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지혜(1)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고전 2:6)
녹취자: 배미라
사도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학자였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평가가 다릅니다. 워낙 기독교에서 위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 때문에 기독교 중에서는 사도 바울을 거의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그렇게 놓고 그러므로 그의 지식과 철학 모든 면에서 탁월했다 이렇게 봅니다. 그러면 또 한쪽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다쑤라고 하는 지방대학교 출신 사람이고 배웠다고 해도 당대에 대단한 로마 시대의 석학들에 비하면 비할 수가 없는 정도의 지식이다. 이렇게 폄하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사도 바울은 잘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슨 뜻이냐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의 운동을 예수 죽으신 후에 세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최적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당시 로마 시대였는데 그 시대에 크게 사도 바울은 세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종교적으로는 당연히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어야 했기 때문에 유다이즘에 깊이 빠져있는 유다이즘을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유다이즘이라고 하는 것은 말라기 이후로 정경 선지자가 성경을 기록하는 선지자들의 시대가 끝나고 박해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미 이민족에 의해 지배받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바벨론 그 이후에 메디아, 바사, 페르시아 이렇게 지배권이 넘어가면서 희랍 제국에서 로마 시대로 지배국만 바뀔 뿐이지 계속해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속에서 구약에서 가장 중심적이었던 종교 행위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제사는 아무데서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민족의 지배 아래서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특히 디아스포라들, 핍박을 받고 본국을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본국에서 살 수가 없어서 외국으로 간 사람들의 경우에는 성전에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인데 이 속에서 사람들이 성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사를 빼고 나면 하나님의 경전밖에 없으니까 성경에 집중을 하면서 그 가르침들이 아주 번쇄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유대교라고 하는 것들이 나오는데 어떤 거는 구약의 전통적인 해석과 일치를 하고 어떤 거는 자기네들이 그 시대의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만들어 내면서 독특한 이스라엘에 디아스포라 상황에 맞는 신학과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구약과 전공한 사람들은 정리를 하기를 유대교는 구약 여호와의 종교는 신약 예수와 종교와 맞닿지만 유대교는 그 구약 여호와의 종교의 곁가지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구약 종교를 제대로 알았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유대교에 물들지 않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를 들자면 엘리사벳이나 시므온이나 안나나 사가랴나 이런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 신앙이 메시아를 더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떠받들어서 독립의 꿈을 이루다가 실패한 이 모든 것들도 사실은 구약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바가 아니라 그 이후의 시대에 사람들이 자기의 시대에 맞게끔 메시아관이 형성된 것입니다. 정치적 메시아관이라고 합니다. 그런 유다이즘의 배경을 타고 납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헬레니즘입니다. 헬레니즘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이 그리스 문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스 문명은 그냥 그리스 문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명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마케도니아가 정권을 잡으면서 정복을 펼치면서 폴리스로 흩어져있던 도시국가처럼 흩어져있던 것들을 평정을 합니다. 스승이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한마디로 사상가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깊이 있는 사상가였는가는 알 수 없지만 헬레니즘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문명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을 헬라스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 헬라스 문명, 기본이 되는 그리스 문명 그것을 정복을 통해서 이동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정복을 하면서 그 문화가 다른 문화와 만나서 헬라스 문명이 그대로 복사판이 된 게 아니라 그쪽에도 아무리 전쟁에는 졌지만 문화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두 문화가 서로 만납니다. 비빔밥처럼 융합이 되는데 기본 틀은 헬라스 문명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된 제 3의 문명을 가리켜서 헬레니즘이라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이 사람이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 논조도 헬레니즘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의문이 드냐 하면 이 사람이 외국어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대단하게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리스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해서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디서 발견이 되냐면 짤막짤막하게 나오는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이게 그리스의 저작들이 인용이 됩니다.