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그대로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식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녹취자 : 이경순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뛰어난 재주와 총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나라의 국무총리까지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뛰어나고 학문적으로 탁월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기술에 있어서 우수했으니 그 사람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남의 나라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 그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정적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온갖 모함과 시기가 다니엘에게 쏠렸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무슨 부정이나 잘못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아무 흠이나 허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넘어뜨릴 한 계책을 찾아냈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생활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망해버린 조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부하는 신하들은 어리석은 다리오 왕에게 간언하였습니다. 왕 외에 우리나라에서 더 높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왕은 신과 같으신 분이시니 왕 외에 누군가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자는 처단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어리석은 다리오 왕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우쭐한 마음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온 나라의 반포되었습니다. 당연히 왕의 인장이 찍힐 정도이니 당연히 국무총리에게 올라왔습니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전에 하던 대로 그랬습니다. 전에 하던 그대로 그는 집에 와서 예루살렘을 향해 난 창문을 열고 평소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전에 하던 그대로 이게 쉬운 일일까요? 예전에는 기도해도 아무 일이 없었고 이제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부귀영화도 사라지고 졸지에 범법자가 되어서 왕에게도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행하던 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고 중국은 거의 평정이 되었다고 하니까 다행이고 우리나라는 열심히 방역을 하고 있으니까 어렵지만 그래도 생명의 위협은 덜 느낍니다. 미국은 이십만 명 사망을 눈앞에 두고 있고 매일 사오만 명씩 확진 자가 나옵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온 사람을 만났는데 거의 의료적인 노력을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하루에 만에서 구천 명까지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니 병원에 갈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온 제자의 이야기에 의하면 코로나에 걸려서 병원에 가도 80%의 폐가 손상되지 않았으면 집으로 돌려보낸답니다.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한 지가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전도사 시절까지 포함해서 한 번도 예배를 못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정부에 의해서 못 드리게 된 그런 일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말씀드리고자한 요지는 코로나 사태로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이미 일어난 것은 일어난 일입니다. 저와 또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코로나 사태가 아주 빠르면 내년 12월 그리고 좀 넉넉히 잡으면 2022년 아주 넉넉히 잡는 사람들은 2023년이 되어야지만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어느 때에 예배당에서 못 모이게 되고 때로는 탄압을 받고 때로는 교회를 안 와야 하는 그런 상황이 경찰에 불려 다니고 조서를 쓰고 하는 시간이 얼마나 반복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될 것은 전에 행하던 그래도 환경은 바뀌었으나 전에 행하던 그대로 목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6개월은 기다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것이 별로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전에 행하던 그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더 슬기로운 방법을 찾자 그리고 마음만은 전에 행하던 그대로 우리 온 몸과 마음을 바쳐서 성도들을 목양하자 이것이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은 내용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과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들 모두 대우를 잘해주고 좋은 조건에 두면 누군지 분간이 안 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고 사역을 하는데 고통이 따르고 위협이 따르고 견딜 수 없이 괴로운 날이 닥칠 때 충성스러운 사람은 전에 행하던 그대로 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실 것입니다. 누가 충성스러운 사람인지 변함없이 충성스러운 사람인지 말입니다. 충성을 했다 안했다 약을 올리듯이 자꾸 변덕을 부리면 그 충성은 아부가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그 정도 마음이 없었는데 아부는 하는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변함없이 아부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까짓 일로 기가 죽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목사가 보는 앞에서 교인들이 살육을 당하고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목회자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면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그 정도의 일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을 감사하면서 우리가 감당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