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녹취자: 박효준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았던 대부분의 교회가 바울 자신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마는 이 골로새서교회는 아마도 그의 제자와 같은 에바브로디도가 세운 것일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 편지를 쓸 때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있었고 교회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심히 약화 되고 이상한 사상들이 출몰해서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들이 득세하여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 옥에서 죄수의 몸으로 골로새서를 쓰게 된 동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골로새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 골로새서는 신약 성경 중 가장 수준 높은 탁월한 기독론을 담고 있는 편지입니다.
바로 이 편지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입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는데 예수님의 고난 중 이뤄지지 못한 고난이 있다니 이것은 또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남은 고난이 있는데도 우리는 구속 받았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섰다.”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언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살피기 전 먼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둘로 나룰 수 있는데 첫째는 이미 이루신 고난이고 또 하나는 남겨두신 고난입니다. 이미 이루신 고난의 특징은 당신 홀로 당하신 고난이고 남겨 놓으신 고난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교회로서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게 하신 예수의 고난입니다. 첫 번째 이미 이루신 고난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것은 성육신의 고난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서 이전까지 희미하게 알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생생한 사랑이 되었고 이로소 모든 사람들은 희미하게만 알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을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을 통해 탁월한 방식으로 알게 되었고 신약성경은 바로 그에 대한 증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은 이 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 났고 그 계시는 눈부시고 찬란한 빛이 되어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고 이 세계를 창조하신 위대한 구원의 계획이 무엇이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놓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탁월한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보내어 교회를 창조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가 33년 동안 종처럼 우리를 섬기셨는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당신이 구원하고자하는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시는 이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고난을 토대로 교회가 서게 되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모두 성공에 대한 집념이 판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덕분에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신앙 때문에 잘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숨이 끊어지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던 그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환영하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양탄자처럼 예수 앞에 깔고 온 성이 소동하던 그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 마다 당신을 버리고 모두 떠나가 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시며 죽어 가시는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이루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오늘 우리가 되게 한 근본적인 토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한 교회를 세우심은 복음을 전파하게 하심이고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그 피가 뿜어져 나와 이 세상에 뿌려진다는 것입니다. 목회는 바로 그 피를 손에 묻혀 믿지 않는 사람의 가슴에 바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죄인의 마음속에 자기를 이 처럼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하여 무릎을 꿇고 그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목회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고난에는 우리들이 동참할 수도 없고 추어에 그 무엇도 우리들이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이루신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완전한 토대를 이루셨고 그의 피는 임마누엘의 샘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위해 당신의 고난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만약에 이루신 고난이 성육신의 고난이라면 남은 고난은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와 함께 당하시는 협력적인 고난인 것입니다. 남겨 놓으신 그 고난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갓난아기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실 때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를 살리셔서 모든 만물로 그 발아래 무릎을 꿇어 그를 주라고 부르게 하신 그 때부터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몸에 접붙여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 있던 계획이고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이 원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비밀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가 되고 그 신부인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져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시지만 구원을 받아 이루고 있는 이 영적인 몸인 교회는 아직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중생하고 회심한 후예는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듯이 이렇게 구원을 얻은 무리들로 모여진 이 보편적인 모든 우주적인 교회의 연합은 아직까지도 결점과 죄의 부패성을 갖고 있는 불완전한 교회이기 때문에 이 교회가 온전해져야하고 또 이 세상에는 아직 이 예수 그리스도 몸에 접붙여지지 않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기까지 예수 그리스도 홀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교회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위해 당하는 고난,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수고. 그리고 선교를 위해 당해야하는 모든 고통은 성례전적으로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이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머리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이 고난이 나 개인이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지체로 당하는 고난이요 그 신부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 고난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고난은 크게 3가지로부터 옵니다. 우선 영적으로는 하늘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에 의해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싸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으로 투쟁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고난은 세상으로부터 옵니다. 이 세상은 꼭 세상에 있는 것만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세상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세상은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이 세상은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우리의 육체의 정욕을 향하여 싸우고 우리의 사악한 욕심과 더불어 투쟁하는 것도 세상과의 싸움이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신도들을 끓어 안고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야 하되 그 안에 있는 죄와 악과 더불어 싸우고 분투해야하는 것도 세상에게 당하는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세 번째로 이 고난은 교회 안에서 오는 고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그리스도의 몸답게 세우려고 할 때에 모든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온전한 신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우리 중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순종하는 것은 좋지만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은 싫어하고 정결하게 되고 싶지만 그러나 나 자신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밖에 온전히 정결하게 되길 원하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목회자와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 고난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경험되고 이 속에서 인간의 모든 부패성이 뼛속 깊이 파고들어가 배어 있는 부패성과 더불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성도일수록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하게 하시는 사랑을 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 끊임없는 희생이고 고난인 것입니다.
