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감사, 간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4-6)
녹취자: 김미영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죄수가, 사형을 받을지도 모를 위험 중에 있는 죄수가 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그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제가 지난번에 한 번 로마에 설교하러 갔을 때 그 교회 집사님이 사도바울이 갇혀 있던 감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그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고, 그 교회는 그 감옥을, 그 장소를 아주 잘 보존을 했습니다. 그걸 이렇게 보면서 아주 작은 공간이고 사람하나 들어가서 겨우 있을 수 있는 공간이고 바깥으로는 굴뚝같은 통기창이 나 있는 그런 지하의 감옥이었습니다. 거기서 아마도 이 편지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을 당할지도 모를 그런 위험 중에 있는 죄수가 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 심지어는 내가 이렇게 갇혔다고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라 이렇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신앙의 크기는 곧 마음의 크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는 이 세상의 동물들조차도 기쁘고 즐거운 일을 좋아하지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을 행복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비장미를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비장한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는 것이지 본인 자신이 고통과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만 환란과 시련을 만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모든 사람처럼 똑같이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또 홀로 버려졌을 때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처럼 똑같이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그런다면 신앙을 가진 사람의 유익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고 낙담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하고 모두들 외롭고 괴롭다고 말할 때에 오히려 거기서 우리 하나님과 사귀고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자기가 옥에 갇힌 것을 인해서 많은 염려와 근심 속에 있는 이 빌립보 교회를 오히려 깊이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무슨 뜻입니까? 정말 정말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자기의 ‘영적 침체’라는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쁨도 없이 시름에 잠겨서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묻습니다. 예수 믿는 게 인생살이에 도움이 됩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의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행복한 척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재밌는 이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똑같은 이유 때문에 행복해 하면 그건 선교에 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솔직히 얘기해서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이 세상 종으로 복을 많이 받아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부자가 되고 자식들이 잘 되었다고 해도 그걸 보고 선교가 되는 적은 별로 없는 겁니다. 그건 그냥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 이야기지 내가 증인입니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불신자이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뼛속 깊이 무신론자이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다니는 사람들이 나하고 앉아서 서너 시간 이야기하면 신의 존재를 부인하게끔 만들 정도로. 정말 그랬습니다. 그 때에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할 때 그래도 마음에 많이 고통을 받으면서 시련을 당하고 온갖 젊은 나이에 고생을 하고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정했을 때 그 때에 내가 양심에 손을 얹고 예수 믿어서 잘 된 사람보고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불신자이던 시절에도 인생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는 그런 데 있는 거라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불신자인데도.
그러니까 우리들이 가난한 집 가서 우리 집 보십시오. 예수를 믿으니까 우리 아빠도 돈 많이 벌고 나도 피부 마사지 다니고 애들도 유학 가서 프린스턴을 가고... 사람들이 웃습니다. 웃어요. 그게 도저히 꿈도 못 꿀 사람들에게는 잠시 입을 벌리면서 야 별천지구나 그럴 지 모르지만 그보다 나은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아이고 진짜 얼마나 촌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나는 옛 불신자일 때도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있었습니다. 뭐냐면 그 큰 인생의 어려움들이 닥쳤는데 근데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런 걸 본 것은 아닌데 몇 몇 사람에게서 기도와 평안, 그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냐 하면은 저렇게 어려움 속에서 저렇게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성경이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 그래도 나 믿고 싶다 그랬더니 내가 맨 처음 나간 교회 목사님이 그런 걸 불같은 믿음이라 그러더라구요. 나는 좀 그런 것 같지가 않은데.
