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예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마 1:23).
1.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등장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것입니다.
명백하게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할 것을 예수님오시기 이미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여 예언을 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참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는 사람을 빌으셔야 했고 또 그 참사람이 동시에 죄 없는 참 하나님이시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식대로 태어나실 수가 없고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에 태어나심으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죄를 면할 수 없으나 이렇게 성령에 의해 잉태하심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으나 마리아와 요셉의 죄 된 인간의 본성은 닮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실 수 있는 흠 없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화목의 제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미리 지어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말은 ‘임’ 함께하다는 것과 ‘마누’ 이것은 우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임마누’ 하면 우리와 함께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엘’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 이름을 지어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와 구속, 그리고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과 완성에 이르는 장엄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계획을 보여주는 그 단어인 것입니다.
2. 창조의 계획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세상의 모든 피조물 자체를 즐거워하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모든 피조 세계를 당신을 닮은 인간이 위로는 하나님 자신을 알고 아래로는 자기가 창조한 모든 세계를 이해하고 또 그 창조한 세계를 돌보기 위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있는 인간 자신의 존재를 아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그 인간을 통해 당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 닮게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이 일 가능했던 것이죠.
A. 우리와 함께 하심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한 것은 우리인간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은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보다 가장 뛰어나지만 가장 뛰어난 피조물을 가장 뛰어나게 창조하셔서 당신과 독립한 가운데 이 세상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끔 창조하지 않으시고 모든 만물 위에 가장 뛰어나게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그 인간이 당신과 가장 많이 교통하게 하심으로써 그 인간의 탁월성을 드러나게 하셨던 것이에요.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 완전성이 높은 것일수록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어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수 천 년 동안 땅에 박혀있는 바위덩어리 보다는 80년 밖에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 인간이 훨씬 더 복잡하게 뛰어나게 창조되었지만 바위는 하나님을 덜 의지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육체와 그리고 물질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에 있어서까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주시지 않은 영혼을 주시고 그 영혼 안에 주님이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계획은 인간을 마치 가족처럼 창조하셔서 당신이 그 가족들 가운데 함께 계시는 그런 방식의 삶을 위해서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시는 그 방식이 영적인 방식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속에 당신 자신의 본성을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 닮게 하시고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교통을 이루시므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B. 인간의 범죄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본래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인간의 위치를 떠나서 하나님께 범죄 하게 되자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적인 동행의 관계는 깨뜨려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의 죄의 무서움 그리고 인간의 죄의 놀라운 위력을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죄는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안에 가득했던 만물의 상호교통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창조 당시에 찬란한 광채를 상실하고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이 인간 안에 주셨던 하나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도 모두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범죄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인간의 범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넣어 주시지만 그 충만한 은혜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단번에 파괴되고 부셔져서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은혜의 힘보다는 죄의 힘이 훨씬 강하고 은혜는 인간의 죄에 의하여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종종 은혜의 부패, 은혜의 파괴, 영혼의 파괴 등등의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약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인간적인 묘사인 것이고 사실에 있어서 이치는 이러한 것입니다.
죄 자체가 은혜를 파괴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 보다는 인간이 마음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불순종하게 될 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죄의 분량만큼 당신이 인간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철수시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크게 범죄 하게 되면 하나님이 더 많은 은혜를 철수시키시고 그리고 인간이 악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마음의 악한의도와 작용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로운 방법으로 그에게 베푸셨던 사랑과 영광을 당신자신의 주권으로 철수시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온 우주는 찬란한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에 충만한 것을 드러냈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우주의 커다란 천체로부터 시작을 해서 아주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아름다운 연결을 이루고 있었고 그 연결의 모든 통로의 머리에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이 피조세계 속에 가득했던 당신의 영광을 철수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범죄를 통해 우리 속에 은혜가 사라지고 그리고 인간의 범죄를 통해 창조세계의 영광이 사라진 것을 보면서 죄의 위대함이 아니라 모든 은혜와 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의 위대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들의 죄로 인하여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그 자체가 여러분들의 불순종에 의해서 손상을 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고통당하거나 인간에 의해 변형이 되실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고 당신에 선하신 판단을 따라 공정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주셨던 은혜를 창조세계 속에 베풀었던 영광을 당신자신의 의지로 당신자신 속으로 환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을 환수하지 않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마음을 지키며 그분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삶을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범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 창조세계에 가득했던 신성의 충만한 영광을 흔적만 남기고 모두 거둬가 버리셨습니다.
