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지혜(2)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녹취자 : 오희열
바울이 아데네에서 철학하는 사람들, 특히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과 스토아철학 이 두 개가 당시 로마 시대 철학의 두 줄기였습니다. 이 두 가지 철학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여질 공간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두 가지 철학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특히 스토아시즘에 대해서는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주 활발한 논쟁을 폈습니다. 그 결과는 썩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전도 장소를 옮겨서 온 곳이 고린도 지방이었습니다. 여기에 들어오면서 자신이 “심히 두렵고 떨었다”고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결심을 하는데 “내가 말의 지혜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복음에 헌신할 중대한 결심을 하고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이러한 생각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었고 아데네에서의 그러한 철학적인 변증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로 신학에 있어서 철학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곤 합니다. 그 후의 역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6절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는 앞의 말을 뒤집는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이야기는,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노라”, 그 앞에는 “십자가 못 박힌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두려워 떨었노라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게 하려 하였노라”인데 이것을 “그러나”라는 말로 뒤집습니다. 조건을 달면서 뒤집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여기에서 “온전한”이라는 것은 무슨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 매우 성숙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여기서 “지혜”는 결국 철학입니다. 철학을 말하는데 단, 조건을 붙입니다. 이 지혜는 바울 자신이 아데네에서 선보였던 세상의 지혜나 세상에서 없어질, 왜? 철학은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면 옛날 철학은 간 데 없어지고, 또 새로운 철학이 생겨나면 지금 융성하던 철학들은 사라지는 서구의 철학사의 역사 자체가 끊임없는 자기 부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그런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스리거나 혹은 드물기는 하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니까 이런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라고 하면서 자기가 진짜 가르치고 싶어 하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혹은 “하나님의 지혜를 은밀한 비밀로 말함으로써”라고 해도 됩니다.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원래 철학이라는 말, Philosophia라는 말을 인류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였다고 합니다. 수학자였습니다.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를 이끌었고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학과 기하학이 이런 지혜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엄정하고 중요한 법칙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에 어거스틴이 키케로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호르텐시아’라는 작품을 읽게 됩니다. 그 작품 속에서 한 단어에 꽂히고 그것이 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것은 “Philosophia”라는 단어였습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에 꽂혀있었습니다. 그때 어거스틴은 알리피우스와 함께 법률을 공부해서 배석판사 자리라도 얻기 위해 출세에 목을 매던 때였기 때문에 그 단어를 딱 접하는 그 순간에 이 지혜에 대한 사랑 없이 이 세상에서 번영을 추구하고 잘먹고 잘살기 위해 출세하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깊은 허무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Philosophia라는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이 지혜에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 다시 마음이 불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미 나는 오랜 죄의 습관에 푹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지혜에 대한 사랑은 마치 이미 깊은잠에 들어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는 사람이 잠을 깨울라치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처지와 같았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사도바울은 워낙 뛰어난 학문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어서 인간의 철학과 하나님의 철학을 마음속에서 비교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철학은 이성으로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철학은 믿음으로 그 철학을 찾아가는 것인데 믿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도 함께 역할을 하면서 그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커다란 두 학파의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한쪽은 알렉산드리라는 학파인데 당연히 그것은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중심을 발전했고, 안티오키아, 여기는 북아프리카 쪽에 있는 하나의 학파였습니다. 북아프리카를 대변하고 있는 학자들은 대개 테르툴리아누스나 유스티누스나 혹은 넓게 보면 어거스틴도 그쪽에 들어가지만 어거스틴은 후기에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 쪽에는 여러분이 잘 아는 오리겐을 비롯해서 제롬 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두 도시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북아프리카 안티오키아 학파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테르툴리아누스인데 예루살렘과 아데네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 사람들이 신학을 세우는 데 있어서 철학을 이용하는 것을 기독교에 이교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격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비난했습니다. 