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약복음의 설교
녹취자 : 김세나
이 시간에 제가 특별히 하고자 하는 것은 신약 복음서에 대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가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실라부스에서 보는 것처럼 첫 번째는 복음서 장르를 다루고, 그 다음으로 두 번째는 하위 장르, 하부 장르 및 목적을 다루고 그 다음에 세 번째 군요. 두 번째는 복음서의 목적을 다루고 세 번째 하위 장르 및 목적을 다루고 그 다음에 설교를 위한 전략을 다루겠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 제가 이 부분을 좀 다루었기 때문에 오늘 강의에서는 설교를 위한 전략에 대해서 조금 시간을 안배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처음에 가스펠 장르에 대해서 좀 복음서 장르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복음서의 장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먼저 기억하셔야 할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복음서는 여러 가지 내용과 형식을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장르에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르치는 담화와 두 번째는 역사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단순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과 하신 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장르를 조금 더 정교하게 정의 내리려면 구약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음서의 장르는 구약에서 그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기를 보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출애굽기를 모세가 쓴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구약의 출애굽기는 주제를 보던지 아니면 문학적 구절을 보던지 구약의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제를 살펴보고, 두 번째 구조에 대해서 좀 살펴봅시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것처럼 모세 오경은 역사적인 서사와 그리고 법조항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복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인 서사와 권위 있는 말씀, 마치 법 조항과 같은 권위 있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역사와 법률이라고 하는 것은 2세기에 BC 2천년,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약 2천 년 전에 아주 팽배했던 만연했던 형식입니다. 이렇게 보면 출애굽기와 복음서가 비슷한 주제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제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구조적인 공통점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비슷한 장르가 나타납니다. 제 생각에는 출애굽기와 신약의 복음서가 하나님의 언약 역사의 성취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두 가지 다 언약의 중보자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출애굽에서는 모세가 될 것이고, 신약에서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되십니다. 두 가지 다 서사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 언약이 시내산에서 이루어졌고 신약에서는 갈보리 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출애굽기와 이 복음서의 언약 구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역사적인 서사와 담화를 포함한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출애굽으로 인도하는 구원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서를 접근할 때는 마치 구약의 역사적 서사를 접근했을 때와의 같은 방식으로 하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눠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인 사건, 두 번째는 문학적인 전개 그리고 세 번째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서의 장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세 가지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선언, 선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첫 번째 특징은 신약성경의 이 단어가 상용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설교하는, 선포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공적으로 하는 공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믿음과 회개로 사람들을 촉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가르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소식,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새 출애굽으로 인도하는 그 말씀입니다. 세 번째 특징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 복음의 선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라는 것은 점점 발전되어 가는 점진적 성격을 담고 있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안에는 역사가 점점 펼쳐져 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성경, 복음서 안에 나타나 있는 사건들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복음서를 기록하는 저자들은 이 스토리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복음서 자자들이 어떤 사건, 이야기, 내용을 기록할 때는 결국 이 사건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겠습니다. 여러분들 마가복음 2장에 어떠한 이야기가 나옵니까. 중풍병자 된 사람을 데리고 위의 지붕을 뚫고 친구들이 끓어 내리는 장면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수많은 행적 가운데 왜 2장에 지금 기록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이 스토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까지 전체의 그림과 어떻게 연관을 짓는가 살펴보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중풍병자를 대할 때마다 우리들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어떠한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예수께서 무엇을 처음에 하시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고치는 것을 먼저 하시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아들아 너의 죄가 용서를 받았느니라. 정말 놀랄 만한 말씀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보다 더 한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합니다. 그 중풍병자가 가지고 있는 외적인 중풍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중풍병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우리의 내면의 중풍병이 나을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시는 유일한 이름이십니다. 그러나 어떻게 주님께서 구원을 하십니까. 마가복음 2장은 마가복음 15장과 연계에서 보면 나타납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에서 어떻게 과연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가셔서 그 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대리자로 그 분이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마치 이 중풍병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시는 십자가의 스토리를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은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인데 전체 구성 역사 속에 놓여져 있는 사건을 선포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복음서의 목적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Narrative, 서사의 문학적인 구조는 이 목적을 알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줍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 다양한 내용들을 모을 때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든 사역들을 모아서 글을 쓸 때에는 특별히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기록을 합니다.
