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역자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잠 24:30-31)
병행법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라고 했으니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가 짝을 이루고 밭과 포도원이 짝을 이룹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삼중의 병행을 이루는데 그 밭에는 가시덤불이 덮였고 그 포도원에는 풀이 덮이고 담이 무너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이 지혜자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조되는 광경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훈계를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는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분명합니다. 게으른 자의 밭은 가시덤불이 전부 덮여있었고 또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은 풀이 가득하고 담이 무너져내렸느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게으른 사람과 밭과 포도원이 짝을 이루는 것도 이해가 되고 가시덤불이 덮인 것과 잡초가 우거진 것도 짝을 이루는 것이 이해가 되는데 무엇인가 짝이 잘 안 이루어질 것 같은데 여기서 짝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 이 두 가지가 짝을 이루면서 제시되는 것입니다. 지혜자의 평생 관심은 지혜였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편에서 생활의 윤리를 말하고 있지만, 그 생활의 윤리는 일반 도덕과 처세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저렇게 살 때 이런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우선 어떤 통찰을 줄까요?
첫째로, 게으른 것은 잘 몰라서 게으른 것입니다. 결국 뭐가 몸에 뭐가 그 속에 들어가서 게을러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결핍되면 그게 곧 게으름이 이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몰입해서 걱정들을 하잖아요. 기도 제목이기도 한데. 집중하는 것을 보면 엄청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는 집중이 아니라 고도의 말하자면 무집중 상태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런 영상에 빠지다 보면 인간의 뇌가 곤충 수준을 닮아 간다는 것입니다. 곤충을 자극하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빛입니다. 특히 나방 같은 것. 아니면 밤벌레 같은 것들 보면 불을 켜놓으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오징어는 밤바다에 수만 초광의 불을 켜야지만 미친 듯이 달려옵니다. 그런 수준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결국 한 사람이 게으른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게으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놀랍게 그 두 사람을 놀라운 방식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지혜는 끊임없이 사람을 묶습니다. 속박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무에 자신을 묶어서 행복한 삶을 찾아가게 만듭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돈 생기면 쓰고 먹고 놀고 허랑방탕하면서 지냅니다. 지혜가 생기면 이렇게 돈 버는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영자가 나와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뭐냐고 물으니 “적금은 항상 2년 이하짜리로 들어라” 였습니다. 절대 긴 거 들지 마라. 왜? 여기저기서 불러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아도 잠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영원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것을 아는 지혜를 가질 때 그는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이런 인기를 누리지 못할 때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경제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고 이런 정신머리가 없는 사람들은 불후한 여생을 보냅니다. 연예인이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정해져 있는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아무나 쓰신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쓰시죠. 제가 기도했잖아요. 병상에 누워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저런 사람이 태어나서 예수 믿고 뭘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섬긴 게 있을까 하고 어느 날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배게 밑에 나달나달해진 종이에서 명단이 나오는데 그 마을 사람의 이름입니다. 기도한 순서대로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누구든 쓰시죠.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님이 안 쓰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이렇게 비참해진단다. 보여 주는 재료로도 악인을 사용하시지 않겠어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어법적인 쓰임새를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까? 아 목회를 저렇게 하면 나중에 자기도 비참해지고 교인도 엉망이 되는구나 보여 주기 위해 쓰임을 받았다고 그것을 쓰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을 쓰십니다. 그런데 쓰시는 때가 있습니다. 전도사로서 쓰실 때는 딱 그때입니다. 딱 그때. 그래서 나이 들어서 신학교 들어오신 분들이 전도사로 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습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부목사로서 교회에 대한 솔직히 이야기해서 부목사님 하면 교회 재정이 어떻게 돌아가나 월급은 어떻게 주나 그런 걱정합니다. 나도 부목사 생활 안 해봤지만 전도사 때 그런 걱정 안했습니다. 온전히 자기 사역에 쏟아붓습니다. 그거 잠깐입니다. 그 끝나고 나면 그 할 기회 있어도 안 됩니다.
