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충성되이 여기신 그리스도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디모데전서는 목회의 서신이라 불리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인 바울이 목회자인 어린 디모데에게 보냈기 때문이죠. 이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이 편지를 받을 때 바울은 옥중에 있었고 디모데는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배소 지방이 목회지로 말하자면 험악한 목회 지였어요. 그래서 우선거기에는 이단사상들이 많아서 사상적인 그리스도의 박해가 심했어요. 또 거짓 선생들도 많이 나타났고 복음이 전해지면 그 복음이 똑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자꾸 굽고 왜곡이 되게끔 받아들여져서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그런데다 디모데는 몸이 약했던 모양이에요 위장병 같은 것들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자고로 목회자들이 위장병을 많이 앓아요.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암도 많이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 암이 생긴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목회사역리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많이 쓰고 건강을 뺏기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옛날사람들의 전기 같은 것을 읽으면서 그 목회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목회를 하고 목양을 하는 일들을 사랑하면서도 거기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까?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하고 몸을 기울이면서도 범사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면서 자유와 기쁨 가운데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한 없이 부러워요 우리 같은 소인배들은 말이에요 뭐 조금만 일이 생기면 야코가 죽고 조금 사람들도 모이고 좀 잘되는 것 같으면 어께가 으쓱해지고 이런 것들은 전부다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유치해서 그래요
그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다. 라고 하는 사실을 그러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무래도 좋아 난 언제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런 생각하면 안 되겠죠 적어도 여기에다가 나의 모든 생명과 모든 것을 다 바친다. 그러면서도 그 목회를 하면서 어려움이나 뭐든 고통스러운 일들이 생길 때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풍성하고 말하자면 호방한 이런 마음을 이러한 영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부러워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 수준에 못 미쳤으니까 부러워하는 거죠 이 디모데도 뭐 위장병이나 이런 것들을 앓았던 모양이에요 사실 이 목회지는 이 디모데에게는 사실은 버거울 정도로 문제도 많고 어려움도 많은 목양지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어요. 인제 아버지 같은 바울의 편지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제 보내는 편지가운데 일부를 기회가 있으면 디모데에 대해서 따로 연구하기로 하고 우리는 이제 본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뭘 이야기하나면 1장에서 그 자기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던 사도로서의 소명이 무엇인가 대해서 말하죠. 말하면서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디모데를 향해서 어떻게 목회를 해야 되고 그리고 자기가 이전에 어떤 교훈을 주었는가를 회상시키면서 11절에서 복음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감사한다. 그러면서 회상하는 거죠 자신을 그 회상을 하면서 한 이야기가 오늘 읽은 부분이에요 그중에서 오늘은 12절과 13절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선 사도바울은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자기를 능력 있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 사도바울이 그 많은 세월동안을 예수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만난 이후 그 오랜 세월동안을 오직 그리스도예수복음 하나에 미쳐서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복음을 전파하고 유대인들의 간교에 의해 당한 모든 고난과 시련을 참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참된 구원을 증거하고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예수를 믿게 만들었던 모든 주인의 주체가 바로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능력 있게 만들어 주신분이 하나님아버지인데 그 하나님께 나는 감사한다. 자기가 여태까지 이루었던 사도로서의 모든 그 놀라운 신앙의 업적들과 사역의 모든 진보들이 오직 하나님아버지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진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이렇게 능하게 된 것이 우리 주 하나님아버지의 은혜로다. 라고 하는 고백이 여러분들에게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우리된 것을 늘 우리에게 어떤 의로운 것이 있고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베풀어 주셔야 할 만한 뭔가 의로운 것들이 있음을 인하여서 늘 자긍해야하고 스스로 자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 고난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를 바로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능하게 하셨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이 또한 너도 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능하게 하신 모든 주체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시련과 환난과 역경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우리고 하여금 남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더 많이 깊이 알고 큰 은혜를 체험하게 하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살아가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그가 이렇게 어려보일정도로까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신 것도 그 하나님이 우리를 능하게 하셨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어리고 신앙이 어린사람의 판단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그 어린아이의 일을 모두 버립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하면서 그러나 그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이렇게 우리를 모든 사람에게 뛰어나게 은혜에 있어서 능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서 능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고백을 우리는 늘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아무리 많이 기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그렇게 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섞어가는 세상에 코 박고 그것만 좋은 줄 알고 거기에 빠져서 그 쓴물을 마시며 그렇게 고통하며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인생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일에 능하게 하신 이가 누구 하나님 그분이 능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과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그 모든 것을 인하여 오직 누구만을 자랑할 수 있게 됩니까? 우리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아버지 그분만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속에 얼마나 이렇게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쉽게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의 본래의 정체를 잃어버리고 그리고 자기는 제법 다른 사람들과 틀린 사람이고 구별된 사람이고 제법 자기에게는 뭔가 선한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을 능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옛날을 돌아보니까 정말 능한 거예요 왜 능했냐하면 옛날을 돌아보니 자기는 해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밖에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령을 훼방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그 장엄한 설교를 성령가운데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편투표를 했죠. 