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을 찾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 27:8)
녹취자: 김인철
I. 본문해설
회심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스물 몇 살 때 였는데 동두천 어디로 기도원을 갔습니다. 회심하고 얼마 안 되었고 직장에 다닐 때인데 기도원에 갔습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기도원에 갔는데 기도원에 가면 기도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들어 가서 거기에서 기도를 하고 잠은 숙소에서 자는데 숙소라고 해 봐야 여러명이 같이 쓰는 방입니다. 거기에서 쪼그리고 자거나 아니면 본당에 올라 가서 기도를 하는데 너무너무 추워서 무지무지 추웠던 기억 납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예배 시간인데 그때 저는 신선한 충격 이었습니다. 그때가 1월달이어서 기도원에는 누가 왔는가 하면 목사님들이 많이 왔습니다. 신년 목회 제목을 가지고 오신 목사님들인데... 목사님들이 모여서 새벽예배를 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방도 좀 따뜻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가서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연세가 꽤 많으신 목사님께서 올라 오셔서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을 읽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을 읽으시면서 막 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때만해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다가 울고 기도하다가 우는 적은 있어도 회심이야 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도 노인네가 시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시편이 우리에게 좋은 책이고 해서 제가 모시고 있던 박희천 목사님은 자기 인생에서 시편이 없었다면 인생이 얼마나 건조 했겠냐고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시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올해는 시편과 사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나 교리는 그것대로 강한 힘이 있지만 시편을 시편대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곤고하고 마음이 산란할 때 시편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으면 뜻하지 않은 감격을 하나님께서 주실때가 있습니다.
II. 환란 날에 찾은 하나님
그런데 오늘 시편 27편속에도 아침에 나온 내용과 유사한 내용인데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격스러운 구원을 노래 하면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회고할 때에 구원의 놀라운 감격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구원 받아야 할 정도로 곤고한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깊은 고통을 회고 하는 가운데 이 시인이 자기가 환란을 당했던 때를 회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환란날에 찾은 하나님을 노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 환란을 당해서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궁휼히 여겨 달라고 응답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너는 내 얼굴을 찾아라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내용들은 대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가르키는 경우가 있고 이럴 경우에는 성경에 인용으로 나옵니다. 또 하나는 시인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감속에서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들은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께 직접 언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너는 내 얼굴을 찾으라...
A. 하나님의 얼굴을 찾음
그러면 여기에서 내 얼굴을 찾으라 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도대체 이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찾는다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일반적인 동사로 잃어 버린 것을 찾거나 혹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구하는 경우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찾는다는 대상이 하나님일 경우에는 의미가 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찾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렇게 두리번 거리면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체가 걸린 존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 인생 전체와 관련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인가를 그렇게 간절히 찾아 본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자면 아이를 잃어 버렸을 때 그때는 상당히 어울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를 하루종일 찾아도 없네 그냥 새로 하나 낳고 말지 그렇게는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절실하고 간절하게 찾는 것 그것입니다.
(예화) 제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은 특수 기관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신분증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특수기관은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잃어 버리면 동사무소 가면 덜렁 해 주는데 특수기관에서는 이것을 잃어 버리면 징계를 받거나 심하면 다른 기관으로 전출을 보냅니다. 북한에서는 당원증을 잃어 버렸다고 당원에서 짤라서 교화소 같은 곳으로 보내고 사형도 시킨다는 것을 제가 읽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사람은 보니까 여기 밑에 이렇게 띠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주우신 분은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십만원을 드리겠습다 이십만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써 놓습니다. 저도 설교 노트에 써 놓았습니다. 이 노트는 매우 중요한 노트입니다. 주우신 분은 무조건 계좌로 이십만원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적어 놓고... 진심으로 써 놓은 것입니다. 잃어 버리면 이십만원이 문제가 아니니까... 그동안에 묵상한 노트 이니까... 그런데 일주일만에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거의 초죽음으로 지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그 다음에 이것을 찾고자 관계가 있는 모든곳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것이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할 때 하나님은 찾으심을 당하심에 있어서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나 다른 모든 인간들과 비교해서 처지는 찾음으로 당신이 찾아 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을 간절히 찾는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실은 하나님의 얼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형상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형상을 만드는 것을 그렇게 금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에는 도움이 안되는 정책입니다. 왜냐하면 다들 우상을 만들고 보이는 형상을 가지고 자신의 신들을 소개할 때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강력하게 빨려 들어 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주 비 선교적인 짓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셨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드는 순간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 이런것들이 마음에 먼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감각적인 상안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광대하고 무변하신 하나님을 파악하고 아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못 만들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오는 얼굴은 무엇이냐?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얼굴을 보고는 못하는 이야기가 있고 등을 돌리고는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얼굴을 마주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얼굴이 함유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 임재는 동일한 임재인데 이 동일한 임재가 악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화) 아이들만 집에 남아서 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아이가 “야! 엄마 온다” 밖에서 딩동딩동 “야! 엄마 온다!”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엄마가 와서 좋다는 것입니까? 싫다는 것입니까? 기쁘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엄마가 왔구나 그런데 둘이서 막 놀다가 “엄마 온다 엄마 온다 엄마 온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걸리면 혼날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 온다 엄마 온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안 그랬습니까?