어느 교회 갔더니 담임목사가 청년부를 떼어서 맡겼는데 자기가 모아 놓은 청년부를 맡겨놓고 자기는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반 토막이 났다고 합니다. 표현이 재밌습니다. 다 마귀에게 뜯겨 먹히고 있는데 반 쪼가리 남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자기가 직접 청년부를 하겠다고 합니다. 열정은 이해하겠는데 나는 반대다. 담임목사의 자리는 담임목사의 자리가 있고, 그리고 교회가 작은 교회도 아니고 천명이 모이는 교횐데 그거를 담임목사가 청년부를 하겠다고 하면 장년부는 직접 안 맡아주나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시기도 부목사 때나 합니다. 그 시간이 딱 지나가면 다른 기회가 주어지든지 아니면 영원히 쓰임을 못 받는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쓰시고, 안 똑똑한 사람도 쓰십니다. 공부 많이 한 에드워즈 같은 사람도 쓰시고, 무디 같은 사람도 쓰십니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도 쓰시지만 차분한 사람도 쓰십니다. 파렐 같은 사람도 쓰셨고 수줍기 짝이 없는 소년 같은 칼빈 같은 사람도 쓰셔서 역사를 뒤바꾸십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을 쓰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인다는 사람들 중에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
놀라운 구절을 한번 보여주겠습니다. 잠언 15장 19절을 읽어보십시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게으른 자와 누가 짝을 이루고 있습니까? 정직한 자. 동일 대구법이 아니라 반어 대구법입니다. 반대되는 것이 짝을 이룹니다. 게으른 자, 정직한 자가 반어 짝을 이루고, 가시울타리와 대로가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시울타리와 대로는 시간이 없으니 설명하기 싫고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게으른 자는 거짓말쟁이구나. 거짓스러운 사람들이구나. 이것을 지혜자가 한번에 관통해서 본 것입니다. 진실하면서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 어리석으면서 게으른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도 짝이 나옵니다. 게으른 자 중에는 진실한 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설명하면 긴데 간략하게 설명하면 진실이라는 것 자체가 올바른 대상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데서 나오는 평가입니다. 진리와 합치된 상태입니다. 진리는 밖에 있고 도둑놈 위에도 진리가 있고 아주 헌신적으로 사는 사람 위에도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와 합치되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합치를 이룹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도 게으를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어느 것이 어려운지 답해보십시오. 누가 답할래요? 황찬범 전도사가 답해볼까요? 답해봐요. 일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척이 쉽습니까? 너무 사랑하는데 일도 사랑하지 않는 척 티를 안 내는 것이 쉽습니까?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대답) 당연하지. 진리에 끌리고 진실에 땡기면 그렇게 안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사는 모든 사람이 진리 때문에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부지런한 모든 사람이 진실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진실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지혜자가 제일 미워하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악인이 아닙니다.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거짓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거짓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표고, 하나님을 모르는 표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표고,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표징입니다.
그래서 이십몇 년 전의 내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한동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해보니 이 말이 정확하게 사실입니다. 어느 공동체는 돌아보면 지체들이 막 살아납니다. 모든 것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죽는 그런 사역의 현장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죽는 그곳은 정말 사라질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심지어 목회자가 죄를 짓고 아주 나쁜 사람이어도 그 안에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남겨두십니다. 문제는 범위의 문제입니다. 밭으로 말하자면 파릇파릇하게 새싹들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죽는 것도 있습니다. 나중에 살아납니다. 이게 뭐냐면 부지런한 자의 밭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로 그다음에 열심히 성경에서 지혜와 짝을 이루는 단어가 충성입니다. 지혜가 없어서 충성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성되게 살지 않으니까 지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그것이 창의력의 어머니입니다.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이 물론 있죠. 지적능력에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워낙 강할 때 거기에서 끊임없이 깊이 생각하게 되고 현실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겨나게 됩니다. 한 사역자가 새로운 의견이 없다는 것은 사역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티비를 보다 보니 주경진이 오래간만에 나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개그맨들은 자기를 망가지게 만들어서 사람을 웃겼는데 그 사람은 항상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와서 사람들을 품위 있게 웃겼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아나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기가 좋았는데 왜 집어치웠냐고 물었더니 사업이 너무 재밌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만든 것이 보디가드입니다. 좋은 사람들 주식회사.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어보니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대로 실행시켰을 때 고객들이 그 제품을 좋아하고 매출이 올라오는 것을 볼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은 자기 사역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능히 남한테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남의 가르침이 너무 소중합니다. 요새 졸지에 대박 난 상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려지지도 않았던 호미가 아마존에서 만개 이상 팔리고 유럽에서 주문이 쇄도한다고 합니다. 서양사람들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누가 발견했냐고. 코리안 호미. 이름도 호미입니다. 호미. 그 집이 대박이 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하던 그분이 한 달에 만 개씩 아마존으로 납품한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갈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부지런히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는 것은 게으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가 지혜 없는 자고, 지혜 없는 자가 정직한 자와 대조를 이루니까 부정직하다는 것입니다. 부정직하다. 정직하지 않다. 게으른 자는 게으른 자를 음습합니다. 헛간 같은 곳에 가서 보면 겉보기에 멀쩡한 돗자리 같은 것이 깔렸습니다. 열어보면 벌레들이 삽니다. 그것이 음습하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아무리 겉보기에 예의 바르게 보이고 뭘 해도 그 사람들의 삶은 음습합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말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밝습니다. 게으른 자는 게으른 자와 탐욕을 연결시킵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끊임없이 선한 일을 위한 욕망은 없고 정욕은 계속 왕성합니다. 순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는 제가 사업을 했다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농사를 지었다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밭도 한 평 없고 논도 한 평 없고, 또 주말농장 짓는 게 내 취미가 아니니까. 항상 이것을 볼 때마다 나는 교회라고 하는 밭을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밭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밭이 우리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밭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 볼 능력이 없으면 남을 불러 내 밭을 보아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서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그 밭이 되어 있는지 진짜 대로가 나 있는지 가시덤불이 쌓였는지 그리고 돌담이 무너졌는지 잡초가 무성한지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