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인격, 태도 그리고 기도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마 25 : 23 )
녹취자 : 이시내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풀이를 할 때 한자의 인자가 이렇게 두 개가 기대어 있는 것을 설명을 하면서 중국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인간이라는 것은 혼자설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기대어서 사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인자가 팔자처럼 그렇게 그려져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맞는 이치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아무리 자존감이 강한 사람도 혼자서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는 이치가 사람을 서로 이렇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은 이제 인생을 살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고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와서 도움을 줍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한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이 있어봐 사람들이 다와서 도와주지 그러나 그것은 겉모양일 뿐이고 진짜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옛말에 정승이 죽으면 오는 사람이 없어도 정승집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승이 죽으면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이제 죽었으니까 그 사람 덕 볼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개가 죽으면 눈도장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나래비를 서서 개 문상을 온다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나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평소에 많이 베풀었던 사람 사람들이 평소에 살아가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서 자기도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친 사람 그래서 사람들 마음에 아 그 사람 참 좋은 사람 참 선한 사람 참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 내가 꼭 필요할 때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 그런 것이 가슴에 새겨진 사람을 사람들이 기쁨으로 도와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싫은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평소에는 아무 연락이 없다가 어려운 일 생겼을 때 불쑥 나타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참 싫습니다. 생전 처음 본 척도 안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호들갑을 떨면서 반갑다고 그러고 그 다음에 물건하나 팔아달라 그럴 때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가 그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잘 들어주시는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도자체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헛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기도할 때 모든 사람의 기도에 똑같이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귀를 기울이십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소곤소곤 기도하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할 때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기도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달란트 비유에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 나오고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데 뭐라고 하냐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러면서 두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에게 거꾸로 하려면 뭐라고 해야겠습니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거꾸로 하려면 못하였도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래야 하는데 못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뭐 한게 있어야지만 잘했다 못했다 평가를 할텐데 한 달란트 받아서 땅에다 묻어버렸습니다. 할려고 했는데 좀 못해도 그것은 좀 낫습니다. 아예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와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러고 평가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이 기도의 힘을 좌우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시간에 온 힘을 다하는 것 물론 그것도 기도의 힘을 더해줍니다. 또 기도할 때 그 기도하는 그 시간에 마음을 집중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물론 그것도 우리의 기도에 힘을 더해주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리의 기도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기도에 어울리는 삶입니다. 기도에 어울리는 삶 그것이 기도의 위대한 능력의 비결입니다.
기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탁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어떻게 살았던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만약에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의 삶이 그 기도에 부합하지 않았다면 그 마음으로는 열렬히 은혜를 사모할 수도 없고 잠깐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은혜에 부합하는 기도를 드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 앞에 잘 살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사는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 쏟아부어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기도가 힘들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이 힘들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기도에 갖히고 기도는 삶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것만큼 살고 사는 것만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살기위해서 기도가 필요하고 기도를 하려면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살 때에는 기도를 위해서 준비로 살고 기도할 때는 살기위해서 그 준비로 기도하고 그래서 이것이 하나가 되어서 휘도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 기도의 향불이 꺼졌다하면 그 사람의 삶의 불꽃도 꺼진 것입니다. 그래도 목사님 얼마나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헌금하고 봉사 많이 하는데요 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지를 말아야 됩니다. 그래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만 못하지 마음을 싣지 않아서 하는 것은 기도 안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회생활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헌금도 더 많이 합니다.
(예화) 저는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전도사 생활할 때 다니던 한 교회가 있는데 교인이 600명쯤 모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동의해줄 수 없었습니다. 예배시간에 2층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면 3분의 2가 잡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똑바로 들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설교자와 그 다음에 한 3분의 1정도의 교인들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고개를 숙이고 뭐 다 자지는 않겠죠 깊은 명상에 잠겼겠죠 그런데다가 목사님이 머리가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또 철저히 원고설교 주의자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숙이시니까 그러니까 숙여도 얼굴 같습니다. 우리같이 눈 나쁜 사람이 보면.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딱 11시 30분쯤 되면 저기 교회당 꼭대기에 커텐이 가려져있는데 핀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커텐이 이렇게 벌어졌는데 거기로 정확하게 햇빛이 들어와서 빛이 나서 뵐 수가 없습니다. 반짝반짝하게 빛납니다. 눈이 부셔서 교인들이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분노를 느낍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밖에 예배를 드릴 수 없을까 그런데 하여튼 12시면 칼같이 마칩니다. 시간이 도저히 안맞춰지면 찬송가 1절만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라고 해서라도 시간을 딱 맞춥니다. 