그런데 그런 거는 아무데도 없는 겁니다. 뭐 그렇게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문학 작품도 읽고 철학가들의 이야기도 읽고 같은 또래에 비해서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데서도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건 발견 할 수 있었는데 그런 평안,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나 혼자 발로 스스로 걸어서 교회에 나가서 수요 예배를 드리면서 무릎을 꿇었을 때에 교인 한 이삼십 명 모이는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9월에, 풍금소리가 들려올 때 가장 먼저 가슴에 느껴지는 게 뭐였냐 면은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회개 이런 게 아니라 아 정말 편하다 평화입니다. 평화 모든 사람을 향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관용을 할 수 있는 평화, 그게 철학책을 읽고 사상책을 읽고 누구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무릎을 치게 하는 감동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안은 전혀. 평안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그런것입니다. 커다란 시련과 어려움을 당해서 그냥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죽고 싶어 하고 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모든 것을 기뻐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든지 나쁜 일을 행하실 수 없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그 속에서 우리가 평안을 누립니다. 왜? 만약에 우리가 당한 어려운 일들이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또 만약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정말 우리의 죄와 잘못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야단치시는 것이라면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태도를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난 어려운 일보다 더 좋은 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실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결론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희랍어로 염려한다는 말은 ‘마음이 갈라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음이 갈라지면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보면 염려스런 일이 생기면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왜? 근심하니까 마음이 갈라지니까 마음이 하나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와 간구는 좀 다릅니다. 기도는 뭐냐 하면 일반적인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하나님 이러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십시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모두 기도입니다. 간구는 뭐냐 하면 특정한 어려움이 있어서 그것을 놓고 특별한 어려움이나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안이 있어서 그것을 놓고 집중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을 가리켜서 ‘간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간구.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서 어떤 특별한 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염려와 근심 속에 혹은 세상의 유혹과 재리속에서 흩어지고 나뉘어져서 하나님을 향해 집중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묶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다시 순결해지고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새벽에 성도에서 도착했습니다. 내가 딱 이틀을 갔다 왔습니다. 밤 12시에 도착해서 다음 다음 날 밤 12시 비행기를 탔으니까.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 CRTS의 자매 하나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영사 같은 출판사에 근무를 했는데 와서 은혜를 많이 받고 어쨌든 좋은 신앙서적이 성경과 신앙을 담은 신앙 서적들이 중국에 퍼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좋은 직장을 사표를 내고 자신이 문화사를 차렸습니다. 1차적인 목표가 열린 교회에서 이루어진 말씀 사역들을 자기가 출판으로 소개하는 건데 중국에서는 출판사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출판사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합니다. 문화사는 그 출판을 거래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결론을 얘기하면 뭐냐 하면 이 자매가 엄청나게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출간 하겠다는 문화사를 공안에서 허가를 내 준 것도 기적인데, 제가 쓴 책 여덟 권을 중국어로 번역된 책을, 전국에다 뿌렸는데 출판사마다 미쳤냐고 이런 책을 얼마나 위험한데 출판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모두를 문을 닫았는데, 한 출판사에서 검토를 하더니 한 번 해 보자고 그랬는데 결론은 뭐냐 하면 성경과 신학을 직접 설명한 책으로써 ISPN을 받고 중국 공안에서 허가받은 책은 제 책이 거의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 자매 얘기로는 우린 그런 정도의 기적인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소리냐 존 스토트 목사님 책도 있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 책도 있는데. 그 책은 그게 아니라 정부에서 허락을 해서 교회 안에서만 돌려봐라 밖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도장을 찍은 책이랍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전국의 서점에 길거리에서도 팔 수 있게끔 허가를 내준 겁니다.
그 책을 보면서 중국에 있는 출판업자들이 아니 이게 어떻게 허가가 나냐 이게. 그런데 게으름은 좀 이해가 갑니다. 중국 사람들이 게으르니까. 새벽기도가 어떻게 허가가 났냐니까 자매가 새벽기도에서 ‘기도’ 자를 싹 빼버리고 ‘새벽’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허가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5월 19일 날 중국 독자들을 모아 놓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자 초청 사인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자기가 언론사도 불러서 취재 시킬 거라고 합니다. 정말 나는 그렇게 놀라운 줄 몰랐습니다. 물론 우리도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만큼은 기도를 안 했을 겁니다.
기적은 간절히 어떤 사안을 놓고 간청하면서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셔서 부르짖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고 이건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고 가정적으로도 마찬가지고 때로는 국가적으로 때로는 교회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간절히 만들어 주십니다.