마가복음을 예를 들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 목적을 아는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의 구조를 보면 두 구조로 나타납니다. 제1장 1절에서 15절까지 나오면 처음에 소개하고 첫 서언이 나옵니다. 이 첫 번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에 대한 답변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장 16절에서 8장 26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보여주는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파트라 말할 수 있는 8장 30절에서 15장 47절에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오셨는지, 그 사역을 보여 줍니다. 이 두 가지의 내용,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8장 27절에서 30절 안에 같이 겸비되어서 나옵니다. 여러분들, 이 부분이 무슨 말씀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베드로가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자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문학적인 구조를 찾아보는 것이 성경 전체가 무슨 메시지를 주는 지 내용을 아는 척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첫 부분을 설교하실 때 늘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복음서가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그 부분을 예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 첫 번째 부분에도 여러 가지 다른 하위 장르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마가복음 2장 1절에서 3장 6절에 보면 소위 논쟁의 시리즈가 나타납니다. 이 논쟁이 오고가는 가운데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다른 예를 들면 마가복음 4장 35절에서 5장 43절을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마가 저자가 기적에 대한 여러 가지 시리즈를 이야기 합니다.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마가가 계속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복음서를 이해할 때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복음서의 하위 장르, 서사의 하위 장르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위 장르는 탄생 기사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설교하시려고 한다면 몇 가지 주제를 머릿속에서 떠올려야 합니다. 탄생기사를 머릿속에서 기억하셔야 할 것은 탄생 기사가 성취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기억하셔야 할 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 지어서 누가 아버지인가. 동정녀 탄생에 대한 문제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탄생기사와 연관 지어서 생각해야 할 다른 하부 하위 장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와 결부해서 설교할 때 또 하나 기억하셔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방인의 선교와 관계된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탄생 장르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하부 장르, 기적의 장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설교하실 때 기억하셔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누가 왕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기적 기사가 나올 때는 이 기적과 기사가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기적기사를 다룰 때마다 여러분들이 첫 번째 물어야 할 질문은 왕이 누구인가를 물은 다음에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기적기사가 나올 때마다 왕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증언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 보여주는 기능도 합니다.
세 번째 하부 장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논쟁에 관한 서사입니다. 논쟁에 대한 기사도 기적기사와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왕이 누구인가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논쟁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왕국의 구성원이 누구인가,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인가 보여줍니다. 또 한 가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의 삶의 표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논쟁 기사를 설교하실 때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왕이 누구신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왕국의 일원이 될 수 있는가. 그 다음에 왕국의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제가 이제 몇 가지 좀 넘어 뛰고 비유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해하는 것도 설교하는 것도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비유의 목적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해야 겠습니다. 목적은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하나님의 나라의 약간 애매한 특징을 나타내 주고 있는데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두 가지 성격을 나타내 줍니다. 이 비유 말씀은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은닉하는, 감추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부분은 약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비유의 많은 이야기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도 하고 감추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설교할 때 몇 가지 전략이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이러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말하는 분이 누구신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실마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이 비유가 우리에게 설교되었는가. 언제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구성 역사의 큰 시간표 위에 어느 곳에 이 말씀이 위치해 있는가. 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 비유 안에는 우리가 얘기치 못한 무엇인가가 들어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비유에 대하여 물어봐야 할 것은 왜 이 비유를 주셨는가. 이 비유가 왕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
자 이제 이 복음서를, 이 비유를 설교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가르친 가운데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설교로 넘어가는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구약의 Narrative 본문을 가지고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제 전략을 보여주기 위해서 슬라이드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제 선생님이셨던 에드몬드 클라우니가 기초로 한 그려준 그림입니다.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라는 책, <성경신학과 설교>라는 책에 이 도표가 나와 있습니다. 이 도표가 정확하게 그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왼쪽에 S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S는 Symbol 이란 단어이고 구약의 하나의 Symbol, 하나의 상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주로 구약의 사건, 또는 제도가 Symbol,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자, 제가 첫 번째 First Layer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층이라고 부르면 Symbol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나타나는 T라고 하는 것은 Symbol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이 첫 번째 층에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제일 처음에 해야 할 일은 구약 역사서를, 구약에 나타나 있는 서사를 대할 때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언어적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문학적 분석도 해야 하고 당시 때 상황이 어떠한지 삶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분석, 언어적 분석, 문학적 분석, 당시대의 시대상황의 배경의 분석을 통해서 이 본문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의미에 도착을 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유월절.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문설주 위에 피를 발라 둡니다. 