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3
십자가의 정신으로 기도하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7-28)
오늘 읽어드린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못 박히시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에 그 예수 그리스도 뒤를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왔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백성이라는 사람과 여자의 큰 무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셔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한 때는 무덤에서 수의를 두른 채 걸어 나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이 놀라운 일들을 깊이 경험하고 또 소문을 듣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놀랍게 이 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트렸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이 죽음의 위협에 처했을 때에 그를 구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자신이 죽음에 처할 때는 아마 무슨 일인가 행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마 이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나타내었던 그 놀라운 이적과 그리고 기적을 뛰어넘는 또 어떤 제3의 더 크고 놀라운 표적들을 행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이러한 기대감으로 사람들은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이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때는 유대인들이 절기로 지키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이 되면 남자는 어디에 살든지 전부다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 앞에 그 절기를 지켜야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향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에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재판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이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사형언도를 내리면 예수를 추종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나서 항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는 하지 말자’ 그랬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기필코 유월절에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이제 해방될 때에 마지막으로 죽음의 사자가 바로의 처음난 아들부터 시작을 해서 짐승과 가축의 처음 난 것 까지 모두 생명을 거둬가는 이러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있을 때에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시를 주시는데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고, 쓴 나물을 먹고, 그리고 신발의 끝을 단단히 동여매고, 허리띠를 동이고, 지팡이를 잡고, 그 일을 행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속히 너희로 하여금 애급을 떠나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일이 있고나서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모든 애급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까 애급에 온 집에 애곡함이 있었으니 그는 죽음을 보지 아니한 집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보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만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죽음이 미치게 되어 있었으나 어린양이 대신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슬픔과 사망의 죽음을 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급에 있는 백성들은 사람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온 집이 애곡하게 되었지만 그 눈물이 이스라엘 백성의 집안에 없기 위해서는 죄 없는 어린양들이 비참하게 문 인방에서 죽어가는 일들이 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유월절에 일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수없이 죽어가는 그 어린양의 피로 가득한 그 예루살렘에서 바로 그 유월절에 그 어린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당연한 구속사적인 귀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러지 말자고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백성이 있었고 여자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어떻게 못 박혀 죽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히 이 제사장들도 판단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 그런 사형언도를 받으시면, 그런 부당한 형벌을 받으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주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백성들이 소리 지르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고함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된 도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소리치는 백성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뱃세다 광야에서 축복하시며 떼어주시는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먹고 배불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로부터 치유함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소리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어떤 신비하고 은혜로운 체험을 했는가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인격 안에서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고 오늘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이 삶이 그러한 그리스도예수와의 인격적인 관계, 그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흘러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사랑,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 속에 매일같이 넘치도록 부은바 되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이런 관계를 붙들고 살아가느냐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가장 커다란 관건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온몸에 수의를 휘감고도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 앞에 온 몸에 수의를 휘감은 채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수많은 사람들은 뱃세다 광야에서 먹여주시던 그 기적적인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그 두 눈으로 눈먼 자를 고치고, 그리고 저는 자를 일어서게 하시고, 중풍 병 들린 자를 온전케 하고, 그리고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쫒아주시는 그 놀라운 이적들을 모두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 그처럼 자기의 인생 가운데 와서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때에 그들은 그 뒤를 따라가는 방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관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이 백성들이 이렇게 구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5절은 말하기를 백성은 서서 구경했다고 말했고 48절은 말하기를 구경하기 위해서 많은 무리들이 이 일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십자가의 못 박힘을 방관하고 구경하며 쫒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뒤에는 또 많은 무리가 따라왔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쫒아올 수밖에 없는 그런 무리들이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이 눈물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슴을 찢고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고 제안을 한다고 해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주여 삼창을 부른다고 해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나게 감정을 위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슬픔은 진실이고 눈물은 참된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뒤를 따라오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해달라고 통곡하며 걸어가는 이것은 오늘 이 골고다로 올라가는 이 언덕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는지를 오늘 27절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함께 동행 하며, 그 인격 속에서 하나님과 사귀는 기쁨이 