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를 거절하심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28-30)
예수님이 다섯 번째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거든요. 그런데 그 마태, 마가, 요한복음 이렇게 세 군데에 나오는데 다 검토를 해보면 “목마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이제 우슬초에다가 해융을 끼어서 (스펀지 같은 것에다 끼어서) 신포도주를 드리니까 드신 다음에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전체적으로 복음서의 기사들을 종합을 하면 결국 어떤 스토리가 되냐 하면 맛을 보신 다음에 포도주인줄 알고 거절하시고 그리고 운명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목 마른신 데 왜 포도주를 거절 하셨는가? 이 문제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목마른데 돼 포도주를 거절 하셨겠는가? 잠언에 보면 이 포도주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포도주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을 잊게 만들어 주고 죽어가는 사람의 이 통증을 경감시켜 준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잠언에 있는 말씀을 따라서 당시에는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포도주를 공급해 주는 그런 일들이 있었단 말이죠. 예수님이 그 포도주를 거절하셨죠!
결국 이것을 여러 가지 많은 교훈들을 깨달은 수 있지만 오늘 우리가 하나 깨닫고 싶어 하는 것은 이것이죠. 우선은 주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이 이미 그렇게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마시는 날까지는 내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 이 말씀은 결국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말씀하고 연결이 됩니다. 나실인의 서원이 나오고 나실인이 서원을 하는 동안에는 두 가지를 못하게 되어 있는데 포도주를 못 먹고, 머리를 못 깎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원에 예수님이 자신을 묶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특별히 당신이 생애의 모든 시간에 하나님 앞에 자기를 안 바치신 적이 없지마는 그러나 이 십자가에서는 특별히 자기를 바쳐야 되는 구별된 때라는 사실을 가지셨기 때문에 이 포도주를 거절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특별한 때에는 특별한 헌신이 필요하고 다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생각해볼 교훈은 예수님이 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 가시는 그 극심한 통증에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거절하신 것은 우리에게 매우 커다란 교훈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교훈이 무엇이냐 하면 고통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차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고통을 보고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을 보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고통을 좀 더 느끼시고 좀 덜 느끼신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그 끔찍한 고통을 받으시면서 십자가에서 말하자면 죽어 가시는데 그 고통을 다소나마 경감시킬 수 있는 그런 그 포도주를 거절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주님이 당신이 독점적으로 당해야할 고난을 마다하지 아니 하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이 계신데 6.25때 전상을 입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끊어냈죠. 6.25 끝난 지가 언제입니까? 그런데 최근 한10년전 까지만 해도 자다가 막 소리 소리를 지른답니다. 내 다리 내놓으라고요. 그게 왜 그러느냐하면 자기 잃어버린 다리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온다는 거예요. 수시로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가지고 6.25때 끊어진 다리가 지금도 때로는 통증이 오는데 개인적으로 못가지고 있게 되어 있거든요 (모르핀) 그걸 구해가지고 누구라도 그 때 주사를 놔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넘어간다는 거예요. 고통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그 보다도 더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데 그 고통을 다소나마 경감할 수 있도록 그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자비심이 발동되어서 그 처참하게 죽어가는 예수그리스도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보였으면 그 악한 사람들이 그 포도주를 끼어서 주님에게 마시도록 들어 들였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여러해 전에 그 본문을 묵상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은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져야할 고통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서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고난이 아니라 대치할 수 없는 고난 그 자리에서 내가 받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몫에 태인 고난이 있다는 말씀이죠. 내 몫으로 할당 된 고난이 있다는 말이죠. 그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목회를 하고 여러분들이 아무리 진실한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려고 애를 써도 나눠 질 수 있는 짐이 있고 도저히 나누어 질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사실 나누어 질 수 있는 짐은 그렇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오지 않아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정한 고통은 나누어 질 수 없는 짐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 나누어 질 수 없는 짐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한계를 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한계를 봅니다.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계를 보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런 고통을 받을 때에 도저히 누구도 나누어 질 수 없는 그 고통 앞에서 그 고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은 외로운 고통이기 때문에 그래요. 외로운 고통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누어 질 수 없는 그 고통 위에 누구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고통을 알아 줄 수 없다고 하는 그 외로움이 더하는 거죠. 그 고통이 우리를 찌르면서 깊이 다가오는 거죠.
이때에 마치 세상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주님께 포도주를 권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육체 속에서는 하나님 앞에 대치할 수 없이 내가 받도록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할당된 그 고난과 그 많은 고통을 어떻게 쉽게 잊어버리고 그리고 그 고통 없이도 하나님의 일을 해 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라는 것을 자꾸 생각하는 유혹을 받는다는 거죠. 때로는 그 고통을 피할 길을 생각합니다. 경감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고 벗어나 보려고도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 버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십니다. 그걸 기억해야 해요. 주님이 우리에게 마땅히 홀로 지도록 맡겨주신 그 십자가가 있는데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짊어지는 방법도 여러 가지죠! 만날 불평하고 부정적인 생각하고 그러면서 코 끼어서 끌려가는 것처럼 그 십자가를 지는 태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눈에는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이미 벌써 모양은 십자가를 지고 있으나 본인의 마음에는 십자가를 마다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마땅히 맡겨주신 십자가를 마다하고 나면 그때 찾아오는 즉시 뭐가 찾아 오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매우 멀어져 보이는 거예요. 성도들이 고난과 고통가운데 그렇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되었고 느낌이 아니라 정말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에 오히려 그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질 그 때에 주님이 매우 가까이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정말 이기고 승리 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포도주를 거절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마땅히 내가 져야할 이 십자가를 거절하거나 피하거나 혹은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잔꾀를 부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정말 주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할 수 없이 나를 거기에 세우시고 거기에 두셔서 고통과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게 하실 때에 오히려 거기서 감사함으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도 그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주님의 이 고난에 은혜를 감사하면서 나도 그 십자가를 지고 서있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평안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한없이 멀어졌던 사람들을 오히려 고난의 때에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시고 시련과 아픔이 있는 그 때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의 가장 가까운데 계신 것을 느끼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 의해서도 대신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실 때에 주님이 그 고통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피할 수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이 십자가를 특권처럼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서 내가 무엇이 관대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주셨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그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시면서 마지막에는 육체의 모든 기운을 소진하시고 창조주이신 그 분이 한모금의 물을 생각하시면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그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걸어가서 영광 돌리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남이 알지 못하는 복음의 비밀을 우리 가슴에 심으시고 남이 만나지 못한 주님을 뵈옵게 하시고 또 십자가를 깊이 깨닫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고난에 처할 때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뇨? 하며 하나님 앞에 잠잠히 그 십자가를 그 기쁨으로 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다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지만 칭찬받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기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