목회자가 된다고 하는 것. 한 교회의 목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교회의 모든 연약한 것들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박헌준 목사가 이 교회의 위임 목사가 된 것을 축하하고 그리고 즐거워해야하는 날이 아니라 오늘은 매우 슬퍼하고 삼가 명복을 빌어야 될 시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의 길이고 누가 이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박헌준 목사님을 이 교회의 목자로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남은 고난. 다른 사람들이 다 지지 않고 떠나간 그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는 이 교회 안에서 온전히 살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박 목사님을 그리고 여러분들을 이 교회의 지체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위임을 하고 교회에 일꾼이 된다는 것. 이렇게 임직을 하고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일 먼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주의 몸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처럼 영광스러운 장로의 지위를 주시고 안수집사, 권사의 지위를 주신 것은 교인들을 다스리고 그리고 교인들을 통치하라고 주신 세상의 벼슬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이 교인들의 종이 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무지한 사람들을 섬기시고 굶주리고 배고프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셨듯이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하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상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를 장로 삼으신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충분히 죽도록 나를 부르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헌신함으로 이 교회가 티끌만큼이라도 하나님 앞에 더 아름답고 온전한 교회가 되기를 여러분들이 위하여 이바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야 말로 여러분들이 위하여 부름을 받은 중요한 사명이고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죽고 여러분 자신이 포기함으로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를 온전케 하라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교회의 직분은 영혼들을 위하여 여러분들에게 주신 직분입니다. 다시 말하여 여러분들의 사명은 교인들이 많이 모여서 예배당이 부족하면 예배당을 지어야 될 것이고 그리고 교통이 불편하면 자동차도 사야할 것이고 주위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배고프면 구제하기도 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보다 본질적인 여러분들의 사명은 영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열심을 전하여 구원 얻게 하고 이미 구원 얻은 성도들은 사랑으로 돌보고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여러분 자신들이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기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일꾼들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고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일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충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위한 이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인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에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려니와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알의 모두가 땅에서 떨어져서 썩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든 쌀이 썩는 것이 아니라 모든 쌀이 썩어서 그 밀에 붙은 밀 눈 하나를 싹 틔우는 것에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급기야 한 알의 밀이 모두 썩어서 양분과 수분으로 공급되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면 한 알의 눈에서는 이제 뿌리가 나고 싹이 나서 스스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장성한 밀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미 교회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씨눈이고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의 그 씨눈을 위해 죽어야할, 썩어야할 밀알인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함께 여러분도 함께 고난을 받으려고 할 때 여러분들의 부패한 본성은 죽고 예수 사랑하는 마음은 싹터 여러분 자신 안에도 여러분들은 죽고 주님이 사시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토록 고난으로 가득차고 핍박받는 생애를 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분이 죽는 순간까지 목수일이나 하시고 돈이나 버셨다면 왜 예수님을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하였겠습니까? 그분이 영혼을 위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세상은 그렇게 그분을 미워했고 진리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를 그렇게 핍박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러한 삶을 살고 모든 것을 희생하심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길이었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 이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모든 일을 감당해 나갈 때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올적마다 여러분들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잘 해줬기 때문에 목회 사역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대우를 후하게 해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헌신 한다면 그 목회자는 사람의 종이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떤 대접을 받으시며 당신의 교회와 이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 하셨는지를 기억 하셔야합니다.
(찬양)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고난을 당하고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이 더 큰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명심하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과 참고 또 견디며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고난이 오고 어려울 때 마다 예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을 기뻐하며 그러면서 모든 시련과 어려움이 올 때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미 이뤄주신 일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이 큰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생각하며 맨 처음 회심 할 때 이 생명도 달라 하시면 십자가에 놓겠다고 고백했던 그 때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교회의 온전함을 위해 여러분 자신이 예수처럼 죽어 예수처럼 부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