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노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4-15)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에 죽으셨습니다. 유월절이라는 무교절이 가까웠을 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원래는 유월절에는 이 예수를 잡지 말자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다니던 광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환호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박수를 보내고 갈채를 보냈습니다. 율법의 교훈을 가르치고 그리고 제사를 지내주는 자기를 향하여서는 보내지 않던 특별한 존경과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냈기 때문에 그들은 환영 인파에게 둘러싸이고 교훈을 듣기 위해 겹겹이 둘러싼 수많은 인파를 볼 적마다 그 인파 한 가운데 있는 예수를 시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미워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절에는 예수를 죽이지 말자. 그들은 스스로 도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그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이기 위해서 모이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만약에 자기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면 수없이 예수를 따르던 군중들이 예수의 편을 들고 예수와 함께 반항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말자’라고 하였는데 예수는 그 유월절에 고난을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 자기를 죽일 사람들은 절대로 유월절에 죽이지 말자 그렇게 다짐했지만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이 유월절에 죽으실 것을, 고난을 받으실 것을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 본문은 유월절 식사를 하는 그 때에 그러니까 바로 어제 목요일이지요. 그 때에 제자들에게 식탁에 앉자마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직 누구도 사도들 중에 그 누구도 그리스도가 이 식사가 자기들과 함께 이 지상에서 고난 받기 전에 나누시던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그렇게 모인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수없이 따라다니던 그 많은 인파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찬송의 소리와 박수를 보내던 그 열렬한 지지자들을 모두 떼어 놓으신 채 오직 당신이 공생애에 들어서면서 처음 부르셨던 그 원래의 사도들을 부르셔서 함께 앉으셨다고 오늘 성경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여서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만류와 혹은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 죽이지 말자 그들이 결심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당신은 이 식사를 마지막으로 체포당하시고 심문을 당하시고 내일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을 받기 전에 이들과 함께 유월절 먹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원하고 또 원하였노라,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셨던 가장 큰 소망과 그리고 가장 간절한 바램은 이 유월절 식사를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이 세상에서 편하게 제자들과 함께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가운데 그 분의 소원이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구속의 길을 가실 구세주의 마음속에 있었던 이 소박한 소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는 그 큰 고난을 앞에 두고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만큼 세상이 변화 되어지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는대로 나아가고 율법의 마침으로 오신 자기를 영접하지 않는 이 세상이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것은 그 분의 소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왜 이 유월절 식사를 마친 이후에 목요일 깊은 밤, 혹은 금요일 이른 새벽, 체포당하기 전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 우리들은 그분이 그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 기도를 하며 밤을 세셨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간단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이 바로 그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인류의 모든 구속을 이루는 길임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셨기 때문에 그분은 이내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 제사장의 간절한 기도가 바로 요한 복음 17장에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과 그리고 두고 가는 사도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날 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것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에게 올렸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통곡과 눈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울부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때는 모두 지나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그 모든 마음의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이제 한 가지 남은 소원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받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고난을 변증하고 잠시 후면 자기를 버리고 저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칠 사람들에게 자기를 변명하기에 그 모든 필요한 일들을 포기하고 오히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기를 원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성경은 이 유월절 식사를 너희와 함께 먹기를 원하고, 원했다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볼 때에 여러분의 마음을 찔러 오는 것이 없습니까? 이 너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너희 속에는 가룟 유다 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가룟 유다가 당신을 팔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은 30에 당신의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의 구주이며 선생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팔기로 작정을 하고 이미 돈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값을 얼마나 줄까 하며 은 30을 달아서 가룟 유다에게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은 30밖에 안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 와서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자기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 비할 데 없는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가 이 낮고 천한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그 길을 순종함으로 걸어가실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 예수 그리스도는 깊이 아셨기에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높은 보좌를 버렸습니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반역하는 인간들의 모욕을 들으실 참이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 성도들의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는 대신에 당신이 구하시기 위해 오신 백성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질고를 배우셨고 그리고 고난을 받으시면서 순종을 배워가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예수의 그 넓은 사랑은 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의 머리로 계산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은 은 30이었습니다. 