죽음의 신이, 사자가 지나갈 때 문설주에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죽음의 사자가 지나갈 때에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곳은 지나감으로 그들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제가 첫 번째 강의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것처럼 우리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등장인물을 보셔야 하고, 배경을 살펴보아야 하고, 그리고 어떠한 내용인지 줄거리, plot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분석함으로써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입니까. 해결이 없다면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해결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가 대속의 피를 흘려 주어야 그들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슬라이드에서 돌아가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때 S, Symbol은 유월절입니다. 이 때 유월절, Symbol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피를 바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시고 죽이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해석의 첫 번째 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아 될까요. 이렇게 의미가 파악하고 난 다음에 오른쪽 밑의 A, Application, 적용이라는 말입니다. 적용으로 바로 나아가게 되어 버리면 이것을 두고 도덕주의로 빠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때 양을 희생시킨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예수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런 복음은 율법입니다. ‘네가 뭘 해야 한다’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때 우리가 마치 따라야 할 하나의 보기, 모델처럼 나타날 뿐입니다. 그것이 유대 랍비들의 설교의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닥터 홀튼이 보여준 복음주의 노선의 설교를 들어보면 좀 달라져야 합니다. 다시 한번 슬라이드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Symbol에서, 만일 여러분들이 Symbol을 가지고 언어적으로 그리고 당시 배경 연구, 문학적인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연구하는 것은 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일차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깨닫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 많은 사건 중의 하나의 세세한 내용을 포커스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겠습니다. 바로 그 초점을 가지고 적용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레고리, 풍류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문설주에 있는 피를 가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왜 문설주에 있는가. 아마 문설주가 아마 나쁜 것이 있지 않은 가. 뭔가 있을텐데. 뭔가 있어. 아, 그거야. 문설주라는 것은 나쁜 문, 또한 뭔가 나쁜 것이 들어가는 문을 상징할 것 같아.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의 삶에 예수의 피가 필요한 그 나쁜 문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 적용을 끌어 오기 위해서 이 말씀의 전체 의미를 찾아보지 않고 하나 세세한 것을 가지고 적용으로 넘어 옵니다. 그래서 주의 하셔야 할 것은 본문을 분석할 때마다 세세한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중심 되는 주제가 무엇인지 찾으셔야 합니다.
예수 중심의 설교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하나 읽어놓고 예수만 찾으면 다 된 것처럼 이야기 한다고 비판합니다. 왜 그런 비난이 옵니까. 마치 오르겐처럼 무조건 예수를 전해야 하는 것처럼 비유, 풍류 설교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슬라이드로 돌아가서 보겠습니다. 먼저 알아본 것처럼 이 상징은 위에 있는 T1, 본문의 1차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첫 번째 살펴 본 것은 무엇입니까. 구약의 말, 구약의 사건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두 번째 살펴보아야 할 것은 첫 번째 살펴본 T1의 의미가 저 오른쪽의 Tn 전체 그리스도의 사역과 모든 연결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을 구속의 안경으로 살펴보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구약성경이 나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이 유월절의 사건이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이 Narrative를 대할 때마다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유월절에 보여주는 첫 번째 문제는 무엇입니까. 죽음이라는 문제입니다.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양의 피입니다. 결국에 이 구약의 어린 양이 보여주는 것은 언젠가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해서 어린 양으로 피를 흘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1차적 의미,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1차적 의미를 살펴보고 난 다음에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뜻까지 연결시켜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바로 복음 중심의 설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 설교란 은혜의 설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서 은혜를 세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 복음 중심, 은혜 중심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나눠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범주는 은혜가 우리의 죄를 경멸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범주가 은혜가 죄의 죄책감을 없애준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범주는 이 은혜가 죄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말입니다. 다른 식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은혜 중심의 설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설교입니다. 은혜라는 것이 죄를 경멸하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그 분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두 번째 범주인 이 은혜가 우리의 죄책감을 취소시킨다는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이 고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말하고 있는 은혜가 모든 죄의 힘을 무력화 시킨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를 주시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적 죽음, 예수님의 온전한 삶, 예수님의 영화로운 부활.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값이 치러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삶이 우리를 위한 의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으로 주님께서는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중심의 설교, 은혜 중심의 설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를 관심해야 합니다. 유월절 이야기를 가지고 예를 조금 더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곳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초점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향해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온전한 삶이라든지 부활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을 대할 때 본문에 나타나 있는 하나의 특정한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 중에 어느 것에 해당되는지 그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슬라이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시간까지 살펴본 것처럼 구약에 나타나 있는 사건이 1차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T1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번째 살펴본 것은 T1에서 Tn까지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알레고리, 풍류해석이라든가 도덕적 해석과 달리 이런 해석을 모형론적, 또는 유형론적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가 되겠습니다. Tn에서 밑으로 적용으로 나가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위치는 적용위치가 아니라 아직까지는 본문 해석의 단계입니다. 이것이 본문을 해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고 또 적용으로 나아갈 때는 문제와 해결, 두 가지 구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구약의 Narrative는 제가 이렇게 부르고 싶은 fallen, condition, focus, 타락, 상태, 초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브라이언 채플 박사가 쓴 예수 그리스도 중심 설교에 나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좀 더 깊이 이해하시려면 브라이언 채플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브라이언 채플이 fallen, condition, focus, 타락, 상태, 초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어떻게 정의하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브라이언 채플이 타락, 상태, 초점을 정의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조건이 죄 때문에 구약의 말씀, 또는 지혜서의 말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말씀이. (다시 해야 되겠습니다.) 