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으로 오신 하나님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6-7)
가끔 돌집이나 어린 아이 백일 집에 가면,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음식을 차린다, 밥을 먹는다, 선물을 싸가지고 온다 하면서 축하해 주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또 한 쪽에서는 화투도 치고 놀이도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피곤한 얼굴로 뒷방 어두컴컴한 곳에서 포대기 깔고 드러누워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누구를 위한 백일이고 누구를 위한 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애들은 꼭 돌잔치 하고 나면 앓아요. 고달프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와서 안아보고 저 사람이 안아준다. 엄마는 음식 차린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그 음식 냄새 맡아서 그 음식 냄새 통풍 시킨다고 문 열어 놓고 해서 꼭 감기 걸리거나 몸살 걸리거나 하여간 애들이 잘 아픕니다.
오늘의 우리의 성탄이 그런 돌이나 백일하고 비슷하지 않을까요? 성탄의 주인공은 우리 예수님이신데, 이 세상에 있는 이 백화점이 우리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교회보다 더 저렇게 법석을 떠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심지어 여관마다 호텔마다 알록달록 등을 달아 놓고 아기 예수 오신 것을 그렇게 축하한다고 그러는데, 평소에는 왜 그렇게 축하를 안 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모두 인간들이 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비록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이렇게 우리 일생 사는 동안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이 성탄절의 의미가 진정 무엇이고, 왜 이 성탄절 많은 사람들이 기쁜 날이라고 말하는 지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는데, 사실 이것은 다분히 인간들이 자신들 즐기기 위해 세속적 명절로 만든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아니 10년이 훨씬 더 넘었을까요? 불교계에서 헌법 재판소에서다 위헌 소송을 냈어요. 우리는 국교가 없는 나라인데, 왜 성탄절 날 휴일로 만들어 특정종교의 교주의 생일을 축하하느냐 이건 옳지 않다. 그리고 법원에 위헌소송을 냈더니, 법원의 판결이 더 걸작이에요. 패소판결을 내렸어요. 이제 성탄절은 더 이상 기독교의 고유한 명절이기 보다는 세속적인 명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날 노는 것은 특정 종교를 비호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 이렇게 판단을 내렸어요.
세상 사람들도 이제 이 성탄절을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성탄이 무엇이고, 그 성탄절에 누가 왔는지는 몰라도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명절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왜 오늘이 이렇게 기쁜 날인지, 분명히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은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그래서 호적하러 돌아가는 길에 마구간에서 묵어가다가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출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 자신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이 탄생의 현장을 보며 우리는 기뻐할 만한 아무 것도 없어요. 무슨 왕국의 커다란 권력을 가진 임금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에요. 일본의 무슨 황태자비가 아이를 가졌다, 낳지도 않고 그냥 가졌다 하는데도 일본이 발칵 뒤집혔어요. 그렇게 지체가 높은 집안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었고, 권력이 많거나 돈이 많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신 생애를 봐도,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정치인도 아니었고, 권력을 가지신 분도 아니었고, 세계 역사를 뒤흔든 장본인도 아니었고, 그리고 그 분의 생애는 길게 살아서 많은 일을 하신 생애도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우리가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공생애 들어오신 이후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의 그 행적은 그 손바닥 보다 작은 팔레스타인 지방을 떠나지 못하신 생애였습니다. 그 분이 훌륭한 학교를 졸업하신 것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젊은이들의 우상이 될 만한 특기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오늘 출생은 말구유 안에 간에 강보에 싸여 아이가 누워있는 장면입니다. 그것이 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간에게 부여하시고, 하나님 속에 있는 영혼의 생명을 인간에게 불어 넣으셔서 하나님이 창조한 온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과 교제하며 가족관계를 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주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지만, 다른 존재들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피조물이에요. 다른 존재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인간 속에는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 형상이라고 부르고 더 쉬운 말로는 인간 속에는 영혼이 있어서 순결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분신이에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피조물에 불과했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자녀와 같은 존재로 이 세상에 창조해 놓으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과 교제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창조하셨습니다. 마치 오늘 우리 예배당을 밝혀주고 있는 이 전구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전기가 들어오는 소켓에 끼워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인간도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사귀면서, 하나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그 영향 아래서 생명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때에 제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이 만드신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첫 번째 아름다운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죄가 들어왔고, 그 불순종을 통해 마치 큰 둑이 터지고 강물이 밀려 들어 온 동리와 온 논과 밭을 뒤덮어 버린 것처럼 그렇게 죄가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죄가 들어온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히 파괴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부모가 만든 집에서, 부모가 해주는 밥, 부모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살면서도 그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정신병자와 같이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원래 자기를 만드신 그 하나님을 찾아 갈 수가 없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인간은 이렇게 죄로 가득 찬 세상에 살도록 적합하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죄가 없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만들어진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했고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이 세상에는 이제 처음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와는 다른 비참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한 한강에서 낚시질은 하지만, 그 낚은 고기를 먹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한강 근처에 있는 매운탕 집에서 팔았다는 이유 때문에 신문에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왜 강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려다가 옛 조상들이 늘 하던 대로 물고기를 잡아다 국을 끓이고 탕을 끓여 파는 것이 구속되고, 유치장에 갈 일이고, 신문에 나고, 경찰이 조사하느라 발칵 뒤집히고 왜 그런 상황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이 옛날 그 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이 굽은 고기, 눈이 삐뚜루 붙은 고기, 도대체 종류는 같은 데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형의 모습을 한 고기들이 생겨나고 있는 거예요. 