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부르시는 예수님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녹취자: 임지연, 김정호
우리는 큰 꿈을 안고 유학을 왔습니다. 저는 유학을 한 적이 없고 한국을 벗어나서 한 달 이상을 살아본 적이 없고 미국에서는 2주 이상을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커다란 특권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유학의 기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내가 너무 가기를 원했는데 환경이 열리지 않아서 총신대 신대원을 갔고 두 번째는 완벽하게 기회가 열렸는데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요청을 거절하고 한국에 머물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되었습니다. 총신대 조교수라고 하셨는데 3년 전에 은퇴를 했고 지금은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역의 끝자락에 와 있지만 여러분들은 막 공부를 하는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헛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푸른 꿈을 안고 공부하러 왔지만 한국의 돌아가는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우리 때는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 박사학위가 끝나기 전에 입도선매에 들어갔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교수들을 교섭하고 그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마치면 바로 와서 교수로 임명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석사밖에 마치지 않았는데도 정식 교수로 콜링이 와서 석사 논문을 통과하고 정설을 하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공채를 보고 교수로 채용이 됐고 그때 나이가 만 32살이었습니다.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2년이 될 때까지 학교를 떠나지 않았고 평생 학교에서 살았습니다.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지고 있고 신학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총신신대원에 제가 입학할 때 1,200명이 응시를 했고 60명을 뽑았습니다. 20:1이었습니다. 나머지 200명은 비학위 과정으로 청강생처럼 들어오는 코스였습니다. 지금은 총신대도 올해 미달이 됐습니다. 나머지 학교들은 미달 된 지 오래됐고 교수들은 더 이상 충원하지 않고 신학교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고 10년 안에 현재 있는 신학교의 50퍼센트 정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을 합니다.
목회는 어떨까요? 기독교 인구는 절대적으로 줄고 있고 시 외곽에 있는 교회들은 주일학교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고 100명 이하가 되는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이미 봄, 가을에 저희 교회도 48명, 50명씩 유아세례를 주던 때가 15년 전이었는데 올해 13명에게 유아세례를 줄 정도로 인구절벽이 심각하게 되고 있고 국민 소득이 4만 달러를 육박하면서 지금 현재는 기독교에 대해 거의 무관심의 상태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때를 매우 잘 못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쯤에 유학을 왔었어야 되는데. 그러나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에 돌아가서 사역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미국에 남아서 사역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눈을 들어서 제 3세계를 바라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 3세계 선교에 30년 가까이 헌신해 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체적으로 세계에서 기독교가 디클라인(decline) 되고 있다고 평가를 합니다. 그것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전 세계의 기독교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것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오퍼레이팅 미셔너리(operating missionary) 라고 해서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고도 얼마든지 선교사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줌(zoom)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학교를 하고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면서 한 팀을 10명이 이루면 과장을 좀 보내면 전 세계에 10개의 신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고 거기에는 여러분들과 같은 인재들을 수없이 콜링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마어마한 보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라오스를 갔다 왔는데 제가 승려를 전도했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옷을 벗을까 내일 벗을까를 고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무신론자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통해서 장시간 동안 무신론과 유신론,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한 인간이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십자가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장을 하면 툭 치면 우르르 쓰러지면서 예수를 믿는 지역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문이 열리는 시간이 중국을 경험해 보니까 딱 15년에서 20년입니다. 그리고는 딱 닫힙니다. 그때 부지런히 라오스나 미얀마나 캄보디아나 베트남이나 키르키즈스탄 이런 등등의 나라에 접근을 해서 그들을 선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은 신학적으로 잘 훈련된 사람들이니까 학문적인 역량을 제 3세계를 위해서 쓰고 그런 꿈을 갖는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큰 교회를 목회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해 보니까 그런 목회자로서 남이 부러워하는 것도 많이 있지만 남들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많은 고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혼란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 너무 은혜롭고 매일 매일 환희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희생을 요구하고 엄청난 하드십(hardship)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길을 걸어간 들 꽃길이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는 예언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온몸으로 부딪히고 피투성이가 되고 난 다음에야 ‘아! 이것이 다 쓸데없는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학위를 마친 후 어떠한 영광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없습니다. Absolutely not. 결코 존재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그런 것은 이제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러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21장은 사실 없어도 되는 장입니다. 20장으로 요한복음은 끝나는 장인데 21장이 없었으면 굉장한 신학적인 혼란이 생깁니다. 20장까지는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사복음서 전체의 마지막인데 사도들이 전부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에서 그들이 모두 지도자가 돼서 나타납니다. 