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열어주소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 57:8-11)
녹취자: 황인준
이 시를 쓴 다윗은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서 동굴에 피신하고 있었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그때 지었는지 아니면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고난의 때를 회상한 것입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라고 그랬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여기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참 소중한 것’, ‘값어치가 나가는 것’ 이런 의미입니다. 무겁다는 뜻에서 왔습니다. 아마도 시인이 은유적으로 말하기에 내 안에 있는 가장 값진 것. 그것이 영혼일지 정신일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자기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자기 다윗으로 하여금 다윗이 되게 하는 그 무엇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문맥으로 미루어 보건데 고난과 핍박이 너무 심하고 시련이 겹치니깐 시인의 마음속에서 낙심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면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향하여 하는 말입니다.
“비파와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비파, 수금 이 모든 것들은 찬송에 사용되는 악기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사용되는 악기였습니다. 그것들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을 일깨우는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한밤중과 같아서 낙심천만해 있으니 ‘내가 이렇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벽을 깨울 것이다. 새벽이 오면 밤은 물러갈 것이오. 새벽이 지나면 아침이 올 것이니 아침으로부터 전개되는 정오에 이르기까지의 낮은 밤과 대조되는 어둠의 광명이요 절망의 희망이요 낙심의 새로움입니다.’ 이것을 시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마음은 믿음이 있다고 해도 환경에 의해 쉽게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그때 항상 이 말을 우리에게 외쳐야 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것은 시인이 자기의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 살며 불사르는 자들 가운데 누워있나이다” 그 시인이 처해있는 상황이 얼마나 낙심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낙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기의 삶에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결국 우리로 하여금 주체성을 잃어버려 노예 된 삶을 살게 만들고 은혜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어서 주체로 살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가장 주체성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엇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무엇에 의해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진리에 의해서만 유순해질 수 있는 연단된 꼿꼿함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낙심하던 이 시인의 마음이 감사로 꽉 차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내가 주를 찬송하리이다”그 사자들에게 에워싸이고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워있는 거 같은 절망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우러나왔습니다. 왜 굳이 여기에서 ‘만민 중에 뭇 나라 중에…’라고 왜 고백을 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자기를 포함해서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에 눈을 뜬 겁니다. 미시적으로 자신의 삶을 보면 사자들 가운데 에워싸여있고 그 사자들 사이에서 자신은 먹잇감과 같습니다. 불사르는 자들 중에서 화형당하기 직전에 놓여있는 것 같은 비천한 신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임하고 나니 자신의 영혼이 깨어나고 나니 만민 중에서 감사하며 뭇 나라 중에서 찬송할 마음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질서 있는 통치가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 속에 묻혀서 낙심하고 절망하던 마음이 은혜를 받으니깐 눈을 뜨고, 눈을 뜨고 자신을 보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세계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고 계신 영광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봅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커서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 위에 비치나니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라는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인자’는 여러분들이 잘 알듯이 ‘헤세드(hesed)’입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 자신의 박애로운 성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자격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덕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햇빛의 비춤을 받는 모든 것들이 자신 때문에 그 빛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비추는 찬란한 태양의 자기 발산적 광채 때문에 햇빛을 받게 되듯이 하나님의 무한한 박애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자입니다. 이 사실에 눈을 뜨지 못했을 때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마치 사자들 사이에 유린당하기 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온통 불붙은 숲속에 포위되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을 뜨고 나니깐 자신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인자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진리’라고 번역된 ‘에메트’는 ‘진리’라고도 번역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신실함’입니다. 그래서 인자와 신실함이 짝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인자가 가치 없는 자신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박애적인 은총을 뜻한다면 이 ‘에메트’ 신실함은 그것이 조변석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한 번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그 은총을 비추신 하나님이 그 은총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그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 인자가 얼마나 큰지 저 하늘에까지 미치고, 그리고 그 신실함이 궁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은 영어로 말하면 ‘Heaven’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궁창’은 ‘라키아’인데 이것은 ‘Sky’를 뜻합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을 이야기합니다.
보이는 하늘은 사실 궁창이 다인데 거기가 꽉 차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하나님의 박애적 사랑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저 삼층천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모순으로 가득 찬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신실함이 보이는 이 세계에 가득 찼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찬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이것과 “영광이 온 세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같은 내용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는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기보다는 주님의 통치. 주님의 통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이름. 이것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하늘위에 높이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은 효과적인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래 높으신 분이시지만 주님의 이름이 모든 사람 속에 높임을 받는 영광이 온 세계 모든 것 위에 가장 뛰어나도록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모든 인간의 교만은 엎드릴 것이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실현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낙심과 좌절 속에 시작된 이 찬송이 마지막에는 상황과 환경을 보고 낙심하던 마음이 자신에게로 돌아와서 자신의 영혼을 깨우고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고 하늘과 궁창위에 가득 차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과 환경, 세계와 영혼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아니하고 그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요동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삶의 명랑함, 영원에 뿌리는 둔 현세적 삶의 명랑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을 사는 방식입니다. 비록 잠시 머물 세상이지만 이 속에서 하나님을 곳곳에서 느끼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마치 우리의 마음에 현(絃)을 타고 지나가는 바이올린과 같이 내 마음에 줄들을 타고 지나가면서 환경을 통해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어려운 일이 많이 있어도 매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