목표가 12시에 딱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축헌금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고 예배시간에 저러고 퍼질르고 잠이나 자고 그러니 누가 헌금을 하겠는가 이 헌금이라고 하는 것이 심령이 뜨거워야지 헌신이 나오는거지 그랬는데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45억이 나왔습니다. 600명이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입이 안 다물어졌습니다. 그것이 그때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를 두 번 옮겨보면서 야 그것이 장난이 아니었구나 야 정말 엄청나구나 우리가 700명이서 건축헌금을 했는데 23억인가 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이 정말 은혜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때 열린교회 성도들이. 물론 조금 불리한 것은 있었습니다. 거기는 청년들이 거의 없고 우리는 그 700여명중에 300여명이 청년이었으니까 그래도 어쨌든지 간에 비교가 안됩니다. 야 그래서 그때 느낀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반드시 은혜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다 바치는 기도 그래서 기도 속에서 자신이 깨뜨려지는 것 그래서 거기서 부수어지고 주님의 손으로 다시 빚어지는 것 이것이 안 일어납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교인들은 이교회는 자기네 교회라고 하는 강한 그 확신이 있습니다. 아들 장가보낼 때도 며느리 맞을 때 이 교회 다니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결혼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때부터 계속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아주 굉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기도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니까 그 기도하게 하는 영이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조금아까 새로 나온 책하고 어느 방송국하고 이제 전화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신자가 정말 왜 그렇게 자기 깨어짐이 중요합니까 그럽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이 우리가 참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가까이 가는 것 영혼이 나 어제부터 참된 신자 되었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이 그분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무엇이냐면 분리가 안 됩니다. 잘 하는 것 섬김입니다. 착하고 인격입니다. 충성스럽다 이것은 섬김의 자세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가 항상 일치하는 것입니다. 잘 하였도다 영어성경에 보면 perfectly done. 완벽하게 끝냈구나 이 뜻입니다. 얼마나 주인의 마음에 들었으면 더 좋을 수가 없다 완벽하게 해냈구나 정말 잘했다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게 정말 잘했구나 이것이 주인의 마음에 이러한 기쁨을 드리는 섬김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인격은 어땠느냐 하면 정말 착하구나 착하다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마음의 분신처럼 되어서 그렇게 네가 했구나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섬김의 내용은 잘 되었고 그렇게 잘 섬길려고 하면서 살아오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착한사람이 되었고 그 착한사람이 되니까 섬기면서 살아간 삶의 방식은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붉은 마음을 품고 단심을 품고 그리고 주님 앞에 자기중심을 다 쏟으며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삶의 촛점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일은 개판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다 내팽게쳐서 쉽게 이야기해서 개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니까 사람이 인격도 악합니다. 삶의 방식은 전혀 충성되지 않고 정말 게으르고 나태하게 사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냥 개기고 잠만 잔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자기 임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자기가 무슨 일로 주님을 섬기는데 자기 임무가 무엇이고 자기 직무가 무엇이고 자기일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업에 도움을 주는지 손해를 주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없이 사는 것 이것 전부다 게으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삽니다. 살다보니까 고생스러운 일이 닥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갑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믿으면 들어주신다고 했지요? 믿습니다. 그것도 마음이 불안하니까 감사헌금부터 냅니다. 이루어질줄 믿고 감사헌금을 합니다. 그것이 감사헌금입니까 뇌물이지 그런 식으로 해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꺾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도 꼼짝 못하시겠지 그런 공식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기도 그 자체의 열정으로서만 모든 것의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대부분 그 기도들은 허공에 흩어집니다. 안됩니다. 그리고 가끔 그럽니다. 금식을 해버리면 짧은 시간에 단판이 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대게 금식 시작하면 마지막 못 지키고 중간에 깨집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을 향해야지 그리고 삶의 초점이 기도하는 초점하고 맞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기도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도에 마음이 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사명은 영원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끓는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시는데 교회는 왜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그렇게 애끓는 열정이 없을까요 전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구역장이 그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면 구역예배 모였을 때 감히 구역원들에게 전도하시오 이렇게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구역예배 끝날 때 기도할 때면 항상 그 구역장이 눈물을 흘리면서 동네 이웃집에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역자가 자기 자신이 영혼을 놓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구역장들 모아놓았을 때 마지막에 항상 구령에 대해서 불을 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그것을 안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한순간의 짧은 말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 말하는 시간과는 비교되지 않을 긴 세월동안을 고뇌 속에서 살아왔어야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그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기도도 하나님 앞에 기도해본사람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멍이 들도록 가슴을 두드리며 기도해본사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다 영혼들에 대한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엄습하면 중보기도하다 졸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기가 넘어가 쓰러집니다. 이렇게 기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아서 주님 앞에 기도합시다 그게 힘이 나옵니다. 언어의 힘이 나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진리를 골고루 가르쳐야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야되겠습니까 모든 방면에 있어서 삶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잘하는 삶이고 착한 삶이고 그것이 바로 충성된 삶입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기도의 파워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초점이 그분이신데 내 인생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는데 내 인생의 주관자가 그분이시고 내 꿈과 행복도 그분에게 있고 삶과 죽음도 그분의 손에 달렸는데 이렇게 믿는 사람 그래서 그분을 찾고 삶의 모든 초점이 그분께 합치되어 있는 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의 이 사역에 복을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날 도와주십시오 거기에서 그냥 눈물이 쏟아지고 거기가 어디든지 그 현장에서 마음이 물같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의 말에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들으십니다. 거기서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은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삶 전체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들 모두 새롭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