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따른 사람들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 23:26-27)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고난 주간을 바라보는 주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하는 눈물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이 복음적 사실에 대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주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은 십자가에 대한 그의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소 모호해 보였던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신앙이 구약 속에서 계시되었지만, 이제 신약 속에서는 이 하나님을 향한 충심의 경외가 어디로부터 시작됐는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바로 이 십자가 신앙을 가지고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역경을 견뎠습니다.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이 십자가를 붙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가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내가 예수를 위하여 죽어야 될 때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나고 나면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십자가로 말미암는 부끄러움과 치욕을 기꺼이 당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든 용기와 자랑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내게 자랑할 것이 없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때문에 번영하고, 예수 때문에 성공하고 예수 때문에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려보려고 하는 이 쓰레기 같은 사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십자가의 도리와는 거리가 먼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 생활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광경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 형벌이 행해지기 전 이 사람이 죽어야 마땅하다는 판결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이 바로 빌라도의 법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법을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형 언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단어조차 떠올리기를 싫어하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형벌은 로마가 변방의 야만족이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사형제도입니다.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끔찍한 사형제도입니다. ‘스타우로스’라고 불리는 이 십자가는 먼저 죄 지은 사람을 가로막대기에 하늘을 보고 눕힌 후 손바닥에다가 못을 박습니다. 이때의 못이 기차의 레일과 침목을 고정시키는 그런 종류의 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을 묶어 도르래 같은 것을 이용해서 미리 세워놓은 세로 막대에 끼워놓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손 한가운데 못을 박았는데 이 사람의 몸무게 때문에 자꾸 손이 찢어져서 시신이 십자가에서 떨어지니까 그 후에 사람들은 손목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달린 채로 다시 두 다리에 못을 박아 세 개의 못으로 사람을 고정시켰는데 그 몸무게 때문에 시신이 자꾸 떨어지니까 이제 발밑에다가 작은 나무를 붙여서 지탱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손목을 나무에 못 박기 위해서는 뼈가 깨지는 십자가의 못 박힘이 있어야 됐는데 이때에 대부분 동맥의 핏줄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출혈이 일어나게 되고, 이 출혈이 일어날 때 의학적으로 인체에 두 가지 변화가 오는데 하나는 타는 듯한 목마름과 그리고 머리가 깨어질 것 같은 무서운 두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형벌의 잔인함은 다른 데 있었으니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고통을 당하게 하고 생명이 있는 시간까지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죄수들은 3일 동안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받는 형벌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로마 사람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자신들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형벌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범죄가 아니라 인륜 파괴 혹은 국가 변란과 같은 중대 범죄자들에게만 이 형벌을 적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으셨습니까? 증인들이 있었지만 그 증인들은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위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오히려 표창장을 받아야 할 일을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병든 자를 의료 혜택도 없던 그때에 주님이 직접 어루만져 고쳐주셨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시고 불의한 자를 꾸짖어 정의로 돌아가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 판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종교적인 음모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공평을 가르치던 예수님이 왜 이 불법한 재판의 결과에 조용히 순복하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비록 불법한 자들의 악한 소행이었지만 그 뒤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가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를 짓고 그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 수없이 죽어가던 많은 제물들,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한 그 수만 제물들이 결국은 한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불법한 재판을 내린 이 못된 재판관들에게 그리고 이 모든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을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을 성취해 나가시는 아버지의 지혜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깊이 이 십자가를 감당함으로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당시 이 십자가 형벌은 집행되기 전 두 가지 규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기 전 죽도록 매를 맞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자기가 매달린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용 언도를 받으신 후 브라이도리온이라고 하는 왕궁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거기서 심하게 구타를 당하시고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피로 물드셨습니다. 우리만 생각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는 거친 가시 면류관이 눌러 씌워졌고, 이마에는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기신 후에 홍포를 두르고 그 분의 손에는 커다란 갈대가 들려졌으니 이는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자여라고 비웃으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 구타와 모욕이 모두 끝난 후 예수님이 당신이 매달린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오르는 길에 나타나셨을 때는 금요일 아침이었고,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야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자꾸 쓰러지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예수님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오는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억지로 이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여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사람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복음 전도자가 되어 순교의 길을 갔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잘 견딜 때 하나님은 비록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이지만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여러분의 몫에 태워진 십자가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II. 십자가를 따라온 사람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에 십자가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유월절 유대인의 최고의 명절이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인파를 이루며 언덕으로 함께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광경을 지켜보는 성경 기록자는 명쾌하게 그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백성이라는 사람들이었고, 또 다른 부류는 여자의 큰 무리였습니다.
