없어서 보는 사람 없이 피었다 사라지는 풀인데도 거기서 하나님의 생명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 자체는 하나님이신데 그 진리가 우리 안에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신앙의 내용들을 우리들이 지각하게 만드는 요소 그것이 바로 이 진리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우리가 지식을 인식할 때에 거기에서 은혜가 오고 그것이 우리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오늘은 문제 3번까지만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들어온 것을 잠깐 보겠습니다.
누가 ‘워치만 니’에 대해서 질문해 주셨는데 ‘워치만 니’의 책은 보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워치만 니’는 전도자로서는 매우 훌륭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만 신학적으로는 매우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서 한국에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이 ‘영에 속한 사람’ 그런 책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아주 정통적인 복음 신앙을 떠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지방교회라고 이단으로 알고 있는데요. 목사님…….’
경건주의 말기에 신비주의파인 다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본받을 점이 많다고 할지라도 신학적으로는 매우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퍼져있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지 않은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조심하기 바랍니다.
(박삼석) ‘마음을 다스리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고 뒤늦은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성화와 관련지어 기도와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기대합니다.’
이분 박삼석님께 대답 대신 이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보시면 대부분의 답변이 여기에 들어있을 것입니다. yullin. org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에드워드 손) ‘성경,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그리스도 영적인 문제, 죽음, 부활 등 본질인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타종교에서도 들을 수 있는 선행, 도덕, 구제, 봉사 등 복음 아닌 비본질적인 것만을 설교하는 한국교회에 대해…….’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반짝이는 것이 금이 아니듯이 모든 도덕적인 것이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참다운 본질적인 도덕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에드워드 손 님에게는 좋은 질문해 주셔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한 권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yullin.org에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재를 가지고 진행하시는지요?’ 라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는 생명의 말씀사 책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드린다고 했는데 하나는 육적인 선물이고 하나는 영적인 선물이라고 했는데 영적인 선물은 다음 주에 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드리는 선물은 오늘 질문과도 관계되는데 인간의 욕망, 지식 그 지식이 은혜를 주고 어떻게 사랑으로 결합되어 우리의 본성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지성을 중심으로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설명을 들으신다면 여러분들의 상당수가 무릎을 치시면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또 육적 선물은 무엇입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들에게 시중에서 유행하고 있는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법을 시범 보여드리겠습니다. 달고나 커피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옛날의 뽑기처럼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부어서 부풀린 다음 딱딱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부러뜨려서 커피에 넣어먹는 것이 달고나 커피인데 그것보다 더 좋은 진짜 달고나 커피가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만들어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나른한 오후에 이 달고나 커피 만들어 드시면서 가족들의 유대를 돈독히 하시고 다음 주 구역공부에 참여할 의욕을 북돋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후에 선보이겠습니다.
(달고나 커피 만드는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