이 사람은 호교론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씁니다. 읽어보면 그런 점에 있어서 아주 완강합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서 신앙을 증명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면서 신앙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사람이 그런 이성을 도입하고 철학을 사용해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하니까 자신이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철학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위격”을 가리키는 “persona”, 삼위일체를 이야기하는 “trinitas”, 실체를 가리키는 “substantia”, 이런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용어들, 그것이 아니었으면 신학의 혼란에 빠졌을 많은 용어들 수십 가지를 만들어 냅니다. 아직도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그 철학을 비판한 내용들을 쭉 읽어보면 굉장히 철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끝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를 한마디로 말하면 순교하고 싶어서 안달한 생애였습니다. 그러다가 순교는 못하고,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순교이고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 배교인데 핍박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는 것도 배교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에게는 죽음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정통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몬타누스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성령이라고 생각하는 가르침을 가진 교파였는데 나중에는 거기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정통 기독교로부터는 뭔가 훨씬 더 극단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는 종교를 추구했습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는 아시다시피 알렉산더 대제가 전 세계 유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60여 개를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70몇 개라는 사람도 있는데,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은 61개 정도의 도시를 세웠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시들은 지금 다 폐허가 되어 없어졌습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인데 이 사람은 엄청난 야심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를 세우면서 그 당시 유럽 전체를 잇는 허브 항구로 만들 작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팔로스의 등대라는 것을 거기에 지었습니다. 그 높이가 무려 현대의 아파트 45층에 달하는 등대였습니다. 팔로스라는 섬인데 거기에 등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배들이 그 항구로 피항하도록, 그리고 그 팔로스 항구로 들어오면 알렉산드리아시로 바로 이어져서 거기서 교역을 하고 하역을 하고 물품을 보충하고 무역이 이루어지게 해서 번영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팔로스를 만들었고 45층 높이니까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바다에 갔을 때 저 끝에 보이는 수평선의 길이가 20마일입니다. 32km 정도가 되는데 등대가 저기 수평선 너머에서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많은 배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한 번 몰려들기 시작하니까 인프라가 너무 잘 되어 있으니까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세계적인 교역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교역이 이루어지면 돈이 모이게 됩니다. 돈이 모이면 사회 시스템이 복잡하게 됩니다. 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지적 기반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전에 물물교환 시대에는 계산하는 사람이 필요 없었는데 무역을 통해 엄청난 양의 품목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로 거래되면 회계사가 필요하게 됩니다. 분쟁이 일어나면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그 엄청난 짐들을 나르려면 물류회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당연히 지적인 기반들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아데네는 한물간 것이 돼버립니다. 거기는 가난하고 돈도 없고 알렉산드리아는 기회의 땅입니다. 쉽게 말해서 알렉산드리아는 대치동처럼 된 것이고 아데네는 의왕처럼 된 것입니다. 사설학원을 열어도 여기는 학원비 낼 돈도 별로 없고 거기는 무한정 돈을 쏟아부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할 여건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아데네는 명성만 남고 지식의 주된 축이 알렉산드리아로 옮겨 가게 됩니다. 선생들의 대우도 끝내주게 좋아졌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인프라가 발달하니까 경쟁력이 없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면서 신흥부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60, 70년대에 보면 공장에서 일을 해도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고 지금 중국도 농민들이 농한기에 지게라도 지기 위해 북경이나 상해로 올라오는 것과 비슷한 처지인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발달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토양자체를 말씀드리면 그렇게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교육받은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느 정도 깊이 받았는지는 누구도 추측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상당히 깊은 교육을 받았고 헬레니즘이라는 것을 보급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명감 하나 때문에 일생을 전쟁터에서 누빈 사람이었습니다. 이 헬레니즘은 그 당시 헬라스라는 세계가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헬레니즘을 그리스 문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 문명이고 헬레니즘은 헬레니즘입니다. 그리스 문명이 동양의 토속 문명과 만나면서 비빔밥처럼 만들어진 문명을 가리켜서 우리가 헬레니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헬레니즘의 중요한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해주게 됩니다. 