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접할 수 있었을까, 접할 수 있는 게 우리 생각에는 문명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게 아니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가기 때문에 간단하게 예 하나만 들면, 마이모니데스 같은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옛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나 혹은 필로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에 굉장히 정통하면서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고 유대교 신앙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그거를 이미 헬레니즘 문명하에서 헬레니즘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서 구약 여호와의 종교를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들을 시도하면서 수많은 변증적이고 철학적인 작품들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써서 내고 심지어는 아랍어로 저작해서 내는 것입니다. 아랍어는 그 후에 일이지만 어떻든지 간에 저작해서 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이미 이 헬레니즘이 들어오면서 그리스의 철학과 이런 것들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았고 보편적이었고 사도 바울도 그런 교육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헬레니즘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문화적인 배경이고 마지막에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로마 시대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정치적인 배경하에서 주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인격 안에서 이 세 문명이 기가 막히게 만납니다. 그래서 이거를 어느 순간에 폭발하면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이 준비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준비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안 하시는 게 있는데 준비된 사람을 안 쓰고 버리시는 것, 하나님이 안 하시는 것입니다. 준비된 것만큼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어쨌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고린도에 오기 전에 선교사의 발자취를 뒤져보면 여기 오기 전에 이 사람이 갔던 데가 아데네였습니다. 아데네는 그 당시에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1세기 때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2세기 3세기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철학의 중심이 아테네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집니다. 이집트 쪽에 있는 팔로스의 등대가 있는 그 알렉산드리아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제가 자기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60여개 이상을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를 세웁니다.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게 아직까지도 알렉산드리아는 중요하게 남아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왜 그랬냐를 얘기하면 시간이 너무 가니까 어쨌든지 간에 알렉산드리아로 나중에 철학의 중심이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학파라는 기독교의 학파가 형성되어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반대편에서 북아프리카 학파가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 학파 쪽에서는 이성과 철학과 신학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서 우리는 불합리함으로 믿는다, 성육신하신 것이 말이 안 되니까 우리는 확신한다, 이런 식으로 신앙과 이성을 대척점에 놓으면서 극단적으로 신앙을 강조하던 파였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는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무역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제 때에 지금 현대식 아파트 45층 높이에 팔로스라는 섬에다가 등대를 세웁니다. 상상이 갑니까? 140미터 150미터 정도 되는 등대를 세웁니다. 그 당시의 건축술로 가능했던 것이 기이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기에 항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적중했습니다. 수많은 배들이 그 등대를 보고 40여키로 바깥에서 보였다고 합니다.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 32키로입니다. 그러니까 더 멀리서도 바다의 등대 밑부분은 안보지만 윗부분이 대가리를 쑥 올라온 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배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몰려드니 어떻게 됩니까? 거기서 배들이 와서 짐을 부리고 다음 항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다음 물건을 바꾸고 돈하고 매매를 해서 금을 챙기고 가니까 그 사람들이 숙식하고 하면서 도시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입니다. 도시가 커지면 어떻게 됩니까? 기능이 대게 복잡해집니다. 수학도 필요하죠, 경영이 필요하죠, 사람을 끌어야하니 심리학도 필요하죠, 법이 무엇인지 따져야 될 일이 많으니까 법학도 필요하죠 아프리카에서 토끼 사냥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법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원이 없으면 안 됩니다. 경찰도 필요하죠, 시스템이 인프라가 많이 갖춰지게 되니까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중에 최고가 철학이지 않습니까? 아데네에서는 장사가 안되는 것입니다. 