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대상 16:34-35)
녹취자 : 조복령
I. 본문해설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오던 때에 올려졌던 감사의 찬송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돌판에 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함께 들어 있었으니, 이 법궤를 증거궤라고도 불렀습니다. 길이는 1.2m 높이와 너비는 0.7m인데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고 나무 전체를 금으로 감쌌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뒤, 법궤는 기럇여아람에서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졌다고 사무엘상 7장 1절이 말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무엘하 6장 1절에서 23절에 의하면 다윗이 법궤를 자신의 왕궁으로 옮겼습니다.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은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뛰놀았습니다. 창문 밖을 보고 있던 사울의 딸 미갈은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며 업신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은 법궤가 자신의 궁 내에 들어오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위한 장막을 다윗성 안에 마련했습니다. 그 이전에 이에 맞춰서 찬양대를 조직하고 성대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의하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II.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것이 오늘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고 있는 찬양의 제목입니다. 성대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하나님 앞에 찬송을 지어 바쳤으니 그 감사의 제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A. 구원해주심
첫 번째는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은 법궤가 들어오는 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의 찬송을 드렸는데, 첫 번째가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본문 35절 상반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약 13회 정도 사용되는데, 크게 4가지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지, 능력, 기쁨, 의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므로 첫 번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 구원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세 번째,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한다는 것이고 네 번째, 그 구원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찬송 제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구원의 경험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모든 경험 속에 내재되어 있지만 특별히 애굽의 노예살이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짝을 이루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구원의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커다란 구원의 경험이었든지 이스라엘은 자자손손 역사가 아무리 많이 흘러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할 때마다 자신들을 애굽의 노예였던 처지에서 건져내어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막돼먹은 인간이라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건져내 주신 사실을 생각나게 해 주면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은혜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시절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크신 구원에 어떻게 감사하며 신앙고백을 해야 할지 미리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세가 유언적으로 남긴 마지막 설교 신명기 26장 7-8절에서 이스라엘의 원시 신앙고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여 낸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서 곡물들을 추수하여 하나님 앞에 바치며 이 신앙을 고백하도록 미리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고난을 겪었고 하나님은 거기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증거였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이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을 만국 가운데서 건져내신 구원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그들은 수많은 전쟁을 광야에서 치러야 했습니다. 많은 이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약속된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방해를 하였습니다. 굶주림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시고 이길 수 없는 나라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마른 땅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고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에게 치료에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런 많은 과정들은 결국 이스라엘에게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감사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이제껏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감염병의 치하에서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감사의 제목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엄혹한 시련의 시기를 과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마귀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죄를 지으며 어둠 속에 살던 아무 소망이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은 이 은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당신과 원수였던 우리를 용서해주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구원을 아는 깊이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가 가까워질 때에도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상기했습니다.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인생의 황혼에서 그는 디모데전서 1장 15절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엄혹한 시기를 지났습니다. 전대미문에 코로나라는 감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잃어버리고 직장을 잃고 혹은 고통 가운데 두려움 속에 지내야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생을 건너 저편으로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미줄 같은 믿음이나마 붙들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우리는 모든 시련들을 이기며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일생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이제껏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 때문인 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살아온 우리의 모든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시련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 나라와 교회를 보호하시고 우리 개인을 돌보아 지켜오셨는지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교회를 삼으심
마지막 두 번째, 교회를 삼으신 것입니다. 또한 다윗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아 그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궁에 모시면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하나의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본문 35절 하반절은 말합니다.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핏줄로 뭉쳐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애굽을 탈출할 때 이미 수많은 종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왔으며 이스라엘과 함께 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8절에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수많은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사도행전 7장 38절에서는 '광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 모으심으로써 그들을 교회 삼으셨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가든지 한가운데 법궤가 있게 하심으로써 법궤를 중심으로 당신의 임재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핏줄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셔서 하나의 영적인 이스라엘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미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교회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법궤의 길이는 1.2m, 높이와 너비는 0.7m이고 덮개는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덮개를 '시은소' 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에 있을 것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다음으로 감사한 것은 구원받은 우리를 세상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들을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 영적인 교회가 되게 하셨고 그들을 하나로 모아 한 교회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사랑을 아들에게 부어주시고 아들에게 부어진 사랑은 아들은 신부인 교회에게 부어졌습니다. 우리는 신부인 교회의 지체이므로 우리에게까지 부어져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삼으셨으니, 시련과 고난의 때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예수의 가족으로써 모든 시련을 이길 힘을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받았던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어떤 사람은 미끄러졌으나, 더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시험이 들어 진리의 빛을 떠났으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진리의 빛을 비추어 짐승 같았던 삶에서 성도의 생활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세월이 끝날 때까지 미끄러지는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는 사람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임에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앙의 고백과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오고, 어떤 사람들은 불신앙과 범죄로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를 가장 열렬한 사랑으로 신랑이 신부를 사랑함보다 더하십니다. 