신앙의 깊이는 결국은 좋은 때 좋은 거는 신앙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보고 욥에 대해서 그러잖습니까? 저렇게 축복을 해주고 복을 줘 보십시오. 누가 좋다 그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한 번 쳐 보십시오 하나님 모른다 그럴 녀석입니다. 그렇잖아요 마귀도 그걸 압니다. 그런데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자신의 흩어진 마음을 모으게 하기 위해서 부르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걸 모르고 바보같이 가정에서 이제 마음이 하나 되어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라고 조금 어려움을 줬는데 서로 손가락질하고 원망하면서 가정이 찢어지고 부부가 갈라지고 교회가 싸우고 나라가 국론이 분열되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거냐 무엇이냐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고 주실 수 있는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모으라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왜 갔는지 아십니까? 성도에 있는 신학교를 두 번 째로 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설명회를 하러 간 겁니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근심합니다. ‘목사님 CRTS에 돈이 저렇게 많이 들어가 가지고 쩔쩔매는데 또 일을 벌이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럽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기뻐 하시냐면은 당신의 마음을 읽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그 일을 너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표징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놀랍게 해결해 주십니다.
맨 처음에 무안에 신학교를 짓는다고 했을 때 맨 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게 해 주십니까? 내가 요번에도 모아놓고 이야기 했는데 학생 모집이 걱정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그러는데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이 일을 여기서 하는 것을 너무 너무 기뻐하신다는 확증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내가 버선목이 아니니까 까서 보여주지 못하는데 세월이 지나 껍데기가 벗겨지면 사실 나타난다. 25명씩 30명. 최대 25명이거든요. 그 학생을 어디에서 모으냐. 학교 설명회가 끝났더니 그 중에 한 목회자가 너무 감동을 받고 연락이 와 가지고 우리 20명 보낼 텐데 한꺼번에 받아 주겠냐 그러는데 그건 생각 좀 해보자 그랬습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보내면 우리가 어떻게 그걸 감당을 합니까? 지금 학생 모집 계획을 배로 늘려서 50 곱하기 4학년. 200명을 모집하기로 했는데. 그래서 내가 이야기 했습니다. 뭐 돈이 어떡 하냐 그래서 우리 야 잘 봐라 열린 교회도 열심히 돕는다. 그런데 우리 기도해서 기적을 이루자 자립형 신학교를 만들어보자 중국에서. 그래서 한 번 모든 사람들이 정말 놀라는 신학교를 만들어보자 두고 봐라 하나님이.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집중적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간구의 제목들을 주십니다. 간구의 기도의 제목이 생기면 그때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기도 게을리 한 것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 게을리 했다는 사실을 뉘우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자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염려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 ‘아멘’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여러분 얼마나 재미있냐 하면 믿음은 마음에서 역사하고 결국은 불신앙은 머리에서 역사합니다. 신앙이 없으면 이 속에서 대그락 대그락 계속 굴립니다. 그 굴리고 마지막 결론은 가슴 속에서 쓴 물이 되어서 내려오는데 견딜 수 없는 고민과 괴로움과 비관을 안겨다 줍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밤새도록 생각했는데 그 머리에 한계가 어디 가겠습니까? 밤을 새운다고 아이큐 80이 1000이 되겠습니까? 결국은 돌고 돌다가 마지막에는 쓴 물이 내려와서 가슴이 다 더럽혀져서 기도할 수도 없고 불만과 막 원망이 가슴속에 꽉 차는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마음을 보존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주님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그런 놀라운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시련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는데 사실은 그게 얼마나 은혜롭게 끝날지를 보여 주시면서 그 순간 불과 몇 시간 사이로 내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뢰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히 무릎을 꿇고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하나님께 쏟으면서 살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온 영혼에 잠자고 있던 것들을 깨워서 하나님을 향해 올바로 서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하나의 경륜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어떻게 인도하실지 어디로 끌고 가실지 모릅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모든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정결해지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차피 이러한 난관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이 우리의 자원으로 되는 것이라면 난관이 얼마나 크냐 우리는 자원이 얼마나 있냐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이 싸움들이 우리의 모든 씨름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어려움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인가. 그것만 중요하지 다른 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어떻게 근심과 염려가 가슴을 썩이는 고통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을 보여주셔서 그래서 우리를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교회가 새롭게 회복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제가 말씀 드릴게요 그냥 마음속으로 ‘아 참 감사하다 그리고 참 기쁘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가장 나쁜 일이라도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대신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