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행 2:11:14).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성령강림한 사건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이미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꿈꾸던 제자들에게 예고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 입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희랍어 원문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그 이스라엘을 그 나라에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무엇인가 하면 다윗왕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생 소원이 다윗이 왕이던 시절에 강성했던 나라같이 그렇게 이스라엘 나라의 번영한 시기가 오기를 바랬고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나라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이 비참한 형편에 처한 나라를 변화시켜서 다윗의 영광스러운 나라로 돌아가게 만들어 줄 때가 이때 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과정까지 다 지켜 보았는데도 여전히 이 속에 꽂혀 있는 것은 메시아 사상 자체가 이세상의 나라를 화려하게 회복시켜서 구약의 전성시대를 다시 가져오는 정치적인 위인으로서의 메시아를 꿈꾸던 사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그러면 에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틀린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하면 사실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기는 회복이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생각한대로 회복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정하는것 같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투로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이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들이 이스라엘 나라에 집착하지 말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회복시키시는데 그 이스라엘 나라는 너희들이 이제껏 알고 있는 육신적 이스라엘이 아니고 새 이스라엘이다 옛날 이스라엘은 창, 칼, 임금의 권한, 임금의 권력, 나라의 부강한 무력, 번영 이런것들에 의해서 세상의 자원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의해서 판가름이 되는 나라였지만 그러나 새로운 이스라엘이 수립될 것인데 그 나라에서 다윗의 보좌는 영영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승될 것인데 그 나라는 그런 세상 자원으로 온 나라가 아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증인이 됨으로서 오는 나라다 그런데 너희들이 성령이 임하실 때는 증인이 된다 예루살렘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 이것은 차례대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유다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땅끝에서도 동시에 한꺼번에 증인들이 되고 그렇게 될때 증인들이 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는 온다 그렇게해서 형성되는 나라가 새 이스라엘이다. 그러니 구약에서 다윗이 강성한 나라를 이루고 이웃의 작은 나라를 복속시키며 살았던 그 다윗왕국의 영광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미래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며 다루시면서 이루어질 그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다.
이제 그 그림자는 끝났고 진짜 그 그림자가 지시하던 새로운 나라가 온다. 그 왕국은 영적왕국이다. 그 나라가 도래하게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강한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은 바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오는 왕국이다. 이것이 예수님 답변의 골자 였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바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몰랐지만 막연히 구약에서 또 신약에서도 그들은 부분적으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오신다는 것이 어떤 방식이고 어떤 실제인지는 확실히 몰랐지만 그러나 오신다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기도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오순절날이 임했을때 모두 한곳에 모였을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으면서 앉은 운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 같이 저희에게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 불은 구약에서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상에 있는 어떤 장소와 특별히 교통하실때 그 장소가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함의 임재가 있다는 표시로서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해놓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특별히 기름부어 세우신 사람들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신이 충만히 임하는 경험도 이 사도들이 제자들과 함께 경험했던 경험은 능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성령의 강림은 일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부여된 일들을 수행하도록 그 사람들을 비범하게 만들고 주님이 주신 재능들을 북돋고 그 다음에 특별한 은사를 주시고 그렇게 해서 일하게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성령에 충만하게 임하신 사람들이 하나님과 매우 탁월한 교통을 누린것도 사실이었고 또 그것이 동일한 성령과의 교통이었기 때문에 질에 있어서는 신약시대의 사람들이 누렸던 이것과 다른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이 사람들이 훨씬 더 강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가 난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큰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죽어서 갈 천국이 아니라 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후에 임하게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강림을 통해 이루어진 이 성령의 축복이 요한이 경험했던 것 보다 뛰어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뚫고 들어 와서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과 더불어 성령 강림과 함께 치고 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옛날 세상 아직 끝나지 않은 옛 세상과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중첩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죄가 이기는 것 같고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하나님은 안 계신것 같은데 또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말씀속에 하나님의 영과 충만한 교제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마치 천국에서 우리들이 부여 받을 수 있는 놀라운 충만함과 생명 그리고 이 상황을 이기며 악을 이기게 만드는 은혜와 거룩함의 놀라운 능력들이 우리 심령속에 강력하게 부어져서 능히 이길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래에 임하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미 침투해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주인공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부와 성자와 함께 이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가 도래하는 것에 역사하시지만 성령이 우선적으로 역사하셔서 그런 나라의 