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새벽예배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사 3:24-25)
녹취자: 이새봄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백성인 것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언약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그들 모두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언약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 라고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서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신다, 라는 점에서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창조주로써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아버지이고 이제 언약관계에서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세 번째인데, 그 세 번째는 뭐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이 자기의 한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특별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되심이 언약관계 속에서 아버지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는 것, 그것이 곧 처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 인간과 더불어 맺으셨던 관계이고, 또 죄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그 인간들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맺으셨을 그런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주로써 이 세상에 인간들을 만드셨지만 단순히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 창조하신 인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족관계를 누리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가족관계 같이 그렇게.
그러면 이제 그렇게 해서 택한 사람들이 누구냐하면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거슬러 올라가면 요셉의 집안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야곱의 집안으로, 이삭의 집안으로, 아브라함의 집안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셔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시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도 물론 이제 노아나 셋이나 이렇게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체적으로 택하셔서 한 가정, 혈통을 이어가시면서 그들이 더 많은 가족이 되고 그래서 민족이 되도록 시작하신 그 출발점은 아브라함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이 언약백성들입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히 불러주셔서 당신을 친근히 하게하고 그리고 그들이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가까이에서 들으시고 가족과 같은 특별한 관계를 갖으시려고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냥 하신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언약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약속이 맺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 언약백성에게는 아주 놀라운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해주시고 보호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경의 약속된 수많은 약속들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게 하시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특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의무도 주어졌습니다. 그 의무는 뭐냐 하면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 언약관계에 충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핵심적인 요약이 십계명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넓게 펼쳐놓은 것이 성경 전체라는 것입니다.
(예화) 자, 우리들이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요즘은 보통 심각한 시대가 아닙니다. 뭐냐하면 어느 통계를 보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대 졸업한 아이들이 45% 취직되고 55%는 놉니다. 그 밑의 대학은 이미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컴퓨터로 먹고살고 그 직업은 안정적인 직장도 많지만 불안정한 직장이 많습니다. 왜, 자꾸 문을 닫고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한 명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 직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6개월 가르치다 또 다른 학원으로 가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이렇습니다. 그 세 명 중 한 명만이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뭐냐하면 단순히 돈을 잘 번다는 것이 아니고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아주 탄탄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그리고 신분이 보장된 그런 직장입니다. 그런 좋은 직장은 서로 들어가고 싶어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갔는데 한 사람이 거기에 뽑혔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치룬 것도 아니고 진짜 특혜로 “넌 우리회사에 와서 근무해라”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특권입니다. 물론 자기는 도저히 그런 데에 치열하게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갈 처지도 안되는데 불러서 “너 한번 들어와봐라” 그렇게 들여보내주었단 말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모두 부러워합니다. 들어가자마자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교회에서도 직원을 쓸 때도 당연히 고용계약서를 씁니다. 약정서라고 해서 씁니다. 거기에는 이제 사용자가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할 의무와 그 사람이 일을 하는 동안에 준수해야 될 사항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회사 다니지 않을 때에는 10시까지 퍼질러 자도 문제가 안됐는데 서너 번만 그러면 회사 잘립니다. 요즘 같은 때는. 무섭습니다. 지각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관리를 안 하면 그것은 사용자가 잘못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관리를 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이지만. 정확하게 출근하면 기계로 딱 하면 저쪽에서 출근하든 이쪽에서 출근하든 컴퓨터에 탁 들어가서 보면 각 사람이 몇 시에 출근했는지 다 나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부다 통계를 내서 보고를 받습니다. 지각이 두세 번 되는 사람은 경고장을 보냅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에서도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회사에 들어간 것이 큰 특권이면서 동시에 그 회사와 가진 고용계약을 통해서 의무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말입니다. 그 의무를 이해하고도 그 계약관계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게 취업을 의미하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그 언약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많은 의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실업자 시절을 아직 새카맣게 잊어버려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살아가던 때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약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약백성과 더불어서 같이 가족으로 살아가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셨는데,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하고는 틀립니다. 왜냐하면 죄가 이미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언약관계에 들어가겠다고 서약을 하고 들어왔는데 이 속에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그 언약관계에 신앙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언약관계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하나님 앞에 그 언약관계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이 속에 있는 죄가 그 언약관계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약백성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혜택은 누리고 싶지만 그러나 그 의무는 너무 행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몇 개 빼먹든지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한번 해본다든지 이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래? 그러면 뭐, 회사다니는 것처럼, 너 하고 싶은대로 해. 그래. 그럼 우리 헤어지자. 너하고 나하고 계약을 풀자. 그럼 넌 네 맘대로 살면 되지 않냐.”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 계약은 맘대로 취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구원이 취소됐다가, 다시 복구됐다가, 취소됐다가, 다시 복구됐다가 계속 그래야 됩니다. 회개 하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그 계약관계에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셔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언약관계에 충실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약관계에 충실한 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계속 만드시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보통 고달프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계약관계를 들어오겠다고 사모하지도 않는 사람을 계약이 없는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불쌍해서 이리 불러서 그래서 은혜로 계약을 맺으시고 그리고 그 다음에 사람이 불순종합니다. 그러면 늘 훈련시켜서 야단치셔서 돌아오게 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영혼 속에 또 넣어주시고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계약관계 안에서 모든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난의 역사를 헤치고 살아온 그 힘이 이런 계약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의 그 모진 핍박을 이기면서 살아온, 그 고난을 헤치면서 살아온 승리의 역사도 이런 언약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언약사상을 가지고 우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땅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세상을 고쳐서 주님께 돌려드려야 된다, 라는 그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이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강력하고 놀라운 힘입니다.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하면, 그럼 그렇게 언약관계를 이탈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돌아오게 하셨냐, 그 언약관계를 생각나게 해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그 언약관계를 이탈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그들을 신랄하게 비난하시면서 회개해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시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그렇습니다.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기들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지만 신앙적으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수직적인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가장 지극하고 그것을 외쳐서 선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입니다. 내려온 것입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무엇이냐 하면, 가감 없이 하나님의 뜻을 언약백성들에게 전해서 다시 그 언약관계에 충실한 백성들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외치는 그것이 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사명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백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언약의 백성이 이제 육적인 이스라엘을 깨고 영적인 그리스도의 백성들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셨고 특별히 여기 사무엘이 거론되는 이유는 뭐냐하면, 사무엘 때에 와서 이제 이 선지자라고 하는 제도가 제도로써 자리잡은 것입니다. 선지자 학교도 생겨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이 이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비조는 모세이지만 직인으로써의, office로써의 선지자 제도가 구체적으로 수립된 것이 사무엘 때부터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오면서 이제 그 왕국의 시대, 사무엘 때부터 왕국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선지자의 제도화된 시대가 생겨나서 선지자의, 정말 그 말하자면 번영의 시대, 황금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보내어서 증거하시는데 결국은 그 증거하시는 것이 목적이 뭐냐하면 백성을 언약관계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약관계를 결정적으로 돌아오게 하실 한 분이 오실 것이다 이것입니다. 그분도 역시 선지자의 직능을 감당하실 텐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것을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 속에 있었던 그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대한 확 열린 전망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