핏빛 사랑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에게 감격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27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삼으신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때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또한 지체들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빚을 두려워하되 사랑의 빚은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나누어 주고 짊어지며 고난과 시련을 이기며 한 해를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누렸습니다. 목적도 없이 허무한 세상을 살다가 사라질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육신에 베푸신 은혜를 능가할 정도로 찬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은혜를 따라 넘어져도 아주 엎드려서 멸망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곤고한 날에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시련의 때에는 하나님이 돌덩이 같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힘을 내게 해주셨습니다.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 차 절망의 벼랑 끝을 향할 때에도 거기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 앞에 살게 하셨습니다. 계곡으로 추락하는 대신 고통받는 우리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셔서 고난의 계곡을 날아 오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가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던 것입니다. 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께 모든 지체들과 함께 감사하며 연약할 때 지체들의 돌봄을 받고 그들이 연약할 때 내가 붙들어 주며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찬 한 해를 살아오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구원하여 모으셔서 한 교회로 삼으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거저 주시는 은혜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모든 시련의 때에 큰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은혜를 힘입어 방향이 없는 자 같이 우리의 일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섬기고 또 그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35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일평생 다윗의 마음을 뜨겁게 불태웠던 것은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던 이름 없는 이 사람이 역사에 얼굴이 드러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군인들이 쳐들어와 골리앗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을 때 이스라엘의 이름난 장수들도 벌벌 떨며 그와 맞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이 어린 소년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탔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이스라엘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할례받지도 못한 인간이 모욕을 하자 그는 달려 나갔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양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물매를 날려 맹수들을 내쫓던 재주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그 이름에 대한 사랑이 불타올랐고 그가 평소에 하던 대로 물매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전세는 뒤집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어려움 소년에 의해서 이스라엘 모든 군인들이 두려워하던 골리앗 장군의 목이 떨어진 날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그분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연약하면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없으면 자원을 주시고, 지혜가 모자라면 총명을 주셔서, 모든 열망을 따라 살 수 있게끔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정체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눈물 흘림을 며칠 더 당하고 행할 길을 가야 합니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기회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부딪히는 돌멩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소리를 산 가득히 채워 노래가 되게 합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의 시련이 아니라 그 시련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할 수 있는 은혜가 부족한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경우도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여전히 모든 지체들과 함께 한 연합을 이루며 모든 역경을 이기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현실이 한낮의 찌는 더위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함께 이겨나갈 힘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잘못 산 것은 우리지만 다시 잘 살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교회에 부어 주십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생 동안 하나님과 교회를 배반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이니 이는 우리 같은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해 당신의 몸의 일부로 여기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육체로 먹이시고 입히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거미줄 같은 믿음이라도 붙들고 시련과 고난의 때를 이겨 오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종종 변했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고 영원하였으니 이는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값 없는 구원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위해 말씀과 성령으로 은혜를 주시고 죽음을 이기며 살게 하셨습니다. 절망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게 하셨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절망하여 엎드려지지 아니하고 모든 시련을 이기고 오늘 감사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있습니다.
감사절의 유래는 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와 있지만 근대적인 감사절이 유래는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하나님 앞에 드린 감사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에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80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교회를 지었고, 두 번째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지을 정도로 철저히 신앙과 후손들의 교육에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짓고 애를 썼습니다. 거기에 있는 인디언들이 새로운 이주민들을 도와서 농사를 짓게 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아주 극심한 가뭄과 거의 수학이 없는 쓸쓸한 가을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주민이었기에 모두 모였고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고 하나님 앞에 잘못했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우리에게 흉년을 주셨겠습니까?' '우리 모두 금식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라고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가 여기 건너올 때 무엇을 바라고 대서양의 무서운 파도를 넘었습니까?' '좋은 집, 훌륭한 음식, 그리고 세상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조국을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 우리가 믿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신앙대로 예배할 자유를 찾아왔습니다' '예배하지 못하며 사는 것보다는 예배하다가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정든 고국을 버리고 이곳 허허벌판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난 한 해 동안 누가 우리의 신앙을 방해했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핍박의 위험 없이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했고, 우리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며 신앙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흉년이 들었다고 하지만 우리 아무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나는 금식기도를 반대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인디언들을 초청하고 큰 잔치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 청교도 한 사람의 바람으로 낙심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감사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함께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누려도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신 그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누렸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감염병으로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어제도 미국은 이십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세계의 시민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긍휼히 여겨야 될 때입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고난도 슬픔도 이길 힘을 주신 우리 하나님을 노래합시다. 우리의 일생을 다 드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위해 분투하며 살 수 있도록 티끌 같은 우리들을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