도래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계획들을 두가지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성령 강림을 통해서 교회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승천하신 후에야 성령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몸에 접붙여져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물론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영적인 끈들이 있는데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서 이것이 정말 완전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만드시고 영적인 연합들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영적인 연합들이 구체적인 교회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인 보편 교회가 구체적으로 보이는 교회속에서 지역속에 세워지면서 성도의 보이는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강림 사건의 의의 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 강림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초로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고 보이는 교회를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강림 사건의 의의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몸인 교회속에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셔서 그래서 그 교회안에 미래에 이루어질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가 침투해 들어 오도록 만들어서 그래서 그 하나님께 통치를 받고 하나님과 특별한 교제를 누리며 사는 행복을 느끼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왕국의 행복과 기쁨과 복됨을 앞당겨서 성도들이 모두 누림으로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며 살아가도록 그런 소망을 교회가 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령 강림 사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한 사건도 결국은 이 성령강림 사건을 우리에게 도입하시기 위한 과정이었다고까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결과적으로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시는데 그렇게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그분께 접붙여진 모든 교회들이 결국은 성령이 내주 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안에 오셔서 매우 특별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왔다가 떠납니다. 신약시대에는그렇게 오셔서 그 관계과 영원한 이유가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 자체가 성령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성령과 함께 하셔서 아버지와 연합을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는 그 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는 그 영적인 교재의 결과로서 우리들이 영적인 연합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영원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의 시대를 성령강림 사건이 도입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놀라운 사실은 무엇인가 하면 이러한 성령의 도래는 목적 자체가 당신 자신이 높아지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강림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성령을 많이 경험했다면 그래서 그것이 성령의 놀라운 은혜라면 반드시 거기에는 표징이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면 성령의 은혜를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속에서 사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에게 임한 성령의 임하심이 신뢰할 만한 경험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가늠대 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하면서 성도들을 성경으로 데려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만나고 나면 성경이 달콤해 집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 있습니까? 영화 제목은 상관이 없는데 주인공이 좋아 영화를 보는 경우 있습니다. 꼭 그런 경우 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성경이 달콤해 집니다. 이유는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성경의 죄대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주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에게서 받은 연예편지 읽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듯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성령은 오셔서 바로 이 그리스도를 증거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었더라면 부활이 없었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성령이 오셨지만 오신 성령은 거꾸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영광가운데 계신 것과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것 그분이 죽도록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거꾸로 증거하시기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맨 처음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면서 강력하게 오순절 성령이 강림해서 처음에 일어난 놀라운 특징이 병이 낫거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나거나 아니면 기적적인 것들이 일어난 것들이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 강림 사건과 함께 제일 먼저 일어 났던 것은 성령 받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언어는 여러나라 말로 들렸는데 그 언어의 다양성과는 상관 없이 말하는 주제가 하나로 집약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직역을 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니 그 위대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둘도 아니고 하나 입니다. 그래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나 개인의 인생에 비추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계획을 비추어 볼 때 위대한 일 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 위대한 일을 말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건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지가 사십일이 지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모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자 이 사람들의 눈에 비늘이 벗겨지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렇게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신 것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셨지만 우리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그분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수없이 가르쳐 주셨는데 못 깨닫더니 성령이 오셔서 임하시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꺠달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 위대한 창조와 이스라엘의 달려 온 역사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역사와 성령이 강림한 역사와 이후에 종말이 있을 것이라는 이 창조로부터 종말까지 위대한 역사속에 듬성듬성 알았던 지식들이 엮여 지면서 어느 한 순간에 찬란한 불빛처럼 들어왔던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것입니다. 