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염려하신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녹취자: 정은숙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각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어디에 살던지 간에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의 삶의 모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의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그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언제나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라고 치는 것을 오늘 우리도 최고라고 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 제일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예수 믿는 다음에도 여전히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라면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고 계신 이 장면은 바로 유월절이 시작되는 그 주간의 첫날 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을 향해 올라가시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시는 것을 큰 목소리로 환영했습니다.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앞서가며 뒤따르며 옆에 서며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하자면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시는 이 놀라운 사건을 깊이 찬송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리고 겉옷을 펴서 땅에 깔면서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크게 찬송하고 경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그렇게 찬송하고 놀랍게 경배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자기를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 가까이 오셨을 때 예수님은 깊이 통곡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날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환영을 받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기뻐하기 보다는 깊이 아파하시고 통곡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말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깨트려질 때 신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깨뜨려지지 않으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자신이 깨뜨려져야지만 신앙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깨뜨려져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하면, 신앙을 갖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동기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은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를 믿었는데 할머니가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받아서 무당한테 가니까 예수 귀신한테 가보라 그래서 그 집이 100년 전에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에게는 예수를 믿는 동기가 아주 다양하고 여러 가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여 집사님 한 분은 아주 고약한 며느리였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제사 수발할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아득하더랍니다. 그래서 기독교식으로 하겠다고 했답니다. 기독교는 제사를 싫어하니까 그걸 벗어버리기 위해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신앙이 들어가고 예수님 손에 붙잡혔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동기가 여러 가지고 따라서 하나님과 예수 믿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인간적일 수 있습니다. 우린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런 것들이 깨뜨려지고 바뀌어야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모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기의 시각에서 보는 것과 주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찬송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는 찬송하고 노래할 만한 때가 아니고 가슴 아파하고 슬피 울어야할 때였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을까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앙의 요소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그렇게 단단하게 깨어지지 않는 우리 자신들의 깨어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또 교회와 또 이런 세상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생각보다는 언제나 자기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주일 저녁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사야서를 풀어가면서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변화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성을 보시면서 깊이 울고 계셨습니다. 그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주위에서 예수님을 찬송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 앞에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같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 되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송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이른 아침부터 조반도 안 먹고 나와서 이렇게 예수님을 환영하는 대열에 목청을 높이고 따라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의 열렬한 추종자인 것처럼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열렬히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하나 되 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셨고 이 사람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깊어지고 그리고 변화가 오기 위해서는 깨닫고 감화를 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담겨있는 의미를 깨닫고 그래서 이전에 모르던 것들이 생각이 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야지만 신앙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감동이 신앙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때 우리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가 일어날 때는 반드시 우리가 감화를 받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시고 나중에는 그치셨겠지요. 그런데 그 사건은 아무도 모르는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이 어떨까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기가 잘못하고, 범죄하고, 자기가 죄를 짓고, 자기가 고통을 받으면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잘못된 인생 때문에 주님이 내 인생을 바라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합니까, 아니면 이유가 어찌됐던 간에 내가 지금 고통스럽고 아픈 것, 그것을 생각합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인간은 후자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속에 깃들여있는 죄의 영향입니다. 그렇게 모든 생각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나를 항상 버리고 예수의 뜻을 좇아가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과 생각에 하나님께서 장단을 맞추어주시기를 원하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깨뜨려지고 내가 새사람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나를 깨뜨리셔서 주님의 손에 합당한 대로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시옵소서 하기 보다는 우리 손으로 주님을 깨뜨려서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려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이 고백은 안 해도 우리 속에 깊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시면 교회도 다니고 기도도 하고 연보도 하지만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시지 아니하면 토라지기 잘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변화가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대로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에 속한 생각으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의 관점을 옮겨놓을 수 있는 변화된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많은 산들을 저는 다니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가까이 있어서 우리에게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는데 이 도봉산만큼 아름다운 산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이 경탄을 합니다. 