성령을 훼방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도를 훼방 했어요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가기를 위하는 이 신앙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지 못하도록 그들을 훼방 했어요 하나님의 복음이 그리스도예수의 기쁜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미치지 못하도록 그는 최선을 다해서 훼방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그때에 마침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취하여 다메섹에 가서 예수를 믿는 도가 누룩처럼 번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핍박을 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이 사울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 이었습니까? 사울아, 사울아 내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예수그리스도가 인정 할 정도로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은 철저하게 예수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미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포행 자였습니다. 포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 이였습니다. 돌팔매에 맞아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 끔찍한 죽음의 장면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던 그렇게 포악하고 악한성품을 지닌 사람 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사람을 그렇게 그 불멸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대 사도로 사용 하셨을까요? 왜 이렇게 도무지 선한 것이 없고 훼방하고 핍박하고 포행하고 포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고 모질고 그리고 못 때먹은 성품을 지니고 있는 이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전례에 없는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셔서 그래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 되게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구원의 소식을 반방에 알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 이였습니까?
왜 예수그리스도는 이 사람이 다메섹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완전히 자기가 무너지는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될 때 그때에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 앞에 그렇게 무릎을 꿇고 주저앉을 때 그렇게 포악하고 악하고 핍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모질고 악한 성품을 가진 선한 것이라고 조금도 없는 이 사람을 향해서 나는 이방과 이방의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위해 너는 내가 택한 그릇이다. 왜 이렇게 말을 해야 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왜 이렇게 핍박자요 훼방자요 포행 자였던 이 사람을 향해서 내게 네게 나타난 것은 내가 네게 나타난 것과 장차 네게 내게 나타날 일들에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함이니 내가 너를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손에서 건져내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해함을 입은 무리들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려함이라 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누구에게 주신 적이 없는 장엄한 선교의 그릇으로 이 사람을 사용하고 말리라는 위대한 약속을 이 사람에게 주셨고 그리고 이 일들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오늘 사도는 자기의 인생을 이때는 말년 이였습니다. 말년에 와서 사도가 된지 약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다음에 검은머리의 씩씩한 청년이 백발이 성성한 노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자기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은 사람됨은
왜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이렇게 놀라운 복음의 사역을 위해 불순종하던 자기를 사용하셔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그 위대한 선교의 위업을 이루게 하셨는지 자기도 몰랐습니다. 모르는 체로 그냥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가라하면 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교회에게 다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으며 살 때는 나 같은 죄인이 왜 용서함을 받았을까? 하나님이 왜 이렇게 나를 사용하셨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다 살고 그리고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인생의 황혼에 서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온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예수 믿기 전에 인생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게 없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것 때문에 작년인가 언제 기도하면서 몇 달 동안을 참 많이 울었어요. 어느 순간에 살아온 인생이 너무 지푸라기와 같고 지푸라기 같은 것은 당연하지만은 너무 지푸라기 같고 앞으로 산만큼 또 살아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자신이 하나도 없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지나간 날들을 쭉 회상해 보는데 행복했던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가난하건 고생을 하건 눈물을 많이 흘리건 행복이라는 말을 떠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이에요 그래서 내가 고백을 했어요. 하나님 내가 당신 앞에 어떻게 살든지 그래도 내 인생을 돌아보며 당신밖에는 없었사옵니다. 주님밖에 내 인생에 누가 있었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 바울의 인생을 돌아봐야 뭐 즐거운 일이 있었겠어요. 돌아볼 적마다 심경이 괴로운 거죠 왜 그때 그렇게 예수를 모른다. 고 부인하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을까?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난이후 살아온 인생을 회상하면서 왜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셨을까?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복음을 만 천하에 이미 사도바울 때 꽃이 피면서 전파 되었어요 그런데 돌아다보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도와 주셨어요. 사도바울이 나는 그렇지 못한데 주님이 그렇게 도와주셨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나를 충성 되게 여겨 나에게 직분을 맡기셨다. 예수 믿기 전에 지나온 인생을 생각해 볼 때 자기는 아무 의로운 것이 없고 그리고 왜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용서를 입게 되었는지 자기도 모른데요 자기도 모른데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그래도 오직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하려는 세상에 임하셨다. 이 말이여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이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 이였어요. 사도바울 그렇게 자신을 고백 했어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그 생각은 예수 믿기 전에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며 계속 가지고 있는 거예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뭘 보니까 생각이 나요 십자가를 보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섬길 때는 몰랐는데 살고 나서 뒤로 돌아보니까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충성된 사람으로 여기셨어요.