있고,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고, 그 교제를 통하여 오늘도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고, 그 인격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 속에 흘러들어오고 있는 이러한 놀라운 신앙의 감격과 믿음의 체험과 은혜의 체험과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생명들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이 골고다 언덕의 그 뒤에서 슬피 울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진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모든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27절을 읽으면서 자기가 이 백성들에게 속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신다면 나도 이 여인들처럼 슬피 울며 그 뒤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거기로부터 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 은혜를 우리 속에 소유하며 살아가지 않으려면 언젠가 불현듯 27절의 상황이 우리 앞에 엄습할 때 우리가 이 여인들과 같이 복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구경하는 이 백성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구경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죄인이었고, 이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았고, 이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들이 참된 하나님과의 사귐이 무엇인지 모르고, 불순종하고, 반역하며, 거스르고, 어그러지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형벌받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이렇게 통곡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이 여인들이 올라가면서 그리고 목표로 삼고 있는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몰랐습니다.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위대한 영적인 승리를 거두시고 그 지옥의 십자가가 바뀌어서 영광스런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십자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여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그 여인들은 그런 놀라운 구속의 비밀과 부활의 영광에 대해서 눈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이 여인들에게 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리고 그 치욕의 십자가가 결국은 변하여서 영광과 그리고 아름다운 존귀의 십자가가 될 것임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치욕과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치욕과 멸시와 천대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었지만 이 골고다 언덕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말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십자가가 멸시와 치욕밖에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십자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따라 올라갔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가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 이 여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가슴을 치게 만들었고 사랑이 이 여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흐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에게 미쳤던 세상이 알 수 없는 그 놀라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그와 함께 주고받았던 놀라운 신앙과 사랑의 교제들이 그것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고 그렇게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이 오늘 이 여인들을 골고다 언덕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 십자가는 멸시와 천대와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이 멸시와 천대밖에는 기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멸시와 천대를 보고도 오늘 그들을 움직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랑 때문에 오늘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멸시와 천대밖에 없는 그것을 인하여서도 십자가를 향하여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었다면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있는 영광스러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얼마나 잘 올라가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그 때에 그것이 누구를 위한 십자가였습니까? 죄 없으시고, 흠 없으시고, 그리고 순결한 예수께서 오늘 간악한 죄인들에게 멸시와 치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죄악 때문이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우리의 죄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이 그를 채찍질 하였고 우리의 모든 치열한 죄악들이 그를 향하여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가 모욕을 받을 때에 우리가 그분을 모욕하는 그 자리에 거기 서있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물과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때에 그가 그렇게 못 박혀야했던 것은 바로 여러분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아는 깊이는 곧 그리스도를 아는 깊이이고, 그리스도를 아는 깊이는 곧 신앙의 깊이인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이 27절속에서 교회를 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기 위해서 모인 유대인들과 같이 매주일 교회에 모였다가 흩어집니다만 그러나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충만해져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놀라운 은혜를 손수 베푸셨던 많은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참된 사랑과 은혜를 받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긍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가 찔릴 때에 구경하고 그가 채찍질 당할 때에 오히려 그를 멸시하며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현재적인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베푸신 사랑의 깊이와 그 은혜의 넓이를 알고 우리를 위해 구속하신 십자가에 나타난 그 사랑의 질과 넓이를 알아서 그 하나님의 아들의 한없는 사랑을 오늘 우리가 느끼며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오늘 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가슴 벅찬 참된 지식 대신에 앙상하게 배운 머리의 지식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래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이 차가운 신앙의 고백을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대신해서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지켜주지 못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셔야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죄인들을 부르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던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랑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소망이 없는 인생들을 찾아오시고 스스로 일어설 수 없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해 다가오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녹일 때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그들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두운 세상을 믿음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는 것과 같은 위기가 교회 속에서 되풀이 될 때에 이렇게 구경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때문에 가슴을 치고 애곡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통곡하며 우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개를 돌리고 무엇인가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완전히 낙담한 그래서 완전히 육체적으로 탈진한 그리스도께서 얼굴을 돌리고 여인들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돌이켜서 그들을 향하셨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수많은 백성들이 아니라 자기 가까이에서 인파를 헤치며 눈물을 흘리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는 눈물로 얼룩진 이 여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라사대 했습니다.