그런데 이쪽 수유리 쪽에서 앞으로 바라보는 그 산은 굉장히 높아 보이고 말하자면 아주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바위가 깎은 듯이 늘어져있는 아주 가파른 산입니다. 사람들이 그 산을 우습게 알고 오르다가 조난을 당하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기 의정부로 돌아서 송추 뒤편으로 해서 노고산으로 뒤돌아서 그 뒤편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면 앞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뒤편에서 바라보면 마치 인자한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렇게 산이 서서히 내려오면서 그 구조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늘 그곳을 지날 적마다 감탄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생이라는 것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내 관점에서 신앙을 생각하고 내 인생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모습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왜 우셨나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런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을 보시고 우셨는데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이 무생물인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면서 중얼거리신 말입니다.
우린 여기에서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 하는 단서를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과의 평화에 관한 일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평화는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불화의 반대입니다. 하나님과의 불화를 다른 말로 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시는 것을 환영했지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환영 소리 속에서 예루살렘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이 하나님과 불화한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실 때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벗어서 길에 펴며 예수의 오심을 환영했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기적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사 유대인의 왕이 되시고 그리하여 자신들을 그 모든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주기를 원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어떤가 하는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찾은 생각이 아니라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고 또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 세상적인 바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춤추고 장단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도도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그 역사의 의미를 알고 거기에 깨닫고 동참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함께 기쁨을 누리고 주님이 슬퍼하실 때 함께 슬퍼하는 예수님과 동일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들을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이라 이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입을 것이 있고 쓸 것이 있고 그리고 누울 만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사람들은 만족해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만약에 그 시대에 태어났던 많은 정치가나 운동가 중에 한 분이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예루살렘성을 지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말하자면 환영하는 경배와 찬송을 드릴 때 얼마나 기뻐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 선거라고 하는데 우리 교회 앞에 와서도 누가 후보를 선전해달라고 해서 “우리 교회는 그런 거 하는 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가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지 성경 찬송 들고 무슨 후보 운동원이라고 그런 것을 들고 다니면 되겠습니까?”그랬습니다. 만약에 그 후보들이 길거리를 지나갈 때에 사람들의 환영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얼마 전에 보니까 구청장후보라고 연설을 하는데 지나가는 개 하나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다 자기 갈 길 바빠서 가고 혼자서 길거리에서, 그 트럭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연설할 때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방배동을 에워싸면서 막 아무개후보, 아무개후보 하면서 소리치고 말하자면 손뼉을 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기운이 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추호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이유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오시는 것을 환영하는 이유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도 오늘 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예루살렘이 하나님과의 평화가 무엇인지 하나님과의,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화가 있어야지만 진정으로 너희 세대에 참된 평화가 온다고 하는 사실을 예루살렘이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성령이 그에게 임하신 이후로 끊임없이 주께서 그에게 임하게 하신 그 성령을 힘입어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외치셨습니다.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게 했던 이유는 바로 그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이 세상의 인생들이 그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고 사람들을 치료하심으로 그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을 낮추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우둔한 자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지혜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참된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셨습니다. 모두 하나님과의 평화를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시지만 며칠 후에는 바로 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정죄를 받아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억울하게 죄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하나님은 지켜만 보고 계실 작정이셨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대속의 그 죽음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는 그 첫날 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과의 평화가 무엇인지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 화목은 깨뜨려졌고 깨뜨려진 화목은 조용히 치유될 길이 없을 정도로 깊게 골이 파였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백성들은 범죄 했습니다. 범죄 한 죄인들을 하나님은 용서하기를 원하셨으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가고 하나님을 대적하기를 더 기뻐하였습니다. 깊은 골이 파여졌고 평화에 관한 일은 숨기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성을 보시고 우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어떤 것들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느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오늘, 지금 하나님과 화평한가, 하나님과 화목한가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늘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 찢어 피 흘려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은 단지 우리가 한 번 그 십자가를 믿고 난 다음에 다시 죄 가운데 빠져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과 불화한 가운데 그렇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구속의 그 피의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 십자가를 기억하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매일매일 그 화목을 오늘 내가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지금, 지금, 오늘날 네 눈에 숨기웠도다, 주님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이었습니다. 