그러자 인간은 아주 놀라운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아름답던 정원이 마법에 걸려 그 모든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아주 공포의 그리고 추악한 모습이 되어버렸던 것처럼 이 세상도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으로 영광을 거두시긴 했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은 상당부분 남겨두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가인이 살인을 하고 하는 와중에도 인간의 지혜는 놀랍게 발달하여 에녹 때에 와서는 이미 벌써 큰 성을 건축하고 그 성에 자기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러분, 건축물 하나하나는 아주 엄밀한 수학적인 원리와 건축학적인 고려,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고려가 없이는 세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의 건축물들의 불가사이함 속에서 매우발달한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미학적인 놀라운 발전들을 찾아내는 것이죠. 이러한 인간지성의 탁월하고 놀라운 발전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계속 진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제 우주를 오가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 몇 년 후에는 화성으로까지 사람을 보내기 위하여 우주인들을 훈련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주후 3000년에 이 지구가 용도 폐기될 것으로 전망하고 제 2의 인류의 근거지로 화성이 가장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류 이전계획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놀라운 진보를 가져왔고 그리고 이제는 이 지구 어느 편에 있든지 전화하나로 모든 사람이 얼굴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경에 미국에 있는 어느 한 통신회사에서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60개의 인공위성을 하늘에 쏘아 올려서 어디서든지 인간이 인공위성에 접속하여 전 세계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50조 내지 60조원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이 착착 실현되던 불과 몇 년 후에 그래서 16개인가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이제 그 이용객을 모집하던 시기였습니다. 전화기 한대에 천만 원이 넘고 1초 통화하는데 80원씩 요금을 매겼습니다. 전 세계에 여행하는 사업가들이 앞 다투어서 그 전화기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아직 삼분의 일도 진척이 되지 않았을 때에 컴퓨터의 놀라운 발달, 이동통신의 놀라운 발달은 이제 인공위성과 상관없이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 어디서든지 통화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죠. 결국 수십조 원을 들인 그 야심 찬 계획은 모두 접어야 했고 여러 기업들이 망해버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루 말 할 수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인간이 행복해졌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물질문명이 그렇게 번성하지 않고 가족과 가족들끼리 끈끈한 정에 묶여서 시골에서 땅을 일구어먹으며 죽던 때, 남자의 수명이 40세 밖에 되지 않고 여자의 수명이 50세 밖에 되지 않던 때에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 인간의 모든 불행이 인간의 물질과 육체적인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의 세계에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떠나시고 그리고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는 하지만 맨 처음 인간이 누렸던 그 충만한 하나님의 교제에서는 완전히 소외된 채 살아가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끊임없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고 그래서 헛된 것에 종노릇하면서 허무하게 인생을 살다가 개처럼 죽어갔고 혹시 어떤 참된 것을 조금이라도 발견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자체가 없기 때문에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발견한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더 갈등을 느끼며 행복과 불행사이에서 전전긍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이 지극히 불쌍히 여기셔서 완전히 인간과 관계를 끊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이 당신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는 메시아를 약속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제사제도를 두셔서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을 중심으로 당신과 하나님이 잠시라도 그 관계를 열고 사죄와 자비,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심으로서 간헐적으로 받는 그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의 은혜 속에서 희미한 진리라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수 있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후로 이 땅위에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고 하늘위에계신 하나님으로 인간을 다스리셨습니다.