가룟 유다 한 주먹에 들어오는 은 30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예수 그리스도를 팔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팔려는 자들과 입 맞추고 그리고 그 손에 은 30, 예수를 대신, 생명을 대신하여 댓가로 받은 은 30을 쥐고 돌아온 그 사람도 포함해서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또 원하고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마지막 식탁을 나누는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한번도 이 가룟 유다를 비난하신 적이 없으시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증거가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이 사람이,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은 30을 손에 쥐고 성취감에 잠겨 있던 가룟 유다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는 팔려가는 가룟 유다의 영혼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돈을 손에 넣었지만 거꾸로 그 돈을 받음으로 악마에게 팔려가는 유다의 영혼을 보시면서 네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프지 않고 그리고 너도 불행하지 아니 하였으리라, 가룟 유다의 영혼을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가룟 유다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는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또 원하고 또 원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먹기를 원했다고 하는 사실은 이 유월절의 식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번째 재앙을 애굽에서 맞이할 때에 죽음의 사자가 초 태생을 다 치고 죽이며 지나갈 때에 그 죽임 당하는 데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양고기와 함께 먹던 그 식사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첫 태생들이 이렇게 그 집에서 어린양이 대신 피 흘려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는 그 피 흘려 피 바른 문설주와 인방을 보고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죽은 그 수많은 비명 지르며 죽어간 어린양,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가 유월절에 죽으시기로 작정한 것은 이미 영원 전에 선택된 일이었습니다. 그 때보다 주님이 죽으시기에 가장 적합한 때가 아무 때도 없었습니다. 그 때에 때는 정해졌고 죽일 자들은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유월절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식사를 떼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유월절 식사를 통해 하시고자 했던 일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우선 첫째는 이 유월절 식사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외에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당신이 마지막 고난을 받기 전에 제자들 속에서 하시고 싶어 하셨던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때가 가까워온 줄을 알고 자기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시니라’ 고난을 앞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일은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잠시 후면 자기를 버리고 다 도망갈 이 제자들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식탁을 벌리고 섬김을 받는 대신에 그 분은 떡을 스스로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손으로 떡을 떼어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며 그리고 그들에게 잔도 그렇게 따라서 제자들을 위해 섬기며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잔을 돌려서 마시라고 권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유월절 식사를 고난 직전에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유월절이 바로 자기의 죽을 것을 예표하는 것이요 이 유월절이 자기가 이렇게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성취되어지고 이스라엘에 백성들이 그 유월절 지난 이후에 430년의 그 지긋지긋했던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명에 죽어간 그 양의 피와 그 흘린 그 시체의 찌꺼기를 딛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기의 십자가의 고난을 딛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으로 나아가 것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시기를 원하셨던 것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월절 식사를 통해 당신의 제자들과 하나 되었음을 보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그 제자들이 잠시 후에 자기를 버리고 혼자 십자가를 지게끔 내버려두고 도망갈 것인지 안 도망갈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여기에 오셨고 그리고 그 제자들을 택하셨으며 그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 충성과 헌신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라도 주님이 이 제자들과 맺으신 언약은 변함이 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이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보이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이 유월절 식사를 원하고 또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은 잠시 후에 인간의 연약함으로 그 훌륭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모두 버리고 도망갈 그 사도들을 향해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잠시 후면 죽음의 사자들이 으르렁거리는 그 고난의 골짜기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외로운 가운데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실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그 고난을 앞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의 관심은 이 제자들과 함께 자기가 한 형제 되었으며 한 가족이며 한 식구임을 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기 전에 드실 유월절 식사를 통해 보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년에 몇 번씩 나누는 이 성찬에 떡과 포도주를 통해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매주, 혹은 매일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포도주 대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름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보이는 떡 대신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 되는 말씀의 생명 떡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죄인에게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양식을 내리시고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은혜의 기름을 우리 메마른 심령들에 부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태도와는 상관이 없이 한 번 택하고 구속한 우리들을 언제나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하고 원하심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드렸죠? 