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모범, 예수님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I. 본문해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주기도문이 생겨난 배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라 기도하게 하시려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기도를 알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신약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렌즈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대하셨던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처럼 예수님이 살아계시면서 생생하게 기도를 가르쳐 준 곳이 흔치 않을 정도입니다.
II. 예수님의 기도 생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몸소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기도하신 주체가 예수님 자신 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본체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A. 몸소 기도하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첫째, 몸소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연약한 우리들처럼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심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야 할지를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동안에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시는 방편으로 이렇게 친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죄는 없으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의 본성 아래 감추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는 없으셨지만 연약한 한 인간의 몸을 입고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전심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너무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몸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중보기도의 능력을 말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중보기도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 중보자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섬김 기도라고 부르도록 제안합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섬김의 기도는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불신자이던 사람들이 섬김 기도를 해주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예수를 믿게 되고, 은혜에서 물러가 있던 미끄러진 사람들이 지체들의 간절한 섬김의 기도로 다시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많은 섬김의 기도가 자신이 해야 하는 기도를 대치해 주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의 섬김의 기도가 있어도 마지막에 기도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사자가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섬김 기도해 주었지만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개한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몸소 기도하심으로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우리 자신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모본을 보이심으로 어떤 때에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친히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능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몸소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해야 할 기도를 제자들에게 미루시거나 위탁하지 아니하였으니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여러분들도 몸소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에도 아파트 출입문 앞에 어느 피트니스 클럽에서 광고를 붙여놓고 갔습니다. 아주 날씬한 자매의 사진 하나를 붙여놓고 큰 글씨로 이렇게 썼습니다. ‘야, 언제까지 체중계만 보고 있을 거야? 운동을 해야지’ 라고 말입니다. 한 체육관에는 정문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운동을 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체육관에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어려운 일을 지금 방금 해냈습니다. 나머지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에는 차의 시동을 앞에서 걸게 되어 있었습니다. 조수들이 그 일을 담당했는데 크랭크를 차 엔진 앞부분에다 끼우고 힘차게 돌리면 엔진이 털털 거리다가 결국 발동이 걸리게 됩니다. 겨울에 엔진이 식으면 발동 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 번 피식피식 소리를 내다가 힘들게 엔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엔진이 걸리고 나면 힘차게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멈춰있던 큰 몸집의 버스 혹은 트럭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한번 자신이 몸소 떨치고 일어나 자신이 직접 기도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떨치고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 시작하고 우리의 심령에 은혜의 발동이 걸리고 나면 기도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의무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고 맡길 수 있는 일이 있고, 자기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남이 아무리 밥을 많이 먹은들 내 배가 부를 일 없고, 다른 사람이 자기 다리를 아무리 긁은들 내 발이 시원해질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몸소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항상 기도하심
두 번째는 ‘항상 기도하심’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한 곳’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엔토포티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직역을 하자면 ‘어떤 장소에서’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가 끊임없이 여행해야 하는 생애이심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일정한 거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일생이 동가숙서가식() 하시는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는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복음 3장 21절에서는 예수님이 강에서 기도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 5장 16절에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가 한적한 곳이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짧은 생애에 기도하는 장소가 이렇게 다양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만큼 사역에 무거운 짐을 지시고 분주한 일생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디에 가시든지 항상 그곳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마음을 쏟아 기도 올리는 장소였습니다. 산에서나 강에서나 그리고 한적한 광야에서나 어디에서든지 그 분이 무릎 꿇는 그곳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리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이 싸우는 전투적인 삶입니다. 축구 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운 좋게 경기장이 우리나라입니다. 그러면 수만 명의 동포들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며 힘차게 선수를 응원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홈경기가 아닙니다. 하늘에는 권세 잡은 자들이 포진하고 있고 온갖 시련과 고난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우리 안에도 죄와 근심이 있습니다. 안팎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칩시다. 세월이 하나님 얼마나 흐르면 모든 환경이 여러분들이 기도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변할까요? 시간이 있을 때에는 기도할 마음이 없고 기도할 마음이 있을 때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세 가지가 딱 맞아야지 기도할 수 있을 텐데 이 세 가지는 날마다 어긋납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이 있을 때에는 기도할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의 인생은 바람처럼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보십시오. 예수님의 생애는 매일매일 기도하기에 적합한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떠돌며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했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어디에 가든지 그곳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가 되었으니 그것은 환경을 능가하며 항상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상은 우리의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신자는 이 세상이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수많은 함성 소리보다 야유하고 비웃고, 우리를 조롱하는 소리들이 가득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생애를 사셨습니다.
