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원리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3-24)
녹취자 :이경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제도는 사람이 살다가 보니까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을 앞서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제도가 둘 있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와 그리고 가정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정이 먼저입니다.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는 사람이 살다보니까 필요해서 나온 제도가 아니라 한사람이 한사람 밖에 없을 때 하나님이 이 제도를 만드시고 여자를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육체의 몸은 흙을 빚어서 만드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이것을 영혼을 삼으셔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두 사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한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아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실 때 에는 티끌에서 창조 하신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몸을 취하여 그 몸으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불행해지고 싶어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 불행해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이 결혼생활에서의 행복은 마치 기차가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기차가 레일을 달리고 있는 한 어디든지 갈수 있지만 레일에서 이탈하면 아무리 그 기차가 신형이고 엔진의 출력이 좋고 어마어마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에는 네 가지의 행복에 이르게 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니까 아담이 그 하와를 볼 때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중에 뭐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문화에서 최고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뼈 중에는 없어도 되고 있어도 괜찮은 뼈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뼈는 조금만 상하면 큰 문제되는 뼈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발가락이 좀 뼜다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문제가 없습니다. 척추를 뼜다 이거는 몸을 못 움직입니다. 큰일 나는 겁니다. 이런 게 바로 뼈 중의 뼈입니다. 또 살도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굳은살 같은 것은 칼로 잘라내도 문제가 없습니다. 심장에 있는 살은 손톱깎이로 조금 떼어내도 사람이 죽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하아와 올 때에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한 것은 그 여자 없이는 내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라는 의중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흔히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이렇게 결혼생활에서 대답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 히브리말로 에베르입니다. 이 에베르는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도움이라고 번역이 됩니다. 여호와가 나를 도우시며, 원래 이 에베르이라는 말은 군대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전쟁에 지고 있을 때 저 지평선에서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응원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창조되었으나 여자를 통해서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최고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결혼할 때 사랑이 결혼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이 개입하면 안 됩니다. 물론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모든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할 때에는 누구든지 사랑하니까 결혼을 하는 것이지 죽어도 싫은데 결혼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결혼생활 에서의 행복이 이 사랑이 결혼을 성립시키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결혼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지러움이 있습니다.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은 항상 출렁거림이 있게 마련입니다. 변함없이 라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많이 사랑이 감정이 출렁거리다가 가라않기도 하고 또 출렁거리고 혹은 아주 사라지기도 하고 더 많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는 것은 감정에 충실하면 됩니다. 왜 ?사랑에 빠졌을 때이니,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이게 사랑이라는 것이 출렁이는 감정만 의지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이 서부에서는 상당히 많이 감정에 치우칩니다. 그런데 동부북아 에서는 특별히 중국사상에서는 이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성에 속합니다. 인의예지 이성의 활동입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희로애락대오욕 출렁거리는 정입니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이 동양인 사람들이 이미 터득을 한 것입니다. 결혼하기전의 사랑과 결혼한 후에 부부가 된 다음의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결혼하기 전에는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바닷가에 앉아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결혼하기전의 사랑이고 그러나 결혼한 후의 사랑은 둘이 작은 배를 타고 노을이 떨어지는 그 바다를 헤쳐서 어는 항구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굉장히 어렵고 현실적인 문제 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에는 내가 이 여자와 결혼 함으로서 이 여자의 도움을 내가 좀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가는 길에 보탬이 되어야지 또 이제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면 이 남자가 나한테 이러이러한 것들을 잘해주겠지, 그러면 내 인생의 도움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실망을 하게 되고 결혼생활 에 좌절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깊이 사랑하면 목표의 합치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걸 가리켜서 나는 사랑의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가치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고 나면 나만의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가지고 있는 목표에 나를 합치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에는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온전히 깨뜨려져서 저 남자를 완성 시킬 수 있다면 난 행복 하겠다, 저 여자가 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 했을 텐데 나라는 남편을 만난서 같이 삶으로 이 여자가 더 좋은 사람으로 완성될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게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에게 분에 넘치도록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이 사람으로부터 분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난 참 외로워’ 이런 느낌을 받으면 사랑을 못 받아서 외로운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드려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 입니다. 외로움은 바로 그런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원리는 자기희생의 원리입니다. 나를 꺾어서 나를 부러뜨려서 나를 굴복시켜서 그래서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나를 낮추고 나를 깨뜨려서 남편을 위해서 내 자신은 헌신하고 이게 결혼생활입니다. 그게 참다운 행복입니다.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를 꺾는다는 다는 것은 너무 아프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돈 많은 사람 지위, 높은 사람이 신앙생활 잘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잘 깨뜨려지는 사람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약한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 뜻대로 삽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가정이 부모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연애는 쉽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어려운 것 입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기가 계속해서 부딪히고 변화되면서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완성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가정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아주 위대한 힘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크고 강력한 힘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됩니다. 