이미 예수그리스도는 다메섹도상에서 사울을 만났을 때 마치 다윗을 만난 것 같이 내가 이세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가 그를 통하여 나의 모든 일을 이루고야 말리라 그렇게 인간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중심으로 보시는 예수그리스도 또 하나님께서 다메섹도상에서 핍박자요 포행 자였으나 거꾸러져서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 앞에 오! 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어찌하오리이까? 그렇게 자기 모든 인생에 살아온 모든 사상과 철학을 그리스도 앞에 꺾어 내려놓으면서 절규하는 그 사람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변함없이 충성할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갈 그 사도바울의 앞날을 보신 거죠 주님이 사도바울을 충성되게 하셨어요. 그는 정말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 하나는 귀가 막히게 보셨어요.
과연 그 사람은 충성된 생애를 살았어요. 말과 혀로 일한 것이 아니라 그는 온 몸으로 일했습니다. 생각과 말재간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그는 오히려 온몸으로 일했습니다. 온몸으로 자기의 충성을 하나님 앞에 보였습니다.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서 그는 모두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어요. 그래서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아시아에게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심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십에 강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광주리에 담겨서 성 밖으로 내어 침을 당하고 굶는 것과 배고픈 것과 육로의 위험과 해로의 위험과 여행의 위험과 이 모든 것은 고사하고 이 모든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은 고사하고 여전히 내 마음에 눌리는 것이 있으매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위한 염려가 되었습니다.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고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자기가 고통 받는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의 몸에 채우는 것을 영광스럽게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생애를 살았던 예수그리스도는 그를 과연 충선 된 자로 여기셔서 하나님의 귀한 직분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다 이루어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대하게 체험했던 모든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질그릇같이 연약하면서 사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지푸라기와 같은 인생들이면서 바람에 흔들려 꺼질 듯 꺼질듯 하는 촛불 같은 인생이면서 존재는 그런데 살기는 오르는 불꽃과 같이 살았어요. 왜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를 구원하신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타오르고 넘쳐흐르는 충성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고민이 뭡니까? 어떡하면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 길이 없을까? 어떡하면 신방을 갔더니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의 최대의 숙제는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새벽기도 나오십니까?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번 수련회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번 집회에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오늘 확실하게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될 때 주님을 만나게 되는지 그걸 한번 보여 드릴게요
민수기 12장을 한번 펴보세요 6절부터 8절까지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가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 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 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 하느냐” (민수기12;6- 8)
거기 보니까 뭐라고 말씀 하셨냐면 모세는 선지자의 조상인데 너희 중에 선지가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상으로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또 꿈으로 하나님을 보기도 했어요. 그것도 그렇게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비교하면 엄청난 특권이요 그렇죠. 그런데 모세에게는 그렇게 안 했다. 그러고 어떻게 했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대면하여 말하였다. 대면하여 말하였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그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직접 말하였다. 직접 말하였다. 그러니까 오죽해서면 어땠어요. 하나님 만나고 내려온 모세의 얼굴이 어땠어요.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는 광채가 얼굴로 부터 쏟아져 나왔어요. 그러고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렸죠. 왜 그랬다고 말합니까? 이는 그가 나의 온 집에 지극히 충성하였음이라 그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과의 특별한 경험 속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냥 가만히 살아가면서 주님 한번 부흥을 주십시오. 그러면은 나도 크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위대한 신앙의 사람의 반열에 설수 있을 것 아닙니까 대전도가도 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내가 그를 친히 대면하여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나의 온 집에 지극히 충성됨이라 모세는 신앙의 체험과 영적인 경험 영적으로 신령한 체험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과 선지자들을 능가했을 뿐만 아니라 충성에 있어서도 능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가리켜서 계시록에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압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별명은 충성된 증인 아멘이여 충성된 증인이시다 예수그리스도는 아멘이시요 충성된 증인이시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던지 아멘 하시던 분이셨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증인 예수그리스도의 별명은 충성 이였어요.
