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들으라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 34:11)
녹취자: 조경훈
이 시는 다윗이 고난 중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 시입니다. 시인은 인간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시인이 극한 고난의 때에 감격적인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지혜와 은밀한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자녀들아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를 자기의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내 말을 들으라” 라는 것과 또한 “내가 가르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먼저 “자녀들아” 라고 부릅니다. 문자적으로는 자기의 자식을 부르는 말이겠지만 이러한 호칭은 이스라엘 문학에서 지혜의 스승들이 자기의 지혜자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비록 많은 지혜자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고난 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가상의 청중들을 향해 ‘자녀들아 너희는 내가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깨닫게 된 지혜를 들어보려무나.’ 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많은 고난을 통해서 지혜를 배웠고 연로한 나이는 아니지만 자기가 그 고난 속에서 깨닫게 된 지혜를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시편 34편의 표제를 보면 시인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채 하며 도망쳤을 때에 지은 시” 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에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을 간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도 정체가 드러나자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자처럼 도망하면서 그는 비로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신학자가 되는 것은 독서하고 명상을 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학자가 되는 것은 진리를 향하여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통해서 신학자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고난과 묵상이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 줄 하나님의 말씀이 거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한 시련과 모진 고난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것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후손에게 들려 줄 것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가르치리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라고 되어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여호와에 대한 경외를 가르칠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아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배운 학문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들은 학계에서 이미 오래전에 폐기처분된 지식들이기 때문에 특정한 지식에 대해서 많이 가르칠수록 실수하고 후회할 일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이 시인이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시에 대한 작법이나 철학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오직 한 가지를 배우고 싶어 하며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떡하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목표였습니다. 시인은 다시 한 번 이 큰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나니까 예전에 자신이 알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을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경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이 노래의 저자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깨달은 것은 아름다운 축제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모두 파괴된 멸망의 터 위에서 그는 이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배 목사님들에 비하면 심히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육십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제가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꽃길을 걸어갈 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 그 누구도 꽃길을 걸어가게 하시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배우다”라는 말과 “가르치다”라는 말은 하나의 어근에서 나옵니다. 아마도 히브리사람 생각에는 배우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이요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리에 대한 가장 탁월한 스승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성경과 학문을 통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는 목회와 섬김을 통해 깨닫는 학생으로 살았던 사람들만 비로소 이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니엘서 12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한 설교자가 짧은 문장으로 모여 있는 많은 회중에게 감동을 주는 연설을 하기 위해서 그 설교자는 그 순간이 있기까지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좋은 학문은 머리로 들어가서 입으로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귀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이 참된 사상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눈물이 묻고 땀에 젖고 피에 절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말씀의 증언이 될 수 있으며 그 말이 사람의 귀에까지 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은 좋은 학생이었고 한 줄의 교훈은 가혹한 세월을 요구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를 가르치는 선생의 마지막 비전은 자기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온 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졌을 치욕스런 인생의 고통의 날에 오히려 우리 하나님을 가슴깊이 찬양하며 감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남식 목사님이 50년 동안 글을 쓰셨다고 했는데 20대 중반부터 글을 쓰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이 시작하기 어려운 이른 때부터 목사님은 글을 쓰기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분의 다작이나 현란한 글 솜씨를 찬송할 마음은 없습니다. 더욱이 이 자리에서 한 인간에게 영광을 돌릴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한 가지 또 다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이제까지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찬송가 가사부터 신학적인 저술과 논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을 남겼지만 그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 50주년을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의 주인공이신 김남식 목사님에게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정신을 들려주는 선생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게는 두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로하시다고 여기서 멈추지 마시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날마다 새로워져서 10년 뒤쯤에는 10년 전에 쓴 자신의 글이 부끄러워지는 발전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고, 글을 열심히 쓰더라도 새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글을 읽기 위해서 옛사람들의 글은 잘 안 읽어주는 시대가 옵니다. 그때에도 목사님 자신이 한 권의 책이 되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삶으로 보여주며 빛나는 인생을 살아서 당신이 쓰신 책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모님과 함께 하나님의 복이 깃드는 여생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들이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을 주옵소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들이 겪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더 많이 알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하나님의 성실하심 때문에 주님의 끝없는 인자와 그 사랑을 찬송하게 해 주시옵소서. 날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감격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