이 공간에 100촉짜리 전구를 예를 들면 천개를 집어 넣었다고 합시다. 천개 집어 넣어봐야 별것 아닙니다. 천개를 집어 넣었는데 전구가 220 볼트입니다. 여러분 한번 100와트 들어 오는곳에 220와트 끼워 본 적이 있습니까? 한번 끼워 보십시요 사고 안 납니다. 거꾸로 하면 사고가 나는데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전구에는 틀림없이 100촉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220용 전구를 100볼트 들어 오는 곳에 끼우면 5촉 정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여기에 천개를 끼워 놓아도 거의 성경을 읽기 힘들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100볼트로 들어 오던 전기를 220으로 승압을 해서 올리는 순간에 여기는 십만촉광의 밝은 빛이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배로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사도들과 성령강림 사건에 참여 했던 제자들의 지성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 그렇게 이 세상을 창조해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이 어느 한 순간에 확 들어 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영광과 기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늘 들어 오던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라는 사실 하나만 깨달아도 그렇게 감격적인데 이 사람들은 구약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회심하기전에 성경을 잘 모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성경과 지식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에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신지 하는 그 구속의 의미가 찬란한 불빛으로 나타났을 때 놀랍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영화 같은 것 중간에 들어 갔을 때 주인공이 몰랐을 때 굉장히 영화가 헷갈리지 않습니까? 제일 먼저 찿는 것이 누구 입니까? 주인공이 누구인지 찿아 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지식이 많이 있어도 이것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심적인 진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철학에도 능하고 많은 학문들을 섭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중심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예수님이 중심이신것이 깨닫게 되자 학문들이 찬란하게 연결이 되면서 온땅과 하늘위에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보고 난 후에 그런 영광스러운 지성의 변화가 에베소서나 골로세서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부분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심장이 멎는것 같은 죽을때까지 그 이야기를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그 세계에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한분을 향해 달려 온 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왜 그리스도 예수 이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런것들이 찬란한 빛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은 우리에게 그런 놀라운 일들을 도입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령 강림과 함께 생긴 교회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자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몸을 영적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몸을 이루는 연합의 자체가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에 이루어지고 또 성령과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연합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신자들속에 이루어지는 연합과는 구별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위는 하나님과 하나님끼리의 연합입니다. 그런데 이 아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런점에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구분하지 않고 밀어 넣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연합이 되었고 우리는 예수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연합을 이루면서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신데 그리스도의 신부는 하나님께로 한없는 성령과 사랑을 받아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것은 그 신부의 몸중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령의 강림이 오늘날 우리들이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영적인 연합으로서의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인 연합을 기초로 세워진 가시적인 연결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도간에 있는 놀라운 사랑의 연합, 진리의 일치 그리고 아름다운 하모니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섬김과 사귐의 교재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봉사 그리고 교회의 아름다움속에 나타나는 성도의 참된 행복이 모든 아름다운 그림들이 성령이 강림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적인 공로를 기초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신약시대의 교회들이 누리는 진정한 행복이 성령안에서의 행복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아는 자는 그리스도 구속의 의미를 알고 성령과 그리스도 구속의 의미를 아는 자 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의 목표는 결국은 이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문제가 많고 수 없이 토론하는 내용이 많아도 이 모든 문제의 답은 세상에 있지 않고 결국 답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 수렴하는 것입니다. 그런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교회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교회는 그리스도 아들를 통해 이루어지고 성령 안에서 한 교제를 이루면서 교회의 모습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이렇게 새워진 교회가 주님의 충만한 성령이 임했을 때 그 은혜가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에 눈을 뜨게 만들었던것처럼 그렇게 그 눈을 뜨게 만들어서 그래서 그들로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복음에 불 붙은 사람들로 형성하여 이 세상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웃리치속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누가 이야기 해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오랬동안 메마르고 굳었던 시골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이 전파되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 진실을 외쳐줄 사람이 성령 받은 성도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평생의 의무는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일인데 어느 학생이 책을 하나 펼쳤습니다. 지나가면서 이렇게 보니까 “나는 이 세상이라는 법정에 선 증인이다. 내가 일생동안 그리스도의 누명을 벗겨 드리리라.”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입니다. 