그래서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얼굴 빛을 비추실 때 오직 두가지 목적으로 사람에게 얼굴 빛을 비추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또 하나는 의인을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 주시는 최고의 애정의 표현이 얼굴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얼굴을 대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형상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친밀한 하나님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제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그의 얼굴 빛을 비추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그런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그러한 얼굴 빛을 이 세상의 온땅에 두루 비추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모든 경건한 언약 백성들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한번 찾아 봅시다. 시편 67편 1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사’ 세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긍휼 사랑의 표현입니다. 복을 주심 세 번째는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심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복입니다. 그 임재가 있는 교재를 주실 때에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 나는가 하면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중에 알리소서 그렇게 주의 구원 주의 도를 널리 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너는 나의 얼굴을 찾으라 그럴때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하면 일상적으로 이제껏 내가 너와 만났고 너는 나와 교재를 했고 언약관계안에 있으면서 이제껏 살아 왔지만 그러나 이 환란날에 너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의 매우 특별한 만남이다 그것을 나에게 구하라 그런 은혜를 구하라 그런 것입니다. 맥달렌 대학에 총장으로 있었던 토마스 구딘이라는 유명하 청교도가 있습니다. 그 대학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 안에 있는 대학입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실때가 있다
(예화) 그것은 마치 어떤 때인가 하면 자식이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걸어 갑니다. 그러면 아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이고 아버지라는 의식이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느 순간에 너무 기뻐서 아이를 번쩍 안아서 꽉 끌어 안고 특별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아버지가 아버지인줄 알고 그전에도 아버지가 아버지인줄 알았지만 그런 특별한 아버지와의 교재를 통해서 자기가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이런 특별한 사랑으로 자기를 위해 준다 라고 하는 것을 관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도 똑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너는 내 얼굴을 찾아라 간절히 찾아라 그래서 구약 시편에 보면 이 시인들의 경험이... 이 사람은 또 다윗입니다. 다윗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주님을 찾던 아주 열렬한 구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녹도록 상사병이 날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내 얼굴을 찾아라 라고 말할때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신앙에 있어서 동일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당신이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학벌과 이해력이나 이런것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갈망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찾아 주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을 들었을때 그 말씀에 응답하는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말씀은 때로는 설교를 통해서 주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성경을 읽을때 주어지기도 하고 우리의 살아 있는 양심과 의식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 이든지 간에 이에 응답하는 신앙이 필요 합니다.
B. 찾는 자를 만나시는 하나님
그래서 오늘 시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님이 너는 내 얼굴을 찾아라 이렇게 말씀하실 그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도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그렇게 특별한 임재 속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변화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셔서 나를 에워싸고 있는 악인들 앞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는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여기에 대해서 합당하게 반응을 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앞에 이 시인이 간절히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 명령하셨고 시인은 찾겠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응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너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할때 시인이 하나님 그러겠습니다 저의 마음으로 주님을 얼굴을 간절히 찾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이때에는 예배에 참석하겠다든지 기도를 하겠다든지 그런 뜻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존재의 이유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되고 주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는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화) 세월이 많이 지나 갔는데도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또렸이 찍혀서 지워지지 않는 삶의 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느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는데 그 교회가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주일이면 가끔 목사님이 강단에 못 서고 도망을 해야 하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교회 였습니다. 그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는데 조그만 교회입니다. 어느 일반 가정집 같은 마루에 모여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교인이 40-50명 정도 되는데 그래도 어쨎든 그 당시에는 강사로 갔으니까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사람들이 의자도 없고 마루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를 했는데 사람들이 열심히 설교에 응답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저는 그렇게 살아 오면서도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애절하게 기도하는 성도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짜리 키도 조그맣고 바짝 마르고 머리는 빡빡 깍은 학생이 맨 앞에 앉아서 눈동자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긴 설교를 듣고 나더니 기도합시다 하고 시작했더니 온 마음으로 얼굴에 핏줄이 다 서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매달려 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먹을 작은 손을 쥐고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그렇게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 했습니다. 부자집 아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머릿속에 또렷이 박혔습니다. 한 15년이 지났는데도...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것 같았습니다. “얘야! 저 모습이 바로 마음을 다해서 나를 찾는 모습이란다 너희 나이 많은 어른들이 나를 찾는것보다도 저 아이가 더 간절하게 나를 찾는구나!” 마치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나를 부끄럽게 하시는것 같았습니다.
III. 응답하는 신앙이 필요함
세월이 많이 흘러도 주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간절히 당신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권능을 보여 주십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쳐 나갈 수 없는 환경들을 주님이 해치게 해 주시고 때로는 하나님이 이길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주셔서 남들이 보기에는 기적 같지 않은데 그 은혜를 받았던 우리는 기적이 일어난것 보다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하면서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고 환란이 변하여 축복의 땅이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그렇게 간절해지지 않은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그져 넉넉히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부요해지고 기도를 해도 이때가 아니면 내가 주님을 언제 찾겠는가 하는 그 마음으로 매달리지 않고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고 내일도 못 만나면 할 수 없지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이기지 내가 뭐 생기는 것이 있나? 이런 마음의 부요함이 형식은 있지만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진수를 잃어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은 간절히 매달릴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IV. 결론
기도원에 한주간 있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일단 전화도 안 오고 기도원에 들어 간 것은 그렇게 잘 알아서 전화도 안 오고 조용합니다. 추워서 고생을 좀 했지 춥기는 정말 많이 추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좋습니다. 그러면서 한주간 동안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애에서 우리 신앙의 불을 끄는 것은 우리는 항상 우리 밖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밖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등불을 끄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 끄는 것이요 무지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도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안개를 피워 보지 못하고 어두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갈망하면서 산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주님으리 얼굴을 구하라 하고 명령하셨을때 이 시인이 즉각적으로 내 마음으로 응답하기를 내가 주의 얼굴을 찾겠나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건 결단이...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사경회에 정말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