사도바울은 자기의 모든 인생을 살고 뒤돌아보면서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이렇게 용서함을 받았을까? 누구도 할 수 없었던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었는지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지극히 충성된 사람으로 하나님이 이 바울의 생애를 보셨던 것이죠. 사울이 예수를 체엄한 뒤에 그는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큰 자라고 하는 이름이 가장 작은 자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살아가면서 일생을 지극히 충성된 생애를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그 이후로 그는 줄곧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뜻들을 이루는 완전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해로 여기며 모든 것을 다 버렸어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삶으로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런 것들은 위선이라는 거죠 삶으로 먼저 내가 내 인생 전체가 주목하고 있나이다. 그것을 충성으로 보여 달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삶으로 하나님 앞에 당신밖에는 내가 소망이 없나이다. 그렇게 고백을 하며 하나님 앞에 모아지는 삶을 살고 그 위에 그런 삶을 동반한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 기도가 지극히 은혜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기도 속에서 참다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기도를 능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충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기도는 잘 들어주시고 빨리 들어주시고 또 어떤 사람의 기도는 잘 안 들어 주세요 그거 여러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거 왜 그래요 기도를 많이 해서요 그러나 여러분 얼마나 많이 기도 하느냐 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많이 기도하느냐가 문제가 될 때에는 똑같은 사람일 경우에 많이 기도했느냐 적게 기도했느냐가 문제지 사람이 워낙 틀려 버리면 아무리 많이 기도하건 적게 기도하건 문제가 안 된다 이거에요 무슨 소린지 이해 갑니까?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 앞에 온몸과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어찌하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가 내 몸에 존귀케 되기 위하요 그를 위하여 살고 삶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들의 부르짖는 1시간의 기도는 은밀하게 세상을 사랑하면서 적당히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의 10일에 금식기도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다. 삶을 동반하지 않는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제사와 같다. 보십시오. 과연 우리들 주위에서 충성된 사람 사람에 매이지 아니하고 사람이 알아주듯 알아주지 아니하던
(찬양)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오리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만이 영광 받는 것 하나에 만족해서 그렇게 고난을 받으며 섬기는 작년에 있었던 그 자리에 그냥 꿋꿋이 서 있고 지난달에 이 자리에 계속 서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용사들이 몇이나 되겠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수없이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기도 소리가 교회에서 멎고 있습니다.
나는 잊을 수가 없어요. 어느 학생이 그 뭔지 나한테 편지를 썼는데 잘 적어두지 못한 게 한이에요 그 편지가 더 잘 되었어 더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무슨 얘기를 하냐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받았던 감동을 얘기를 하면 그렇습니다, 교회 대문에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쓰여 있는데 해가 지고 나면 경비병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교회 가까이 가면 열쇠가 잠겨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그리스도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그리스도예수를 위해 충성하기 위해서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멸시와 천대를 한 몸에 받고 그리고 고난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그런 사람으로 보셨어요. 여러분 그가 공부를 많이 하고 다소에서 가마리알 문화에서 대학을 나오고 그것 때문에 사도바울을 택했다면 베드로를 택한 것은 설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율법에 의로는 흠이 없고 그리고 열심이 많은 사람 이였기 때문에 율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 이였기 때문에 그를 사용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이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길뿐더러 배설물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고난의 계곡을 지나고 핍박의 골짜기를 지나고 환난의 파도를 헤치고 동족의 위험과 유대인의 간교를 당하며 당한 시험과 그리고 핍박과 고난들 당하고 목회의 위험과 전도의 위험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위해 당한 모든 고난과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심교의 칼날 앞에서도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는 자기를 죽이기 위해 핍박하고 급기야는 자기를 옥에 가두고 그리고 죽일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밖에 있는데 그는 옥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는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내게 한 소망이 있으니 나는 이제 내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이니 나 혼자 생각하면 빨리 가고 싶은데 너희 때문에 살아있어야 되겠구나!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오히려 초연합니다.
