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재로 부르시는 예수님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17)
녹취자: 백유미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비난을 받으셨던 가장 커다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전혀 엉뚱하게 인자의 온 것은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 함이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탁을 나누신 것은 교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재를 통해서 사람에게 회개하게 하는 그런 놀라운 교재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재는 사실은 그냥 교재일 적이 많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은 교재의 기초는 진리이고, 그 교재는 진리에 의해 지탱되며 마지막 그 교재를 통해 가고자 하는 곳도 진리입니다. 그래서 처음서부터 끝까지 진리에 의해서 교재가 시작되고, 진리 안에서 교재가 계속되고, 진리를 향하여 그 교재가 지속되는데 진리 끝에 우리들이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없기 때문에 교재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재의 본질이 바로 사람의 사귐입니다. 사람의 사귐입니다. 부부가 일생을 살 때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만 되면 괜찮습니다. 그게 뭐냐고 하면 대화입니다.
(예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사랑을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하층적인 것이 쾌락애. 쾌락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두 번째는 유용애. 사람이름 같지만은 사실은 유용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재산이 많아지면 갑자기 존경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지고, 지위가 높아져도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생겨납니다. 속지마세요. 반은 다 가짜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동덕애입니다. 그건 뭐냐하면은 같은 덕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덕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배반하지 않는 한 그 사랑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이 형세에는 셋 중에 어디에 속하겠습니까? 세 번째에 속하는 것입니다. 동덕애요. 그런 동덕애가 있으면 거기에서 참된 교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교재가 이루어집니다.
(예화) 지하실 교회 시절에 어느 형제가 열린신문에 간증을 썼습니다. 뭐라고 섰냐면 “열린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지체들과 함께 나누는 교재는 아.. 달콤했습니다. 교재가 끝나고 일어설 때에는 항상 마음속에 불같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나는 성경을 알고 싶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더 깨닫고 싶다.”
그게 바로 진리 안에 있는 교재의 모습입니다. 그런 교재는 죄인보고 회개하라고 닦달하지 않아도 거기에는 죄인들을 돌이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저는 요새 이런 변화의 시기에 서면서 인간에 대해서 아주 새삼스럽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론이 뭐냐하면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완고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어미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아비의 마음으로 훈계해도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 할 바이지만 그것으로써 신앙생활이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은 반드시 저 사람이 돌아설 거라고 믿는 것도 하나님께는 기분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은 정말 이것은 요즘 뼈 사이에서 울어 나오는 이야기인데, 지성의 벼락을 맞지 않으면은 신앙생활은 성립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찬양)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리고 자신과 지성과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뇌성이 은은하게나마 계속 들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마음이라는 우주 안에 주님의 권능이 가득 차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해 동안 목회에 허우적거리면서 아 왜? 왜 내가 이렇게 그 이미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한 사실들을 놓치면서 살았을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안 믿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의 방법이나 노력, 수단 이것에 의해서 신자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성의 벽락을 맞는 것 같은 각성. 그러면서 거기에서 깨어나는 놀라운 변화. 이것을 통하지 않고는 신앙이 성립할 수도 없고, 성립해서 자신을 돌이킨 지점이 분명한 사람들만이 그 지점으로 돌이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누구도 올곧은 길을 일평생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끝없는 돌이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 자체로써 우리에게 오셔셔 교재의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성품을 생각하고 주님께 응석을 부려도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으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네가 정말 나의 사랑, 나의 성품의 달콤함을 맛보기를 원한다면 너는 진리로 돌아오라.” 하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 교재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우리의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은 우리가 하나님과 아주 달콤한 교재 속에서 살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떤 때였는가를 돌아보면은 그때 반드시 진리에 대한 앎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래서 진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해방시키는 아주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진리의 능력이고 그리고 진리의 힘입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든지 간에 곤고할 때, 시험을 받을 때, 고난이 겹쳐서 외로울 때,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그런 고독감에 시달릴 때, 그리고 가야하지만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또 가지만은 가야하는 길을 내가 알지만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은 하나님의 진리, 진리의 말씀 속에서 깊은 위로와 힘을 얻는 것.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