이렇게 헬레니즘이 확산 되는데 그때 기독교계에서는 초창기에 커다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 후에 중세 시대 11세기, 12세기, 특히 13세기에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기독교가 수용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선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눈 떠 보니까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중세 시대의 시대정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헬레니즘도 기독교에서 이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되어버리고 알렉산드리아가 그런 헬레니즘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이 속에서 기독교가 헬레니즘이라는 철학의 체계, 통합적 사상의 체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세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극단적으로 헬레니즘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헬레니즘이야말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고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고, 정 반대쪽에서는 아까 테르툴리아누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저런 사상은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기독교를 망친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 중간에 온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모든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신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이성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 두 가지는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충돌한다면 그것은 믿는 사람이 잘못 믿든지 철학을 하는 사람이 잘못 철학을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지 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모두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나중에 개혁파 정통주의에 와서도 “참된 철학은 참된 지혜와 싸우지 않는다”는 유명한 격언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순탄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를 지배하던 사상이 스토아 학파 사상과 에피쿠로스 학파 사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사상들이 있었지만 1세기 박해의 시대를 지나고 2세기에 변증가들의 시대가 오고, 2세기에 사상적인 박해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1세기 때에는 잡아 가두고 죽이고 찔렀다면, 2세기에는 로마의 유명한 사상가들이 나타나서 기독교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사교로 몰아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기독교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걸출한 사상가들이 나타나면서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상적으로 논변하면서 기독교는 놀라운 사상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그때 활동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오리겐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활동했던 모든 사람이 그랬듯이 천재였습니다. 기독교의 대박해시대가 1세기, 2세기, 심지어 3세기까지 계속됐다고 하는데 시종일관 기독교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찌르고 고문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느슨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이기도 하는, 지금의 중국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사람도 초창기에는 기독교를 오해했기 때문에 엄청난 박해를 했습니다. 그분이 기독교를 박해한 5대 황제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악명이 높았는데 후기에는 태도가 달라져서 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기독교인은 박해를 받으면 카타콤배로 숨고, 박해가 없을 때는 밖에 나와서 활동을 하고, 세월이 좋아지면 글을 써서 논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리겐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분은 천재였습니다. 어렸을 때 신앙이 투철한 집안이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섯 명의 동생이 있는 모두 아홉 식구로 이루어진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결국 순교하시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에게 심적인 동요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 아들이 쐐기를 박는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거기서 가족들을 염려하지 말고 순교하십시오. 저는 배교한 아버지가 벌어주는 돈으로 밥을 먹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매정한 편지를 씁니다. 결국 아버지는 순교하게 되고 아버지의 순교를 보고 감화를 받은 오리겐은 자기도 순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테르툴리아누스처럼 순교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으로 삽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 날 오리겐을 불러서 이야기합니다. “얘야, 신앙을 따라서 순교한다는 것은 훌륭한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너는 천국에서 상급이 클 것이고, 이 슬픔과 고통이 많은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겠니?” 하며 잠자고 있는 동생들을 가리키며, “얘네들을 좀 봐라. 얘네들은 너와 나만 바라보고 있단다. 얘네들은 어떻게 할거니?” 엄마의 눈물 어린 설득에 깊이 감화를 받고 순교하려고 하는 목표를 접고 어떻게 하든지 살아서 주님을 섬겨야겠다는 단호한 각오를 하게 됩니다. 당시 어느 정도 부유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었지만 당시에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로마제국의 방침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들어서면서 그것을 모두 돌려주라고 명령하고 기독교인이 박해받던 시절에 몰수되었던 재산을 반환하는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반환된 돈을 가지고 기독교를 부흥시키는 데 아주 큰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오리겐 같은 경우는 그렇게 가난했지만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났습니다. 