로마로 끌려가고 로마로 호송되기 위해서 배들 타고 끌려갈 때 유라굴라 라고 하는 광풍을 만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초죽음이 되어서 이제 우리 모두는 죽었도다. 망했도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을 때 사도바울은 착고에 묶인 죄인으로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어제 내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나 그러나 너희는 누구든 죽지 아니 하리라 걱정마라 착고에 매이고 칼을 쓴 죄수가 자유롭고 무장한 병사들을 안심시키는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이렇게 환난과 풍파와 이요동치는 세상의 풍파 속에서 완전한 자유로움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 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이외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이외에는 그것하나에 미쳤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에요
요즘에 뭐 전쟁 날지도 모른다. 그래가지고 바짝 겁먹은 사람이 많아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에요 왜 그래요 거짓된 것을 사랑하는 마음속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충만해요 그러나 참된 것을 사랑하는 마음속에는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하나님만을 향하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주님만을 위해 충성하는데 살면 더 충성 할 것이요 죽으면 영광이지 겁날게 무슨 가슴 졸이고 안달복달할 일이 세상에 뭐가 있느냐 사도바울이 이처럼 대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충성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만을 위하여 충성 하는 사람이외에는 자유로울 수 없어요. 자유하지 않아요. 사람의 행복과 자유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안하고 편하게 별장에 드러누워 있으면 자유로울 것 같죠 그게 자유가, 자유가 아니에요 자유는 심령에 매인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해요 그런데 심령에 매인 것이 있으면 자유가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심령에 모든 것이 매이지 않게 하는 비결이 단 하나 있는데 그리스도예수에게 매이는 것이에요
(찬양) 주의 사랑에 줄로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
얼마나 주님만을 사랑하는데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들인가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찬송하는 거예요 주님이요 오셔서 제발 우리를 주의 사랑의 줄로 매이소소 꽁꽁 잡아 매시 옵소서 예수밖에는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는 이 비참한 인생을 어찌 이리 바쁘게 하시는 지요 아무것도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런데 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요. 교회에서 목회를 제대로 합니까? 학교에서 제대로 합니까? 뭐 글을 하나를 제대로 씁니까? 그렇다고 기도에 있어서나 크고 위대한 사람들처럼 하늘나라를 한번 뚫고 지나온 사람입니까? 뭐 특징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문이 뛰어 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그러면서 그냥 귀가 팍 죽는 것은 요 며칠 전에 경험 했어요 그러나 마음에 확 다가오는 것은 뭐냐 하면 이거에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우리가 무슨 직분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우리가 좀 바쁘냐 한가하냐. 우리 좀 더 많이 배우느냐 못 배우느냐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된 사람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에요
늘 말씀드리죠. 속지마세요 신앙은 복잡한 게 아니에요 그냥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에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에요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면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충성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만약에 기도를 쉬고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향해서 충성된 생애를 살고자 몸부림을 친다면 그 시간에 그 하나님 앞에 그 날 부르짖는 기도는 날개를 단것같이 힘과 능력을 얻을 것이에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지 않는 사람은 주님이요 이 인생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 무슨 그런 힘이 있겠느냐 말이죠.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은 다 피해서 지내 와서 지금 평안한 풀밭에 누워 있으면서 주님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말이에요 얼마나 많은 기도가 우리의 삶 때문에 공수표가 되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이 삶이 우리의 기도가 진실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빈껍데기와 같은 삶을 사는가? 그래서 내가 늘 말씀 드리죠 삶이 기도를 능가할 수 없고 기도가 삶을 능가할 수 없어요. 