과외비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철학적인 것들이 시민 전체가 자유인들이 굉장히 유식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상이 이미 헬레니즘 사상이 푹 젖어있는 다국적 사람들이 거기서 모여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교적인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게 되나 그렇게 생각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학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이성은 인간이 찾아낸 게 아니라 계시도 하나님이 주셨고, 이성의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계시를 믿는 신앙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이성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이 신앙이 거짓되지 않고 순수한 신앙이 된다면 그리고 오류가 없이 참된 지혜를 찾아간다면 두 개는 일치 되는 게 맞다, 왜, 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니까, 그런 결론에 도달하면서 흔히 평가하는 것처럼 신앙의 대의를 뚝뚝 잘라서 양보하면서 이성을 받아들이고 세속주의로 간 것이 아니라 이런 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의 양갈래 축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면서 어떡하든지 그 헬레니즘 사상을 끌어안고 그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끔 기독교의 복음을 설명하려는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신학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철학 공부 없으면 신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세워진 유명한 명제, ‘참된 신학은 참된 철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런 전제가 개혁파 정통주의 때까지 쭉 내려오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됐느냐 하면 역사적으로는 당연히 이쪽 카르타고 그다음 신앙만을 강조했던 영향이 거의 사라져버리고 이쪽이 결국은 주류가 되어서 기독교 신앙이 전승되어서 여태까지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테네가 유명한 도시인데 사도바울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대단한 식견을 가졌다 아니었다 서로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거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데네라고 하는 도시 그 자체는 아데네 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로마제국 대 도시에 전부 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3학 4과라고 해서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지만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7가지 학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 이 세 가지 3학, 4과는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 음악도 결국은 수학에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7가지 학문을 알아야지만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다른 지식들을 평가하면서 받아들이고 그럴 때 비로소 자기가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어제도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를 누구와 잠깐 나누었는데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데 이런 어떤 지식 하나를 가지고 자기 인생 전체를 거기다 거는 확신을 삼는 확신군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우리 몸은 자연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약은 될 수 있으면 안 쓰는 게 좋은거다’, 그 말은 틀리지는 않아 그런데 그거를 그 줄 하나에 인간의 몸 전체를 얹어놓기에는 그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요인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언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런 것처럼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균형이 깨져버리면 약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피곤하면 아침에 되면 휙 회복이 되는데 나이 들면 과로사로 죽습니다. 그러면 피로 회복제를 먹는 게 낫겠습니까, 아니면 자연치유가 낫겠습니까? 아니 몸이 자연치유 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는데 그런 어리석은 확신에다가 자기를 올려 놓고 그럽니다. 9일을 잠을 못 자는데 수면제를 안 먹는 것입니다. 9일 동안 잠 못 자면 사람 죽습니다. 심각하게 경고를 하는데 고집이 쇠고집입니다. 말을 안 듣습니다. 9일을 안먹더니 그 다음에는 사람이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수면제를 먹고 몸이 회복이 되면 지금 자연회복력을 꿈 꿀때냐, 일어나지 못하고 24시간을 누워있어서 등을 주물러야지만 숨을 쉬는 사람이 자연회복력이 어디 있습니까? 나무도 수 십 미터 뿌리가 된 나무여야지만 자생력이 있는것이지 어제 묘목 심어서 비가 안 오는데 물을 줘야지 그걸 내버려두고 자연회복력을 기대하냐 이것입니다. 9일 동안 안 먹고, 9일이 되어서 10일이 될 때에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고 자고 나더니 살 것 같다고 합니다. 병이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의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 하면 종합적으로 누구에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지식들을 가져야 된다고 본 것입니다. 어째든 아데네에 갔습니다. 보니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분위기인 것입니다. 거기서 몇 가지 분위기가 무엇이냐 하면 거기는 아크로폴리스, 그거는 사람들이 직접 민주정치를 하기 위해서 그리스 시대부터 아데네가 특히 주최하는 도시가 됐는데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는 광장에 모두 모여서 직접 민주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지도자가 구청장이 김 국장인데 하는 것 보니까 영 신통치 않다, 어떻게 할래?” “내보내자”, “뭔 소리냐 구관이 명관이다”, “뭔 소리냐 갈아치워야지 우리가 살 길이다” 그러면 조개껍질에 가부를 써서 던져서 투표를 해가지고 유임과 퇴임을 결정하는, 심지어는 나쁜 일을 했을 때에는 영영 이 도시에 못 들어오는, 이런 것까지 하던 데가 아크로폴리스니까 투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논쟁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 장소를 누가 쓰냐 하면 철학자들이 장소가 그럴듯하니까 거기서 연설을 하면서 자기가 발견한 새로운 사상을 퍼트리고, 스승의 사상을 퍼트리고 하는 장소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용되던 장소가 아고라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고라는 그리스말로 시장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대부분 그 시장은 해변 근처에 있습니다. 