누가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21장은 부록입니다. 요한복음의 부록인 동시에 복음서 전체의 부록이고 실패로 사도들의 경험을 어떻게 사도행전의 리더십으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신적 근거가 21장에 마련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자로서 베드로를 불러서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한 가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서 세 번의 문답이 끝납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각각 그리스어에서 다른 언어로 쓰여 있는데 이것을 파고들어서 그리스철학을 동원하는 것은 paranoia 과대망상이고 같은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소위 이야기하는 토톨로지(tautology)를 피하기 위해서 세 가지 다른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질문이 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결국 나쁜 일고 귀결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명예가 주어진다고 칩시다.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언젠가는 죄를 짓게 될 것이고 결국은 파멸을 가져오는 앞잡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학교를 마치고 엄청난 부잣집에 시집을 갔다든지 복권에 당첨이 돼서 몇천 억을 손에 쥐었다고 칩시다. 그것이 그 사람을 반드시 불행하게 하고야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결과가 지어지든지 간에 마지막에 좋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해보니까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려고 책을 두 권을 가지고 왔는데 내일 도착을 한다고 합니다. 미리 보내라고 교역자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늑장을 부려서 미시간에 도착한 한 권을 가지고 왔고 한 권은 아마 내일 도착해서 나눠 줄 것입니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이라는 책인데 그 책을 써서 개척교회를 하는 후배 교역자들에게 보냈더니 그중 한 목사님이 편지를 했습니다. ‘책을 받자마자 한숨에 다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결국은 목사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다는 이야기네요. 목회를 해 보니까 제일 어려운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 이상의 신학의 목표가 있을 수 없고 그것은 세상 자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학교가 매우 탁월하게 훌륭한 학교임에 틀림 없지만 이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영광을 기대한다는 것은 과대망상입니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더 훌륭한 어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와도 신학적으로 학위를 가지고 와서 한국에 와서 대우를 받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원했으면 제가 30대이던 시절에 했었어야 됩니다. 영광! 아주 확실하게 말하는데 없습니다. 어느 정도로 없냐 하면 학위를 받고 돌아가도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강사 자리도 찾기 힘들 정도로 없고 어느 학교에서는 강사로 가겠다고 하니까 교회를 대학교회로 옮기도 십일조로 한다면 강사 자리를 주마! 라고 할 정도로 고자세인 것이 현재의 상황이고 심지어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정교수 연봉을 600만 원을 책정하고 사인을 하자고 하는 학교를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때가 됐습니다. 그때 마지막 신학에 남은 가장 중요한 점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하고자 하실 일을 하시고 의미 없는 일을 위해서 섭리하시지는 않는다. 분명히 뜻이 계셔서 여기 왔고 공부하고 있고 암울한 취업의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뜻을 가지고 여기에 있게 하셨기 때문에 어디엔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여기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학교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 혹은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할 그때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997년이니까 26년전에 베이징에 있는 깡와시 교회라는 곳에 초청을 받아서 갔습니다. 5천 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이고 힐러리 클린턴이 와서 예배를 드렸고 J.I. Packer가 설교한 교회입니다. 유명한 교회에서 저를 불러서 거기에 있는 조선족들 회중에서 설교를 하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했고 끝나고 나서 담임 목사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문화혁명 이전에 은혜를 받고 예수를 열렬히 믿었던 분인데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졸지에 투옥이 되었습니다. 노동교화소에서 15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5년 동안 가족과 편지 하나, 전화 한 통을 주고받을 수가 없는 완전한 단절 속에서 15년 만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었고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집에 와 보니까 부모님들은 진즉에 돌아가셨고 한 아들은 마약 중독자가 됐고 한 아들은 열혈 공산당원이 되어버렸고 아내는 화병으로 죽어버렸고 집터는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거기서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서 통곡을 하며 우는데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예야 이래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목사님이 통곡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I love you. My Lord!’ ‘주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백을 하고 주님 앞에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젊음도 가도 인생도 가고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나의 모든 삶과 공부의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최선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영어로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단연코 여러분 못지않게 30년 넘는 세월을 치열하게 공부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나는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강의는 그 깨달음의 한 부스러기를 여러분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나는 말합니다. 지식도 지나가고 젊음도 지나가고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영원히 있느니라.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므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