그 물 속 환경이 바뀐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했는데 지금 죄가 물밀 듯 가득 찬, 이 혼탁하고 더러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들이 그 더러운 오염물질과 맹독성 물질이 가득 찬 한강에서도 살아남은 고기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 주님과 사귀며 사는 그런 삶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성품도 굳고 인간성도 굳고 모든 것이 망가진 존재가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뜨려진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사랑하도록 맺어주신 사람들끼리 서로 죽일 듯 미워하거나, 용서하고 살아가도록 자비를 베풀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끼리 원수 맺고 살아가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의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모두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쌓여가고 원수 맺는 일들이 우리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는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고, 따라서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 망가뜨려 버린 이것들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회복시켜야 할 절실한 필요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지상에 내려오신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관계,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파괴 되었기에 필연적으로 불행한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슬픔과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을, 거기서 비롯된 모든 죄와 고통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해 놓으셨을 때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맺게 하셨던 그 관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죄와 고통으로 말미암아 가득 찬, 슬픔이 많은 인생들의 죄악과 고통을 종식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기 전에, 이 세상에는 여전히 한번 우리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가 가득할 것이며,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한 불순종과 죄에 대한 결과로서, 이 세상에서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 세상에 죽음도 남아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진 이 세상에 무질서와 죄악들이 남아있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예외적으로 그 사람들을 만이라도,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창조해주실 때 하나님이 인간과 맺고 싶으셨던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관계, 자녀와 부모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관계를 맺어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처럼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깊이 깨뜨려져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깊은 계곡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이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어서 인데, 하나님께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법보다 훨씬 의미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이세상의 만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심에 빛을 발하셨습니다. 공중에 많은 새와 바닷 속을 헤엄치는 많은 물고기, 그리고 땅위를 다니는 수많은 짐승들도 하나님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간만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말씀한마디로 창조하셨지만, 그러나 인간은 당신의 손으로 흙을 빚으셔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만드셔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비록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원래 창조될 때에는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다른 물질이나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창조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은 주께서 명하시는 순간에 즉시 존재하게 되었고, 존재하게 된 즉시 생명을 가진 것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후에 후~~그 코에 생기를 불러 넣으심으로 영혼을 인간에게 주입시키시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만남으로 작동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인간이 모두 범죄함으로 저주 받은 이 땅과 저 하늘은 다시 창조하시는 그날에도 한마디 말로 창조하실 수 있을 것이어니와 인간은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서 비참하게 잠든, 그 죽어가는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특별하게 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당신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원래 이 화목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원수 맺은 사람끼리 그 원수 관계를 풀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졌으면, 그 하나님과의 깨뜨려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죄는 자신이 지었는데, 죄 없는 짐승을 죽여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진노를 푸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예전과 같이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제사는 언제나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한번 하나님과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나서도 즉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범죄 해서 하나님 이름에 누를 끼치고 하나님 마음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다시 화목제를 드리고 잠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다가 다시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닫히는 그런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완전한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고 언제든지 자기가 부르는 인간들이 응답하고, 인간들이 아버지를 부르면 언제든지 화목한 길을 열어서 당신 앞에서 예전에 죄가 들어오기 이전처럼 하나님 앞에 자녀로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을 위해,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영원한 제물이 필요했는데 그 제물은 동물로서는 불가능했고, 하나님의 아들이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의 법이 파괴되었으니, 그 법을 파괴한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누군가는 대신 죽어야 했는데, 죄가 들어온 이후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한결같이 죄를 가진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죄 있는 자를 위해 드려질 죄 있는 제물이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서 제물을 자기 스스로 준비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훼손하고 범죄할 능력은 있었지만, 자신들이 지은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서 육신을 입어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그것도 부자나 권세있는 집안 자녀로서가 아니라, 가난한 집안 목수의 아들로 오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실 곳도 없어서 말 구유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거친 강보에 쌓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성탄,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에 기쁜 소식이 전파 되고, 온 세상 죄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성탄이 정말 기쁜 날이지만, 그러나 만일 진정한 성탄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죄와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의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어 세상에 내려보내시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영원한 대속제물로 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천한 한 여인의 태에 누워서 인간의 생육 방식에 의한 출생은 아니지만,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 하더라도, 천한 자궁을 빌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온 세상에 주인 되신,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천한 한 여인의 뱃속에 누워계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어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낮아지심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치욕스러울 정도로 낮아지고 한없이 낮아지는 겸비함으로 종의 형체를 가져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 한 여인의 태를 비셨습니다. 