3.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모든 만물들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만물을 당신의 의지를 따라 통치하시기는 하지만 인간들에게 타락하기 이전과 같이 놀라운 하나님과의 교통을 주셔서 그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살도록 하시는 그 일은 접으셨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성품의 지극히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인간의 범죄와 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지극히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이 하늘위에 계신가운데서도 다시 그 옛날처럼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실 임마누엘의 전망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4. 임마누엘의 예수
이런 맥락에서 볼 때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실 아기예수의 이름이 임마누엘로 예언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A.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임마누엘의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시게 되셨던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예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임마누엘의 예수일 수 있으셨으니 우선 첫째는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임마누엘의 예수이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속을 완성하심으로서 우리 안에 주님이 영원히 함께하도록 만들어주심으로서 그분은 임마누엘이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하늘위에 계시던 구약의 시대와 명백하게 구분되는 또 한 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므로 하나님은 ‘갓 어폰 아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위에 초월하여 계시고 우리를 통치하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인간을 구원하기위하여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인성을 입으시고 내려오셨으니 삼위 중 오직 2위이신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이 인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의 인성은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혔지만 그의 신성은 이 공간과 모든 우주 아무 곳에도 갇히지 않고 온 땅과 온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처럼 그렇게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2000년 전에 우리에게 내려오셨다고 해서 보좌의 삼위일체를 비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지만 그분은 여전히 하늘에도 계셨고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안 계신 곳이 없이 삼위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셨으니 이는 그의 인성은 사람의 몸을 입고 2000년 전에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셨으나 그의 신성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이 온 우주에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렇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오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으로서 또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어떠한 경우에도 변할 수 없고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이 고통 받으실 수 없는 분이셨지만 아들이 인성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변하시는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당신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눈물을 통해서 그의 통곡하는 기도를 통해서 죄인을 향해 한없이 긍휼히 여기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보였고 변하실 수 없는 그분이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온갖 겪음을 겪으시며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그리고 그 쓰라린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는바에 의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혀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성탄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의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평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탄생하신분이 예수이신데도 예수님께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서로 인간들끼리 악수를 하며 성탄을 축하한다고 말하는 거죠.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기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우리자신의 행복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태어나신 분은 예수이신데 그 태어나신 예수님 외에 우리는 서로에게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평화라고 했는데 그 평화 “샬롬”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 땅에 주시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통해 이 땅의 평안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해보십시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신 그분이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치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피조물의 한 형체로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인간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순종을 배우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신 그분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죽으셔야 했으나 하나님은 죽임 당할 수 없는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에 죽기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죽으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죽으셔도 죽으신 것이 아닐 수 있는 분으로서 이 세상에 인간의 형체를 입고 내려오신 것이죠. 그러므로 어린양 아기예수의 탄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예수의 고난을 곧장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들에게는 진실로 축하할만한 이 성탄의 사건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게는 전혀 축하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예수의 성육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큰 구원의 은혜는 감격하지만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멸시를 당하시고 죽으신 그 큰 고난을 인해 우리는 이 성탄절에 가슴아파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이 땅에 사셨던 생애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참된 신자의 길이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의 행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의 이 모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유익과 행복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33년 생애동안에 ‘갓 위드 어스’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전에 사람이 볼 수 없던 하나님을 눈으로 또렷이 볼 수 있게끔 만질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질 수 있도록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또렷이 들을 수 있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많은 인류들 중 그분을 직접 뵈온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였고 더욱이 그분을 만져본 사람은 더더욱 극소수였습니다. 친히 그분의 목소리에서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음성을 들었던 사람은 너무 적은 수의 사람들이었고 우리들 중 아무도 직접 그분의 음성을 들은 사람도 그분을 만져본 사람도 요한처럼 그분의 품에 기대어 그리스도예수의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놀라운 임마누엘의 사건이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과정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제 우리의 모든 마음과 영혼 안에 당신을 믿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충만히 하나님으로서 계시고자하시는 이 내주하심의 계획을 위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는 이 일을 위해서 행하셨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계속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생애가 33년이 아니라 66년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분이 만날 수 있는 사람 함께하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시는 동안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만날 수가 없었고 유대에 계시는 동안에는 갈릴리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이 모든 사람들안에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영원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하여서 죽임을 당하신 후에는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인성은 지금도 하늘 보좌우편에 있으나 그분의 신성은 성령을 통하여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 속에 계십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는 없지만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그리고 당신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는 마음을 주심으로서 당신은 지금 하늘보좌우편에 인성을 가지고 계시나 신성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심으로서 누구든지 당신자신을 믿는 사람들 속에 지금 와 계심으로서 이전에 우리위에 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갓 인 어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서 지금 임마누엘의 약속을 실현해 주셨던 것입니다.
