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치료를 구하는 기도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사38:16 )
녹취자:문미경
이 장면은 그 유명한 히스기야가 병 들었을 때에 선지자에게 이제 죽고 다시 살지 못하리라..라고 선고를 받은 후에 그가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오늘 16절의 말씀 속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뭐라고 기도 하냐면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원문에는 이것들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거기 있사오니...’라고 했는데 이게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앞으로 읽어본 성경본문의 맥락에 따르면 거기라고 하는 말은 크게 본문에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앞부분에 자기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앙망할 수밖에 없다.. 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과 그 다음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근심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고대하는 그러한 자세..사람이 사는 것이 거기에 있고 나의 생명도 거기에 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를 향한 죽음의 선고는 사람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이제 히스기야를 불러야 되겠다..’ 하나님이 죽음을 선고하신 겁니다. 선언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것을 누가 고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누가 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의 죽음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비록 자기의 죽음을 확정하셨지만 하나님을 원망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껏 자기가 하나님 앞에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또 한편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그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지도 모른다는 그 한 가닥 희망에 소망을 걸고 하나님 앞에 서서 삼가 행하는 것 이외에는 참된 기쁨이 참된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영적인 생명을 누리고 생명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기를 사모합니다. 그런 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어느 성경에 16절의 뒷부분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예화) 오늘 아침에 기도하러 나왔다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침도 걸러서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냉장고에 음식을 하나둘씩 꺼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삼분의 일정도 먹고 더 먹으려고 하다가 빵을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냉장고에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빵 써는 칼로 빵을 한 조각 썰어서 버터를 발라서 먹고 또 한 조각 썰어서 또 버터를 발라서 먹고 옆에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칼로 빵이 잘 안 썰어지자, 눈이 나빠서인지 그 칼의 날선 곳이 위쪽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날선 칼등을 손으로 밀었습니다. 그런데 촉감이 이상했습니다.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를 꽉 감쌌지만 병원에 가봐야 되나 느낄 정도로 지혈이 안 되었습니다. 오찬에 식탁에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피는 여전히 흐르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를 싸서 계속 쥐고 있는 상태에서 십오 분쯤 지났는데... 반대편 쪽 손으로는 계속 먹고 있었습니다.
이 설교를 하기 위해 이 체험을 하게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피가 콸콸 쏟아지는 것 같이 그렇게 지혈조차 할 수 없는.. 그렇게 상처정도가 아니라 상처란 스침을 상처라 하는 겁니다. 칼로 푹 찌른 상태에서는 상처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치료하시는 분이다.. 라는 것,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이 이렇게 치료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육체를 조직해놓으신 것처럼 인간의 영혼에 든 병도 치유불가능한 병은 없습니다. 문제는 적절한 치유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히스기야는 나를 치료 하옵소서, 나를 살게 하시옵소서.. 무슨 뜻이냐 하면 그런 치료되지 못한 영혼의 질병, 치료되지 못한 영혼의 죄로 말미암은 고통..이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사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그러나 사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뻐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하나님의 분노한 음성을 들으며 두려워 할 수가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긍휼을 입고 감격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오늘도 이 히스기야를 통해서 치료하소서라는 말과 살게 하소서..라는 말을 같이 고백하게 하시는 겁니다. 결국 치료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되는 그런 변화가 없이는 그건 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치료는 상처가 깊기 때문에 더딘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하나님께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딘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병들어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너희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보내시면 우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치료의 광선, 고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까요? 그건 바로 히스기야 기도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이것을 통해서 사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이로 말미암고 인생의 생명이 또한 그것들로 말미암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그것으로 말미암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오늘 히스기야가 마음이 선지자에게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의 바로 이 마음이었습니다. 그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소망을 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렇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소망을 건 이 사람, 하나님께 즐거움을 두고 하나님 앞에 진정한 치료가 있다고 믿는 이 사람, 이게 바로 하나님께 가끈히 행하는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 희망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이게 바로 기도 중에 표현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친근히 하면서 간절히 기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심령이 하나님께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영이 계속해서 유지되면서 살아가는 데에는 삶 전체가 비용으로 지불됩니다. 보십시오. 일주일동안 전혀 기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간다고 하는 그런 영적인 의식 없이 살던 사람이 주일날 와서 하나님 앞에 잘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일동안 하나님 앞에 거의 기도하지 않다가 온 사람은 조금 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오늘 아침에 기도하고 내일아침까지 거의 기도의 영을 살아가지 못하다가 다시 내일 아침 기도하는 사람도 어렵습니다. 가장 쉬운 것은 순간순간 하나님을 부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영으로 살고 예배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찬양)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예수를 더욱 의지합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주님을 불러보셨습니까? 