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2-16)
녹취자 : 이시내
이해가 좀 안 되는 것은 그리스도예수께서 나에게 직분을 맡기셨다 그랬는데 직분을 맡기신 이유가 충성되이 여겨 그래서 직분을 맡기셨다 그랬습니다. 이 직분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아는 바와 같이 사도로서의 직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 바울이 사도의 일을 해보았습니까 아직 사도의 일을 시험을 거쳐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예수님이 사도로 인정을 해주신것이 아니라 다메섹 가는 길에서 회심하던 그날 예수님이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충성되이 여기셨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뜻이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직분을 주실 때 예수님이 사도바울이 충성스럽게 당신의 복음을 위해서 애쓸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사도바울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할 때 맡은 사람들이 충성스럽게 살아가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는 뜻이 아니라 맡은 자들은 충성스럽게 나타나기를 예수님이 구하신다 기대하신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시고 직분을 주실 때에는 주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충성스러운 삶입니다.
이 세상에 사회의 단체에서는 이제는 옛날과 달라서 그렇게 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어느 외국계기업체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구조조정을 하는데 외국인 사장한테 저 사람은 그냥 좀 나둡시다. 왜 그러니까 정말 회사에 충성을 다했고 성실하고 회사를 사랑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회사를 사랑하는게 우리에게 무슨 영업의 이익을 가져다 주느냐 나는 우리 직원들이 우리 회사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기 일을 해서 회사에 이익을 내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미 이런 가치들은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같은 때에는 하나님의 일하는 것과 세상의 일하는 것은 아주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교인들 가운데 가끔 심방을 하면 승진을 제때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제목이고 심정이 굉장히 괴롭습니다. 입사한 후배가 승진을 할 때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때마다 자기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들에 대해서 동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에서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혹시 실수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정말 충성스럽게 감당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맡겨주시던지 맡겨주실 때에는 충성스러울 것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충성스러운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게 될 때 참 다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무슨 일 하나를 해도 마음을 드려서 그 일이 정말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현저하게 그 일의 성과가 다릅니다. 능력이 뛰어나도 충성스럽지 않으면 일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만은 그러나 만약에 정말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 우리들이 다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주님의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충성스러운 삶을 살게 한 비결이 동기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과거에 대한 회고였습니다.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고가 있었기 때문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회고가 무엇이냐면 자기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회상하는 것이었습니다. 핍박자요 포행자요 그리고 훼방자였습니다. 그랬던 자신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길 때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태까지 직원들 이렇게 거느리고 일하다 보면 교역자하고는 참 다릅니다. 교역자는 여기를 그만두고 떠나도 어느 교회에 가서 또 교역자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교회 떠나고 나서 어느 교회에 직원으로 갈 가능성은 좀 적습니다. 혹시 연구파트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서 스카웃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런 가능성은 적지 않습니까 실제로 보면 다른 직업들에 종사합니다. 그런데 교역자들은 그래서 기본적으로 목회라고 하는 길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섭섭하게 다루고 그래도 강합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뛰어난 사람들은 교역자 못지않게 더 그런 사명감이 더 강하지만 그렇지만 훨씬 더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렇게 우리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면 자기가 죄인인줄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을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견고하게 교회의 직원으로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하나를 놓고 보면 정말 은혜도 잘 받고 예배드리고 나면 늘 은혜를 받고 눈물도 있고 아침마다 일찍 나와서 간절히 기도도하고 그럽니다. 그런데도 견고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견고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안 받고도 견고한 사람은 없습니다. 견고하다는 것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은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견고한 것입니다.
그러면 전자의 사람 은혜를 받는데 왜 견고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무엇이냐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인격적인 은혜가 담기는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태도를 잘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예를 들어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사람의 태도와 심성이 올곧고 성실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기도하고 그리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예배의 설교를 잘 들으려고 하고 성경을 공부할려고 하는 자세가 잘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오래 은혜가 갑니다. 그런데 아주 의지가 박약합니다. 그래서 은혜받을 때는 펑펑 우는데 한 3일 지나면 기도를 안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회개할 순간을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럼 뭐 한 1년이나 2년 지나다가 사경회 때 또 한 번 회개를 할 것입니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그릇이 있는데 물을 담으려면 바구니 같은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안 됩니다. 유리그릇 같은데 담아야지만 물이 담깁니다. 태도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모든 사람이 견고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고도 견고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이 자신에게 세워주신 그 자리를 자신에게 분에 넘치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아가는데 그 살아가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때문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오늘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에 계속 넘치고 있습니까 아침마다 혹은 퇴근시간마다 기도할 때 정말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다 이 쓸모없는 인간을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당신 자신을 못 밖아 구원해주셨구나 하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 그것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어려워도.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디에 가든지 어렵고 힘든 일이 다 있습니다.