그 의미를 이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뜻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설득으로서는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지성을 다 해서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이해하기 쉽게끔 더 많이 공부해서 일목요연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창조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오직 그것만이 돌같은 마음을 녹이고 철벽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깨뜨려서 그 마음속에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고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에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지 않는 성령 충만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느끼는 것이지 실제 주님의 충만이 아닙니다. 은혜의 충만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 그 자신은 예수를 증거하고자 하는 강한 소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외치느냐 국내에서 외치느냐 아니면 마이크를 들고 소리치느냐 아니면 이렇게 설교를 하느냐 아니면 옆 사람을 불러다가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 주느냐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방법의 차이일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자산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자산은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진리가 붙잡혀 있을 때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고 간절히 원하기는 할일이 많습니다. 정말 국내를 다녀보고 세계룰 다녀보고 발을 떼어 보면 어떨때는 정말 슬픔이 엄습합니다.
(찬송)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두워진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왜 탄식하면 모르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정말 뼈를 묻으며 섬기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일들이 전세계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어떨때는 슬픔이 엄습합니다. 이렇게 많은데 옛날에 찰스 핀이라는 복음 전도자가 아침에 맨하탄의 거리를 걷다가 땅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합니까? 저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고 있는데... 나는 어떻합니까?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런 현장들이 이 세계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은 머물러서 그 은혜에서 다시 부패하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가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건강과 육체의 힘이 모잘라서 못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물질이 없어서 못 갑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원들이 없거나 한곳에 모여 있어서 부패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도 밥을 먹거나 한국에서 밥을 먹으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엄청난 음식 쓰레기입니다. 적싱 이북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것을 아껴 먹고 보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미국같은데 가면 쓰레기로 나가는 것이 십분의 일은 먹고 십분의 구는 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모르지만 너무 아깝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들이 교회안에서 일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무엇인가 하면 아무일 안하고 무의도식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알고 그리고 그의 구원하신 은혜, 성령의 교제속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무의도식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살게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부패했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냥 살 수가 있습니까? 피땀을 흘리며 살아도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햇살의 길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자매들을 보아도 꽃같았던 자매들은 아줌마들이 되어 가고 아줌마 자매들은 이제 권사님 시키기를 기다리는 자매로 변해 갑니다. 권사님이었던 자매들은 이제는 노파가 되어 가고 그것이 살같이 빠르게 흘러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가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슬픔이 확 밀려 오는 것입니다. 티끌같이 살아 온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저는 어떨때는 가슴이 터져서 그 현장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보여 준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 불붙지는 않겠지요? 물질이 있는 사람, 건강이 있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 수 많은 사람을 부릅니다. 신음합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주를 위한 고난... 성령을 받았던 많은 사도들과 많은 제자들은 너무너무 행복했지만 그러나 고난받는 사람들을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자원들 주님이 주신 자신들의 모든 자원들을 주님을 위해 쓰고 싶었습니다. 이 큰 하나님의 일을 알리는 모든 일에 자기를 다 쓰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나오고 은혜는 달라고 하지만 무의도식하는 교인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왜냐하면 도대체 그런 사람들이 받는 은혜라는 것이 얼마나 되겠으며 또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까?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주님이 내가 왜 너에게 은혜를 주어야 하냐? 내가 너에게 은혜를 주면 무엇을 할래? 라고 할 때 그래야 내가 좋죠 라는 생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은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은혜 그 자체 안에는 소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미 주신 은혜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 부르는 소명의 증거입니다. 성령 강림은 이런 시대를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대치할 수 없는 가장 절박한 소명은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의 마음을 품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죽은자를 살리고 하는 이런 모든 놀라운 일들을 위해 이바지 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힘써야 할 일들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마음에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성령의 은혜의 시대에 태어나게 하셨구나 방황하는 인간을 불러 예수께 구원 얻게 하시고 주님의 몸에 접붙여져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시고 교회에 부여하신 그 성령의 은혜 때문에 내가 그 성령안에 있는 사람들이 되었구나 아멘 그래서 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그 크고 위대한 일을 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전파하고 이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일에 헌신하는 그런 교회가 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충만한 성령이 은혜를 부어 주시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