우리가 이 겸손과 낮아짐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에게 합당한 영광이 필요했는데, 그 영광을 모두 버리고 한 여인의 태에 누워 고요히 출생을 기다리는 성자 하나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낮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참 사랑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태어나신 후에는 어떠하셨습니까? 사람의 태를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도 수치스러운 일인데 태어나신 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는 보다 더 고난과 가난, 그리고 치욕으로 가득한 인생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이 땅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그 분이 하나님에 대해 기록된 글들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자기를 경배하기 위해 지어 놓은 그 성전을 오가시면서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를 배우셨습니다. 30년의 개인적 생애를 마치고 난 후 시작된 공적인 생애에서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욕을 당하셨는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처음 오셨을 때도 악한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기 원했지만, 공적 생애가 시작되어서 이제 본격적으로 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로 건져내고, 그들의 어두움 마음에 복음으로 빛을 비추고자 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반대자들에 에워싸여야 했습니다. 사랑을 베풀고자 했지만, 사람들은 미워했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먹이고 입히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은 마지막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굶주리는 자들과 함께 굶주리시며, 자기를 위해서는 베풀지 않았던 기적을 사용하여서라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들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의 생명을 끄지 않으시고 인자와 자비와 긍휼로 돌아보시기를 하나님과 같이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인간을 섬기셨음에도, 결국 그분은 자기가 한없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바로 오늘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그 일을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이 불화와 죄의 담을 허물고,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 예수께서 천군 천사들의 찬송소리와 함께., 기쁜 소식과 함께 목자들의 기뻐 즐거워하는 목자들의 환영 소리와 함께 탄생하신 아기예수의 그림 속에서 잠시 후,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자기를 다 불태워 드리는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이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로 드려지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준비되시는 그 일을 성경은 기다려 왔습니다. 성경과 인류의 모든 역사가 이 한사람의 태어남에 주목하여 왔고, 아기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보며 우리가 기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아기 예수가 자라서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혈통이나 학식이나 문벌이나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던, 하나님 앞에 죽은 것과 같은 우리의 영혼이 살리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구하기 위해 오신 성탄을 맞으며 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의 탄생을 한없이 감격하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흠 없으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 겸비함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좋아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싫어서 버린, 하나님을 배반한 이 못된 인간들을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인간들이 당하는 슬픔과 고통을 맛보게 하시고, 그래서 죄는 없으시지만,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온 몸으로 경험하게 하셔서 같은 처지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 우리들을 깊이 사랑하게 하셔서, 그래서 누구도 뺏는 사람이 없지만,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죄 가운데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간의 운명을 인해 깊이 아파하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인간의 죄를 인해 깊이 아파하신 그 마음으로, 누구도 자기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 없지만, 당신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깨서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장을 허물고 창조시에 하나님과 가졌던 영광스러운 그 교제로 우리를 돌아가시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유혹에 빠져서 부모를 버리고 나쁜 길로 갔던 자식이 자기의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허랑방탕하게 산 이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고, 잠시 세상 유혹에 못 이겨 집을 떠났던 자녀들이 춥고 어두운 밤이 오자, 따뜻한 부모의 사랑과 동기간들의 교제가 있는 자기의 집을 찾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들을 위해서 자기 외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는데 그것이 결국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의 처지를 경험하시고 인간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셔서 죽으신 이 끔찍한 고난의 사건이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집을 나간 자식을 향해 꿈에도 그리는 부모가 소식없는 자녀를 향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가지고 있는 돈과 성공 명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그 아들이 살아 돌아와서 자기 옆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말고 무슨 소원이 그 부모에게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굉장히 무거운 의무를 짊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이제까지 내가 즐거워하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없어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분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빈부나 귀천이 구별이 없이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아기 예수로 오신 그 분이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예수께서 못 박혀 죽으신 그 보혈의 샘에 와서 영생의 물을 마시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겁니다. 값없이 거저 와서 그 영생의 물을 마시고 눈이 밝아져 이전에 죄 가운데 살던 그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맨처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드셨던, 온 하나님이 창조하고 다스렸던 만물 위에 왕자와 같은 자리로 돌아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이런 가슴 저미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외아들을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찬 이생의 마지막 끝에는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고, 불붙는 지옥 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아시고, 당신의 형상을 가진 우리가 그런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 보실 수가 없어서 자기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슬픔을 감수하셨던 것입니다. 