해변에 평소에 시장에 막 서는 것이 아니라 장날에 섭니다. 배 들어오는 날이 장날이 되면 순식간에 천막이 막 쳐지면서 모란시장처럼 되는 것입니다. 모란시장 전날 가보십시오. 그렇게 쳐지면서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연설해야 되잖습니까? 거기에는 자유인도 있고 생각하는 공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시장 앞에 꼭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광장이 있습니다. 거기 연대에 올라가서 떠들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굉장히 매력적인 것입니다.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같이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실 후에 보면 그 시대에 로마에도 저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이후에도 세계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의 위대한 변혁을 가지고 온 철학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기독교 초기에, 1세기, 2세기, 3세기, 4세기 이렇게 될 때 왜 그 사람이 잊혀져 버렸을까 그게 역사학자들의 중요한 의문점입니다. 왜 그 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서구에서 재발견된 것은 십자군전쟁 이후에 일입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아라비아 사람들이 알아봤습니다. 이슬람 제국이 생겨나면서부터 이슬람 제국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로마가 900년 동안 정복한 영토보다 두 배의 영토를 백년 만에 정복을 합니다. 세계 유래가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폭발적인 능력에 배경에 뭐가 있었냐하면 문서에 발견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견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발견된 것을 가지고 하면서 이 사람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폭발적으로 학문이 발전하게 됩니다.
왜냐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여러분이 읽어 본 적이 없으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시간 나면 좀 보십시오. 그런데 졸릴 때 보십시오. 자고 싶을 때 몇 페이지 보면 지류 수면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모든 학문들의 갈래를 다 정리해서 저기 문법, 논리학,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부터 시작해서 시학, 정치, 윤리, 경제 그다음에 동물학, 식물학, 의학까지 손을 데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인간 인류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 그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는 것입니다. 이전에 있던 산발적인 지식들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점으로 모여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재생산해서 서구사회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 쓴 게 그리스어로 쓴 것입니다. 그게 퍼진 것입니다.
왜 그러면 그것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어야 했던 가장 문명이 발달되었던 그리고 인텔리들이 그렇게 많이 영향을 받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로마 시대에 초기 로마 시대에는 왜 잊혀졌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망하는데 그때까지도 로마에 사실 이 그리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사실은 아주 부분적으로밖에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의 식자층만 활용을 했는데 그 식자층들의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대단했기 때문에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그리스 로마 문화 사이에 상당한 일치가 있다고 보는데 그런데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고 그 읽는 사람의 폭도 우리로 지금 따지자면 플라톤의 책을 좀 과장을 하자면 영문판으로 읽는 정도의 수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냐 할 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크게 네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작품의 재질이었습니다. 작품을 양피 같은 데에 튼튼하게 베껴 쓴 것이 아니라 파피루스에 쓰였습니다. 파피루스는 습도에 약하고 또 내가 최근에 발견한 것인데 파피루스는 딱딱한 것 인줄로만 알았는데 판때기가 많은 파피루스도 있습니다. 그게 갈대로 만든 것인데 그것을 접었다 폈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부스러져버립니다. 그런 재질의 문제 때문에 사실 작품이 오래 보존이 안 되었고 변색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어를 그 당시에 고인의 헬라어를 가지고는 그 글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티카 헬라어라고 해서 훨씬 더 그 전 시대에 고급 헬라어를 구사해야지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완전히 문법이 다릅니다. 다시 문법을 배워야 됩니다. 어렵습니다. 그 뒤로 돌아가면 호메루스가 쓴 작품에 나오는 호메릭그릭이 나오는데 그건 더 어렵습니다. 그리스어의 우리말의 ‘월인천강지곡’ 정도 된다고 보면 되고, 이거는 우리로 말하자면 에티카가 ‘월인천강지곡’ 쯤 된다고 치면 아마 호메릭그릭은 삼국시대에 쓰던 국어정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어렵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머리를 두드려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파된 역사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전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뜻이다라고 해설을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파 된 것입니다. 어려워서 그랬습니다.