복잡한 전철에 시달리며 손잡이를 손에 들고 전동차가 흔들리는 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주님의 거룩하심을 묵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직장에서도 바쁜 일과에 시달리면서도 순간순간 ‘아버지...오주님이시여....부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 없이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한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라고 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응시하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을 뵈옵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순간순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성화를 찬송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껴집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것도 바로 그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를 사형선고 내리시는 하나님을 불의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는 긍휼을 의지할 것밖에 없고 그리고 자기는 어찌하든지 생사 간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희망이 있다는 태도를 기도 속에서 견지하였습니다. 이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 오히려 히스기야의 마음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그리움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마음에 가득 하나님으로 찼습니다. 생명을 연장해야 되겠다. 죽으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 되시고 생사 간에 자신의 유일한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요즘 기도하면서 마음이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도의 깊은 맛을 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안타까움 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정말 하나님 자신으로 우리가 가득차고 그래서 더 이상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고통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천국의 향취를 맛보는 즐거움이 되기까지 우리가 나아가야 될 텐데..내 교인들은 기도하는 것을 왜 이렇게 무거워할까? 기도하는 것을 이렇게 보고 또 기도에 대해서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 정말 불꽃같이 살기에는 기도의 연료가 훨씬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에겐 육체의 힘이 남아있습니다. 무릎 끓길 원하지만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각색 병으로 고통을 받고 예배드리길 원해도 예배드릴 수 없고 무릎을 꿇고 싶어도 꿇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건강이 있습니다. 피곤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오래도록 무릎을 꿇으면서 이미 마음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오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있어서 그런 하나님과의 놀라운 은혜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기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있는 우리를 궁휼히 보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허물이 있든지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실 수 없도록 고 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진정한 희망이 없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 이외에는 우리에게 참된 승리가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기도 때문에 우리의 힘이 지쳐본 적은 없지만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의 욕심을 성취하고 육신을 위해서 일하다가 그것도 하나님도 없이 어떤 때는 불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땀을 흐르도록 열심히 일하다가 탈진해 본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세상을 쫓다가 탈진하면 밀려오는 건 외로움밖에 없지만 기도하면서 자신의 힘을 모두 드리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모두 쏟아서 지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하나님의 임마누엘하시는 놀라운 천국의 은혜가 그의 영혼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이러한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엎드리신 것에 함께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던 그 길에 우리도 서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특별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던 그 날 그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을 때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매우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다 바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허물이나 죄악이 아니라 주님이 살아계시는 우리와 같은 인생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형벌 받은 고통을 미리 그 영혼에 당하셔서 아버지께 매달려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남김이 없이 기도에 바치셨습니다. 먹는 것도 문제가 안 되었고 마시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불편한 자리나 나쁜 환경이 그분의 기도를 가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이 하나님만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가볍고 일상적인 기도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깊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와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 때문일 겁니다.
저는 오랜 세월 기도해오면서 어떤 때는 절벽과 같이 컴컴하게 기도가 되지 않다가 세 시간 네 시간 심지어는 다섯 시간이 지난 후에야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열어주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자 하는 우리의 결의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뭔가 막힌 것들이 허물어지지 않고 들려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수고해도 적게 거투고 애쓰고 수고하나 사실은 마음으로 힘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다른 것에 있고 몸으로만 애쓰는 격이 되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심령이 모두 하나님 앞에 바쳐진 기도.. 그런 기도를 통해서 치료하시고 살리시고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히스기야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히스기야처럼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가끈히 행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 이외에는 아무런 선한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고백을 가지고 주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임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심령에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서 깊이 고정되기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움직이고자 하시지만 하나님은 기도의 많은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게 하시므로 당신 앞에 나아가는 가정을 통해서 우리를 바꾸시려고 하나님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주 앞에 기도하기를 힘쓰는 주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