A. 구경하러 온 백성들
그러면 먼저 이 백성들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성경 3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성경 4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고 돌아가고” 이 백성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는 이 소식은 당시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뉴스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예수님은 물 위도 걷고 바다도 잔잔하게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다섯 개의 보리떡으로 수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의 행자니 그 놀라운 기적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과연 예수가 평소에 행하던 기적의 능력으로 자기를 구원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습니다.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러 온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서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회심의 증거가 없습니다.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는 자기의 뜻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꿈을 성취하고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까? 그렇게 선한 일을 행하고 긍휼에 가득 찬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백성들을 섬겼던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왜 채찍에 맞으시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시는 것입니까? 바로 이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 살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구경거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끌려 가야될 사람은 우리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입니다.’라고 고백해야지 않습니까?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와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그 사랑을 내려놓습니다. 정말 싫은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사랑하지 않게 되는 자기 꺾음이 있는 신앙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한편으로는 죽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나 중심으로 살려는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을 때에 꺾이고 죽고 파괴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려는 거듭난 새 본성은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찬양)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여러분은 결코 이 십자가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
B. 예수를 사랑한 여인들
두 번째로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사람들은 예수를 따라온 여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라고 말합니다. 이 여자들 중 어떤 여자는 멀리 갈릴리로부터 온 여자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따라갔지만 이 여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었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구경하며 따라갈 수 있는 이 골고다 언덕길을 왜 이 여자들은 이렇게 통곡하며 걸어갔을까요? 그것은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여자들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아직까지도 자신들은 이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고, 또 이렇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난 뒤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자기들을 위해 주신 생애였고, 자기들을 지극히 사랑하신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그 긍휼에 넘치는 자비로 굶주릴 때 먹이고 고통 받을 때 위로하시고, 아플 때 치료하시고, 무지할 때 가르치심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건져내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손끝 하나에까지 담겨 있는 모든 섬김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었고,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백성들을 향한 눈물겨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 십자가가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십자가인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이 결코 구경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갈 수 없도록 만들었고, 비록 힘없이 십자가를 지고 피투성이가 되셨지만 그 예수를 여전히 존경했고 여전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구경하며 따라갈 수 있는 그 길을 이 여자들은 가슴을 치고 슬피 울지 않고는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동댕이쳐지듯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오르는 길에 나타나셨을 때 여자들은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 십자가가 골고다 언덕에 가까이 왔을 때 흐느끼는 여자들의 울음소리는 피 어린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부채 의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2000년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분이 이 세상 어디에서 고난당하시는지,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어느 구석에서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는지 자신의 변화되지 않은 어떠한 모양을 보며 주께서 흐느끼시는지를 생각하는 게 신앙입니다.
(찬양)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III. 적용과 결론
통곡하며 슬피 우는 여인들의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를 뒤에 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높이 매달리셔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인들이 받을 형벌을 가슴 아파하며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치워졌고 주님이 오르시던 그 언덕길에는 이름 모를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교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십자가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교회를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가슴이 저미도록 감격하며 그분이 고통당하시는 곳에 서서 그 분과 함께 그 고통을 겪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그 십자가 때문에 흘릴 눈물이 있는 예수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