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음을 품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녹취자 : 오희열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에게 준 편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독론을 2장에서 진술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기독론이 삶과 동떨어진 기독론이 아니라 삶을 참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기독론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생각이 모두 같으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어느 목사님께서 신앙이 좀 이상한 방식으로 좋으셔서 교인들에게 아주 철저하게 신앙 생활하라고 다그치는데, 일체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못하도록 교인들을 교육하셨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 교회 나오는 교인은 모두 무릎을 꿇고 마루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가능한데 남자는 까만 양복을 입어야하고 여자는 까만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입고 반드시 쪽을 진 머리를 하고 교회를 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30년 전쯤의 이야기입니다. 그분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학문은 없으셨지만 매우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동료 여전도사가 그 교회에 가서 배우려고 탐방을 갔다고 합니다. 주일에 갔는데 교인들이 그렇게 옷을 입고 나와서 한 쪽에는 여자, 다른 한 쪽에는 남자로 나눠 앉았다고 합니다. 여자는 까만 저고리에 하얀 치마와 쪽진 머리를 하고 남자는 까만 양복을 입고 한 200명 쯤 모여서 말입니다. 느낌이 어땠냐고 물으니 너무 무서웠다고 합니다.
사람이 똑같으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사람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것이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름답기 위해서는 각각 달라도 다른 그것을 하나 되게 만드는 통일적인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달라도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의 통합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수가 다르니까 다른 때에 권사가 됐겠고, 다행히 권사는 7년만 하고 물러나는 게 아니니까 70세까지 권사로 있는 것이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서로 다른 것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제껏 권사에 기수가 있고 어느 기수에는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도 있고 열심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수도 있습니다. 그럼 뭘 해도 그 기수는 확 살아납니다. 그런데 어느 기수는 왜 그런지 그다지 열렬한 리더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질 않습니다. 그러면 왠지 찌그러지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서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비교의식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고 각기 서로 다른 기수에 뽑혔어도 여러분이 모두 사역할 때에는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통합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권사들은 계속 뽑힐 테니까 그 기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세상은 아니지만 질서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된 권사님이나 안수집사님들이 먼저 된 권사님이나 안수집사님들이 자기보다 능력이 모자라거나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고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좋은 질서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먼저 권사가 되신 분들을 깊이 존중하고 여러분도 조금 더 있으면 후배 권사님들이 생기게 될 때에 여러분을 무시하고 말 안 듣고 똑똑하거나 신앙이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교역자들과 서로 잘 통한다고 여러분을 무시한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치사해서 어디 가서 이야기도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서 여성 권사님인지 집사님인지, 두 분이 교회당에서 머리채를 붙들고 싸웠답니다. 그 이유가 꽃꽂이 때문이었답니다. 자기가 해 놓았는데 딴 사람이 와서 고치고 갔다고 그렇게 싸웠답니다. 다음날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꽃꽂이를 내동댕이 쳐버리고 화분을 갖다 놓아서 아직까지도 그 교회에서는 화분만 놓고 예배드린답니다. 이게 무엇을 위한 섬김인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경쟁하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 약한 사람으로 알고 좋은 사역들이 있으면 회장들이 모여 의논도 하고, 오늘은 이쪽 권사회에서 제안한 것을 다른 권사회에서 기쁨으로 받아들여주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스며들도록 잘 이해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한 마음을 품고 잘 소통하며 가면서 선배 권사님들에게 예의를 잘 갖추고 질서를 잘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가 말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배 권사님들도 마찬가지인데 잘 들어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한 얘기를 또 하고 한 얘기를 또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합니다. 그래서 많이 사주고 후배들이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잘 한다고 하고 몇 푼이라도 봉투에 넣어주면서 이번 사업하는 데에 보태서 쓰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이가 들면서 덕을 얻는데, 이게 인간이 본성과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나이가 들면서 치사해집니다. 밥 한 번을 먹어도 젊은 사람들이 내려고 하지 나이가 든 사람은 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말만 많아지니까 사람들을 자꾸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덕이 없게 산 사람들은 마지막 노년에 사면을 돌아보아도 밥 하나 같이 먹을 친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상관없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게 사는 게 아닙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때로는 모자라는 것이 있어도 관용으로 대해주면서 하십시오.
제가 요즘 교회 일도 많고 정신이 없지만 노회에서 주일학교 연합회, 남전도회 등등에서 매년 도와달라고 연락이 옵니다. 주일학교 연합회에서는 교사 강습회 때 도와달라고 하고, 남전도회는 체육대회 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어차피 줄 거니까 제가 미리 얘기합니다. 이번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가 잘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얘기하라고 말입니다. 그래봐야 더 도와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늘 도와주는 만큼 도와주는 것이지만 오고가는 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작년에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미안하게도 모두 문병을 와 주었습니다. 사람이 정입니다. 돈 달라고 해서 마지못해서 주는 것과 미리 전화해서 뭘 도와줄까, 빈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성화의 삶은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몸과 몸이 부딪히면서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는 성숙한 권사님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