먼저 자기를 희생하고 양보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결혼생활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두 번째는 독립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제 그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 지라 아멘, 부모를 떠납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아자부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원래 버린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 부모를 버리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사람이 뉘 집안의 아들 아무개 ,뉘 집안의 딸 누구, 이렇게 불릴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둘이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문제에서 독립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오랜 인생을 살면서 경륜이 깊습니다. 그러면 가끔은 물어 볼 수는 있습니다. ‘아버님 제가 이런 상황인데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쭈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것은 자기가 결정하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독립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면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 같은 거 받으면 안 됩니다.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죽을 먹든 밥을 먹든 독립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안 낳아서 지금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마다 아이 좀 많이 낳으라고 하지만 낳아서 엄마한테 맡길 그런 궁리하면 안 됩니다. 왜 노년에 그 분들께 그렇게 힘들게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넷을 낳던 다섯을 낳든 그것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기 맡기고 돈 벌로 나가겠다는 것은 틀린 생각 입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게 어려운 일인데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면서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터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아빠의 그늘 아래 에서는 인생에 대해서 많이 못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혼자 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 외로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의 의미가 인지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때 아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그 때에 인생에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이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독립의 원리입니다. 결혼하고도 월급타서 자기엄마한테 같다주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그거 바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독립의 원리를 지켜가서 그래서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뜨겁게 결속된 가운데 가정을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와 부모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을 그 살아가는 결속 속에서 배우는 겁니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도의 원리입니다. 효도는 뭐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독립은 했지만 부모를 깊이 공경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쓰인 그 단어가 히브리 성경에는 야레라는 하는 단어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할 때 쓰인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불효해도 부모의 그늘에서 다 묻힙니다. 부모는 자식의 불효를 공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혼하면 부부사랑이 결합되어 산위에 있는 등대처럼 등잔대위에 있는 등불처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내의 불효는 남편의 수치이고, 남편의 불효는 아내의 부끄러움입니다. 그래서 서로 그 부모에게 깊은 공경을 하는 겁니다. 거기서 문제가 뭐냐면 결혼을 한 다음에 며느리가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고치려고 하고 사위가 장인장모의 생활태도를 바꾸려고 하는 것 이것은 불효입니다. 그것은 자녀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가의 부모님을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처럼 생각하며 그분들이 이제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그분들을 사랑하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부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대게 부부가 싸우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부모에 대해서 소홀이 하거나 불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의 관계도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효도의 첫걸음은 마음을 그 부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지어먹은 마음이 삼일을 못 간다.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들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심을 드려서 그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걸 통해서 자기의 자녀들이 자신들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후에 그 부모를 어떻게 순종하고 섬겨야 하는지를 언어로가 아니라 삶의 모본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효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 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아버지를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혹시 부모님이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 있어도 깊이 용서하고 그리고 부모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신앙의 원리입니다. 이장에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을 한 뜨거운 사랑의 결합이 있었는데 삼장에 넘어가면 아담은 하아에 대해서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셔 서 함께한 그 여자가 내게 주므로 먹었나이다. 둘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각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졌습니다. 그랬더니 둘 사이에 어떤 다툼도 없이 친근했는데 이 관계가 깨뜨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이 살이라고 하는 아내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 함께 금이 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내가 살아있어서 너무나 괴로운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제 주위에는 행복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돈, 젊음, 미모, 학벌, 건강 다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혼생활은 거래와 비슷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보면 돈을 꾸어올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빌려 줄때도 있습니다. 급하면 다른 사람에게 빌립니다. 그러면 내가 여유가 있으면 내가 그 사람한테 신세 졌으니까 또 빌려줍니다. 부부가 둘이 있는데 어떤 때는 남편이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희생할 힘이 별로 없습니다. 아내가 이상하게 사랑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편을 볼 때 얼마나 힘들까? 참 가엾은 나의 남편, 그리고 이 마음에서 불쌍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품고 그리고 용납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세월이 조금 흘러가고 나면 남편 속에는 점점 사랑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아내가 왠지 사랑이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죽 떨어지는 겁니다. 갱년기가 되어서 우울증 같은 게 오면 더 그럽니다. 그런데 옛날 같았으면 아내가 그러면 벌서 화가 나고 깨뜨려 졌을 텐데 사랑이 많으니까 ‘여보 얼마나 힘들어 내가 당신 사랑해’ 이런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아내를 다 용납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이 사람이 용납해줬다, 저 사람이 용납해 줬다하면서 하면서 인생이 흘러가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게 되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랑이 여기에게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고 하나님의 사랑의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미웠던 남편과 아내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이혼을 하기위해서 수속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그 자매를 전도해서 교회 데리고 왔습니다. 생전처음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설교하는 날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온 자매가 그 설교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겁니다. (영상 여기에서 끊김. 다음 것은 찾을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