B.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그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를 만난 그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인 예수를 보고 누렸던 그 감격보다도 더 놀랍게 우리 안에 계신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하는 데 사실은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보다 보이지 않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감격과 행복이 되는 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회심할 때 혹은 회심 하고나서 하나님과의 깊고 커다란 사랑 속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느끼면서 그러면서 눈앞에서 주님을 뵈옵는 것보다 더 감격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예수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비록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쓰러져도 언제나 거기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그분을 끊임없이 버려도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 그리스도예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 내주하심 속에서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느끼기에 우리는 그 성령을 그리스도예수의 영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5. 결론 : 임마누엘을 누림
신자의 참된 행복은 이미 이렇게 실현된 우리 안에 이루어진 이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없이 홀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그래서 죄 가운데 고통하고 복음의 빛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안에 이미 이루어주신 이 임마누엘을 부지런히 누리면서 사는 일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셨고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 무엇보다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임마누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을 알기 전 임마누엘의 예수가 우리 안에 오시기 전에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용서할 사람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 받았고 고난이 오면 끊임없이 괴로워했고 결핍이 있을 때에는 그 결핍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님이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기를 우리 안에서 임마누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분께 아뢸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난, 시련의 깊은 고통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고 그분께 빕니다. 죄 지은 자에게는 온 세상 사람이 돌을 던져도 그분에게는 용서가 있습니다. 세상의 친구들은 다 나를 버려도 그분은 변함없이 거기 계셔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와 임마누엘 하십니다. 고난과 시련이 몰려와 깊이 괴로울 때에도 그분을 의지하면 그분은 우리를 홀로 위로해주십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사랑,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살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여기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마음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이미 내안에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교재하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시련을 아뢰고 그분께 위로를 받으며 그분 안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을 입고 2000년 전에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예수의 오심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내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구유에 와서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어 이제 하나님을 믿는 너희 안에 내가 있는데 너희 안에 있는 나 하나님이 네게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베들레헴에 오실 때에는 묵으실 곳이 없어서 그 추운 날에 말구유에 가난한자들의 강보에 싸여서 오셨지만 그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그렇게 쉴 자리가 없으셔서 좋은 자리는 모두 이 세상의 욕심과 탐욕이 차지하고 말구유와 같이 춥고 허접한 곳에 가난한자의 강보로 싸여서 쳐다보는 사람 없이 주님이 그렇게 계신다면 그게 어떻게 임마누엘의 신자가 되겠습니까?
2000년 전에 예수를 죽이도록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분을 몰라보았기 때문에 또 미워했기 때문에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셨지만 이제 그분이 누구이시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왜 사람을 입으셨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는지를 알게 된 우리는 2000년 전에는 구유에 오셨어도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보좌에 오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분의 통치에 굴복하고 복종함으로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은 아버지 앞에 보여주시는 것이 성도들인 여러분이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조용히 마음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2000년 전에 구유에오신 예수님이 지금도 내 마음의 구유에 계시다면 깊이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의 왕궁에 계시도록 거기에서 우리를 마음껏 통치하고 지배하시도록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온 심령을 임마누엘로 통치하시도록 그렇게 우리를 내어드리는 것이 성탄의 참뜻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