(찬양)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주님만 섬기며 따르기로 한 나
세상이 준 모든 괴로움 버리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원해요
환경 타령하다가 인생 다 보내지 말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C. 오래 기도하심
세 번째는 ‘오래 기도하심’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마치시매’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희랍어로 ‘에파오싸토’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쉬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동치어가 창세기 1장에서 사용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샤바트’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을 의미하는 영어 ‘사바쓰데이(the Sabbath day)’가 유래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시간의 길이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것 같은 짤막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장시간을 몸과 마음을 쏟아 하나님께 간절히 비셨기 때문에 지쳐서 잠시 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도였습니다.
성경은 큰 능력이 깃들었던 짧은 기도의 많은 예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가나안을 정복하는 길에 원주민을 추격하고 있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달과 해가 그 하늘에 머물라고 명령했으니 이것은 기도의 변형된 형태였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사 하나님은 그 해를 하늘에 멎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삼손은 블레셋과 헷 싸움을 승리로 끝낸 후 죽을 것 같은 때에 내가 심히 목말라 죽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호소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 앞에서 샘을 터트려 물을 먹고 마시고 원기를 되찾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짧은 기도에 깃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예수님의 생애에서도 나타나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후 제자들의 사역 속에서 나타납니다. 짧은 기도로 수많은 병자들을 낫게 하고 기적을 이 땅에 불러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큰 권능이 짧은 기도를 통해 나타난 예는 얼마든지 성경에 나옵니다.
그러나 모든 짧은 기도가 이런 큰 능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기도로 하늘의 능력을 이 땅에 내렸던 위대한 기도는 모두 이전에 오랜 시간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쳤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긴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는 아니지만 능력 있는 짧은 기도는 오랜 기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길이가 깊이를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기도의 깊이는 반드시 긴 시간에 기도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대화해도 시간이 금세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의지하면 기도는 반드시 긴 시간을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고단하고 바쁘신 사역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고단하셨으면 풍랑 이는 바다, 배에서 주무시기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렇게 고단한 생애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그의 육체의 힘을 소진하셨는지 기도가 끝난 후에는 쉬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자신을 쏟아 부은 장시간의 기간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도 해주시고, 저것도 해주시고, 이것도 해주시고 저것도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응답을 해 주시려고 합니다. ‘드르륵’ 하늘의 문이 열리고 “얘야.”하고 우리를 불렀지만 우리는 이미 딴 곳으로 가고 없다면 어떻게 그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일방적으로 하나님 앞에 퍼붓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배이게 하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배이게 하는 사랑의 교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시간의 길이를 필요로 합니다. 자주 기도하는데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뜨겁고 간절하게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시간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쉬셔야 했던 예수님을 뵈오며 여러분들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 장시간 하나님 앞에 기도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장은 예수님처럼 긴 기도를 드릴 수 없어도 조금씩, 조금씩 기도하는 시간을 늘리며 하나님 앞에 더 친밀한 기도를 올리기를 힘쓸 때에 그만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은혜의 비밀이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더 오래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II. 감화를 끼치심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감화를 끼치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뵈오니 그 모습이 얼마나 신령하고 감화력이 있었던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진정으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지를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배우고 싶어 하리만치 깊은 감화력이 있는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우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기도의 내용입니다. 당시 요한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 관습을 따라 예수님께 기도를 청했으니 이것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내용에 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즉석에서 지어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이 일평생 간절히 기도하시던 기도의 내용을 그대로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기도의 내용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감화를 끼치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평소에 하던 그대로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쏟아놓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 모습을 뵈었을 때 자신들은 도달해보지 못한 깊은 기도의 경지를 보았고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에서는 한 가지 소원이 불끈 솟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간절히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했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기도의 모본으로서 제자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고 어떤 태도로 기도해야 되는지를 동시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보다 더 분명하게 오늘 성경을 통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기도를 통해 얼마나 더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까? ‘주님께 복을 주십시오.’ ‘돈을 주십시오.’ ‘결혼을 하게 해주십시오.’ ‘땅을 주십시오.’ 라고 비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께 ‘그 넓고 깊은 기도의 세계를 주십시오.’라고 간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사실 기도의 세계를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약하지만 기도하기 때문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가장 큰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배우고 신학을 공부하고 또 가슴이 비전에 불타 제자훈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기도의 감화 없이는 그는 결코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고단한 사역의 일정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이 머무시는 어느 곳을 택하여 주님께 올리는 기도의 처소로 삼으셨습니다. 당신 친히 기도하셨고 환경을 능가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헌신하셨습니다. 장시간 자신의 마음을 쏟아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제자들은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기도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자녀들, 지체들에게 여러분들의 기도의 모습이 배우고 싶은 감화력을 끼치는 기도의 모습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전심으로 마음을 당신께 향하고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환경이라고요? 언제쯤 그 환경이 좋아지고 기도할만한 여건이 갖추어질까요? 어차피 우리 인간의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시련과 고난에 시달리고 모든 일들이 우리의 뜻대로 되어서 행복하고 기쁠 때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더 많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강아지 코코를 옆에 놓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야채를 좀 뜯어서 강아지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면 배변이 잘 된다고 해서 먹였습니다. 코코는 맛있게 받아먹습니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진짜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도 참 힘들겠다. 낳은 지 3일 만에 애견센터로 왔다고 하니 엄마를 알았을 리가 없고 아빠는 진작 도망갔을 거고….’ 그리고 애견 센터에서 불안 속에서 떨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에 온 첫날 사진이 아직도 있는데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 찬 표정입니다. ‘그런 강아지로 살면서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러고 보니까 살아있는 모든 것은 힘들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강아지뿐이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든 인생을 살면서 저절로 좋아지는 요행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힘든 인생이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힘든 것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없는 하늘의 생명과 은혜를 받는지를 배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아마 간절히 기도를 드리며 은혜의 부흥을 누리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 속에서 기도의 부흥을 누리면서 살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고 행복했기 때문에 기도한 것도 아니었고, 모든 여건이 기도할 수 있도록 밀어주었기 때문에 기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힘들고 어려웠지만 기도 속에 몸부림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올 때에 그것을 보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고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들을 믿음으로 이겼고 기도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자녀들이 이러한 기도의 부흥을 누리고 심령에 큰 은혜를 받으며 살기를 얼마나 원하시겠습니까? 살았으나 죽은 자와 다름없는 인생을 살기보다 살아있는 자답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용납하십니다.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힘이 없다면 힘을 주십니다. 갈 길을 몰라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진리의 밝은 빛을 비추어 갈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한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V. 적용과 결론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간절한 기도 속에서 제자들에게 감화를 끼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를 배운 제자들처럼 간절한 기도를 드림으로 또 다른 미래의 여러분들의 제자들에게 기도의 감화를 끼치는 스승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여러분들의 지체들에게, 여러분들의 가족들에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하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자신을 쏟아 붓는 기도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한 기도의 고통뿐만 아니라 기도 끝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수확에 대해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기도 생활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미루지 아니하고 몸소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환경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세속적인 시간들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감화를 끼치는 그런 깊은 은혜의 생활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힘겨웠던 인생의 모든 시간들을 떨쳐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능력 있는 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