지금, 그러므로 깨어 있는다 라고 하는 말은 이 한 가지 질문 앞에 날마다 우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있는가, 주님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서있는 것을 이 모습을 기뻐하고 계신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기뻐하시는가, 이 질문을 우리는 매순간마다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평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원수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제물로 드리는 표징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얼굴을 가리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깊어지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등지고 가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일한 해결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막힌 담은 허물 수 없습니다. 돌로 쌓은 그 웅장한 성도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흙벽돌로 쌓은 그 긴 성도 허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비에 깎이면 이 세상의 것들은 다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막힌 담은 보이는 담이 아닙니다.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말합니까? ‘울어도 못하네 울어도 못하네 눈물만이 흐르되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의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깊은 불화의 담장은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담을 허무신 것입니다. 한 번만 허무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든지 자기가 범죄하고 하나님과 불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 십자가를 믿고 주께서 회개하는 자들을 정결케 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참된 사유함을 주시고 죄 사함이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과의 불화의 담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담장들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막혔던 그 관계가 다시 한 번 트여지고 새롭게 열려지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뻔하였거니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동일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즐거워하시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주님에게 기쁨의 이유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볼 때마다 즐거워하는 까닭이 될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 불화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막힌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그랬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그 사실이 가리워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하나님을 등지고 가리워진 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사실도 가리워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실 때 이 성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그런 종교적인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하나님을 떠나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결국은 그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속에서는 수많은 죄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고 눈이 어두워지니까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죽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공경하는 그 산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이40년 후에 로마 사람들을 들어서 이 나라를 쑥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군사들을 보내셔서 이들을 비참하게 죽게 만드셨습니다. 피가 도랑처럼 흘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심판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보셨기 때문이죠. 이것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 예루살렘을 향하여 평화를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 그 하나님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평화하다고 그리고 그 평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 모든 영적인 은혜와 신앙의 참된 자유와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기쁨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래서 예수를 따라 살아가는 그런 신실한 백성들로 삼아주시는 그 인생이 바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속에서 바로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원동력을 이 십자가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내 것으로 삼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평화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막힌 관계를 열어주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네 눈에 숨기웠도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쌓여서 살아갈 때 그럴 때 눈이 어두워지고 무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친히 부탁하신대로 너희의 마음이 생활의 염려와 그리고 이 세상의 방탕함과 술 취함으로 둔하여지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늘 깨어서 인자 앞에 서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과 화목한 표징을 보여주시고 또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어느 부분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아 알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작은 무수한 우리의 마음과 신앙의 담들을 늘 말씀으로 말미암아 깨닫고 회개하므로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그 속에서 늘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사라지는 곳에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평화가 새롭게 구축되는 그곳에는 언제나 놀라운 생명이 있습니다.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그 생명이 어두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신앙의 힘이 된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에도 우리들을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았을 뻔하였거니와 한탄하는 그 독백을 그 예루살렘성을 향해 발하시면서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성을 향하여 못박히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십시오. 주님이 자기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부으심으로서라도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참다운 평화를 주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을 화목제물로 주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신앙생활과 인생을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삶의 답답함과 그리고 신앙의 모든 무기력함들이 하나님과의 불화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높고 낮은 수많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담장들을 허무는 일들을 우리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주께서 하나님과 불화한 예루살렘을 보시고 슬프게 우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서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부르심과, 그 회개의 초청에 우리의 인생을 맞춰서, 그리하여 거룩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주님이 내 인생을 바라보시며 어는 부분에서 가장 아파하시고 고통해 하시는가 하는 것을 헤아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이 바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여러분은 성을 보시며 우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지 못하는 그 많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이 죄 사함으로 새로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