여러분 오늘밤에라도 이번 주에라도 결심 하세요 그리고 남은 3일이라도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을 다하고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요 나의 유익과 좋은 것들을 버리고 그리고 내가 충성스러운 삶을 살리라 삶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지 않던 사람이 뭐라 그래요 박수치고 찬송하며 기도하는데 거기 무슨 힘이 나겠냐 말이에요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기도하던 사람들은 온 몸으로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치워버리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투쟁하던 사람들에게서 그러니까 교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여러분 교회가 한 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칼빈 선생이 그랬잖아요. 교회를 어머니같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이거에요 자격이 없다,. 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한 없이 사랑하고 거기서 충성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제가 교회 가까이 이사 오라는 이유가 바로 그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나오는 게 이게 교회 나오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일들에 즐거움을 체득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어느 단계를 뛰어 넘어 가지고 처음에는 예배분위기가 좋고 아니면 아는 사람이 있고 설교를 듣고 싶고 아니면 뭐 프로그램이 좋아서 왔다고 할지라도 조금 세월이 지나면 그런 것들을 초월해야 되요 심지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설교자가 교회를 떠나고 자기 좋아하던 교회의 좋은 것들이 다 사라지고 그래도 여전히 거기 남아서 충성하는 하나님 한 분에 매여서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이 자기의 모든 인생을 살아오고 왜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을 사용하셔서 이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을까? 도무지 깨달아 알 수 가 없었어요.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뒤를 돌아 볼 때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는 나를 충성되게 하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 보여주셨던 삶이 바로 그런 충성된 삶이였어요. 아니 뭐 자꾸 그 말이 맞을까 틀릴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라도 주위 쭉 보면서 살아있는 기도의 영으로 하나님 앞에 타오르는 심정으로 나도 저 사람처럼 나를 간절히 쏟아 부으며 기도 할 수 있었으며 그런 사람 주위에 혹시 있으면 살펴보세요. 아무것도 안하고 이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는 사람이 그런 기도 하는 줄 압니까?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공의로우신 분이에요. 절대 그럴 수는 없어 비록 그가 아는 것이 조금 부족하고 신앙생활을 늦게 시작했다고 할지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기도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으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은 헌신의 삶이에요 하나님 앞에 지극히 충성된 삶 어린아이와 같이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는 삶 이것이 동반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그것이 결국은 뭡니까 일주일동안 내내 돌아다니며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주일 와서 기도 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것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빠진 양 새끼 한 마리 가져와서 자기의 죄를 회개 받으려고 했던 그것과 무엇이 틀립니까?
그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은 것입니까? 삶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5일 동안 기도 준비하다가 5일 밤에 나오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를 능하게 하셨다고 고백을 하셨어요. 왜 지극히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였기 때문 이전에 그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핍박자요 포행자요 그리고 훼방 자였던 모든 것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 왜 영광을 받으셨어요? 봐라 너희들이 너희들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고 율법의 의로 사람을 평가하거니와 나를 봐라 가장 포악자요 핍박자요 그리고 훼방자인 이 사람을 통해서도 나는 이렇게 자신을 다 드리는 충성스러운 생애를 사는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사도바울이 뭐라고요 이후에 영생을 얻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본이 되었다 무슨 본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너희는 얼마나 하나님이 더 사랑 하셨겠느냐?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모세와 같이 깊이 체험하고 더 높은 신앙의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충성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충성된 삶을 산답시고 교회를 위해 이걸 봉사하고 저걸 봉사하면서 오히려 그렇게 봉사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깊이 못 만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죠? 그렇죠? 그게 왜 그런지 오늘 설명을 해 드릴게요. 그게 무엇 때문이냐면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한다. 라고 하는 그 사실이 너무나 내게 만족스러워서 그렇게 충성하는 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그리스도를 오히려 필요로 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은혜에요 그래서 내가 그런 사람들을 향해 뭐 라고 늘 말합니까?