학문을 뛰어나게 공부해서 그때 있었던 유일한 신학교라고 말할 수 있는 카테키스무스 학교, 교리학교가 있었고 교장 선생님이 클레멘스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스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 밑에서 도우며 일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열여덟 살의 나이에 그 교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학문이면 학문, 설교면 설교,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달변으로 훌륭하게 가르쳐서 순식간에 구름떼 같은 청중들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데 엄청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 스토아 학파도 아니었고 에피쿠로스 학파도 아니었고 당시 새롭게 부흥하며 떠오르고 있는 신사상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암모니아사카스라고 하는 유명한 플라톤주의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 밑에서 공부하려고 수많은 영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오리게네스와 함께 동문 수학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엔네아데스라는 책을 쓴 플로티누스였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있었던 플라톤주의를 그 당시 헬레니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서 당시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플라톤주의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떤 플라톤주의기에 그것을 해결했느냐? 고전적인 플라톤에 의한 플라톤주의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 결함은, “하나”라고 하는 일자라는 분이 계시고 일자라는 분의 신성이 흘러넘쳐서 비의지적으로, 마치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신성이 흘러넘쳐서 이루어진 것이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큰 양동이에 양초를 때려 부어넣고 끓입니다. 거기에 양초를 계속 부어 넣습니다. 그러면 양초가 점점 펄펄 끓어 넘칠 것입니다. 넘치면서 흘러서 굳어버리는데 그렇게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 세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일자와 세계의 관계가 너무 우연적인 것이 됩니다. 어떻게 모든 물질 세계를 초월하는 영적인 일자가 어떻게 이런 하찮은 물질세계, 그리고 물질적이면 물질적일수록 악하고 영적이면 영적일수록 선하다고 믿는 플라톤의 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그렇게 지극히 영적이어서 선한 신이 지극히 물질적이어서 악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연결고리를 플라톤은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플로티누스가 해결하게 됩니다. 일자에게서 정신이 나오고 정신에게서 세계 혼이 나오고 세계 혼에서 이 세상이 데미오르고스에 의해 빚어짐으로써 이 세계가 된 것이라는 정교한 설명을 내놓습니다. 그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게 됩니다. 그 플라톤주의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플라톤주의는 세계 전체를 포괄하고 남는 하나의 웅장한 사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플로티누스는 기독교 없는 신플라톤주의를 선택했고, 엔네아데스라는 책을 읽어보면 불신자가 쓴 플로톤 책인데 초기에 있었던 어떤 조직신학책보다도 더 정리가 잘 될 정도로 감명 깊습니다. 기독교 이야기만 집어넣으면 참 좋겠다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오리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플라톤주의자가 됩니다.
여기서 이런 오류가 생겨납니다. 당시 오리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랬는데 오리겐은 거의 이단에 가까울 정도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사람으로 정리하고 치워버리는 것으로 우리가 신학교에서는 배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는 기독교 신학이 제대로 성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과도기에서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세우는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테르툴리아누스나 이레나이우스나 어거스틴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쨌든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신이 셋이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당시 로마 사회를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이런 것들이 지배했다, 신플라톤주의가 지배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식자층의 이야기입니다. 민간 모든 신앙은 그냥 만신론이었습니다. 온갖 신을 다 믿는 것이 로마의 일반적인 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판테온이라고 하는 만신전이 있습니다. 한두 명의 신이 아니라 모든 신을 모신 곳이 판테온입니다. 그런 만신전을 보더라도 이 사람들이 가진 것은 다신교였습니다. 다신교에서 아주 질린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설명하는데 한 신적 본질을 가진 하나님인데 인격이 셋이다? 이게 이해가 안 가고 사람들에게는 삼신론으로 비췄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리겐은 이런 설명을 합니다. 성부가 있고, 성부는 완전한 일자이시고, 그 밑에 성자가 계시고, 그 밑에 성령이 계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종속설이라고 합니다. 두 위가 한 위에게 종속된다고 보고 종속설을 만듭니다. 나중에 그것은 이단으로 판명됩니다. 그런 약점은 있는데 그 당시에 그가 얼마나 다신교를 경계했는지를 고려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삼위일체 교리가 충분히 발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위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보에티우스라는 사람이 5세기경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확정이 안 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있긴 있었지만 아주 조잡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사실 이 사람은 다신교로부터 기독교를 유일신교로 보호하기 위해 그런 식의 삼위일체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리겐이 일생동안 쓴 책이 2천 권이었다고 합니다. 그 2천 권의 책 중에서 인류 기독교 역사에 가장 공헌한 책이 있는데 “헥사플라”입니다. 