이전에 어떤 많은 죄를 지었던지, 이전에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게 고통스럽고 불행한 나날로 살아왔던, 여러분들의 가슴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던지......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모든 흉악한 죄인들을 구하시기에 능한 분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양편에 있던 강도를 기억해 보십시오. 일평생 선한 일이라곤 한 일이 없고, 사람을 죽이고 강도짓 하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었으며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곁에 있는 예수를 모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예수님이 구원하셔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으셨더라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더라면,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으면, 그런 흉악한 죄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어 낙원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이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해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아기 예수가 바로 이런 사연을 안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그렇게 순결하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고결한 옥체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고난의 상처를 잔뜩 짊어지신 채 인간에 의해 못 박히고 창에 찔려 숨을 거두신 그 물과 피가 바로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회개인 것입니다. 흠 없으신 아기 예수께서 구유에 놓인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를 우리들이 내려다볼 때에도 천진난만하게 느껴지고, 어린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그 어린 아이들의 그 눈빛을 보면서 순수와 진실을 배워요. 죄악 된 인간의 몸에서 죄 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도 그러하거늘 죄 없으신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이신 그 장면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예쁜 아기 예수가 장차 그 험한 십자가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못 박혀 죽으신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의 악함이 그 어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들 것이었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고, 그 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눈에는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서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기 위해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불길 같은 죄를 한 몸에 감당하고 그 고난에 불타버린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고난의 모습이 성경 어느 곳을 펴든지 우뚝 서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 십자가의 사랑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우리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형벌 받아야 할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었습니다.
이제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지위를 버리고,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파괴해 버린 우리의 이 흉악한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길은, 흠
없이 오신 이 어린 아기 예수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 그 영광을 버리고 오셨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이 말구유에서 우리는 장성한 후에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몸을 찢어 십자가에 매다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 이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좋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분이 당하신 고난이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음을 겸손히 고백하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산산이 부수심으로 그 피로 이루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을, 우리의 의의 신발을 버리고 걸어가겠노라고 고백하는 것만이 우리를 위해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육체를 찢어서 흘리신 그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새롭고 산 길을 걸어가서, 전에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었고, 또 보아도 알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이제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며 살아가는, 이제는 다시 죄와 허물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다시는 우리들이 불순종과 죄로 인해 하나님을 아프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서 살아가는 그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이며, 여러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이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 자기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실 때에 이미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다 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자기 아들의 그 고난 받으신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이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겸비하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살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믿는 것도 헛된 것이요, 우리의 소망하는 것도 헛된 것이었을 텐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것, 우리에게 이 구원의 길을 여셨으니, 우리가 어찌 아기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아기 예수의 이 세상에 오신 것을 한 없이 기뻐하는데, 그 기쁨은 눈물 섞인 기쁨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 주님의 탄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길이 없는 우리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에 깊이 감격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버린 바 되셨던 그 십자가의 고난 때문에 슬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런 기쁨과 교차하는 슬픔을 아울러 가진 채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같이 쓸모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 받으며 죽으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슴 아파 하면서 그 감사와 가슴 아픔의 긴장 사이에서 이제는 우리들이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을 우리가 망가뜨린 이 세상을 회복해 놓기 위해서 주님의 복음의 도구가 되어서 아직 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에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이 뜻 깊은 성탄절이 바로 그날입니다. 하나님, 이제까지는 제가 의미 없는 성탄을 보내었지만, 오늘 비로소 내가 왜 아기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뻐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기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십자가의 고난을 슬퍼해야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오셔서, 내 인생을 다스리시고,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생명을 버리고 나를 구원하셨음을 그 분의 발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하며 섬기는 즐거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 우리 같이 쓸모없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구유에 오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이 사랑을 우리의 마음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가 일평생 주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도와달라고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