교회는 뭘 하는 데가 아니에요 그게 일차적인 교정이에요 그러나 사도바울은 한없이 충성 했어요 그런데 뭐라고 말했어요. 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나는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와 같았다. 나를 보면서 너희들이 뭔가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 때문이다.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으니까 충성된 삶을 살면 살수록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충성된 삶을 살면, 살면 살수록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데 아까 말씀 드린 방식대로 열심히 봉사를 하면서 살면 봉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로 부터 멀어지게 되요 그 은혜가 내가 이만큼 헌금을 했는데 이만큼 주일을 잘 지켰는데 십일조 하는 사람 누가 있어 나 아니면 교회를 누가 지키겠어. 이런 생각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얘기하고 있는 이 충성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계시는 충성 그리스도가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충성 이 모든 것들은 전자의 충성이 아니고 후자의 충성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사도바울이 어디에다 쏟았는지 오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다 쏟았어요? 어디가 쏟았습니까?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로마도 내가 보아야 하리라 로마 관광 가겠다는 겁니까? 아니에요 로마도 내가 보아야 하리라 황제가 살고 있는 거기까지 가서 내가 위대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죽을지라도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성령이 내게 증거 하여 핍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그리스도예수의 복음 증거 하려는 일을 마치려하는 나의 생명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의 충성은 그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나타났어요.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죽음의 칼날과 핍박의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의 은혜의 복음을 단 한번 증거 하기 위해서 목숨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지기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말했으면 설마 했을 것입니다. 넌 가면 죽는다. 누가 증거 했습니까? 성령이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도 성령이 그렇게 증거 하셔도 저는 가겠나이다. 갔어요.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거룩한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지 진심으로 그 외치는 마음속에 영원을 향한 불붙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는지 그저 교회행사니까 그냥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니까 하는 것이지 정말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사람인지 예수그리스도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도바울은 충성된 사람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사도바울이 거듭나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하나님을 향한 그 넘치는 하나님을 향한 그 놀라운 충성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이 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설교자의 마음속에서도 영혼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쏟아 오르도록 여러분은 저와 함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설교자의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외침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소리 나는 징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그리스도께서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는 우리들이 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그들의 영혼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의 모습들은 뭘 하는 것입니까 보십시오. 잡지나 신문을 읽는 것만큼의 시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은혜를 받기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충성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심으로 나타났어요. 복음전파에 관심이 없는 성령 받음에 대해서 성경은 아는 바가 없어요. 성경을 충만하게 체험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지극히 어린영혼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을 잡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사도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끓어오르는 충성은 교회를 통해 나타났어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교회를 향한 염려라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 되는 이러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신앙의 신령한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요 정말 내가 집이 가까워서 그리고 신앙생활하면 어차피 한 교회가 있어야 되니까 그런 관계가 아니란 말이에요
시편을 보십시오. 시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픈 일을 만났을 때 눈물을 흘리면 어디로 뛰어갔습니까? 성서로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물었습니다. 주님은 응답하셨습니다. 살아가다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서 무지로 말미암아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누가한테 찾아갔습니까? 성서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성도들이 어디를 향하여 찬송했습니까? 성서를 향하여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교회로 이 전도지에서 다른 전도지로 그렇게 옮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세운 모든 교회를 향해서 기록한 편지들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를 염려하고 오래전에 떠나온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눈물을 흘리면 그 교회를 진리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는 사도의 그 사랑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충성된 삶을 살았던 사도바울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스도예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돌아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여러분들은 무엇 이였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지푸라기와 같은 인생들입니다. 지푸라기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면서 그것이 잘하는 짓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였습니다. 해방 자였죠. 핍박 자였습니다, 포행 자였습니다. 포악하고 못돼 먹은 성품을 가진 사람 이였습니다, 썩어질 세상 살아가다가 거기서 그렇게 썩어질 물질과 함께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에서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 더 길게 살 필요도 없어요. 그렇게 길게 살아서 뭐해요 얼마를 살든지 간에 우리에게 있는 최고의 이상은 나를 구원하신 그 좋으신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린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그런 충성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거예요
오늘 이 문제를 위해서 같이 깊이 기도하며 그리고 한번 이번주간 충성주간으로 정하여 그리고 내가 충성심이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다고 포기하던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내 마음과 뜻을 다 드려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사는 그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이 모두 끝나고 여러분 다 두고 갑니다. 이 얼마 안 되는 옷도 다 벗어놓고 갑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두고 아내도 두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두고 좋은 직장도 다 두고 갑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뭐에요 우리가 살아온 그 인생이에요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 그 십자가 힘입어서 네가 잘 하였도다 충성되고 착한 종아 그렇게 칭찬 받으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에요 네가 네 인생이 정말 이전에는 핍박자요 포횡 자였으나 어떻게 남이 모르는 가운데 나를 섬겼고 눈물로 내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으며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전파를 위해서 너의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허비하면서 헌신하였는지 내가 너를 아노라 할렐루야 여러분들의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