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4:42
녹취자 : 조원정
주님이 말세에 관한 경고를 우리에게 주실 때마다 늘 강조하신 말씀이 하나 있었습니다. 깨어 있으라 하는 권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시사해 줍니다. 하나는 똑같은 신앙생활이지만 말세가 다가오면 그만큼 깨어 있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말세가 가까이 오면 너희들이 잠들기 쉬우니까 깨어 있기 위해서는 너희들의 신앙을 위해서는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대학원 가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거기에 있는 어느 교수님이 음악을 하는 분인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찬송가 개편할 때마다 느리게는 보통으로 보통으로는 자꾸 빠르게로 옮겨 간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곡은 똑 같은데 이전에 나온 찬송가보다 전부다 빠르기가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것도 젊은이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 느리다는 겁니다. 앞으로 계속 빨라져서 혀 짧은 사람은 교회도 못 다니는 그런 시대가 올 겁니다. 그렇게 점점 빨라지는데 가만히 우리 생활을 보면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은 굉장히 사치품이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계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보는 관념들이 훨씬 적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삶의 템포가 느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청나게 빨라져서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옮겨 다니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바쁜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그만 아이들도 바쁘다는 얘기를 합니다. 우리 꼬맹이가 네다섯 살 때 친구랑 통화하면서 바쁘니까 끊자 합니다. 걔가 뭐 바쁠 게 있습니까? 밥 먹고 자는 거 밖에 더 있습니까? 애들도 배운 겁니다. 우리 바쁘니까. 뭐가 바쁩니까? 모든 사람들이 바쁘다는 것에 암시를 받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굉장히 마이나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성찰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쉰다고 해서 성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게 아닌데 생각하면서 내가 왜 이러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바쁜 겁니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설교를 듣고 주일 예배를 드릴 때면 아 이거 기도해야 되겠구나. 내가 이런 식으로 기도 안하면 큰일 나지. 오늘 헌금 기도해 주신 집사님 말씀 따라 두들겨 맞은 게 훈장이 될 수도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교회 문만 나가면 밀린 일들이 너무 산적해 있고 바쁜 겁니다. 금방 생각의 초점을 잃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도 우리 정신 집중을 앗아갑니다. 뭔가 한 가지 생각에 골돌 하도록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영적인 삶은 자꾸 잠들어 가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잠들고 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잠들고 나면 정력적으로 수고해도 그것이 열매를 거둘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애를 쓰면서 노력을 하고 더 성실하게 살아도 똑바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학교도 그만두고 환경이 나아져서 차를 타고 가다가 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옛날에 인천에서 살 때 일 년에 새 차를 뽑아서 차를 타다가 카센터에 갔더니 이 사람이 얼마 되었어요 하니 일 년 채 안되었다고 하니 나를 자꾸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아저씨 영업해요? 하면서 어떻게 일 년을 탔는데 이렇게 많이 탈 수 있느냐 입니다. 영업 안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차를 가지고 불법 자가용 운전을 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하루에 강의하다 보니 보통 150키로 탔습니다. 나중에 88도로 달릴 때면 창문을 막 열어 놓고 뺨을 때리며 집에 오기도 했습니다. 길가에 세워 놓고 모르고 잠이 들어서 속을 태우게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얘가 드뭅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런 걸 발견하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 딴 생각할 때도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날 때 깨어 있으면 반사적으로 정면에 부딪힐 걸 핸들을 틀어서 측면에 부딪히기도 하고 옆을 스치기도 하고 혹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걸 벼랑에 가서 긁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교통사고 난 걸 보면 도대체 차가 어떻게 해서 저리로 갈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차가 있습니다. 멀쩡하게 길이 이렇게 중앙 분리대가 있는데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저쪽에서 탱크로리 하나가 날아와서 중앙 분리대를 뛰어 넘고 앞에 오는 그랜저 승용차 하나를 받고 뒤에 있는 승용차 두 개를 더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네 명이 죽어 버렸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왜 일어 나는가 입니다. 교통사고 사고 처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차가 가다가 운전 미수로 실수를 하는 경우에는 스키드 마크가 나온다는 겁니다. 자동차가 잘못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끼익 하며 타이어 자국이 납니다. 아예 그런 것도 없이 대형사고 나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것은 잔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가다가 딴 생각을 한다든지 운전에 방해가 생기면 브레이크라도 밟아서 120키로로 충돌할 걸 60키로로 충돌 한다든지 정면으로 받을 걸 옆면으로 받는다던지 그렇게 사고가 경감되는데 아예 브레이크 밟을 새도 없이 달리던 속도대로 그대로 받아버린 것입니다. 언제? 잠들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똑같은 것입니다. 잠들고 나면 열심히 산 사람은 대형사고가 더 납니다. 열심히 안 산 사람들은 열심히 안 산데로 사고가 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열심을 낸 모든 일들이 다 헛것입니다. 아주 신앙도 좋고 아주 신실합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가까이 만나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신학을 하겠다고 해서 권면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신학을 공부할 사람이 열심히 신학을 준비해서 일하면 되는데 열심히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가지고 투자를 하고 해서 오락실을 했답니다. 