네 번째는 스토리고와 에피구르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사가 안 된 것입니다. 당시의 대세가 로마시대의 그 사람들의 일세기의 대세가 크게 두 물줄기였는데 하나는 현실 너머에 있는 본질의 세계를 생각하면서 약간은 초현실적인 불교적 명상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현세의 영광을 하찮게 여기는 스토아주의, 스토이고학파가 그것이었습니다. 스토아주의 학파적 물결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망하기 직전에 환영을 받는 철학의 부활이 있는데 그게 스토아주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국에서 스토아주의가 널리 각광을 받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불길한 징조다라고 그러는데 조금 과장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쪽에 커다란 물줄기가 있었는데 그게 에피쿠로스주의입니다.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쾌락주의라고 배운 것인데, 사실은 쾌락주의라고 할 때 그 느낌이 번역이 좀 잘못됐습니다. 현세적 복락주의 정도라고 번역을 하면 좋은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쾌락이라고 해서 짜릿짜릿하고 기쁨을 주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냐면 스피노자의 사상 가운데 진정한 행복은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데에 있다. 코나투스란 기분 좋음입니다. 무엇이냐면 누구를 만났는데 빚쟁이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촉을 하고 안 하면 너 죽여버리겠다 하고 조폭과 함께 왔습니다. 그 사람을 만났을 때는 코나투스가 완전히 다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너무 절친입니다. 그런데 진짜 보고 싶었던 삼십 년 친구를 또 데리고 왔습니다. 만나면 코나투스가 증진이 됩니다. 임 국장을 예를 들어서 미안한데, 임 국장이 한우를 되게 좋아합니다. 장어도 좋아합니다. 어디를 가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풀데기만 싫어하고 다 좋아합니다. 우리 임성욱 국장을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하고 데리고 갔는데 고기 없는 상추쌈 백반을 사줬습니다. 코나투스가 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우집에 갔습니다. 그러면 코나투스가 쫘악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코나투스를 최고로 올릴 수 있는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라 그게 요약하면 스피노자의 가르침입니다. 그와 유사한 것입니다. 사상이 똑같진 않습니다. 그와 유사하게 그거를 가르칩니다. 그게 말하자면 현세적 행복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더라도 항상 현재와 연관을 지으면서 생각을 해라 그래서 마치 방탕주의처럼 해석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건 훔치지 마라 왜냐하면 지금 물건을 훔치면 네가 돈을 얻어서 기분 좋아서 고기도 사먹을 수 있지만 잡히면 너는 쾌락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슬기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는 차안적이고 하나는 피안적인 사상 두 개가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면서 로마제국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아서 웬만한 자유인이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문원이 당시의 식자층에서 쓰던 학문적인 언어인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싸게 접하고 자유롭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이거는 라틴어로 번역된 게 있긴 했지만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게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이 속에서 더군다나 기독교가 314년에 공인이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의 이런 사상하고는 세계관의 윤곽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잊혀지게 되고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가 전개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아데네에서 연설을 막 한 것입니다. 자기가 그 사람들하고 겨뤄도 끄떡없을 정도로 자기가 철학적으로 단련이 되었다고 믿었고 그 사람들의 언어로 전하면서 너희들이 믿는 철학은 결국은 그 당시에 종교와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왜 잘못됐는지를 밝히고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을 선포했는데 결과를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몇 사람은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그러나 사실상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 가운데 쓰디쓴 한 페이지를 기록했을 때 그 다음으로 옮겨온 전도 대상지가 고린도시였습니다. 그때 뭐라고 고백하냐면 내가 너희에게 나올 때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떨었노라 그렇게 약하고 두려워 떨었던 이유가 바로 직전에 트라우마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전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한 그 기억이 남아있는데 내가 이 고린도시도 아데네 못지않은 엄청난 번창한 시였습니다. 식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 가서 내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좌절과 낙심 속에서 여기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갔다 와서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