(예화) 제가 영국을 갔었습니다. 목사님 우리교회 교인중 하나가 꼭 목사님께 저녁을 사드리고 싶어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이야기하는데 싫다고 할 이유가 없어서 저녁 시간인데 그러라고 저는 당연히 장로님 부부나 나이 드신 집사님 부부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쁜 자매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남편하고 같이 올려고 했는데 남편은 학교에 캠브리지 대학에 박사과정을 막 끝내고 있는 학생인데 너무 바빠서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못나왔다고 하면서 이렇게 보니까 캠브리지 대학이 등록금이 어마어마 합니다. 1년에 한 4500만원에서 6000만원 정도합니다. 거기 생활비는 바닥으로 생활하면 둘이서 350만원 가져야 합니다. 둘이서 바닥으로 생활하면 거의 영세민 갓 면한 수준으로 생활하면 그렇게 비쌉니다. 그러니 거기에 와서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정도니까 집안이 어느 정도 되는 자매를 이렇게 보니까 나 곱게 자랐어요 그렇게 써 있습니다. 그러고 이제 아주 좋은 양식집에서 저에게 음식대접을 하였습니다. 스파게티와 등등 아무튼 음식을 먹는데 자매가 음식을 드시라고 하는데 손에 툭툭툭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거기에서는 주방일 같은 것을 안 할려고 한답니다. 쉐프를. 이 자매가 요리를 배워서 주방에 들어가서 쉐프 하이쉐퍼는 아니고 중간급쯤 되게끔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남편을 보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야 참 보기하고는 틀리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대부분 양식요리는 기름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게 막 튀는데 그러면 겨울에는 괜찮은데 여름에는 더우니까 아무래도 짧을 것을 입으니까 막 튀어서 껍질이 까진다는 것입니다. 물집이 생기고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야 참 나는 그래도 사람을 정확하게 본다고 생각했는데 손하고 얼굴하고 저렇게 다르구나 남들이 보면 얼마나 화려해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격이 우리의 모든 섬김뿐만 아니라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면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야 우리들이 열심히 배워야 되고 그리고 자기가 맡고 있는 일에 있어서 높은 목표를 갖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번 돌아보면 교회에 와서 짧은 기간이지만 열심히 자기 일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일하던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도 다 잘 됩니다. 뭐 두 사람만 예를 들자면 최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누굽니까? 이은진이. 가엽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몇 다리 걸치긴 했지만 결국은 김영사 자회사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열린교회 와서 방송실에서 열심히 거들던 그 형제는 사랑의 교회 방송 팀장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도 그냥 이렇게 얼굴을 보고 인연을 보고 그냥 사람을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불러주는 데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무엇인가 그 일을 감당할 것이 있을 때 그때 사람들은 높이 평가하고 그를 불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가 함께 사는데 남편을 사랑한다고 맨날 그렇게 말로만 하고 그리고 계속 아침서부터 밤까지 남편을 위해서 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 봉사하는 것도 없고 가장 힘들어하는 일만 자꾸 만든다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 고백자체가 짜증나지 않겠습니까 신경질 나지 않겠습니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특성은 기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제가 언제가도 설명했지만 포괄적으로 내 인생은 주님께 드립니다. 이것 아무리 많이 해도 구체적으로 개별적인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살지 않으면 그러면 그것은 껍질뿐인 고백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깊이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 높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엘리트 주의자는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새벽에 아침에 나와서 야간경비서는 형제들에게 야 저 불 저 불 저 불 좀 꺼라 막 스위치 찾아 헤맵니다. 그러면 제가 불러서 이야기 합니다. 옛날에 김기두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러더랍니다. 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이거 이거 좀 해라 그랬는데 자기가 온지 한참되었는데도 못하고 쩔쩔 매니까 내가 자기를 어깨를 딱 끌어안더니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씩 가르쳐 주더랍니다. 이 스위치 이렇게 끄는 것이고 저 스위치는 ( ) 자기가 얼굴이 뜨거워서 혼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달 두 달을 근무했는데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저런 개념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자기 일에 대해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포괄적으로만 헌신하지 말고 개별적인 삶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 너 사랑해 너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 내 진심이야 이런 말을 잘 안하는데도 정말 자신이 필요할 때 자기를 돕는 사람이 있고 늘 입에 달고 사는데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아 저것이 말 뿐이구나 라는 사람이 있듯이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개별적인 삶에 있어서 충성되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예화) 언젠가 무안신학교 학장을 좀 고르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어떤 교수를 선정하고 마음이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저하고 친한 후배교수 한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았더니 아주 중요한 팁을 줍니다. 뭐냐면 목사님 그분은 참 실력도 있고 인격도 괜찮고 결점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 잘 되었네 그랬더니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 동기인데 우리 동기 모든 목사들의 그 교수를 잘 아는 모든 목사들의 공통적인 평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못하지 않는데 누구에게도 로열하지 않습니다. 충성되지 않습니다. 항상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기 할 만큼만 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그것은 아주 하급직원으로서 간단한 일을 하는 데에는 그것으로도 될지 모르지만 지도자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지도자의 아주 중요한 조건은 그칠 줄 모르고 안에서 솓구치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이고 열정입니다. 그것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입니다. 그래서 접었습니다. 아주 과감하게 접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제안을 하면 그분이야 뭐 할렐루야 하겠지만. 그런데 접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항상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지구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작은 한 교회에 한 모퉁이에서 내가 가장 단순한 일을 반복적으로 봉사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시면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유가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는 자유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은혜를 받으십시오 은혜를 많이 받고 그리고 무엇 때문에 여러분들 8시까지 나오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무엇이냐면 여러분 아침에 기도 안하면 기도 못합니다. 새벽기도 까지는 몰라도 8시에 딱 와서 예배당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출근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교회직원으로 있으면서 예배에 마음을 싣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 때문에도 그렇고 늘 교회에 있으니까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혼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그래서 십자가의 감격에 넘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충성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