목사가 되는 사람이 오락실을 하는 데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할렐루야 오락실, 막 누르는 사람이 주여 하면서 뿅뿅뿅, 하여튼 차렸습니다. 전심전력 열심히 사업을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크게 쾅하고 대형사고가 난 겁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그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망성이 거의 없습니다. 깨어 있는 다는 이 말, 이 신앙상태의 가치는 다른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깨어 있으면 내가 비록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으면 정말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내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생활 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하늘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엊그제 집회를 갔더니 목사님이 하는 얘기가 그겁니다. 비가 온다고 일기 예보가 내리고 먹장구름이 새까맣게 깔렸는데 목사님 오늘 집회는 야외에서 합니다. 비가 올텐데 설교하다가 비오면 어떡합니까? 나야 그 사람들 비 맞는 게 불쌍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설교를 끝까지 못할 까 그게 걱정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린 굳게 믿습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그런 걸 뭘 그리 굳게 믿습니까? 실내에 들어가서 하면 되지.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믿음으로 기도 했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저녁을 먹는데 햇빛이 납니다. 자기들은 막 감격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나는 속으로 뭘 힘들게 기도하고 하나 그냥 들어가서 하면 되지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는데 그분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몇 달 만에 하늘 쳐다봤습니다. 날씨를 위해서 기도하다 보니 하늘 쳐다보게 되지 그 외에는 너무 바빠서 하늘 쳐다 볼 시간이 없답니다. 맞습니다. 하늘 쳐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육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업의 승패, 직장에서 승진의 문제, 물질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이런 모든 잡다한 문제, 오늘은 무얼 먹나 내일은 무얼 마실까 또 내일은 무슨 옷을 갈아입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골몰한 생각 중에 이런 것들에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깨닫고 자기가 깨어 있는 지를 진정으로 점검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묵상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엄청나게 바뀌어 질 것입니다. 왜 아멘을 안 합니까?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세에 되어 질 일들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깨어 있으라. 명령을 하시는 강한 명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지막 때에 깨어 있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이 마지막 때에는 다른 평범한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잠들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잠드는 원인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 커다란 원인은 죄 때문에 우리는 잠듭니다. 존 오웬 목사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죄는 누구에게도 면역될 수 없다. 누구든지 죄는 우리에게 영적인 어두움을 가져오고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불순종하면서 살아가게 되고 불손종하면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영적인 위험에 대해서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 깨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철길 옆에 좀 살아 봤기 때문에 잠자는 것의 위험을 많이 느낍니다.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여름 날 기차선로가 여러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아주 특별한 때만 다니는 선로였습니다. 시멘트 같은 것을 싣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잡한 사람들 있는 곳에서 떠나서 철길 있는데 보면 이렇게 언덕이 되어 있습니다. 언덕위에 철길에 올라가면 바람도 시원하고 이상하게 모기도 별로 없습니다. 양쪽 철로에 걸터앉고 가운데 쪽 침목에다가 상을 삼아서 술을 한잔씩 두잔씩 거나하게 먹습니다. 시원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철길 옆에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잠들면 자기에게 다가오는 심각한 위험을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마지막 때에 깨어 있으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또 명령하고 권고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잠들기 쉬워하고 잠들기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상태와 더불어서 싸울 각오를 해야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매우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깨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일주일 내내 일을 합니다. 쉬는 날이 토요일 주일입니다. 주일날은 특별히 일찍 끝내고 주일 낮 예배 마치고 돌아가서 그저 식구들하고 어울리면서 티비나 보고 뒹굴뒹굴 구불면서 푹 쉬고 싶어집니다. 그것도 주일을 지내는 한 방법일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두 달에 한번씩 어렵게 버스까지 동원에서 기도원에 가보는 이유는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잠들기를 잘하는지 말입니다. 가서 한번 깨어나고 깨어서 살아가다가 너무 깨어 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체험하고 살아있는 날 동안에 깨어서 주님을 섬기고 어둠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도와주는 그런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늘 불러 주시는 거 아닙니까? 우리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해야 될 제목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영혼은 깨어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은 안전합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서 우리들이 잠들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