여러분 요새 매일 넉 장씩, 두 장씩,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저도 그 프로그램을 따라서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말씀 생활이 어떠합니까? 혹시 읽다가 어제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 아물아물하고 오늘 읽고도 오늘 낮에, 아침에 어디를 읽고 나왔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한 달을 읽었는데도 한 달 동안 하나도 도전받은 말씀이 없는 이러한 죽어있는 말씀 생활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개선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그 사람들만을 향하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를 기뻐하면 그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를 기뻐하면 예배시간에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올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뻐하지 아니 하면 성경을 읽어도 그것이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 스쳐보고 지나간 뉴패션 그 옷은 머리에 생생하게 남는데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희끄무레하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잊혀 있지 않습니까? 사고 싶은 물건은 점점 크게 보여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어제 저녁에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석되어서 아무것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똑같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기경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겠으며 어떻게 우리의 삶이 개선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사랑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저희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누가 성경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마음을 가졌을 때 말씀을 듣느냐가 누구의 설교를 듣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내적인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랑!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주관할 때에 들려오는 한 마디의 성경말씀은 그렇지 못할 때 들려오는 일 만 마디의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더 힘 있게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결국은 그 십자가조차도 기운이 없어서 구레네 시몬에게 넘겨주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는 그리스도 예수의 발걸음은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여인들이 그 뒤를 따라 올라가며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생각은 이런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리스도시여 유언이라도 남겨 주옵소서. 마지막 말씀이라도 우리에게 주시고 가시옵소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눈을 돌리지 않으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이것처럼 오늘도 여러분들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랑을 새롭게 회복하고 그리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이해와 사랑의 부족을 깊이 깨닫고 깊이 뉘우치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다시 한 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이 녹아지기를 원하는 이런 애닮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면 여러분들은 놀랍게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말씀을 새롭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가슴 저미는 그리스도 예수의 우리를 향한 러브레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닫혀져있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마치 헤롯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리가 무엇이뇨 물었을 때에 그리스도가 침묵하셨던 것처럼 성경은 침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소유하기를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너희는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무슨 뜻입니까? 이 여인들이 이렇게 슬피 울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 여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랑은 주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것은 내가 받는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웃으며 떠들며 올라갈 때에 너로 하여금 가슴을 치게 만들고 너희로 하여금 내가 쓰러질 때에 슬피 울게 만들고 그러면서 내가 넘어져도 내 뒤를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악한 병정들이 너희를 협박하고 너희를 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애를 써도 끝까지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뒤를 쫒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너희의 마음속에 있는 나를 향한 사랑! 그것은 내가 안다. 그것은 내가 안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번갯불같이 번쩍하고 지나가는 그런 깨달음을 저는 어제 밤에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실한 사랑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죽으신 것을 인하여 감격할 뿐만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 가지고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여인들로 하여금 가슴을 치고 슬퍼하고 울며 따라오게 만들었던 그 사랑은 받으셨으나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리고 비참한 슬픔에 잠기는 것이 그리스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찬양)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를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 그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향한 과도한 슬픔으로 그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걸어 나오는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바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늘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너희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마라 너희 눈에는 지금 내가 이 십자가를 지고 치욕과 멸시를 받으며 이 죽음의 피를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으나 잠시 후 이 치욕이 끝나고 나면 이 부끄러움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승리가 내 앞에 기다리고 있노라.’ 할렐루야!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영광의 부활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나는 피 흘려 멸시와 천대 속에 죽어가도 죽음을 깨뜨리고 영광의 부활로 나아가겠거니와 그러나 나를 못 박았던 이 예루살렘의 사람들 그리고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 모르는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중보의 기도의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으로 충만한 교회에는 언제나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따라서 심판을 눈앞에 둔 이 세상을 향한 슬픈 눈물과 그리고 탄식하는 기도가 교회를 메웠던 것입니다. 저는 요즘에 우리 교회에서 이러한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현저하게 기도의 힘이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 무너져가는 성벽을 때울 것이냐고 물었던 에스겔 선지자의 초청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의 깊이를 알고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죽어가는 이 세상과 세상의 딸들과 세상의 자녀들을 위해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손길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 눈물로 교회가 기도해야할 사명을 세상 끝 날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아무에게나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으로 피 흘리며 끌려가시는 예수의 뒤를 애통하며 따라오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은혜가 가슴 속에서 역사하고 그 사랑과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오늘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그 넓은 사랑과 구속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받고 그리고 그 은혜로 충만해졌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최고의 대치할 수 없는 의무는 세상과 그리고 세상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예루살렘의 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나를 위하여 과도하게 슬퍼하지 말라. 어차피 나는 이렇게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왔고 내가 죽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고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예수의 크고 놀라운 구속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가 예루살렘의 딸들이 되어서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가 고난 받을 때에 함께 슬퍼하고, 그가 영광을 받을 때에 가려진 그 영광의 휘장 뒤에서 함께 즐거워하며, 주가 존귀하게 될 때에 말할 수 없이 위기가운데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서 보내신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이것입니다. 잠시 후에 로마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너희를 멸할 것이고 그리하면 이렇게 구경하러 내 뒤를 쫒아오던 사람들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리니 이런 멸망에서 너희 자녀들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너희가 나를 향한 사랑으로 감격하며 내 뒤를 따라오며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도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런 자리에 서서 나를 섬기고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모두 버리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전날 밤도, 그리고 지치고 낙담한 몸을 이끌고 골고다 언덕이 아닌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로 승리하셨던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십자가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을 기억하며 육신의 안일함과 즐거움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보좌 앞으로 나아와서 이 세상과 교회와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오시는 그날까지 이렇게 십자가의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 그 보좌의 간구를 우리들이 물려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대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교회가 십자가의 정신으로 다시 한 번 무장되어서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십자가를 이기기 위해서 꼭 필요하였던 그리스도 예수의 기도를 배우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