예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단지, 기념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주 그 말씀의 떡을 떼면서 우리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시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는 모든 안목 앞에 우리를 당신의 식구로 세우기를 원하고 형제로 인정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은 바로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의 고난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못박혀 죽는 자기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찢어지는 살과 흐르는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 제자들이 장엄하게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당신의 마지막 저녁을 기꺼이 섬기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마지막 밤에 제자들에게 주셨던 이 교훈은 얼마나 놀라운 교훈이었습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바라본 한 사람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마지막 저녁에 가르치고 계신데 그렇게 가르치고 계신 그 분은 생명 자신이었고 떡을 주시는 그분은 떡 자체였습니다. 피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예배 가운데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시고 은혜의 기름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그리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예배의 단 앞으로 인도할 때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 이렇게 말씀의 떡을 우리에게 주시고 은혜의 포도주를 우리에게 부으시는 그 분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의미하는지를 매일 매일 새롭게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그리고 그 높이를 누가 감히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곳으로부터 죄악을 이길 실질적인 성령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어두움을 이기고 빛으로 나아가며 환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며 살아가는 이 손을 놓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영혼의 힘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린 모든 사람들이 예배에 나와 유월절을 먹는 것과 같이 배불리고 난 후에 우리는 함께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 것은 그 분의 살을 인함이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그 분의 피를 말미암음이라고.. 우리가 사는 것도 그 분이 자기를 버리셨기 때문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 원하는 것도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찢고 피 흘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분이 나눠주신 그 떡이 제자들의 입으로 들어가 살이 되었습니다. 그 포도주가 그들 깊은 속으로 들어가 피가 되었습니다. 그 떡과 포도주가 그들 속에 들어가자 이제 그 떡과 포도주는 분리되지 않고 그들 몸에 일부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그렇게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 살의 일부가 되고 피의 일부가 되어서 그렇게 우리 속에 살아있게 되는 것이 고난 이후에 그 고난의 십자가를 믿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여러분 몸에 흐르고 있는 피는 누구의 피는 누구의 피 입니까? 여러분, 육체에 붙은 살은 누구의 살입니까?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외치게 만드는 힘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피가 그 혈관에 흐르고 예수의 살이 그 몸에 붙어있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부르짖음을 토해낼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몸에 흐르고 예수의 살이 우리 몸에 붙어 있는 한 우리는 그렇게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수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말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토록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새로운 언약을 세워서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새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언약은 실패하지 않았으나 언약을 맺은 인간들은 거기에 반역하고 그리고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은 파기되었고 그리고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을 향하여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밖에는 기다리고 있지 않았는데 새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 새 언약은 디아디케 헤카이네 언약은 언약인데 새 언약에요. 새로 나온 언약이 아니라 새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틀린 언약입니다. 구약의 언약의 반복이 아니라 시기적으로만 새로울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그런 새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서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속의 길을 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언약을 맺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 언약은 짐승의 피로 맺어졌습니다. 오늘 이 새 언약은 짐승의 피로 맺어졌습니다. 오늘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으시는 포도주와 찢으시는 떡으로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떡과 포도주로 맺어지신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맺어진 이 언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잠시 후에 주께서 세우실 텐데 그것을 이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 유월절을 원하고 또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세우신 새 언약의 의미를 실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 아래 있을 때에 소망이 없고 그리고 피 흘려 죽임을 당할 정죄함 밖에는 없던 우리가 정죄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진 이유가 바로 이 새 언약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깨뜨려 세운 이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을 통해 우리에게 이것을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던 것은 바로 당신은 가도 당신은 가도 당신의 피로 맺어진 교회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이 원래 제대로 하려면 한 잔에서 한 덩어리의 빵을 먹어야 해요. ‘이것을 너희끼리 나누라’ 그러면서 빵을 하나를 주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각자 나누어서 먹었어요. 하나의 잔을 주시며 수많은 사람들이 먹게 하셨어요. 이게 바로 성찬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지를 않으니까 문제죠.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섬기기에 능하신 그 분이 하나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만을 주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은 가도 너희는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시면서 이 제자들에게 나는 가도 너희는 하나다 이것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런 면에 있어서 얼마나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리스도는 수난을 예언하는데 노중에서 누가 제일 높은가를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그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벌써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제자들이 가야할 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요구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셨던 이유는 마지막으로 죽으시기 전에 너희끼리 나누라, 나는 가도 너희는 하나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모이고 고난을 기억하며 모이는 이 성찬과 예배는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 때 먹고 하나의 잔에서 마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통해서만 이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모두 하나의 말씀의 떡을 떼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예배를 2부, 3부, 4부 이렇게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지만 한꺼번에 할 수만 있으면 가장 어린아이들도 함께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은 그러면서 하나의 떡을 떼는 거죠. 