그런 프로젝트를 그 당시에 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성경이 모두 조각조각 찢어져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서 양 자체가 어마어마하니까 조각조각 나눠져 있었고 예수님도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는데 처음에는 두꺼웠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가공 기술이 뛰어나게 되어 얇은 것으로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히브리어 성경 하나가 낙찰되었는데 570억에 팔렸다고 합니다. 9세기 때 양피지로 만들어진 160쪽짜리 성경인데 내가 그림으로 보니까 아주 훌륭했습니다. 최고의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9세기에 만들어졌으니까 알레포코덱스일 가능성이 많은데 코덱스로 묶여진 것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입니다. 570억이면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팔린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1천억 이상을 주고도 살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양피지를 가공하는 기술들이 탁월하게 발전합니다. 이 사람이 “헥사플라”라는 책을 씁니다. 뭔가를 보려면 성경 두루마리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 번역이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았습니다. 권위있는 성경을 다 모아서 여섯 칼럼으로 만듭니다. 6개 국어 대조 성경이라고 보면 됩니다. 6개 국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6개 번역 대조성경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쪽에 히브리어를 쓰고 히브리어를 사람들이 읽지 못하니까 음역을 달고, 이쪽에 아킬라를 비롯한 권위있는 사본들을 실어서 여섯 개를 놓고 창세기1장 1절 하나를 펼치면 동시에 여섯 개의 번역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하나를 의존해서 자기의 주장을 펼치던 학자들이 이제는 여섯 개의 번역을 모두 놓고 성경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를 판단하면서 논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오리겐이 2천 권의 책을 썼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65세 정도까지 사는데 18세에 교리학교 교장이 됐으니까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도 45년 정도밖에 글을 못 썼을 텐데 2천 권을 썼다면 한 해에 50권 가까이 책을 썼다는 건데 그러면 한 주에 한 권씩 썼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도 없고 복사기도 없던 시대에 그게 가능합니까? 거기에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에 큰 도움을 주었던 주교가 암브로시우스라는 인물인데, 동명 인물인 암브로시우스라는 아주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리겐의 팬이었습니다. 전파된 오리겐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이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지혜를 무지한 사람들에게 전할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라고 알아보면서 오리겐에게 제안을 합니다. “선생님은 생업에 대해 일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모든 비용을 대겠습니다. 학문에 전념하시고 글을 쓰시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데 젊은 나이에 밀려오는 욕정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신학적인 오해를 하면서 자신의 남성을 도끼로 잘라버리는 자해행위를 하게 됩니다. 후에는 그것이 성경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너희 지체가 범죄하면 그것을 잘라버리고 천국에 가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말씀을 자기가 오해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학자들이 추정하면서 어떻게 2천 권이 넘는 책을 쓸 수 있을까하는데 그 책 중에 대부분은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사상이 불온하다고 해서 불태워졌는데 너무 아깝습니다. 남아있었더라면 기독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을 것입니다. 정확한 것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아무리 수학을 한 사람이 계산해 봐도 그 저작의 분량을 보면 베껴도 베낄 수가 없는 양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쓴 책만 해도 평범한 필사자가 18년에서 20년을 베껴야 쓸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하는데 마르틴 루터는 2천 권도 안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420권 밖에 못 썼습니다. 오리겐은 2천 권을 썼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 이런 필사방이 있고 필사자들이 쭉 있으면 한 사람이 어디까지 썼는지, 골로새서 주석을 몇 장 어디를 쓴다고 하면 거기에 이어서 불러주면 바로 양피지에 쓰는 게 아니라 허름한 종이나 파피루스 같은 것에 막 갈겨서 속기 비슷하게 적습니다. 그 사람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때 그 옆 사람에게 이동해서 다시 원리 강론을 쓰고, 또 그 옆 사람에게 이동해서 설교문을 쓰고, 이런 식으로 오리겐은 아무 자료도 없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쏟아내면 그것을 받아 적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 학문을 일으켰던 모든 사람의 배경에는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후원을 통해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철학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아데네에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여기로 모이게 됩니다. 철학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됩니다.
더 많은 얘기가 있지만 성경으로 돌아와서 정리하자면 사도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너희 중 온전한 자들에게는 내가 지혜를 말한다.” 철학을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하나님 없이 찾아낸 인간의 철학이 아니다. 그럼 어떤 철학이냐?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은밀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 않고는 그 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여기에 사람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까? 본 사람도 없는데? 우리를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들이 끔찍한 죽임을 당하셔야 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것들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것이고 그 은밀한 것을 보도록 눈을 뜨게 하는 역사가 있는데 이것이 중생과 회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은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어떻게 감춰져 있었습니까? 