타락, 상태, 초점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떠한 부분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르침과 지혜와 하나님의 위로를 왜 필요로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타락, 상태, 초점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는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브라이언 채플은 이 부분에서 타락, 상태, 초점을 깨닫기 위해서 세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성경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첫 번째 살펴본 첫 번째 해석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본문을 해석하면서 1차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합니다. 이 본문이 관심가지고 전하려고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유월절을 가지고 다시 예를 들겠습니다. 유월절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염두해두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찾아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유월절을 생각할 때 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과 걱정함으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두실까. 이 부분에서 브라이언 채플은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오늘의 청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과 공통점이 무엇인가. 당시 그때 사람들이 가졌던 근심, 걱정과 비교해서 오늘날 우리의 청중들이 가지고 있는 근심과 걱정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에서 시작해서 적용으로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여러분들은 문제가 무엇이며 문제에 대한 해결이 무엇인지를 관심 있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청중을 이 본문에 거대한 그림 속으로 끌어 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근심, 걱정의 문제와 오늘의 우리 청중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우리 속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이며,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여러분 설교라는 것은 언약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백성은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 설교자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나쁜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화재가 났습니다. 비록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우리 집 주위를 불이 애워 싸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해결책이 있습니다. 이 불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한 길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설교가 하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선포를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 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구조를 하나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narrative, 서사 분문이나 이야기 본문에서 어떻게 전할지 보겠습니다. 네 가지를 지적하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내용, 스토리가 사건이 점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드러남에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보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가, 첫 번째는 이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이야기가 미묘하게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첫 번째는 말씀이 선포될 때 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생각하지만 두 번째 생각할 부분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 번째가 있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가 해결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두 번째는 내가 왜 할 수 없는 것인가. 세 번째는 그렇다면 그 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네 번째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줄거리가 해소가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지만 그 분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중심 설교가 보여 줘야 하는 기본 구조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청중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부분을 해 주셨다는 부분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다면 그 분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듣는 설교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존재이고 골리앗과 같은 수많은 대적들, 어려움들이 우리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잘못 설교하면 이러한 도덕적 설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들도 다윗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서서 적들을 이겨내라는 이러한 도덕적 설교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다윗처럼 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이겨내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면 뭔가 이상한 것입니다. 마치 유대 랍비처럼 설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첫 번째 설교를 해야 할 부분은 우리도 다윗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교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장애물을 발견하였을 때 담대하게 극복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너무나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연약함이 얼마나 큽니까. 여기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가지고 구속 역사 전체 그림으로 본다면 다윗은 누구를 말하며 골리앗은 누구를 말합니까. 골리앗은 다윗에게 어떠한 존재입니까. 죽음의 존재입니다. 그가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구속 역사의 눈으로 보면 여기에서 죽음이란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상징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예표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있는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죄라는 거인이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이라는 괴물이 있습니다. 죽음, 자체의 괴물도 우리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가 이 일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험악한 난관을 다 극복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자체를 극복하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에 있는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자면 설교가 이렇게 진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우리가 할 수 없지 않는가.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이 주신 힘으로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복음중심의 설교를 살펴보면 이 복음의 근본은 사실 바뀌지 않습니다. 이유가 바뀌는 것이지, 어떻게 순종할 것인지. 왜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다윗처럼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왜 다윗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가.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더 전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더 전할수록 청중의 삶도 더 변하게 됩니다. 내면에서 외면으로 삶이 바뀌게 됩니다. 도덕적인 설교는 사람들의 외면을 바꿈으로 내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란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오심으로 우리 내면이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봅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입니다. 복음 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