예배로 모일 때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떼어주시는 말씀의 떡을 떼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니 교회가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회를 가르고 나누어놓고 그리고 반목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칼을 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신 이 밤의 식사를 통하여 하나의 떡과 한 잔의 포도주를 많은 제자들에게 한꺼번에 주시면서 너희는 하나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찬을 받으며 늘 엄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주께서 우리에게 하나 되게 하기를 원하신 것들을 힘써 지키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촉구 고 있는 것입니다. 매주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러분들은 그것을 생각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떡으로부터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함께 배불림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로서 기뻐하고 하나로서 즐거워하며 하나로서 귀하게 여기고 하나로서 더더욱 하나 되게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치된 마음을 가질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생활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간절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이 마지막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이 모든 일들이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떡을 뗄 때마다 같은 성령으로 한 은혜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되게 하신 이것을 얼마나 힘써 지키며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삶이 바로 하나 되게 하신 교회의 일치됨을 지켜나가는 것인지 이것을 깊이깊이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하여야 할 일이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그 마지막 순간을 한 끼의 식사로 보내시기를 원하셨던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여러분들은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포도주와 정성스럽게 만든 떡을 일 년에 두 번 떼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난 주간에 몇 끼의 금식을 하고 슬픈 기색을 띠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우리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의 때에 우리를 위해 다시 돌아오실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은 우리에게 금식과 슬픈 기색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동정을 받으시기 위해서 그 길을 가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고난의 주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을 여러분 준비하고 싶으십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토록 그 날 저녁 떡과 포도주를 떼며 마시며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고 그 유월절 식사를 먹고 또 먹고 마시기를 그토록 원하셨던 그 이유를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와 그 까닭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고난의 십자가의 의미를 1년 365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고난의 날입니다. 모든 주간의 고난의 주간입니다. 그 예수의 십자가의 정신은 마지막 성만찬의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는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대속의 피의 보혈을 업수히 여기며 살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속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은 30에 팔고 그 돈을 움켜쥐고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기 위해 온 가룟 유다를 향하여 너희와 함께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우리는 아버지는 그를 버리셨을지라도 예수는 그분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던, 그 죄인을 향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을 향한 마지막 긍휼을 또한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성찬은 우리에게 이것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을 긍휼히 여기며,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기를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돌아오지 않는 자와 하나님께로 향할 줄 모르는 패역한 이 시대의 죄인들을 찾아가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며 먹기를 원하는 그 영혼을 향한 진지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사랑이 우리 속에 살아서 유다를 바라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 마지막 성찬 식탁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늘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그 전날 밤 너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한다는 이 음성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주의 교훈을 받고 그리고 매주 모일 때마다 성찬 때마다 깊은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찬을 받고 말씀을 듣고 걸어갈 때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얼마나 멀리 이탈되었는가, 돌아가리라 그렇게 살아야 하리라,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가는 것이 성찬을 받은 이후에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그리스도가 못 박히신 그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세상을 못 박으며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그 교훈대로 살기로 작정하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성찬을 기념하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주어진 이 새 언약을 한없이 즐거워하며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예배요 성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그 새 언약의 광대한 의미와 십자가의 구속의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아무것도 주께 더 원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만족하며 그 십자가로 우리의 영혼이 충족하며 그 십자가를 자랑하기로 그 십자가에 붙들리고 매여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로 다짐하는 것이 성찬을 받고 말씀의 떡을 떼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 마지막 밤을 먹고 또 먹기를 원하고 또 간절히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됨을 보이셨던 것처럼 매주 모이고 성찬을 떼고 말씀의 성찬을 나누면서 우리는 우리가 한 몸인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밤에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살아갑시다. 그리하여서 다음에 성찬이 올 때까지 아니, 주일이 오기 전에 우리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떼어 세상에 나누어주는 성찬이 되기를 힘쓰는 그런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