구약시대에 아주 희미한 방법으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거의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자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찬란하게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복음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세계를 향해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의 열쇠 같은 것이다, 그 복음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의 금고를 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이것이야말로 그 모든 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지혜의 근본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의 위하여”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의 철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땅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날파리와 같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가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라고 가르쳐주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고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성화가 완성되고, 부활하는 그 순간 우리는 완전히 불멸하는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어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고 하나님과 함께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의 영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우리의 영광”을 하나님을 만세 전에 이미 계획하셨다, 이미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지성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이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가야 하는데, 사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아집 때문에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그것이 부패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도저히 이 지혜를 찾아갈 수 없어서 비슷하게 근처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 플라톤주의 철학이고 스토아학파 철학이고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이고 모두 그 안에는 지혜의 요소가 있지만, 이렇게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비하신 그 지혜에는 도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요, 그 믿는 사람이 그 믿음을 토대로 철학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바로 이 완전한 신앙과 철학이 일치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내가 아주 신앙이 어린 사람에게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이미 믿음이 커서 장성하게 된 너희에게는 이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너희는 철학이 신학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철학은 참된 복음신앙에 의해 교정될 때 그 철학이 신앙의 깊이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것을 여기에서 말하며 조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것을 주석가를 통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한 18년 전쯤 어거스틴에 깊이 심취하면서 공부하고 있을 때 이 성경을 읽게 되었고 이 속에 깔려 있는 바울의 이중적인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복음지혜와 성령이라는 것에 대해서 시리즈로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곱, 여덟 개 정도의 시리즈인데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들어보십시오. 나는 이것이 옳은 해석이라고 보고, 이후에 사도바울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 사람들이 진정한, 쉽게 이야기하면 철학을 위해 신앙의 가치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위해 철학을 지혜롭게 사용해서 그 당시 스토아 학파나 에피쿠로스 학파나 특히 신플라톤주의라는 거대한 쓰나미 같은 사상의 물결에 이미 젖어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이고 전설적인 인물이 어거스틴입니다.
포시디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어거스틴과 40년을 함께 합니다. 어거스틴이 회심하던 시절부터 운명하던 시절까지 거의 함께 합니다. 그 포시디우스의 어거스틴 전기에 보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단호하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선포할 때 어거스틴이 있는 주교의 뜰로 어떤 사람이 자진해서 걸어 들어옵니다. 그 사람이 대성통곡하면서 자기의 죄를 많은 사람 앞에 고백합니다. “나는 마니교의 오류에 빠져있었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마니교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기독교가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하며 큰 소리로 울며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감화시켜 돌아오게 한 것에는 성경 구절만을 인용하는 설교가 아니라 어거스틴의 세계를 해석하는 웅장한 사상이 바로 그 마니교를 이기는 중요한 무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의 일생은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이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것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참되게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붙들고 사랑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사상에 설득되고 있는지를 배우면서 그 철학을 이해해서 어떻게 그 철학으로 하여금 이 사상을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기독교 신앙을 전파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할 때 그때 우리의 참된 선교의 열매는 많이 맺힐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아프리카 학파는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서 전통적인 기독교가 이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